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내 배주머니는 크고, 자본은 그보다 더 커!
94. 내 배주머니는 크고, 자본은 그보다 더 커!
바비루타가 제공한 콩토올 공작령의 사정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식민지 차원을 하나 빼앗긴 것이긴 하지만, 그 외에도 아직 세 개의 식민 차원을 관리하고 있는 상태지.”
“네네, 그렇군요.”
“그 세 곳의 식민 차원에서 나오는 수확만으로도 제국 내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세력을 유지할 수 있지.”
“네네, 하지만 황제에게 밉보여서 공작령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 말고, 숨겨진 일면을 알려달라는 말을 돌려 하는 도현이었다.
“아니, 그건 아니지. 황제가 이번 그 뭐냐? 어느 식민지 차원 공략을 두고 세 공작가의 세력을 조금 꺾어 놓기는 했지만.”
“네네? 그런 것이었습니까?”
“그걸 몰랐나? 알케이네스 제국의 황제도 귀족들의 성장세가 너무 두드러진다고 여긴 것이지. 그래서 공작가의 힘을 조금 깎아 냈어. 하지만 실제로 세 공작가 보다는 그 아래의 귀족들이 더 큰 피해를 봤지.”
“네네, 그렇군요.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하위 귀족들이 피해를 보다니요?”
“끄응. 지구라고 했나? 아무튼 그 차원을 두고 차원 전장을 펼쳤는데, 거기에 귀족들이 대거 참여를 했단 말이지. 그런데 결과가 패배였어. 게다가 중간에 황제가 그 전장을 귀족들의 이름으로 진행하도록 했단 말이지.”
“네네, 그 이름이란 것이 중요했던 모양이군요?”
“기록이니까. 역사 기록에 황제의 원정이 아니라 귀족들의 원정으로 남을 것이고, 그것조차 실패로 기록된단 말이지. 귀족들의 체면이 크게 깎인 것은 물론이고, 여차하면 가문이 쪼개지거나 혹은 해산될 수도 있지.”
“네네네? 고작 원정 한 번 실패했다고 그렇게 될 수가 있습니까?”
“무능력하지 않나. 황제를 보좌하기에 부족하다는 인식을 받게 되면 그런 귀족가문이 어떻게 버티나? 최선의 수는 가문을 해체해서 여러 조각으로 나누는 것이지. 그렇게 하위 귀족으로 쪼개져서 각자 알아서 살아남는 방법이 최선이라니까?”
“네네. 원정 한 번에 그런 변화가 생기는 거군요?”
“끄응, 지금 황궁에서 열리고 있는 연회가 괜히 열리는 것이 아니지. 귀족들 사이의 줄 세우기라고 할까? 자칫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귀족가문이 많지.”
“네네. 그런 거군요.”
지구를 노리다가 크게 낭패를 보게 되었다니 속에서 깨소금이 터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도현은 애서 흥겨운 기분을 가라앉혔다.
“네네, 어쨌거나 공작가는 그리 큰 피해가 없다는 말씀이군요?”
“아주 없진 않지. 하지만 일단 저력이 있는 가문들이니까 황제도 적당히 넘어갈 수밖에 없는 거겠지.”
“네네, 그럼 콩토올 공작령에서 차원 거래로 이득을 볼만한 것도 제법 있겠군요? 거래도 계속 활발할 테고 말이죠.”
“그렇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봐야 타이탄 심장만은 못하지.”
도현이 공작령에서 차원 거래 품목을 알아볼까 하는 말을 꺼내자 바비루타는 정색을 하며 타이탄 심장을 거론했다.
도현을 끌어들여 한탕 하려고 하는 바로 그 품목이었다.
“네네, 그런데 타이탄 심장이 정말 그렇게 이문이 크게 남습니까?”
재료만 있으면 얼마든지 대량 생산이 가능한 도현이었다.
그러니 굳이 밀수가 아니라도 타이탄 심장은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 있다.
차원 거래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노느니 염불하는 거지.’
- 로드,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아니야. 기회가 되면 거하게 장사 한 번 할 수 있겠다 싶어서 하는 말이야.’
- 로드, 로드께서는 일곱 성의 주인이십니다. 군왕성의 군왕으로서······.
‘군왕은 뭐 안 먹고 사냐? 어쨌거나 이제 바비루타가 고브니 차원으로 가는 길잡이를 해 준다니 가 보자.’
어차피 도현의 목적은 지구의 할켄 장로 일족이 개발한 타이탄 제작 기술을 고브니 차원에 전하는 것이었다.
아울러서 상황이 허락하면 고브니 차원을 알케이네스 제국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것도 고려하고 있었다.
도현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고브니 차원의 여러 혈족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 * *
바비루타는 동행 없이 홀로 찾아와 도현을 데리고 차원 회랑을 넘었다.
“으하하하. 드디어 도착이구만.”
바비루타는 기분이 좋은지 박쥐날개 같은 귀를 펄럭거렸다.
“네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곳에 차원 회랑이 있는 것입니까?”
쟈이코의 모습을 한 도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차원 회랑은 차원 회랑인데, 도현이 알고 있던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
겉으로 드러나는 기운도 미약하고, 회랑의 겉모습도 달랐다.
“커엄. 이걸 처음 보는 모양이구만?”
“네네. 이런 차원 회랑은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크흐으. 그것 참. 생각했던 것보다 경력이 짧아도 너무 짧은 모양이군.”
“네네. 네?”
“이건 임시 차원 회랑이라고 하는 것일세. 특별한 경우에 상대 차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차원 회랑을 열 때에 쓰는 것이지.”
“네네. 그런 것이 있었습니까?”
“자네도 차원 회랑의 중심은 알고 있겠지?”
“네네. 그야 차원 상인 길드나, 용병 단, 사냥꾼 길드, 학술원, 의회 따위가 있다는 곳이 아닙니까?”
“또 그런 건 자세히도 알고 있군. 아무튼 이건 그곳에서 나온 것이네. 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에 의회나 학술원, 사냥꾼 길드 등에서 쓰는 비상 용품이라고 할까.”
“네네, 급하게 차원 회랑을 열어야 할 일이 있을 때에 쓴다는 말씀이군요. 그런 것을 바비루타는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이고 말입니다.”
“크하하하. 그리 비꼴 것은 없네. 이렇게 차원 회랑을 여는 것이 규칙에 어긋난 것은 아니니까.”
“네네. 차원 회랑을 여는 것이야 문제가 없겠지요. 다만 그렇게 차원 회랑을 열어서 무엇을 하느냐가 문제 아니겠습니까?”
“허어, 사람이 안 그런 듯 하면서도 혀에 비수를 달았군. 쯧.”
자꾸만 이어지는 도현의 쓴소리에 결국 바비루타도 기분이 상한 모양인지 인상을 찌푸렸다.
“네네. 어차피 저야 바비루타님의 일을 돕기 위해서 온 것 뿐이니, 조용히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어딥니까?”
“킁, 어디긴, 당연히 고브니 차원의 알케이네스 총독부가 있는 곳이지.”
“네네? 콩토올 공작령에서 고브니로 통하는 차원 회랑이 있는 곳이란 말입니까?”
“멀지 않지.”
“네네, 그렇군요.”
“일단 따라오게. 이런 일은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좋아.”
바비루타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바비루타와 도현이 차원 회랑을 넘어서 도착한 곳은 제법 넓은 건물 내부 공간이었다.
바비루타는 자신이 만든 차원 회랑에 뭔가 수작을 부려 존재감을 지웠다.
도현도 그곳에 차원 회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집중하지 않는다면 차원 회랑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네네. 이건······.”
“그냥 따라오게.”
“네네.”
차원 회랑을 숨기는 것이 신기해서 물어보려 했지만 바비루타는 딱딱한 표정으로 따라오라 하더니 한쪽 벽면의 문을 열고 나갔다.
도현은 다급하게 뒤뚱거리며 바비루타의 뒤를 따라갔다.
- 로드, 저 임시 차원 회랑이라는 거, 전에 지구에 왔던 차원 용병이 썼던 것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런 거 같기도 한데, 확신은 못하겠네.’
- 황금의 성에 연구를 맡겨 보는 것이 어떨까요?
‘바비루타가 저 임시 차원 회랑과 관계된 기물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그걸 얻을 수 있으면 황금의 성에 맡겨 볼 수도 있겠지.’
- 기회가 되면 취하심이······.
‘바비루타가 약속을 지키는 동안에는 그럴 일 없다.’
- 물론, 로드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을 상황에서 취하시라는 말씀이지요. 네네네.
‘그거 따라 하지 마라.’
- 네네네. 로드!
‘아, 고브니 종족이군.’
도현이 에포르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바비루타의 뒤를 따르다보니 두 개의 문을 더 통과한 후, 고브니 종족과 마주쳤다.
“여어, 라코니! 오랜만이군.”
“포일로의 차원 상인 놈이군.”
“어째 환영 인사가 그모양이야?”
“환영은 무슨! 그래 이번엔 얼마나 가지고 갈 거지?”
“크하하하. 여기 내 후배가 보이지 않나? 전보다 두 배는 더 가지고 갈 수 있지.”
“두 배? 괜찮군. 그래 대금은?”
“일단 상품부터 확인을 하자고. 나는 상품을 보고, 라코니 자네는 대금을 확인하고.”
“끄응. 따라 와라.”
라코니라 불린 고브니 종족은 지구에 있는 할켄이나 룸켄, 모르켄과 비슷한 수준으로 느껴졌다.
그 말은 라코니가 어떤 혈족의 장로 신분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였다.
도현은 가만히 라코니를 살피며 바비루타의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다시 십여 미터의 복도를 두어 번 꺾어 돈 후, 화끈한 열기와 쇠를 두드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 라코니가 한 곳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오, 역시! 믿고 있었다고!”
라코니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 바비루타는 벽면에 벌집처럼 만들어진 선반과 그 안에 들어 있는 타이탄 심장을 보며 탄성을 터트렸다.
도현 역시 칸칸마다 빠지지 않고 채워져 있는 타이탄 심장의 숫자에 깜짝 놀랐다.
- 가로 한 줄에 서른, 위에서 아래로 열다섯입니다. 그런 것이 세 면을 가득 채웠습니다.
에포르가 곧바로 선반의 칸수를 알려왔다.
“네네, 천삼백오십 개로군요.”
도현이 중얼거렸다.
“셈이 빠르군. 맞다. 천삼백 오십 개. 하지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이 중에 천 개 정도 되겠지? 저 놈이 한 번에 5백 개씩을 가지고 갔는데, 네가 더해졌으니.”
도현의 중얼거림에 라코니가 살짝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네네, 하지만 천 개가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를 가지고 갈 수도 있습니다. 바비루타 님께서 대금만 치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많이 가지고 갈 수도 있고 말이죠.”
하지만 도현은 라코니의 예상을 단박에 깨트렸다.
그리고 그 말은 라코니 뿐만이 아니라 바비루타까지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뭐라고? 여기 있는 것 말고도 더 가지고 갈 수 있다고?”
“후배, 그게 정말이야? 설마 후배의 배주머니가 그렇게 크단 말인가?”
“네네. 좀 큰 배주머니를 가지고 있지요.”
“그럼 그런 이야기를 왜 하지 않았지? 내가 후배에게 물건을 옮겨 줄 것을 부탁했는데?”
“네네. 그야 바비루타 님의 배주머니에 담을 정도만 제가 책임을 지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아시지 않습니까. 네네, 적당히!”
“끄응.”
도현의 말에 바비루타는 앓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생각보다 더 많은 물건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은 좋은데, 문제는 후배란 놈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것이 문제였다.
후배의 입에서 나온 바비루타의 배주머니 용량 정도면 될 거라 생각했다는 말은, 그 이상을 요구하려면 대가를 더 치르란 말과 같았다.
포일로 종족의 상인으로 그 정도 행간을 잃지 못해서야 상인 자격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거래에 있어서는 촉이 날카로운 포일로 종족이었다.
“끄응. 그럼 이렇게 하지. 나는 이곳에 있는 타이탄 심장을 모두 사겠다. 내가 5백 개를 보관하고, 나머지는 후배가 책임을 지는 거지.”
“네네? 삼백오십 개를 더?”
“그게 끝이 아니지. 후배가 여력이 되면 더 많은 타이탄 심장을 자비로 구하는 거지.”
“네네. 제가 타이탄 심장을 구하면 바비루타 님께서 판매처는 책임을 져 주시는 거겠지요? 그 정도는 되어야······.”
“당연하지! 내 제안이 바로 그거야. 당연히 이번 심부름 값으로 약속했던 차원 포인트도 줄 거고.”
바비루타는 도현의 요구를 주저 없이 받아들였다.
“네네. 그렇다면 저도 좋습니다. 그러면 라코니 님께 여쭙겠습니다. 제가 얼마나 많은 타이탄 심장을 가지고 갈 수 있겠습니까? 보유 수량을 말씀해 주시지요. 참고로 여기 있는 두 배 이상도 가능합니다.”
“헙!”
“두, 두 배 이상?”
“이보게 후배, 배주머니의 공간만 생각하면 안 되네. 그만한 심장을 구매할 여유가 있어야 하는 거지. 거래는 무조건 차원 포인트나 에너지로만 하는 거네.”
도현의 말에 라코니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바비루타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주의를 주었다.
거래에서 허언은 없어야 하니까.
“네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집안 기둥뿌리를 뽑아 나온 참이라 주머니가 두둑합니다. 하하하.”
그런 둘의 모습에 도현이 쟈이코의 모습으로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