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기술 전수
97. 기술 전수
“그거야 어려울 것이 없지요.”
도현은 배주머니를 뒤적거려 타이탄의 심장 몇 개를 꺼냈다.
그런데 그것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순서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도현은 그것을 타이탄이 서 있는 공간의 한쪽 구석에 있는 탁자에 내려 놓았다.
“어떻습니까?”
그리고 도현이 강아지 같은 눈빛으로 뒤를 쫓아온 늙은 대장장이 카르볼레를 보며 물었다.
“오오오. 이거, 이걸 이렇게? 이렇게 한다고? 아니, 여기 여기는 이해가······.”
카르볼레는 도현이 늘어놓은 타이탄 심장을 순서대로 살피다가 어느 한 부분에서 인상을 찌푸렸다.
중간에 생략된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으음. 그건······.”
도현은 다시 배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리고 그 중간 과정에서 빼 놓은 타이탄 심장을 꺼내서 사이에 끼워 넣었다.
“엉? 빠진 게 있었다고?”
카르볼레가 도현을 노려보며 화를 냈다.
“할켄 장로는 이 정도 빠진 것은 충분히 알아볼 거라고 했는데 말이지요.”
그런 카르볼레를 보며 도현이 흐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카르볼레는 그런 도현의 반응에 얼굴이 붉어졌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결과물에 정신이 팔려서 중간 과정을 너무 쉽게 얻으려 했다는 자괴감이 든 것이다.
“이해는 합니다. 이게 많이 급하긴 하지요. 그리고 할켄과, 룸켄, 모르켄은 필요하다면 더 세세한 과정까지 보여 줄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뒀습니다.”
“크음. 네 말대로 중간에 빠진 정도야 조금만 고민을 하면 맞춰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대혈족 회의를 소집해 놓은 상황이니, 여유가 너무 없지.”
카르볼레는 그렇게 변명을 하며 다시 타이탄 심장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 중에 다른 장로들 역시 카로볼레 옆으로 늘어서서 타이탄 심장을 살폈다.
“오오오. 마력석 삼중첩이라니. 이런 것이 가능했군!”
“이런 것을 연구하던 혈족이 있기는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보이질 않았지.”
“성과가 없어서 대장장이 일에서 쫓겨났으니 그렇지. 아마도 가축을 키우고 있을 걸?”
“그래도 매번 대장장이 자격을 얻기 위해서 도전은 하고 있지.”
“대장장이를 포기하는 고브니는 없어!”
“그건 그렇지. 그나저나 이렇게 삼중첩을 하게 되면 중급으로도 상급의 위력을 낼 수 있겠어.”
“상급 타이탄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소리지.”
“이걸 모든 혈족들이 공유해서 남몰래 타이탄들을 만들기만 하면?!”
“알케이네스 놈들을 단번에 제압하고 몰아낼 수 있겠지.”
“제일 중요한 게 차원 회랑의 통제권을 빼앗아 오는 거야!”
“그렇지. 하지만 상급 타이탄이라도 차원 회랑을 지키는 놈들을 상대하긴 벅찰 텐데?”
“숫자로 밀어붙이면······.”
“결국 이길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 전에 알케이네스 놈들이 증원군을 보낼 거라고. 그게 문제지.”
“단박에! 속전속결을 하려면!!”
“정 방법이 없다면 차원 회랑 안쪽으로 타이탄들을 다수 밀어 넣어서 시간을 끌어야지. 그 사이에 이쪽을 정리하고.”
“그게 원래 계획이긴 하지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바비루타가 있잖아. 그 녀석에게서 상급 마력석을 얻어 내면 된다고. 상급 마력석을 삼중첩해서 타이탄을 만들면 차원 회랑도 충분히 빼앗을 수 있어!!”
마력석이 삼중첩 된 타이탄의 심장들은 장로들을 흥분시키고 있었다.
그들은 마력석 삼중첩의 비밀을 차근차근 분석해 가면서도 서로의 언쟁을 멈추지 않았다.
도현은 그들의 말싸움이 사실은 미래에 대한 희망에서 나온 흥분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군! 이렇게 되는 거였어.”
결국 서너 시간만에 카르볼레가 마지막 타이탄 심장을 내려놓았다.
순서대로 살피면서 마력석 삼중첩 타이탄 심장의 비법을 모두 파악해 낸 것이다.
그의 뒤를 이어서 네 명의 장로들은 그들의 실력에 따라서 몇 단계씩 타이탄 심장을 남겨둔 상태였다.
“끝나셨습니까?”
도현이 카르볼레를 보며 물었다.
“확실히 숙지했다. 이제는 나도 마력석을 삼중첩한 심장을 만들 수 있어!”
카르볼레는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곤 다시 도현을 바라보았다.
“타이탄 원격 제어 기술을 원하십니까?”
“그것이 곧 새로운 기간트의 전부라고 할 수 있겠지?”
“그렇다고 봐야겠죠. 물론 고브니 종족의 전통적인 기간트와는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래. 오러와 마력의 결합이 없으니 제대로 된 기간트라고 하긴 어렵겠지.”
“하지만 출력은 비슷하고, 안전성은 더 높죠.”
“그건 이미 들어 알고 있다. 그러니······.”
“이건······. 좀 공부를 해야 할 겁니다.”
도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고브니 종족의 문자로 된 두꺼운 책을 몇 권 꺼냈다.
“이건?!”
“그냥 실물만으로는 부족할 거라고 하더군요. 개념 자체가 고브니의 것이 아니라 지구의 것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그렇군. 그곳 차원의 지식과 결합해서 나온 것이 새로운 기간트 기술인 모양이군.”
“네, 그렇다고 하더군요.”
“알았다. 어디 보자.”
카르볼레는 곧바로 책을 살피더니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을 들고 의자에 앉았다.
* * *
네 명의 장로들은 차례로 마력석 삼중첩 타이탄 심장을 이해하고 자신들의 것으로 숙지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카르볼레는 지구의 무선 통신과 접목된 타이탄 원격 제어 기술에 빠져있었다.
그렇게 다시 하루의 시간이 지났을 때, 네 명의 장로는 할켄이 보낸 타이탄 원거리 통제 기술을 공부하고 있었고, 카르볼레는 공동에 있던 거대 타이탄의 가슴을 열어 놓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도현이 작업대 계단을 올라가 타이탄 가슴에 들어가 있는 카르볼레보며 물었다.
“할 수 있어. 거의 끝났어!”
카르볼레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흥분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그가 하는 작업은 타이탄의 움직임을 라이더가 제어하게 만드는 수신기를 넣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 아래 공동의 한쪽 구석에는, 수많은 선들이 달려 있는 기간트 라이더 캡슐의 시제품이 놓여 있었다.
“너무 서두는 것 같습니다만. 캡슐도 그렇고 수신장치도 그렇고,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도현이 보기에 카르볼레의 시제품은 할켄 등이 만든 것에 비해 절반 정도의 완성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 것을 쓰다가는 라이더에게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았다.
“괜찮아. 계속 개량하면 되니까. 일단은 가능성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을 뿐이야.”
말은 그렇게 해도, 카르볼레는 고브니 차원에서 새로 부활하는 최초의 기간트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가득했다.
전승이 끊겼던 기간트의 부활.
그 첫 기체가 카르볼레의 손에서 나왔다는 명예.
그것은 고브니의 장인으로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명예였다.
‘그래봐야 할켄과 룸켄, 모르켄이 이미 수없이 만든 건데.’
게다가 지금 도현의 아공간에도 엄청난 숫자의 타이탄과 기간트가 들어 있었다.
그 중에는 할켄과 룸켄 등이 고브니 차원의 독립에 써 달라며 맡긴 것도 있었다.
사실 카르볼레도 도현이 말했던수호신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최상급 마력석 세 개를 중첩한 심장을 지닌 기간트.
그 이야기를 이미 들었음에도 완성된 기간트를 직접 보자는 소리는 하지 않았던 카르볼레였다.
첫 기간트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 때문일 것이다.
‘하여간, 이런 상황에서도 늙은이의 노욕은······.’
물론 전체 혈족 회의가 열리기 전까지 시간이 있으니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도현이 전하고자 했던 두 가지 기술, 마력석 삼중첩과 타이탄 원거리 제어 기술은 이미 모두 전했다.
다른 네 명의 장로는 아직 조금 부족해 보이지만, 카르볼레는 일찌감치 이론을 끝마쳤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 저렇게 시제품에 매달리는 것이니 그를 탓하기 보다는 뛰어난 역량에 박수를 칠 일이다.
터엉! 텅! 까드드드득! 찰카닥!
“됐다!”
결국 카르볼레는 작업을 마치고 타이탄의 가슴을 닫았다.
머리카락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밀착되는 타이탄의 방어 강갑.
카르볼레는 손바닥으로 타이탄의 가슴을 탕탕 두드려보고는 곧바로 작업대 계단을 구르듯이 내려갔다.
도현은 자신을 본척도 않고 스쳐 지나가는 카르볼레의 모습에 고개를 저으며 훌쩍 몸을 날려 바닥으로 뛰어 내렸다.
“어르신! 안 됩니다.”
“제, 제가 하겠습니다.”
“맞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어르신께서는 물러나십시오.”
“시끄러!니들이 감히 내 실력을 의심하는 거냐?!”
“새로운 기술에는 위험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카르볼레 어르신이라도 그것이 완벽하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딱 봐도 안전장치 중에서 빠진 것이 몇 개나 눈에 보이는데!”
“어르신 이리 나오십시오.”
누가 먼저 시운전을 해 볼 것이냐를 두고, 눈치를 보던 장로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카르볼레를 캡슐에서 끌어냈다.
도현은 멀찍이 떨어져 그 모습을 지켜봤다.
‘어차피 시간도 없는데.’
- 그러게 말입니다. 혈족 회의를 소집하라던 이틀이 다 지났는데요.
도현과 에포르는 실랑이를 벌이는 장로들과 카르볼레의 모습을 보며 내심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 순간 광장으로 라코니 장로가 뛰어 들어왔다.
“헉헉! 어르신! 혈족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지금 당장 출발해야 합니다. 곧 우리 마을로 승강기가 올라옵니다.”
“뭐? 벌써?”
“이, 이런! 모두 챙겨!”
“뭐해? 서둘러!”
“너희 셋은 타이탄 심장! 너하고 라코니는 나를 따라서 저걸 챙긴다.”
“어르신 이것들은······.”
“시간 없다며! 어서 챙기기나 해. 절대, 절대로 어디 부서지는 곳이 있어서는 안 될 거야!”
“아, 알겠습니다. 어르신.”
라코니의 등장에 카르볼레와 장로들이 기름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난리법석을 피웠다.
그런 중에 도현은 완전히 잊혀버린 꼴이 되었다.
* * *
“어딜 갔가 오는 건가? 이틀 동안이나 방에 들어오지 않다니!”
도현이 지하 계단을 올라와 카르볼레의 대장간을 통해 숙소로 돌아오자 바비루타가 화가 난 얼굴로 물었다.
“네네, 그럴 일이 좀 있었습니다.”
“그럴 일이란 것이 라코니 장로와도 관계가 있는 거였나? 라코니 장로도 갑자기 사라져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데.”
“네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네네, 상인의 입은 무거워야지요. 특히 고객과의 약속은 말입니다.”
“그, 그렇지. 그야 당연하지.”
도현의 말에 바비루타는 혀라도 씹은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증을 표정 가득 드러내고 도현의 주위를 맴돌았다.
‘고브니의 혈족들 모두가 은밀하게 타이탄을 만들고 있을 줄은 몰랐군.’
도현은 피곤하다는 말로 바비루타를 방에서 내쫓고 혼자 침대에 앉았다.
엉덩이의 꼬리가 거슬리긴 하지만 부드러운 침대의 쿠션감이 꼬리를 불편하지 않게 받아주었다.
- 할켄 장로가 고브니들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이 그런 의미였던 거지요.
“그러게. 각 혈족들마다 최고의 실력자 하나를 따로 숨겨 놓고, 미래의 독립을 위한 준비를 하게 하다니.”
- 무엇보다 바비루타 같은 이방인과 밀거래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카르볼레도 그런 경우는 드물다고 했지. 게다가 밀거래에서도 상급 마력석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했다.”
- 어차피 중급 타이탄 심장이라면 고브니 차원의 정식 거래 물품이기도 하니, 밀거래라 해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지요. 하지만······.
“금지 품목이 들어가게 되면 밀거래가 꽤나 심각한 문제가 되는 거지. 그런데 그걸 바비루타가 반쯤 발을 걸쳤단 말이지.”
- 설마 바비루타가 밀정 노릇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냥 의심만 하는 거지. 완전히 믿을 수 있을 때까지는 그래야 하는 거 아니겠어?”
- 그야 그렇습니다만.
“조만간 고브니 차원에 난리가 나겠군.”
-그런데 로드.
“왜?”
- 그 최상급 마력석 세 개를 쓴 기간트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상황 봐서 대여를 해 주거나, 그게 아니면 독립 전쟁에서 내가 직접 써야지.”
- 캬아, 그렇군요. 로드께서 그걸 쓰시면 그야말로 구국의 영웅, 아니 차원을 구한 영웅이 되시는 거군요.
“솔직히 세 개의 최상급 마력석을 모두 내가 구해 준 건데, 아직 제대로 된 대금을 못 받았으니까 아직까지는 내 소유라고. 거기다가 황금의 성에서 업그레이드도 제법 많이 했고.”
- 넵, 어쨌건 저는 로드께서 그 기간트로 알케이네스 놈들을 쳐부수는 것이 무척 기대됩니다. 어서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싸움에 끼어드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할 줄 알았더니?”
- 그야 로드께서 기간트를 타시는 것이 아니니까요. 원격 제어 아닙니까. 로드의 안전만 보장된다면 로드의 활약을 지켜보는 것이야 말로 이 에포르에게 큰 즐거움이지요.
“그래, 그래.”
더 무슨 말이 나올까 무서워 도현은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이틀 후, 카르볼레가 라코니를 비롯한 장로들과 함께 마을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