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콩토올 공작령에서 만난 바비루타
93. 콩토올 공작령에서 만난 바비루타
황도 인근 위성 도시에서 일어난 휼트 자작 살인 사건.
휼트 자작과 그의 기사단, 거기에 병사 2백여 명까지.
도시 내의 저택에서 떼죽음을 당한 사건은 알케이네스 제국을 뒤흔들었다.
그것도 황궁 연회를 이틀 앞두고 벌어진 혈사라 황제 직속의 감찰단까지 나서서 흉수를 쫓았다.
하지만 드러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휼트 자작이 왜 비밀 저택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곳에서 누구를 만났는지 아무것도 나오는 것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도현은 산성병사들을 대거 소환해서 한바탕 싸움을 벌인 후, 지하에 있는 비밀 통로로 그곳을 빠져 나왔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지하의 비밀 통로가 사실은 공용이었다는 것.
일반인들은 알지 못하는 통로지만 어지간한 귀족들은 다들 알고 있는 통로였던 것.
도현은 사고를 친 즉시 저택 지하로 내려와 골렘 마차를 파괴하고 지하 통로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통로를 이용해서 여관으로 복귀하던 중, 몇 번이나 다른 귀족들의 마차를 만났고, 그 과정에서 지하 통로가 귀족들의 공용 비밀 통로임을 알게 되었다.
다만 지하 통로는 서로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골렘끼리 신호를 주고받으며 피해 다닌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어쨌건 그렇게 지하 통로를 이용해서 여관으로 돌아온 도현은 휼트 자작의 일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상황을 지켜봤다.
하지만 휼트 자작의 시종장이 포일로 종족의 차원 상인 쟈이코를 은밀히 만났다는 정황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도현이 무심코 파괴했던 골렘 마차였다.
원래 골렘 마차는 이동 경로를 알아볼 수 있는 기억 장치가 있다는 모양이지만, 도현의 손에 박살이 나는 바람에 그 기능도 살릴 수가 없었다.
그저 휼트 자작이 그 저택으로 들어올 때에 골렘 마차를 사용했겠거니 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을 뿐이다.
그리고 휼트 자작의 죽음은 결국 뮬트 후작가의 후계 다툼에서 벌어진 일일 거라는 추측만 남기고 묻혔다.
황궁 연회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확인하겠습니다. 콩토올 공작가의 본성으로 가시는 것이 맞습니까?”
텔레포트 관리자는 엄격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쟈이코를 보며 물었다.
“네네, 맞습니다.”
쟈이코는 다시 한 번 대답했다.
이것이 벌써 세 번째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마법진 위로 올라가 주십시오. 곧 전송하겠습니다.”
세 번의 확인 절차를 거치고 나서야 관리자는 포일로 종족의 이방인에게 텔레포트 마법진 이용을 허락했다.
그리고 확인차 받아들었던 텔레포트 이용권을 이방인에게 돌려주었다.
“휼트 자작께서 흉사를 당하셨다고, 그 분의 보증을 의심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길어야 5년입니다. 그 즈음이면 이 보증도 효력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용권을 내어주며 하는 말은 곱지 않았다.
“네네, 알겠습니다. 반드시 새로운 이용권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도현은 활짝 웃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어차피 이번이 콩토올 공작령으로 간 후에는 곧바로 고브니 종족의 차원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 후에는 다시 텔레포트를 이용할 일이 있을까?
“그럼 좋은 여행 되십시오. 전송을 시작하겠습니다.”
어차피 이방인이 무슨 대답을 하든 관리자는 관심도 없었다.
그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습관적인 멘트를 날리며 전송진을 가동시킬 뿐이었다.
우우우우우웅! 스화화홧!
전송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마법진에 마력이 가득 차오르고 그것이 일제히 반응하며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그리고 그 즉시 포일로 종족의 쟈이코를 콩토올 공작령의 수도로 이동시켰다.
스화홧!
“어서 오십시오. 콩토올 공작령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쟈이코가 텔레포트 대응 마법진에 모습을 드러내자, 콩토올 공작가의 관리가 살짝 흥분한 기색으로 그를 맞이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몇 가지 서류 작업을 해야 합니다. 방문자의 신분과 방문 목적, 예상 체류 기간 등을 확인해야 하거든요.”
젊은 관리는 오랜만에 방문객을 맞이해서 들뜬 모습이었다.
그는 쟈이코를 가까운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입국 서류 비슷한 것을 작성했다.
쟈이코는 차원 상인으로 시장 조사를 위해서 콩토올 공작령에 왔다고 방문 목적을 밝혔다.
그리고 공작령에서의 사업성을 알아본 후, 고브니 차원으로 갈 생각이라는 것도 밝혔다.
“고브니 차원 말씀이군요. 음, 그곳으로 가는 차원 회랑이 있기는 하지만, 그걸 이용하는데 제국이나 공작령에서 보조를 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걸 기억하셔야합니다.”
쟈이코의 말에 젊은 관리는 그렇게 주의를 주었다.
원래 알케이네스와 고브니 사이의 차원 회랑은 제국과 식민지라는 특수성 때문에 회랑 이용료가 저렴했다고 한다.
두 차원의 교류를 활발하게 하기 위해서 회랑 이용에 필요한 차원 에너지를 제국과 공작령에서 어느 정도 부담해 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콩토올 공작가가 고브니 차원에 대한 식민지 관리 권한을 잃은 후로, 차원 회랑의 보조금은 황제 직할의 차원 회랑으로 옮겨 갔다는 것이다.
“네네. 시장 조사를 하는데, 그 정도 투자야 감수해야지요. 게다가 이곳에 있는 차원 회랑이 고브니 차원의 총독부가 있는 곳과 연결된 것이 아닙니까?”
“아, 그건 그렇지요. 폐하의 관리들이 새로 뚫은 차원 회랑은 고브니의 중심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곳으로 연결되었지요.”
“네네. 그래서입니다. 상인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고브니 차원에서 가장 발달한 총독부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역시! 상인의 눈이란 그런 것이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이렇게 영지 방문 심사를 마치겠습니다. 이것은 임시 통행증입니다.”
“네네. 임시 통행증.”
“보시면 아시겠지만 상인의 것으로 되어 있어 거래도 가능합니다. 다만 거래세가 있으니 그것은 잊으면 안됩니다.”
“네네, 알겠습니다. 통행증이면서 신분증이면서 거래 허가장이로군요.”
“특별히 신경을 써서 만든 통행증이니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해 주십시오.”
“네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도현은 얼굴 가득 미소를 띄우며 관리에게 굵은 허리를 숙여 보였다.
* * *
- 아쉽습니다. 그냥 휼트 자작으로 변신해서 자리를 잡았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통행증 발급을 마치고 공작령의 청사 밖으로 나올 때, 에포르가 반지 안에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변신 물약을 사용하면 휼트 자작으로 변신하는 것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현은 알케이네스 귀족들의 뿔을 흡수한 경험이 있기에 그런 위장이 더욱 완벽할 수 이었다.
알케이네스 귀족들이라면 태생적으로 가지게 되는 격을 도현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험 부담이 너무 컸지. 솔직히 겉모습만 휼트라고 모두를 속일 수 있었겠어? 게다가 그냥 휼트만 죽였으면 모를까, 시종장에 기사들에 병사들까지 죽은 마당에, 휼트로 위장했다가 그 심문을 어떻게 버티냐?’
-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뿔을 흡수한 덕분에 자작 정도는 완벽하게 흉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언젠가는 쓸 일이 있겠지. 뿔이 그런 효과가 있을 줄 어떻게 알았겠어?’
그냥 억눌러서 복종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효과만 생각했는데, 알케이네스 종족으로 변신하면 자연스럽게 순종하게 할 수 있었다.
‘언제 적당한 귀족 하나를 해치우고 그 놈으로 변신해서 제국 내에서 역대급 반란을 한 번 일으켜 볼까? 하하하.’
- 그건······.
도현은 그렇게 에포르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며 콩토올 공작령의 주도(主都) 거리를 걸었다.
그런데 걷다보니 자연스럽게 차원 회랑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도현이 가장 관심이 가는 곳이 차원 회랑이니 자연스러운 발걸음이었다.
‘차원 회랑이 한 곳에 여덟 개나 모여 있군.’
- 저기, 왼쪽에서 세 번째에 있는 것이 고브니 차원으로 통하는 것인 모양입니다.
‘그래, 고브니 종족 특유의 기운이 차원 회랑에도 묻어 나는 것 같군.’
- 장식을 그렇게 꾸며 놓아서 그런 모양입니다.
여덟 개의 차원 회랑은 넓은 광장에 길게 열을 지어 늘어서 있었다.
“어이구, 이런 곳에서 동족을 만나다니. 이런 반가운 일이 있나.”
그 때, 도현의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향하는 곳이 명백히 도현 자신이었기에 도현은 몸을 돌려 상대를 확인했다.
그 결과 동족 운운했던 것처럼 상대 역시 포일로 종족이었다.
“네네, 이곳에서 일족을 다 보게 되는군요.”
도현도 쟈이코의 모습에 맞춰서 응대했다.
“하하하. 반갑네 반가워. 나는 바비루타라고 하네.”
“네네, 쟈이코입니다.”
“으하하하. 역시 상인이겠지?”
바비루타는 도현을 위아래로 살피며 물었다.
“네네, 그렇지요. 그러는 바비루타는 아닙니까?”
“크하하핫, 물론! 물론, 나도 차원 상인이지. 우리 포일로 중에서 차원 회랑을 넘나드는 이들 중에 열에 아홉, 아니 열에 열이 차원 상인이 아닌가. 백이나 천에 하나 정도 다른 놈이 있긴 하지만.”
“네네, 실상이 그렇지요.”
“그런데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건가? 설마 콩토올 공작령을 떠나려던 참인가?”
바비루타는 이제 막 만난 동족이 곧바로 떠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을 눈빛에 담아 냈다.
“네네, 그건 아닙니다. 아직 이곳의 시장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벌써 떠날 수는 없지요.”
“오호라! 그렇다는 말이구먼! 그거 잘 되었군. 어떤가, 나와 잠시 대화를 나눠 보는 것은?”
“네네? 대화라고요?”
“그렇지.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는 것은 무척 요긴한 일이 아닌가. 내가 일단은 이곳 콩토올에 대한 것을 먼저 공짜로 털어 놓지, 그 후에 서로 값이 나갈 정보를 교환하자는 이야기지.”
“네네. 차원 거래에 도움이 될 정보 말씀이지요?”
“그렇지. 바로 그거지.”
“네네, 하지만 가진 정보에 서로에게 유익한 것이 없으면 어쩝니까?”
“그야 거래를 그만두면 될 일이 아닌가. 가치 판단이 달라도 거래가 어긋날 수 있고, 가진 정보의 수준이 달라도 그럴 수 있지. 그런 일이야 흔한 것이 아닌가.”
“네네. 그렇긴 하지만, 이렇게 호의를 보여주신 바비루타님께 실례가 되면 안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크하하하. 그런 걱정은 하지 말게. 보아하니 아직 관록이 쌓이지 않은 것 같은데, 이 일을 오래하다보면 참은 수많은 일들이 있네. 그럴 때에 가장 현명한 조언은 서둘지 말라는 것이지. 서둘러서 손해를 키우는 경우가 서두르지 않아서 이익이 줄어드는 경우보다 아프거든.”
“네네, 그렇군요. 서둘러 손해를 보는 것이 서두르지 않아서 줄어든 이익보다 아프다. 좋은 말씀입니다.”
“크하하하. 이거 후배가 배우려는 자세가 제대로군. 하하하. 자자, 저리 가세. 괜찮은 주점을 알고 있으니.”
도현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바비루타가 한쪽으로 그를 이끌었다.
그렇게 바비루타가 도현을 데리고 간 곳은 차원 회랑 광장에서 가까운 노천 주점이었다.
“으하하, 마음껏 마시라고. 후배를 만난 기념으로 내가 한 턱 쏘지.”
“네네, 감사합니다.”
“마셔! 쭈욱 마시면 속이 시원할 거야.”
“네네.”
도현은 바비루타가 권하는 맥주잔을 빼지 않고 기울였다.
“네네, 크으으으, 좋군요.”
탁!
그리고 탁자 위에 잔을 내려 놓고 바비루타를 바라보았다.
“눈빛이······. 괜찮군.”
이에 바비루타가 이전과는 달리 정색한 표정으로 도현을 보며 중얼거렸다.
“네네, 거래를 하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요. 그래서 선금으로 주신다는 콩토올 공작령에 대한 정보를 먼저 들어볼까요?”
“크하하하. 이거 물건을 만났군. 좋아, 아주 좋아.”
바비루타는 도현의 돌변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크게 웃고는 콩토올 공작령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래서 말인데, 나하고 일 하나 함께 하지 않겠나?”
“그게 배주머니의 용량이 부족해서 함께 하자는 거란 말입니까?”
“그렇지. 대신에 이익은 크게 주지 못하네. 일단 거래 루트와 거래 품목을 다 까발려 주는 것이니, 한 번의 거래엔 그냥 짐꾼 노릇을 해 주면 좋겠다는 거지.”
“그렇군요. 그런데 그 대상이 고브니 차원이란 말씀이지요? 그것도 거래 물품이 타이탄의 심장이고요?”
“맞네. 바로 그거네.”
“어째 밀수 같은데요?”
“응? 그건 아니지. 절대 아니야. 우린 그냥 저 쪽 차원에서 물건을 사다가, 다른 차원에 파는 것 뿐이라고. 밀수라니!”
도현의 말에 바비루타가 화들짝 놀라며 짧은 팔을 휘저었지만, 도현이 보기엔 분명 밀수였다.
하지만.
“좋습니다. 고브니 차원엔 꼭 가보고 싶었는데 잘 되었네요.”
하필 그 대상 차원이 고브니 차원이니 도현에게 좋은 기회라 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도현은 콩토올 공작령에 도착한 그 날, 고브니 차원으로 가는 패스를 얻게 되었다.
바비루타가 조금 의심스럽긴 하지만.
- 누가 감히 로드께 위협이 될 수 있겠습니까.
에포르의 말처럼 고작 차원 상인 하나가 꾸미는 음모 따위는 도현에게 걱정거리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