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는 회귀해서 군주가 되었다-99화 (99/184)

99.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를 훔쳐볼까?

99.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를 훔쳐볼까?

기간트의 핵심은 라이더의 의식이 기간트의 기체를 자신의 몸으로 느끼게 하는 것.

그 동화율이 핵심이다.

그런데 지구에는 오래 전부터 가상현실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많았다.

이들의 연구가 마법과 신비를 만나며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했다.

마법이나 신비에는 영혼을 직접 다루는 여러 분야가 있었고, 그것을 가상현실 연구와 결합시키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기간트 개발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여 18미터의 거체를 제 몸처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위화감 하나도 없이, 18미터의 기간트가 자신의 몸이 된 듯이 느껴지게 된 것.

물론 그 현실감은 기간트의 기체에 삽입된 감각 기관들이 얼마나 정교하고 세밀한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감각이라는 것도 전투에 유리하게 만들 수 있었으니, 통증같이 방해가 되는 요소는 최대한 줄이고 다른 감각 요소를 높여서 적의 공격을 좀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동체 시력이 올라가고, 다가오는 마력이나 오러의 느낌을 더 멀리서 더 빨리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에 반응해서 거체가 유연하게 움직이며 피하거나 막거나 쳐 낸다.

콰과과과광! 콰과광!

“이런 괴물 같은!”

알케이네스의 황족이지만 평기사로 남아서 평생을 오러 수련에 매진했던 디디 차타니 라 헤이거스는 검과 검이 부딪힌 충격에 뒤로 수십 미터를 날아갔다.

하지만 적은 그렇게 밀려간 디디 차타니를 곧바로 따라잡으며 검을 휘둘렀다.

디디 차타니의 입장에서는 수십 미터가 멀게 느껴져도, 18미터 거체의 기간트에겐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다.

게다가 그 거대한 몸체에도 불구하고 그 움직임이 인간의 것과 다르지 않다.

“빌어먹을 어떻게 저렇게 움직이지?”

디디 차타니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18미터짜리 거체가 인간과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는 것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파괴력을 동반한다.

저 거체가 검을 휘두르면 그 검 끝의 종속은 검의 길이에 비례해서 늘어난다.

디디 차타니가 2미터가 안 되는 검으로 원을 그리는 것과, 저 기간트가 십 미터가 넘는 검으로 원을 그리는 것은 전혀 다르다.

같은 시간에 같은 동작으로 검을 휘둘러도 기간트의 검 끝은 수십 배는 먼 거리를 이동하게 된다.

같은 시간에 더 먼 거리를 이동한다는 것은 그만큼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고, 속도가 빠르면 파괴력도 늘어난다.

반응하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와 거기에 더해진 파괴력!

콰과광! 콰과광! 쾅!

“크윽! 큭! 큭!”

디디 차타니는 어떻게든 기간트의 공격에 반응하며 오러 블레이드가 이글거리는 검으로 맞받고 있었지만, 그 때마다 몸에 충격이 쌓이고 있었다.

‘얼마 못 버틴다!’

디디 차타니는 힐끗 주변을 살폈다.

여기저기서 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학살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알케이네스의 용맹한 병사들은 물러서지 않고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흙으로 만들어진 인형들.

그럼에도 오러 소드와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익스퍼트 혹은 마스터급의 능력을 지닌 것들인데 숫자도 많았다.

그러니 쓰러지는 쪽은 대부분 제국의 병사들 뿐이다.

‘폐하의 정예병들이 저리 쓰러지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디디 차타니는 돌파구를 찾을 수 없었다.

이미 차원 회랑을 적들에게 빼앗겼다.

적들은 교묘한 역장으로 몸을 숨기고 있다가 일제히 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첫 목표는 당연히 차원 회랑.

차원 회랑을 통제하는 마법진을 빼앗긴 즉시 차원 회랑의 이용이 금지되었다.

올 수도 없고, 갈 수도 없는 상황.

알케이네스 차원에서 어떻게든 다시 차원 회랑의 이동을 다시 시작하려고 해도, 이쪽의 동의가 없으면 어렵다.

방법은 무력으로 차원 회랑을 뚫고 들어오는 것이지만, 그 준비를 하는 데에만 며칠은 걸릴 것이다.

‘그 전에 싸움은 끝나겠지.’

디디 차타니는 고브니 차원의 독립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판단이 서자, 전투에 대한 열의가 사라졌다.

대신.

‘마지막 가는 길에 내가 이룩한 것을 펼쳐보고 싶다.’

디디 차타니는 그런 욕망을 품었다.

그리고 훌쩍 뒤로 물러나 기간트의 공격권에서 벗어났다.

그래봐야 금방 쫓아와 달려들겠지만, 짧은 시간이면 자신의 뜻을 전할 여유는 있을 것이다.

“잠시 멈춰라!”

디디 차타니가 검을 자신의 허리에 패용하며 기간트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싸울 생각이 없음을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다만 검을 버리지 않았음은 다시 검을 뽑을 생각도 있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 뭐지? 우리가 대화를 나눌 일이 있던가?

기간트로부터 의지가 전해졌다.

그것은 고브니 차원의 언어가 아니었다.

디디 차타니는 기간트에 타고 있는 이가 다른 차원이 종족임을 알아차렸다.

“누구지? 고브니 종족은 아닌 것 같은데?”

= 그건 알 필요가 없지. 그래 숨을 돌리기 위해서 싸움을 멈춘 거냐? 그렇다면 이제 충분하지 않나?

“무슨! 고작 그런 이유로 싸움을 멈출 정도로 치졸하지는 않다.”

= 치졸할 것까지야. 그래 어쨌건 그렇다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지? 설마 알케이네스의 황족이 항복을 하지는 않을 테고? 그게 아니라면 뭔가 협상할 것이라도 있나?

“아니, 없다. 그리고 당연히 항복도 아니다.”

= 그럼 뭐지? 대화의 의미가 없지 않나?

기간트를 움직이는 도현은 눈앞의 황족이 무슨 생각으로 싸움을 멈춘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승패는 결정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눈앞의 황족이 마스터 최상급의 실력자라고는 하지만, 수호신의 심장에서 쏟아지는 강력한 마력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체격 차이에서 나오는 파괴력이나 내구성에서도 기간트가 월씬 앞서 있었다.

장기전이 되기는 하겠지만, 황족의 패배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도현이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도현이 실수를 해서 기간트가 파괴된다고 해도, 황족이 1만의 산성병사를 뿌리치고 달아날 수는 없다.

산성 병사들의 대장군이나 5천인장이 나서고, 천인장들이 합세하면 어떻게든 눈앞의 황족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패배를 인정한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지.”

그 때, 황족이 의외의 말을 했다.

= 패배를 인정한다고? 그런데도 항복은 하지 않고?

“제국의 황족이 항복을 할 수는 없지.”

= 그래서 뭘 바라지? 자살이라도 하려는가? 그리고 유해라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건가?

“아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죽었더라도 황족의 몸뚱이는 귀하지. 그런 것을 제국으로 돌려보내 줄 것 같지도 않고.”

= 말이 길어지는군. 할 말을 해라.

“나는 권력이나 명예에 관심이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수련을 통해서 높은 경지에 오르는 것 뿐이었다.”

= 그렇다고 듣기는 했지. 물론 믿지는 않는다만.

“내가 다른 욕심이 있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내 바람은 좀 더 높은 경지에 오르는 것이었다.”

= 그래서?

“근래에 깨달음 하나를 얻은 것이 있다.”

= 깨달음?

“어쩌면 마스터 최상급의 그 위, 그러니까 전설이라 하는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가 아닐까 하는.”

= 그랜드 마스터의 깨달음이라고?

“물론 완전하지는 않다. 그저 길을 보았다고 생각할 뿐이지.”

= 그래서?

“지금껏 시도를 해 보지 못했다.”

= 깨달음을 얻었는데 시도를 못했다고?

“아직 준비가 부족했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시도조차 불가능할 정도지.”

= 그러니까 그걸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거군? 거기다가 내가 직접 상대를 해 주고?

“그렇다.”

= 작정하고 나와 함께 죽겠다고 하는 거 같은데?

“능력이 부족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서 해 볼 테냐?”

디디 차타니는 상대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지는 않았다.

자그마치 함께 죽자는 말을 대 놓고 하는 것이 아니가.

하지만.

‘에포르, 이거 어떻게 생각해?’

- 더 없이 좋은 기회입니다. 기간트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를 엿볼 수 있다면 그것이 이득입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 당연합니다. 로드께서 이렇게 안전한 곳에 있으니 뭐가 문제겠습니까. 기간트가 파괴된다면 아깝긴 하겠지만, 어떻게든 다시 만들 수 있는 물건일 뿐입니다.

‘그래.’

- 더구나 기간트에 장착되어 있는 모든 탐지 장치의 효과를 최대로 올리고, 그것을 녹화하면, 이후 두고두고 그랜드 마스터 경지의 공격을 되새겨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좋아. 그렇게 하자.’

도현의 경지는 아직 마스터 상급 수준.

이 수준에서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를 얼마나 알아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기간트라는 방패 뒤에서 안전하게 그것을 경험할 수 있다면?

피할 일이 아니었다.

= 준비해라!

도현이 기간트를 통해서 디디 차타니에게 허락의 말을 전했다.

그러자 디디 차타니는 믿기 어렵다는 듯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곧바로 검을 뽑아 중단세를 취했다.

검 끝을 기간트로 향하고, 끝없이 정신을 집중하는 디디 차타니.

도현 역시 기간트를 통해서 디디 차타니에게 집중하며 그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디디 차타니의 눈빛이 허허롭게 변하더니 검이 머리 위로 올라갔다가 평범한 속도로 밑으로 내리그어졌다.

- 로드! 위험합니다!

그 순간 에포르가 경악하며 도현에게 경고를 날렸다.

그리고 도현 역시 디디 차타니의 공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기간트의 심장을 최대로 증폭시켰다.

최상급 마력석이 삼중첩 된 기간트의 심장이 맹렬하게 돌아가며 어마어마한 마력을 쏟아냈다.

최후의 순간에 사용하게끔 되어 있는 기간트의 오버클릭이었다.

파치치치치치치칭!

18미터 기간트의 거체 위로 수십 겹의 역장이 펼쳐졌다.

그것은 기간트의 몸에 새겨져 있는 마법진을 통해 만들어 내는 방어 역장이었다.

거기에 기간트도 거대한 검에 오러 블레이드를 가득 담아서 디디 차타니가 내리긋는 검의 궤적을 따라서 검을 휘둘렀다.

서거거걱!

파차차차차차차차창!

= 이런!

“크하하하하하. 서, 성공이다!”

디디 차타니의 짧은 검이 일순간 수 백 미터의 길이로 늘어난 듯, 그 검의 궤적에 있는 모든 것을 베어 버렸다.

심지어 같은 궤적을 그리던 기간트의 검은 세로로 쪼개져 두 개의 검처럼 갈라졌고, 기간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수십 겹의 역장도 얇은 유리처럼 깨졌다.

콰지지지직! 콰지지지! 콰곽!

하지만 디디 차타니의 공격은 기간트의 머리에서부터 가슴까지 내려오던 중간에 멈췄다.

원래는 기간트를 반으로 갈라 놓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간트의 방어는 역장 이외에도 거대한 몸. 그 안에 새겨진 수많은 마법과 신비까지 포함한 것이었다.

디디 차타니의 공격이 그 벽은 넘지 못했던 것이다.

= 아쉽겠군.

“쿨럭! 아쉬울 것 없다. 나는 벨 수 있었으니까.”

도현의 말에 디디 차타니는 피를 울컥 토해내며 환하게 웃었다.

= 벨 수 있었다고?

“그렇다. 내가 중간에 멈추지 않았다면 분명, 너를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이어진 도현의 확인에 디디 차타니는 자신만만한 음성으로 말했다.

= 그렇다면 왜?

도현이 물었다.

“누군가는 기억을 해 주어야 의미가 있지. 너를 죽이면 내 검을 기억할 사람이 없지 않나. 고작해야 갈라진 기간트와 죽은 라이더 뿐이라면, 내 경지를 누가 증명해 준단 말이냐? 쿨럭, 쿨럭!”

털썩!

디디 차타니는 그렇게 말을 하다가 피를 쏟으며 자리에 주저 앉았다.

- 스캔 결과 몸 내부가 전부 망가졌습니다. 오러 로드는 물론이고, 내장 기관들까지 모두 짓뭉개진 상태입니다. 지금은 남은 오러를 이용해서 겨우 형태를 유지하는 중입니다.

에포르가 디디 차타니의 상태를 알려왔다.

= 알케이네스의 황족, 이름이 디디 차타니 라 헤이거스였나?

도현이 처음을 디디 차타니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래, 그리고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를 엿본 검사다.”

디디 차타니는 그렇게 대답하며 잠시 머리에서 목까지 갈라진 기간트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떨궜다.

- 죽었습니다. 로드.

에포르가 디디 차타니의 생체신호를 스캔하고 죽음을 알려왔다.

쿠궁! 쿠궁! 쿠궁!

도현은 죽은 디디 차타니에게 다가가 기간트의 손으로 그 사체를 들어 올렸다.

머리에서 목까지 갈라진 기간트지만 움직이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기간트는 몇몇 제어 장치들이 여러 곳으로 분산되어 있어서, 머리가 잘려 나간다고 해도, 머리에 있는 장치들을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래서 머리가 세로로 갈라지는 정도는 충분히 대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거 챙겨 둬야겠다.’

- 장례라도······.

‘황족의 뿔이잖아. 아마 이거까지 흡수하면 알케이네스에서 고위급 귀족으로 위장을 해도 통할 걸?’

- 아, 그렇군요.

‘알케이네스 놈들이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나는 절대 놈들과 인간적인 교류를 할 생각이 없다. 놈들은 인간을 먹는 놈들이니까.’

도현은 디디 차타니의 사체를 기간트의 보호 장갑 안쪽 공간에 밀어 넣고, 몸을 세워 전황을 살폈다.

= 끝났군.

산성병사 부대는 이제 잔당 정리와 확인 사살을 하는 중이었다.

알케이네스 종족은 끝까지 저항하다 끝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렇게 고브니 차원의 황제 직할 차원 회랑이 점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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