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는 회귀해서 군주가 되었다-107화 (107/184)

107. 차원의 근원에 대해 알게 되다

107. 차원의 근원에 대해 알게 되다

기록은 시간을 뛰어 넘어 지식과 정보를 전달한다.

비록 그것이 당장 해독되지 않는 문자라 하더라도, 그 자료의 양이 많다면?

- 드디어 문자 해독이 끝났습니다.

이렇게 이미 오래 전에 사장된 문자라도 다시 읽어 낼 수 있다.

“다행히 오래 걸리진 않았네?”

- 네, 로드. 로드께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나야, 지금도 쓰이고 있는 문자들의 해석본 몇 가지를 만들어 준 것 뿐인데.”

- 그걸 바탕으로 지금은 쓰지 않는 문자들을 해석할 수 있었고, 그 단계를 네 번 거쳐서 결국 이곳 레이미아 종족이 썼던 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럼 이 서재에 있는 책들은 모두 읽을 수 있는 건가?”

- 물론입니다. 그 중에도 오래된 고어들이 있는 모양이지만, 그것까지 모두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럼 번역본을 빨리 만들어서 넘겨 줘.”

도현은 사장된 문자나 언어가 아니면 어떤 것이라도 읽고 알아듣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쓰지 않는 문자는 배우지 않으면 읽을 수 없다.

그러니 차라리 글자를 새로 배우는 것보다는 서재에 있는 책들을 모두 번역하는 쪽이 편했다.

어차피 번역이야 황금의 성을 통하면 도현이 신경 쓸 일이 없으니까.

- 네, 로드. 그런데······.

“응? 뭐가 있어?”

도현은 에포르의 행동에서 뭔가 중요한 것이 발견되었음을 직감했다.

- 이것을 먼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곳에 있던 레이미아 종족의 우두머리가 남긴 기록입니다.

“무슨 내용이 있기에 그렇게 긴장을 했어?”

도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에포르가 내미는 책을 받아들었다.

이미 황금의 성에서 한글로 번역해 놓은 것이었다.

<차원의 근원에 대한 고찰>

서류의 재목은 연구 일지를 떠올리게 했다.

도현은 책의 제목을 확인하고 페이지를 넘기며 빠르게 내용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도현이 책을 읽는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더니, 언제부턴가는 한 페이지를 읽는데 수십 분씩 걸리기도 했다.

에포르 병사는 그 곁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 * *

“여기 있던 레이미아 종족이 차원의 근원을 찾고 있었다고?”

- 그렇습니다 로드.

“차원의 근원이라는 것이 그 차원을 유지하는 핵과 같은 것이고, 그것을 추출할 수도 있고?”

- 추출한 근원을 다른 근원과 합치면 차원의 격을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차원의 격, 뭐, 그냥 모든 에너지가 풍부하게 넘쳐서,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좋은 환경이 된다는 거잖아.”

- 레이미아 수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차원의 근원이 기준을 넘어서면, 그 차원은 일종의 파라다이스, 낙원에 까워진다고 했습니다.

“그곳에 사는 생명체의 수명도 길어지고, 차원 곳곳에 자원이 넘쳐나는 곳이 된다는 거지.”

- 네, 로드.

“그래서 여기 있던 레이미아 종족이 그 차원의 근원을 추출하기 위해서 이곳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다?”

- 네, 하지만 그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른 책들을 더 번역하면 뒷 이야기를 적어 놓은 것이 있지 않을까?”

- 아쉽게도 로드께 드린 그 번역본이 가장 늦게 쓰여진 것입니다. 다른 책이나 기록들은 모두 그것보다 앞서서 만들어진 것이고 말입니다.

“그래?”

- 어쨌거나 이 서재에 있던 기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차원의 근원입니다.

“그게 뭔데 그렇게 네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어?”

- 그게 뭔지는 이미 설명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다고 치고.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 있지?”

“정확하게는 제가 아니라 로드와 상관이 있습니다.”

“음? 나와?”

도현은 에포르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레이미아 수장의 기록을 다 읽었지만 거기 어디에도 자신이 연관될 내용은 없었기 때문이다.

- 로드께선 일곱 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지.”

- 그리고 그 일곱 성 역시 하나의 차원입니다.

“음? 그건 좀 미묘한데? 차원이라기엔 허상이나 관념의 구현에 가깝지 않나?”

도현의 심상 세계에 존재하는 일곱 개의 성.

물론 그것을 현실에 구현해 낼 수도 있긴 하지만, 애초에 시작이 도현의 심상 세계였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의 차원이라고?

- 많이 부족한 차원이기긴 합니다만, 분명한 사실입니다. 저도 레이미아 수장의 기록을 읽으면서 봉인되었던 기억이 떠올라서 이제야 알게 된 것입니다.

“와, 심상 세계의 일곱 성이 실제론 진짜 차원이었단 말이지?”

- 로드의 말씀처럼 많이 부족하긴 합니다만, 정체성을 따지자면 분명 고대에 하나의 차원에서 갈라진 수많은 차원 중에 하나입니다.

“음, 원래는 이 세상의 모든 차원이 하나였고, 그것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숫자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런 차원들마다 고대 하나였던 차원의 근원을 하나씩 품고 있다?”

- 네, 로드. 그리고 로드의 일곱 성 역시 그 고대 유일 차원의 근원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주 먼지만큼 작고 희미하겠지?”

- 비유하자면 그렇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크기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뭔데?”

도현이 대수롭지 않은 투로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도현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 로드께서 그 근원의 주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일곱 성의 주인이니, 일곱 성이 있는 차원의 주인이기도 하겠지.”

여전히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는 도현.

에포르가 그런 도현을 답답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 대부분의 차원들은 주인이 없습니다. 지배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차원의 근원을 소유한 것이 아닙니다. 차원의 근원을 소유했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자면 차원의 근원에 간섭할 자격을 지녔다는 말입니다.

“응? 간섭할 자격?”

- 추출하고, 융합시킬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 레이미아들이 하려고 했던 그거?”

- 하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격이 되지 않았으니까요.

“가만히 듣다보니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 그러니까 내가 차원의 근원을 추출하고 융합할 수 있다면, 다른 차원의 근원을 흡수해서 일곱 성 차원에 융합시킬 수 있다는 거잖아?”

- 그렇게 되면 일곱 성 차원은 더욱 풍요로워 질 것이고, 그곳의 주민들도 지금보다 훨씬 생명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일정 선을 넘게 되면, 일곱 성의 주민들 모두가 진짜 생명체로 거듭나게 될 것이고 말입니다.

“와, 소름 돋네.”

에포르의 설명에 도현이 팔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되면 이 차원, 여긴 어떻게 되는 건데?”

한 마디로 차원의 근원을 제거한다는 소린데, 그러면 본래 여기는 어떻게 되나?

도현의 눈앞에는 과거 자신의 죽음에서 무너졌던 차원 회랑을 떠올랐다.

모든 것이 차원의 틈으로 바스러져 들어가는 광경.

어쩌면 차원의 근원을 상실한 이곳 차원 역시 그런 모습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 로드께서 상상하시는 것과 같은 모습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도현에게 에포르가 확인 사살을 해 주었다.

“으음. 내 일곱 성 차원을 위해서 이곳 차원 전체를 소멸 시킨단 말이지?”

도현이 침음을 흐리며 중얼거렸다.

그런 도현의 얼굴은 창백하게 탈색되어 있었다.

차원 하나의 소멸.

그것은 도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충격이었다.

하나의 차원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살고 있을까.

그런데 그걸 모두 죽음으로 내몰고 자신의 일곱 성에 축복을 내리는 격이다.

그건.

“피로 쌓아 올리는 낙원인가?”

도현의 눈빛이 깊은 곳에서 떨렸다.

그게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속 깊은 곳에서는 확인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아니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다행히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뭐? 차원의 근원을 추출하고도 그 차원이 소멸하지 않을 방법이 있어?”

- 로드께서 그것을 원한다면 추출의 정도를 조절하면 되는 일일 겁니다. 하지만 그 역시 권하고 싶은 방법은 아닙니다.

“어째서?”

- 차원의 근원이 그렇게 작아지면 당연히 이곳 차원은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너무 척박한 곳으로 변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 그렇구나. 한 번에 소멸을 시키느냐, 시차를 두고 말려 죽이느냐의 차이일 뿐인가?”

-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로드께 권할 수 있는 방법은.

“또 다른 방법?”

- 차원 자체를 그대로 이어 붙이는 것입니다.

“이어 붙여?”

- 소멸이 아니라, 로드의 일곱 성 차원으로 이어 붙이면 이쪽 차원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후우, 그건 괜찮게 들리네.”

- 하지만 효율로 보면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그만큼 넓어진만큼 차원의 근원이 줄 수 있는 혜택도 분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 그리고 때론 차원의 소멸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응?”

- 절대 로드와 함께 할 수 없는 차원도 있지 않겠습니까? 인간에게 적대적인 생명체만 존재하며, 부정적인 기운만 가득한 곳이라면 말입니다.

“경우에 따라선 차원을 소멸시킬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 그렇습니다.

“그래, 그건 인정하지.”

- 여차하면 알케이네스 제국 차원의 차원 근원을 추출해 버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음?”

- 물론 알케이네스 제국에서 차원의 근원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절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죠.

“모르면 두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는 거고?”

- 모르는 상황이면 당연히······.

“그런데 뭔가 껄쩍지근한데?”

도현은 차원 근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뒷머리가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마치 예지나 육감처럼 뭔가를 도현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신 에너지를 수련중인 도현은 그 느낌을 무시할 수 없었다.

- 차원 근원에 대해서 아는 이들이 있고, 또 그것에 간섭할 자격을 지닌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로드께서는 그들을 경계하시는 것 같습니다.

에포르가 도현의 심리 상태를 해석했다.

“평범하지 않은 세력이겠지?”

- 차원의 근원에 대한 이야기는 옴파로에서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의회나 학술원 등이 차원의 근원에 대해서 모른다는 말은 아니겠지?”

- 그것까진 알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좋아. 그럼 일단 이곳 차원에서 근원을 추출하는 것을 연습해 보자.”

- 그러려면 준비가 좀 필요합니다. 일단 레이미아 종족의 자료를 가지고 공부를 좀 하셔야합니다.

“그들은 차원 근원에 간섭할 자격이 없었다며?”

- 그랬기 때문에 더더욱 차원 근원에 대해서 세밀하게 따지고 들었습니다. 어떻게든 그 힘을 손에 넣기 위해서 말입니다.

“아, 무슨 소린지 알겠네.”

- 그러니 그들의 자료는 무척 쓸모가 많습니다. 로드께 차원의 근원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줄 것입니다.

“음, 필요하면 해야지. 공부라도.”

- 네, 그 동안에 이곳 차원에서 지구에 몹쓸 짓을 하고 있는 이들이 있는지 찾아보는 일도 병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맞다. 그것도 해야지.”

도현은 차원 근원이라는 큰 충격이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리며 무릎을 쳤다.

그리고 그 후, 도현은 고대 유적을 거점으로 해서 차원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물론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흑영들과 레인져들이었고, 호위 기사들과 산성병사들은 유적 주변을 지켰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이건 뭐지?”

도현은 유적의 연구실에서 정신 에너지를 수련하다가 숨겨진 공간을 발견했다.

- 로드? 무슨 일입니까?

수련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던 에포르가 도현에게 다가와 물었다.

“이곳 지하에 뭔가 있는데?”

- 또 다른 공간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어쩌면 유적의 진정한 주인에 대해서 알게 될지도 모르겠네.”

유적은 매우 오래 되었고, 조사 결과 이곳에 연구실을 만든 레이미아 종족도 유적의 원주인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 이전에도 이곳 유적을 이용한 종족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적의 진정한 주인이 어떤 종족이었는지는 아직까지 알아내지 못했는데, 새로운 공간이라니.

- 조심하십시오.

흥분된 상황에서도 에포르는 도현의 안전을 먼저 챙겼다.

“걱정하지 마. 마력이나 신비 에너지는 느껴지지 않아. 바닥의 돌들을 짜 맞춰서 층을 분리해 놓은 거 같은 모습이야. 또 상당히 깊은 곳에 공간이 있고.”

도현도 정신 에너지 수련 중에 뭔가가 반응하지 않았으면 절대 몰랐을 깊이였다.

하지만 일단 알게 되었으니 그곳으로 내려가는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쿠구구구구구궁 쿠구구구궁!

도현의 의지에 따라 산성의 힘이 움직이며 지하로 향하는 통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