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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커는 회귀해서 군주가 되었다-108화 (108/184)

108. 하이트렌 호카 만프레

108. 하이트렌 호카 만프레

“여긴······.”

지하 깊은 곳의 비밀 공간에 도착한 도현.

그는 그곳에서 다수의 사체들을 발견했다.

그곳에 죽어 있는 이들은 다름 아닌 레이미아 종족.

- 왜 여기서 이렇게?

에포르 병사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에 대한 실마리는 한 쪽 구석의 탁자 위에서 발견되었다.

“일종의 유서로군.”

이곳 레이미아 종족이 사용하는 문자를 익힌 것은 아니지만, 도현이 탁자 위의 종이를 보자, 에포르가 곧바로 망막에 해석을 달아 주었다.

내용은 레이미아 종족이 이곳에서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 감시를 피해서 숨었던 거군요?

“그래, 그런데 의외로 그 감시가 길어져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죽은 거였어.”

- 감시자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그저 초인이란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초인은 우리의 기준과는 전혀 다른 거겠지. 거의 신이나 그에 가까운 이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

- 로드께선 평범한 인간들이 보기에 초인이지만, 여기 레이미아가 말한 초인은 로드와 비교했을 때의 초인이란 말씀이군요.

“어쩌면 그것조차 부족할지 모르지. 솔직히 신적인 존재나 그에 준하는 존재에 대해서는 나도 감이 안 잡히니까.”

- 그렇군요.

“하여간, 여기서 죽은 레이미아 일족은 그런 절대적인 존재의 감시를 피해서 이곳에 숨어 있다가, 결국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는 건데, 이상하지?”

- 솔직히 말씀드리면 로드께서 말씀하시는 그런 절대적인 존재가 이곳에 숨은 레이미아 종족을 몰랐을 거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 그래서 나도 이상하다는 거야. 내 생각이지만 아마도 그 존재가 원했던 징벌이 여기 레이미아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네.”

좁은 공간에 갇혀서 오랜 시간 두려움에 떨다가 죽은 레이미아들.

그들이 남긴 기록에는 그간의 두려움은 물론이고, 혹시 자신들이 들켜서 자신들의 동족까지 피해를 입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마음이 여기저기 담겨 있었다.

“어쩌면 차원의 근원에 대해서 아는 이들은 모두 여기 모여 있었기 때문에, 이런 벌을 받는 것으로 끝난 게 아닐까? 여기 마지막 기록에 그렇게 되어 있잖아.”

- 네. 마지막에 가서야 레이미아들도 그런 짐작을 했던 모양이네요.

“그런데도 끝까지 차원의 근원에 대한 욕심은 버리지 못했던 모양이네.”

- 연구를 멈추지 않았고, 결국 차원의 근원을 끌어 모으는 장치까지 만들어 내긴 했군요.

“맞아. 저 장치는 나에게도 쓸모가 있겠어.”

도현은 일곱 성의 주인으로서 차원의 근원에 대한 간섭 자격을 지닌 몸이었다.

하지만 차원의 근원은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존재 방식이 너무도 다양했기 때문이다.

지금 도현이 도착해 있는 이곳 차원에 존재하는 근원은 레이미아 종족의 탐색 결과로는 차원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는 형태였다.

차원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스며 있어서 그것을 끌어모아 응결시키지 않으면 취하기 어려운 형태.

따지고 보면 채굴이라는 면에서는 제일 까다로운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레이미아 종족이 운이 없었다고 해야겠죠. 차원의 근원을 탐지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보니, 차원의 근원이 골고루 퍼져 있었으니 말이죠.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 희망을 품었을지 모르지. 차원의 근원이 한 덩어리로 있었다면 감히 건드릴 엄두도 안 났을 텐데, 미세하게 펴져 있으니 티끌만한 크기로 덜어내면 어찌 해 볼 수 있을 거라고 말이야.”

- 아, 그럴 수도 있었겠습니다.

“아무튼, 결국 저런 장치까지 만들었으니 대단한 집념이라고 해야겠지. 능력도 출중하고.”

- 저들의 후손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만약 그럴 기회가 된다면 서재의 지식들을 활용할 기회가 생기겠지.”

- 저 레이미아의 후손들에게 선조의 지식을 전해주실 생각이시군요?

“물론 공짜는 아니고.”

- 그야 당연한 말씀이지요.

“뭐, 후손들이 선조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문명을 이룩했을 수도 있고, 선조들이 두려워했던 초인의 영역에 후손들이 닿았을 수도 있지. 그럼 서재의 지식 따위는 쓸모가 없을 거고.”

- 그것도 그렇군요.

“자, 다른 건 챙길 게 없을 거 같다. 이미 서재에서 얻을 건 다 얻었고, 여기선 저 차원의 근원 포집 응축기라고 해야 할까? 저것만 챙기면 되니까.”

- 이미 제작에 대한 기록을 모두 챙겨 뒀습니다. 황금의 성을 통해서 언제든 재현할 수 있을 수준입니다.

“당연히 더 좋게 개량할 수 있도록 연구 의뢰도 했겠지?”

- 네, 로드.

“그럼 이만 올라가자. 아까부터 흑영 대장이 나를 찾고 있다.”

- 흑영 대장이면 최상급 흑영 말씀입니까?

“그래, 아무래도 지구에 빨대 꽂은 놈들을 찾은 거 같다.”

- 잘 됐습니다. 어차피 이 유적에서 볼 일은 끝났으니 말입니다.

“때가 잘 맞긴 했지.”

도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유적 밖으로 향했다.

* * *

하이트렌 호카 만프레.

그는 만프레 공작가의 제1 공자로 차기 후계자였다.

하지만 지구 차원의 식민지 건설 원정에 나섰다가 동생인 자카모스 호카의 실책에 만프레 가문이 책임을 질 때, 함께 물러났다.

그 당시 하이트렌의 입지는 자카모스에 비해서 뒤쳐진 상태였다.

그래서 하이트렌은 지구 차원과의 차원 전장에서 그렇게 물러나는 상황을 내심 반기는 입장이었다.

자신이 아니어도 많은 귀족들이 황제의 염원을 이뤄줄 수 있으리라 믿기도 했고.

하지만 전황은 점차 열세로 흘러갔으며, 승산이 없다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때, 하이트렌 호카 만프레는 큰 결단을 내렸다.

어떻게든 지구 차원의 점령에 공을 세울 방법을 찾기로 한 것이다.

그 첫 시작이 어렵게 선을 대어 차원 용병대의 용병을 고용하는 것이었다.

지구라는 차원에 대해서는 제법 많은 것이 밝혀진 상황.

그 차원은 마력이나 오러, 신비와 같은 이능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었다.

그래서 차원 전장의 시스템도 알케이네스 제국 쪽에 페널티를 주고, 지구 차원에 큰 지원을 주는 것으로 균형을 맞추지 않았나.

그러니 마스터급의 차원 용병이 나선다면 충분히 지구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몇 번만 흔들어 준다면?

차원 전장의 용맹한 군대가 충분히 전황을 뒤집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이트렌 호카 만프레는 그렇게 황제와 알케이네스 제국에 대한 충심으로 일을 꾸몄다.

그 저변에 만프레 공작가의 후계자 자리를 다시 공고히 하겠다는 작은 욕심도 있었지만, 그건 대수롭지 않은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하이트렌 호카 만프레의 의뢰는 실패했고, 용병은 돌아오지 못했다.

이 때문에 용병대에서는 하이트렌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다고 이의를 제기할 움직임까지 보였었다.

어찌어찌 그 일은 무마했지만, 결국 지구에 대한 공작은 실패로 남았고, 그것은 공작가 내부에서 하이트렌의 위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명예로운 일은 아니지만, 전쟁 상황에서는 충분히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하이트렌은 그렇게 주장하며 하위 차원에서 지구를 공략하는 방식을 취하기로 했다.

이 계획에 아버지인 만프레 공작의 손을 빌렸다.

이는 하이트렌이 배수진을 친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계획에 공작의 힘을 빌렸으니 그것이 실패하면 공작가를 이어받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위 차원 중에서 지구와 연결된 곳을 찾아 주겠다. 그것까지가 내가 해 줄 수 있는 전부다.”

“알겠습니다. 반드시 성과를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래, 그래야 할 것이다. 돌아오는 것조차 이제는 네 뜻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니.”

“······. 네. 공작각하.”

하이트렌 호가 만프레는 공작의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하위 차원 중에서 지구와 연결된 곳을 찾는 것이나, 그곳으로 이동하는 임시 차원 회랑을 여는 것은 만프레 공작으로서도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을 해 주는 것은 승계 서열 1위인 하이트렌을 대우해 주는 것이며, 계획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았다는 말이기도 했다.

겉으로 하는 말은 섭섭했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배려였다.

그렇게 하이트렌은 자신의 추종 세력을 추려 하위 차원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이트렌의 계획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부관이 낯선 존재에 대해서 보고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림자 종족이라고? 섀도우란 말이냐?”

“네, 공자님. 섀도우 종족의 한 갈래가 분명합니다.”

“이곳 차원에 그런 종족이 있었다고? 섀도우 종족은 지성족일 텐데? 설마 섀도우 종족 중에서 몬스터 계열인가?”

“그것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저희의 경계 결계에 걸린 순간 모습을 감췄습니다.”

“끄응, 그렇다는 말은 몬스터가 아닐 확률이 높다는 소리잖아! 몬스터가 경계 결계에 걸린다고 도망치는 경우는 없을 테니까.”

“그건 확신할 수 없습니다. 섀도우 계열의 몬스터는 원래 몸을 감추고 암습을 주로 하는 것들입니다. 거기에 특별한 종들은 정신계 능력을 지녀서 현혹이나 세뇌, 빙의 따위의 수작을 부리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몬스터일 가능성도 있다?”

“이런 말씀은 외람되지만, 이곳으로 떠나기 전에 공작각하께서······.”

“아, 그래. 아버지께서 이곳 차원에 지성종은 없다고 하셨지?”

“그렇습니다.”

“그래, 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셨으니, 그게 사실이겠지. 그러면 그 섀도우 종족은 몬스터이거나, 새로 이곳 차원으로 넘어온 지성종족이겠군.”

“저희처럼 다른 차원에서 넘어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는 것입니까?”

“왜?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거냐?”

“아, 아닙니다.”

“음, 그래서 경계는 더 강화했겠지?”

“물론입니다. 섀도우 계열을 탐지할 수 있는 결계와 마법을 더 추가했습니다. 아울러서 은신이나 공간 이동, 원거리 탐지 마법에 대한 방어 수준도 업그레이드 했습니다.”

“잘 했다. 그럼 내가 해야 할 일은 기사단을 움직이는 것이겠군?”

“네, 공자님.”

기사단은 하이트렌의 명령만 받는 특수한 집단이었다.

그러니 하이트렌이 기사들에게 그 섀도우 종족에 대한 추적 명령을 내려야 했다.

부관은 그렇게 꽉 막힌 명령 체계가 때로는 답답하기도 했지만, 하이트렌의 방침이 그랬기에 어쩔 수 없었다.

“좋아. 그럼 기사단을 호출······. 피해!”

콰과과광! 콰과광!

하이트렌은 갑자기 닥쳐오는 거대한 마력의 유동에 깜짝 놀라며 부관에게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동시에 창 밖으로 몸을 날리며 오러를 최대한 끌어 올려 몸을 보호했다.

하지만 그의 경고는 큰 의미가 없었다.

부관은 그를 따라서 밖으로 나오지 못했고, 그가 있던 건물은 빛과 함께 산화되어 흩어졌다.

하이트렌은 그런 중에도 용케 오러를 유지하며 폭압을 거스르지 않고 몸을 맡겼다.

그렇게 수십 미터를 날아간 하이트렌은 마지막에 오러의 힘을 빌려 균형을 잡은 상태로 착지에 성공했다.

“공자님!”

“공자님!”

“저기다!”

휙휙휙휙!

갑작스런 공격에 하이트렌의 저택이 날아간 상황.

그의 충직한 기사들이 놀라 뛰쳐나와 그를 찾았다.

그리고 곧바로 하이트렌의 기운을 느끼고 속속 모여들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기사단의 단장인 토카 율루인이 하이트렌의 부상을 눈으로 살피며 물었다.

“마법 공격이다. 수준으로 봐서는 상위 마법이야.”

하이트렌은 인상을 쓰며 주둔지 밖을 노려보았다.

마력이 날아온 방향이었다.

저 멀리 허공에서 흩어지는 탑의 형상이 보였다.

“탑?”

기사단장 율루인도 그것을 보았는지 의아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하이트렌의 머릿속에는 지난 차원 전장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율루인을 비롯한 기사들은 당시 차원 전장에 나서지 못했던 이들.

당시에 차원 전장에서 돌아올 수 있었던 만프레 공작가의 사람은 하이트렌 호카 만프레 단 한사람 뿐이었다.

귀족으로서 골드 게이트의 이용 자격을 가진 것이 그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서 저 멀리 언뜻 보였던 탑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는 하이트렌 호가 만프레 그 밖에 없었다.

“설마 지구 차원의 소환사 놈이 여길 왔다고?”

하이트렌은 현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일그러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가 믿기 어렵다고 하거나 말거나, 저 멀리 주둔지의 토성벽 밖으로 한 무리의 부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차원 전장에서 유명했던 바로 그 소환사의 흙인형 부대였다.

“정말 그 놈이란 말이군.”

하이트렌이 허탈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곧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흙인형 병사 부대를 노려봤다.

“적의 공격이다! 모두 결전을 준비해라!”

그리고 기사단을 비롯한 추종자들에게 큰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도현과 하이트렌 호카 만프레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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