113. 몰티 개발
113. 몰티 개발
“바비루타?”
“으하하하. 그럼 내가 바비루타지 누가 바비루타겠나? 반갑네 형제.”
“형제라니, 우리가 언제 형제가 되었습니까?”
“으하하,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우리가 말이야 함께 고브니를 독립시키지 않았나. 그런 역경을 함께 한 포일로 종족으로서 어찌 형제라 하지 않을 수 있나?”
“내가 지금 포일로 종족으로 보입니까?”
“한 번 포일로 종족은 영원한 포일로 종족이지!”
막무가내다.
바비루타도 내가 포일로 종족으로 변장하고 일을 벌였던 것을 안다.
당시 고브니의 독립으로 알케이네스 쪽의 거래처를 상당부분 잃어버린 바비루타에게 도현은 지구와 상거래를 할 수 있도록 줄을 놓아 주었다.
알케이네스 쪽의 손해가 컸겠지만 그래도 새로운 차원이 지구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바비루타도 만족해 했었다.
그런 바비루타가 이 시점에 도현을 찾아온 것은?
달리 생각할 것도 없이 몰티 차원의 개발에 숟가락을 얹고 싶다는 뜻이리라.
“으하하하. 눈빛이 참,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 같구만.”
“뭘 준비해 왔습니까?”
“으응?”
“몰티 차원 개발에 참여하고 싶다는 거 아닙니까? 그럼 사업 계획서 같은 것은 있을 거 아닙니까?”
“뭐, 나야 할 일이 별 것 있나? 그저 이 배를 이용해서 운송업으로 시작을 해 보려는 거지.”
포일로 종족의 배주머니.
바비루타는 두둑한 뱃살을 두드렸다.
도현은 그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정말 핵심을 찌르는 한 수다.
차원 회랑은 이용에 적잖은 비용이 든다.
그래서 지구에서 몰티 차원으로 자재를 옮기는 일에 많은 차원 에너지와 포인트가 소비된다.
그런데 포일로 종족의 배주머니는 그런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줄 수 있다.
왜냐하면 포일로 종족은 배주머니에 무엇이 들어 있더라도 한 명 분의 차원 포인트만 있으면 회랑을 지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명 보따리 장사만 하더라도 엄청난 이익을 볼 수 있다는 말씀.
그런데 운송업을 대놓고 하겠다니.
“함께 할 포일로가 몇이나 됩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포일로 종족의 배주머니에도 한계가 있다. 대략 컨테이너 두어 개?
특히 배주머니가 큰 경우엔 대형 컨테이너 다섯 개 정도도 된다는데.
평균이 두 개 정도로 보면 된다.
때론 반 개도 안 되는 이도 있지만.
“음, 이번에 서른 명 정도 데리고 함께 해 볼까 하는데?”
“많지는 않군요?”
“솔직히 재미라곤 돈 늘어나는 재미 밖에 없는 사업이잖나. 그래서 슬금슬금 피하는 놈들이 많아.”
“고맙습니다.”
도현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바비루타가 이렇게 찾아온 것이 호의임을 알기 때문이다.
상인으로 진출하는 이들이 많은 포일로 종족이지만 의외로 무난한 삶을 싫어한다.
이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즐기며, 파란만장한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모험가 기질이 다분하다고 할까?
그런 의미에서 지구와 몰티 차원 사이에서 운송업을 하는 것을 별로 매력이 없는 일이다.
매번 물건을 받아서 전해주는 것만 하는데 무슨 재미가 있을까.
“솔직히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는 나도 몰라. 하다가 지겨우면 도망가는 놈들이 있을 테니까. 그래서 계약 자체도 짧게 해야 했다고.”
“압니다. 포일로에게 지루함은 독약이죠.”
“이해해 주니 고맙구만. 그래도 걱정하지 말게. 이번에 데리고 온 놈들이 떠나면 또 다른 놈들을 끌고 올 테니까. 짧게 짧게 부려먹을 놈들은 아직 많이 있어.”
물론 그러자면 바비루타가 지금까지 지워 뒀던 빚을 탕감해 줘야 할 것이다.
어려운 부탁을 하려면 그만한 대가를 내어 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니까.
“그렇게 볼 거 없어. 나도 이참에 형제에게 진 빚을 갚으려는 거니까.”
“그런 거라면 다행이군요.”
빈 말은 아닐 것이다.
바비루타는 도현에게 빚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갚기 위해서 이번에 도움을 주겠다고 나선 것일 테니까.
아마도 고브니 차원의 독립이 바비루타에게 엄청난 희열을 줬을 것이다.
그런 역사적인 사건 현장에 함께 있었다는 것, 그리고 도현이 바비루타를 그런 역사적인 일에 조금이라도 관련되게 만들어 줬다는 것.
바비루타가 도현에게 가진 빚은 바로 그런 것일 터였다.
포일로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채무의식이기는 하지만.
“뭐, 그래봐야 형제의 배주머니에 비하면 우리야 별 것 아니긴 하겠지만.”
바비루타가 도현의 배를 힐끗 바라본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도현의 배는 단련된 복근이 옷 안에 숨어 있을 뿐이다.
두꺼비도롱뇽 인간인 포일로 종족과는 다를 수밖에 없지만, 바비루타는 부러운 눈빛이 역력하다.
다만.
“배는 좀 넉넉하고 푸짐해야 맛인데 말이지.”
그래도 자신의 배가 훨씬 더 좋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렇게 바비루타의 합류가 결정되었다.
* * *
지구의 과학문명은 전 차원을 통틀어도 특이한 방식의 발전 양상이다.
도현이 옴파로까지 가서 여러 종족들을 만나고, 그들의 고향 차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어디에도 지구와 같은 문명은 없었다.
“돌연변이 같은 문명이지.”
- 그 때문에 로드의 일곱 성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게 문제가 될 것이 있나?”
- 그렇진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생산성 향상에 더없이 좋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그 평가는 너 혼자 내리는 거잖아. 일곱 성을 통틀어서 너처럼 제대로 사고 능력을 지닌 존재가 또 있기나 해?”
- 그렇기는 하지요. 저야 로드를 보좌해야 하니, 이렇게 뛰어난 존재로 태어나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 인정해 주마. 에포르 네가 없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었겠지.”
물론 에포르가 들어 있는 반지가 과거 회귀를 만들어 줬다는 것은 지금의 에포르와는 전혀 관계가 없긴 하지만.
어쨌건 산성의 주인에서 일곱 성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눈앞에 펼쳐지는 엄청난 건설 현장 역시 존재할 수 없었겠지.’
도현은 그런 생각을 하며 몰티 차원의 중심이 될 도시의 건설을 지켜보았다.
그 도시는 완벽한 계획 도시였다.
이미 완성된 설계에 맞춰서 이루어지는 거대 도시 건설.
그 바탕이 되는 것은 정확히 육각형을 이루고 구현된 성들에 있었다.
군왕성을 제외한 모든 성들이 몰티 차원에 구현되어 육망성을 이뤘고, 그 안쪽 빈 공간에 몰티의 중심 도시가 건설되고 있었다.
이후, 도시가 완성되고, 체계가 잡히게 되면 구현된 여섯 성은 다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생긴 빈자리가 몰티 중심 도시의 확장을 가능하게 할 것이고.
쿠르르르르르릉! 콰과과광!
콰르르르릉! 쿠구구궁! 쿠구궁!
건설 소음은 굉장하다.
더구나 건설 현장을 주름잡고 있는 것이 기간트들이다 보니, 건설 광경도 새롭기 짝이 없다.
곳곳에 거인들이 돌아다니는데, 갖가지 도구를 이용해서 건물들을 짜 맞춘다.
저 대부분의 것들이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방식은 분업화와 자동화.
에포르가 말한 돌연변이 같은 발전 형태란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어느 차원에서도 지구처럼 분업과 자동화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은 없었다.
있다고 해 봐야 노동집약적 형태로 인력을 갈아 넣어서 대량생산을 하는 방식일 뿐.
제작 계의 탑을 달리는 고브니 종족조차도 혈족 별로 모여 살면서 각자의 작품을 만드는 형태다.
지구로 치면 장인이 혼자서 시작부터 끝까지 물건을 제작해 내는 방식.
그런 그들에게 지구식의 분업과 자동화 생산 방식은 그야말로 문화적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고브니 차원에서도 일부분 분업과 자동화가 도입이 되고 있다고 했다.
“형!”
18미터급 기간트 수호신의 어깨 위에 있는 도현을 부르는 목소리.
그와 함께 허공에서 김재홍이 모습을 드러냈다.
“응? 무슨 일이야? 어디 사고라도 생겼냐?”
몰티 차원의 자경대 책임을 맡겨 놓은 김재홍.
그가 도현을 찾은 것은 뭔가 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엔 미국하고 중국이야.”
“끄응. 구역 확실하게 나눠주지 않았어?”
“그랬지. 그런데 그게 솔직히 말이 안 되잖아. 강물을 나눌 수도 없고, 땅 밑에 있는 지하 자원에 선을 그을 수도 없고.”
“그래서 이번엔 무슨 일인데?”
“경계에 있는 푸른나무 숲이 문제야.”
“그거 건들지 말라고 했잖아. 푸른나무 숲은 보호 지역이라고. 그걸 경계로 서로 부딪히지 말라고 했는데?”
도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푸른나무는 말 그대로 파란색 나무였다.
기둥이나 줄기는 물론이고 잎까지 모두 원색에 가까운 파란색인데, 도현이 보호종으로 선언했다.
이유는 그 나무가 마력을 증진시키는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열매가 없으면 나무 자체를 약재로 사용할 수도 있다.
그게 알려지면 남획될 가능성이 있어서 정보도 풀지 않고, 그냥 보호종으로 지정해서 벌목을 하지 못하게 해 두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싸운다고?
“나무를 훼손하지 못하게 한 거지, 출입 자체를 막은 건 아니잖아.”
“길이 있어야 두 지역이 교류를 하지. 푸른나무숲의 좌우는 지형이 험해서 길을 내기가 쉽지 않고.”
“맞아. 그래서 길을 만들었지. 그런데 알잖아. 길을 내는데 나무를 아예 안 자를 수는 없는거.”
“그래서?”
“미국에서 뭔가 알아낸 모양이야. 벌목한 나무들을 일제히 거둬서 자기들 구역으로 가지고 갔거든.”
“응?”
“그러니까 중국에서 뒤늦게 자신들도 권리가 있다고 나무를 내어 놓으라고 한 거지.”
“그럼 반반씩 나누면 되는 거 아닌가?”
“그게 될 거 같아? 이미 미국에서는 나무들을 태웠다느니, 목재로 썼다느니, 펄프로 갈았다느니 하면서 발뺌을 한 거지.”
“하아, 미국이 푸른나무가 마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아낸 모양이군.”
도현이 깊게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정보를 공개하고 엄격하게 관리를 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문제로 미국하고 중국의 이주민들이 서로 대치하고 난리야.”
“일단 흑영들과 레인져들 보내서 푸른나무 숲을 지키게 한다. 앞으로 어떤 벌목 행위도 용납하지 않는다. 아니, 채집도 불가.”
“그럼 통행은?”
“길 따라서 통행하는 것만 허용하는 거야. 그런데 계속 문제가 되면? 그냥 패쇄할 거야. 그리고 미국에 전해. 나무들 모두 한 곳에 모아두라고!”
“수거하게?”
“내가 벌목을 금지했으면 숲에서 밖으로 반출하는 것도 당연히 금지 아닌가?”
“아! 알았어. 그렇게 전할게.”
“혹시라도 딴 마음 품으면 그대로 몰티에서 퇴출시킬 거라고 해. 그리고 이번 기회에 내가 보호종으로 지정한 것들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엄중하게 경고해. 엄한 짓 하면, 내가 직접 나설 거라고!”
“응, 알았어. 형.”
재홍은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허공으로 녹아들었다.
“나 갈게!”
“그래 수고해라.”
쿠구구궁! 쿠구구궁! 쿠궁쿠궁!
재홍의 퇴장과 함께 도현의 귀에는 다시 건설 현장의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푸른나무 숲의 이야기가 자꾸만 도현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에포르, 어떻게 생각해?”
- 로드의 명령을 어긴 것은 아니니 이번은 이렇게 넘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길을 내도록 허락한 것은 로드셨으니까요.
“그래, 그래서 미국이나 중국에 달리 말을 안 하는 건데, 문제는 이런 식으로 서로 싸우는 상황이야.”
- 네?
“아니 아직도 지구가 기본 단위가 안 되는 상황 말이야. 그 작은 곳에서 또 나라, 인종, 민족, 종교 따위로 갈라져서 대립을 하냐고.”
도현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차원 간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차원을 개발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국가 단위를 내세워서 대립하고 싸우다니.
- 소속감이 있으면 당연히 소속이 다른 이들과 경쟁하고 대립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다른 차원과 마찰이 생기면 같은 지구인끼리 힘을 모으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렇겠지.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 몰티 차원의 주민에 대한 정신 교육이 필요할 거 같다.”
- 네? 갑자기요?
“지금은 지구, 하이마 드리아드, 고브니, 포일로 등의 고향 차원에 소속감을 느끼겠지만, 이곳에 정착하게 되면 몰티에 소속감을 더 느낄 수 있게 해야지.”
- 그걸 정신 교육으로 만드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는 일 아닐까요?
“당연히 드러나지 않게. 응? 뭔가 이곳 몰티에 애착을 느낄 수 있도록. 응? 아무튼 이건 좀 전문가를 찾아봐야겠다.”
- 전문가. 네, 로드의 뜻이 그러시다면, 이 에포르 흔쾌히 따르겠습니다.
“허유, 참, 할 거 많아. 해도해도 일이 끝나지를 않아.”
도현은 그 사이에 또 한층이 올라간 건물을 보면서도 성에 차지 않았다.
어서 빨리 개발을 완료하고 차원의 소유권을 얻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또 뭔가 변화가 있을 거란 막연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원 근원 응축기는 아직 작동이 안 되나?”
- 송구스럽습니다. 로드.
잘 풀리는 일들 중에도 간혹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일도 있다.
도현은 더 말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몰티의 태양이 숲 너머로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