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오래 전엔 이런 방식의 시험이 주류였다는데
103. 오래 전엔 이런 방식의 시험이 주류였다는데
도현은 자크의 잡화점 이후로도 여러 곳의 상점과 여관, 술집 따위를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옴파로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하면서 며칠을 시간을 보냈고.
결국 도현은 옴파로의 4대 단체 중에서 학술원을 선택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학술원 탐사자를 지원한다고요?”
“그렇습니다.”
도현은 학술원의 탐사자 담당자를 만났다.
우연인지 도현이 만난 담당자는 인간 종족이었다.
그는 지구로 치면 삼십대 초반 정도의 라틴계 인종처럼 보이는 사내였다.
피부가 어두운 갈색 계열이면서 이목구비의 선이 굵고 시원시원했다.
“제가 접수된 신청서를 읽어 봤습니다만.”
담당자는 조금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도현이 쓴 신청서를 들고 흔들었다.
학술원은 말 그대로 차원의 학문적인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였다.
하지만 태생은 그렇게 시작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새로운 차원을 탐색해서 가치를 매겨서, 중개 혹은 매매하는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차원 탐색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이 바로 학술원의 탐사자들이라 계약도 까다로운 편이었다.
“아시겠지만 탐사자는 미지의 차원으로 파견을 나가는 험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 팀으로 활동을 합니다만.”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신청서를 보면 혼자로 되어 있군요?”
그걸 알면서도 혼자서 활동하겠다는 신청서를 썼냐는,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눈빛이 도현을 찌른다.
도현은 별 것 아니란 듯이 팔을 살짝 벌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했다.
“그야, 그게 가능하니까요.”
“자신감이 넘치는 분이시군요.”
담당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비꼬듯이 말했다.
“살아오면서 겪은 풍파가 워낙 거칠어서 단련이 잘 되어 있으니까요.”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말을 그렇게 하는 분은 또 처음이군요. 알겠습니다. 저야 어차피 신청서를 접수하고, 적당한 시험을 내어 드리면 그만이니까요.”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차피 시험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탈락시키거나 다른 이들과 묶어서 활용을 하면 될 일이다.
게다가 학술원에서 시험에 투자해야 할 비용도 그리 크지 않다.
그저 미확인 차원으로 가는 차원 회랑만 열어주면 그만이니까.
“아, 시험 말인데요?”
그런데 막상 시험을 내려고 할 때, 도현이 그를 보며 말했다.
“네?”
“학술원 탐사자 시험에 허물어진 차원벽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죠?”
“아니, 그건······. 있기야 있지만 오래 전부터 거의 쓰지 않는 방법입니다만.”
“허물어진 차원 벽으로 들어가는 것이 원래 학술원의 차원 탐사 방법이었죠. 그런데 어느 때부터 그런 방법을 잘 안 쓴다고 듣기는 했습니다.”
“맞습니다. 허물어진 차원벽으로 들어가게 되면 되돌아 올 방법이 없습니다.”
“에이, 방법이 없기는 무슨, 이곳 옴파로로 차원 회랑을 여는 아티팩트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그런 귀한 물건을 고작 탐사자 시험에 어떻게 내어 줍니까? 그래서 돌아올 방법이 없다고 하는 겁니다.”
도현의 말에 담당자는 정색을 했다.
그의 말처럼 차원 회랑을 여는 아티팩트는 귀했다.
대부분 1회용 아티팩트가 많았고, 여러 번 쓸 수 있는 것이거나 충전식은 그 가치를 따지기 어려울 정도였다.
“학술원이 그런 걸 내어 줄 거라는 기대는 안 합니다. 어쨌건 허물어진 차원벽을 통한 시험을 요청합니다. 돌아오는 것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끄응. 배경이 대단한 모양입니다. 차원 회랑을 여는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니.”
“그런 것이 있다는 말은 안 했습니다만?”
“돌아올 방법도 없이 그런 시험을 요청했다면 미친 거겠지요. 아무튼 그런 방식의 시험이 있기는 하니, 문제는 아닙니다. 어디 보자······.”
담당자는 한참 허공을 더듬더니 책 한 권을 꺼내서 도현에게 내밀었다.
“아시겠지만 미지의 차원에 대한 탐색에는 일정한 기준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탐사자가 미지의 차원에서 확인해야 할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 중에 70% 이상을 확인해야 차원 등록이 가능합니다.”
“차원이 등록된 후에는 그곳을 개발하는 것이지요?”
“맞습니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개발이 되면, 그 후에는 차원의 소유와 거래가 가능해집니다.”
“그 때, 학술원과 탐사자, 개발자가 서로 지분에 따라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고요?”
“맞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허물어진 차원벽을 이용해서 탐사를 시작한 경우엔, 학술원의 지분이 없지요?”
“끄응. 그것도 맞습니다. 도리어 그 책의 내용을 얼마나 채웠느냐에 따라서 학술원에서 지원금을 내어 주게 되어 있습니다.”
“학술원에서 새로운 차원에 대한 정보를 구매하는 형식으로 말이죠?”
“잘 알고 계시는군요.”
“이후에, 제가 탐사를 마친 차원에 대해서는 개발 우선권도 가지는 것이 맞습니까?”
“휴우, 무슨 생각인지 알겠군요. 맞습니다. 차원을 탐색해서 개발하겠다면 그게 이익을 극대화 하는 방식이지요. 흔히 쓰이는 방식은 아니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가 학술원의 탐사자 신분으로 일을 진행한다는 것이죠. 탐사자가 기준을 충족시킨 차원에 대해서는 학술원에서 인정하고 보호를 해 줘야 하니까요.”
“역시, 그런 목적의 탐사자 응시였습니까?”
“오래 전, 학술원은 순수한 연구 목적으로 이런 형태의 탐사 활동을 지원했다고 들었습니다. 아울러서 탐사 결과를 인정하고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면서 세력을 키웠고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런 방식을 부정하거나 버릴 수가 없지요. 이득은 별로 없지만, 학술원의 정체성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말입니다.”
“많은 것을 알아보고 오신 모양인데, 부정할 것도 없고, 그럴 수도 없지요. 맞습니다. 그리고 응시자인 최도현 당신이 이번 일에 성공하면 오랜만에 학술원은 순수하게 탐사를 지원하고 탐사자를 보호하는 본연의 의무를 다하게 될 것입니다.”
“하하하. 좋습니다. 바로 그런 대답을 기대했습니다.”
“어쩐지 최도현 응시자는 이번 시험에 성공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도현이 제법 많은 것을 알아보고 온 것을 확인한 담당자는 이전보다는 좀 더 호의적인 눈빛이 되어 있었다.
“저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허물어진 차원벽은 어디서 찾으려고 하십니까?”
차원벽이 허물어지는 곳은 많이 있었다.
특히 차원 교류가 시작되는 초기의 차원들은 대부분 차원벽이 허물어지는 이상 현상을 겪는다.
그곳으로부터 하위 차원의 몬스터들이 대거 넘어오는 것은 차원 교류의 초기에 공통된 현상이다.
그런 방식으로 차원 에너지의 균형을 맞추며, 아울러서 마력이나 오러, 신비와 같은 에너지 또한 새로운 차원에 주입되게 된다.
“제가 아는 차원이 한 곳 있기는 한데, 그곳으로 해 주시겠습니까?”
“아는 곳이라면?”
“지구라는 차원입니다.”
“아, 지구. 얼마 전에 알케이네스 차원과 차원 전장전을 벌였던 곳을 말하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곳의 차원 전장은 끝이 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다른 몇 개의 차원과 정식으로 교류를 시작했고 말이죠.”
“그렇긴 하지만 여전히 차원벽의 붕괴 현상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직 안정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지요.”
“그렇군요. 하지만 그 정도면 지구 차원과 연결된 하위 차원의 수도 몇 개 없을 텐데요?”
“대신에 끝까지 지구와 연결되어 있는 하위 차원은 그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 하긴.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가는 차원과 지속적으로 연결을 유지하는 곳이라면, 하위 차원이라도 제법 에너지가 강력하다는 소리겠지요. 과거엔 이런 경우를 두고 꽤나 경쟁이 치열했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제법 가치가 높은 차원일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런데 허물어진 차원벽을 통한 탐사가 줄어든 이후로는 그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졌지요.”
도현은 그렇게 말하며 담당자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사실 차원 교류가 안정되어 가는 차원은 새로운 차원 탐사에서 대박을 기대하기 좋은 곳이다.
안정되어 가는 차원과 마지막까지 연결되어 있는 하위 차원은 그만큼 기대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좋은 먹이를 그냥 버려둔다?
그것은 무척 이상한 일이고, 그렇게 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결론은 하나, 학술원에서 그런 대박을 뒤로 먹어치웠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안정화가 진행중인 차원이라면 큰 성과를 기대해 볼 수 있을 텐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담당자는 정말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끄응. 학술원에서 그런 곳을 그냥 뒀다는 건 좀 이해하기 어려운데요?”
어쩔 수 없이 도현이 직접 대놓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학술원은 이미 차원 교류가 진행된 차원에 탐사자를 파견할 수 없습니다. 학술원이 탐사자를 파견할 수 있는 곳은 등록되지 않은 차원 뿐입니다.”
“으음? 그게 정말입니까?”
“최도현 응시자처럼 이런 방식의 시험을 직접 요청하지 않으면 절대로 허물어진 차원벽을 통한 탐사를 할 수가 없지요. 의회와 용병단, 사냥꾼 길드에서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음, 그게······.”
“사실입니다. 그들도 우리 학술원을 견제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지요. 이미 등록된 차원에서의 탐사 결과는 탐사자 신분으로 진행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발견된 차원에 대해서는 학술원이 나설 수가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허물어진 차원벽을 통한 탐사는 용병이나 헌터, 수호자들이 하는 겁니까?”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우리 학술원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요. 그들에겐 그런 자격이 없으니까요.”
“복잡하군요.”
담당자의 말에 도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결국 지구처럼 차원 교류가 시작된 곳에서, 허물어진 차원벽을 통해서 차원을 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 아닌가.
그 좋은 기회를?
“이상하신 모양이군요?”
“이렇게 좋은 기회를 왜?”
도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옴파로의 거대 세력들이 서로 견제를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사실 이번 최도현 응시자의 도전은 무모한 면이 있습니다. 차원 탐사를 혼자서, 혹은 한 개 팀이 성공시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설마······.”
“네, 다른 단체의 방해로 여러 팀을 한 곳에 파견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아······.”
“더구나 최도현 응시자는 혼자서 일을 진행하겠다니, 솔직히 걱정이 됩니다. 아시겠지만 탐사 과정에서는 같은 팀이 아닌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차원을 등록하고 개발을 시작하면 얼마든 외부 지원을 끌어올 수 있다지요.”
“맞습니다. 어쨌건, 이번 응시에서 우리 학술원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응시를 인정하고, 탐사를 승인하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그건 조금 전에 드린 책으로 모두 해결이 되었습니다.”
“이 책이······.”
“차원 탐사의 진행도에 따라서 스스로 평가를 내리고 그 결과를 학술원에 알리는 아티팩트입니다. 귀한 것이지만 응시자가 사망하면 학술원으로 귀환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물론 책에 적혀 있는 세부 항목을 탐사자가 더 세세하게 조사하고 기록하면 가산점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게 곧 학술원 탐사 응시자의 시험지 겸 답안지군요?”
“정확히 말하자면 시험 범위는 미지의 차원이고, 그 책은 시험지 겸 답안지죠.”
“알았습니다. 그럼 더 알려주실 것이 없으면 곧바로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아, 그 책, 기준을 통과하면 이곳 옴파로로 통하는 차원 회랑을 여는 기능도 있습니다. 그게 시험을 통과했다는 증거가 되겠지요. 그리고 그게 없으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차원 회랑의 중심인 옴파로로 통하는 차원 회랑은 쉽게 열 수 없다.
도현도 의회 수호자 엑스리드의 초대장이 있었기에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초대장은 이미 사라졌으니 지구로 돌아갔다가 다시 옴파로로 올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학술원 탐사자 시험에 성공하면 책을 동해서 옴파로로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후에는 학술원 탐사자로서 옴파로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꼭 이 책으로 차원 회랑을 열겠습니다.”
도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학술원을 나섰다.
그리고 곧바로 지구로 통하는 포탈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