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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커는 회귀해서 군주가 되었다-90화 (90/184)

90. 은색 뿔의 귀족

90. 은색 뿔의 귀족

알케이네스 제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이동 수단은 의외로 마법과 연금술의 산물이었다.

물론 그런 인공 생명체와 골렘, 타이탄 등은 부유한 평민과 귀족들이 쓰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살아 있는 짐승을 이용했다.

당연히 도현을 찾아온 시종장이 타고 온 것은 사족 보행의 짐승형 골렘이 끄는 마차였다.

도현은 마차에 오르기 전에 마차를 끄는 골렘이 상급의 마력석을 심장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제법 좋은 골렘을 쓰는데?’

- 그 이야기는 시종장의 주인이 그만큼 능력 있다는 소리겠군요?

‘어떨지는 가 봐야 알겠지. 원래 사기꾼 놈들이 겉으로는 화려한 법이기도 하니까.’

도현은 에포르와 마음속 대화를 나누며 마차에 올라 시종장과 마주 앉았다.

“불편해 보이는군.”

짧고 굵은 다리에 아랫배가 많이 나온 포일로 종족, 거기에 두툼하고 긴 꼬리까지 가지고 있으니 등 쪽이 막혀 있는 의자에 앉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도현은 옆으로 앉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모습을 본 시종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네네, 저희 종족의 신체적인 특징이 이러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크음.”

도현의 대꾸에 시종장은 낮게 헛기침을 했다.

포일로 종족을 만나러 오면서 제대로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시종장의 실수가 분명했다.

스륵! 스륵!

그런데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차의 창문에 가림막이 올라오며 외부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변했다.

“이건······.”

포일로 종족으로 변신한 도현의 커다란 눈동자가 시종장에게로 향했다.

“신분을 감추려는데 이동 경로나 도착지를 알려줄 수는 없지 않나.”

시종장은 당연하다는 듯이 도현의 눈빛을 마주보며 말했다.

“네네,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의도적으로 불안한 눈빛을 보이는 도현이었다.

“걱정할 것 없다. 너는 거래에만 신경을 쓰면 될 일이다.”

시종장은 도현을 안심시키려는 듯이 담담한 음성으로 그렇게 말을 하고는 눈을 감았다.

단 둘이 있는 공간에서, 한 명이 눈을 감아버린 상황.

도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마차 안 곳곳을 불안하게 살폈다.

‘이런 방법으로 뭘 어쩌려는 걸까? 고작 마차의 창문을 내린 것으로 마차의 이동 경로를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 로드, 포일로 종족의 초보 상인이라면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 외부를 살피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로드께서는 배주머니의 아공간이라는 종족 특성을 지닌 것 이외엔 내세울 것이 없는 상태입니다.

‘아니, 그건 아니지. 초보라고 해도 차원 상인은 나름의 무력을 지니고 있단 말이지. 그래서 차원 상인 중에서 초보는 대략 익스퍼트 초급에서 중급 정도로 무력 수준을 잡아주는 것이 보통이라고.’

- 그래도 결과는 같지 않겠습니까. 익스퍼트 초급이나 중급의 실력으로는, 저 시종장에게 들키지 않고 마차 밖을 살필 수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런가?’

이미 마스터 중급 수준에 오른 도현이라 마차의 창문이 닫혀 있어도 전혀 답답할 것이 없었다.

마스터의 기감은 무척 뛰어나서 지금도 마차가 지나는 길의 좌우에 있는 건물들은 물론이고, 오가는 여러 종족의 기척까지도 훤히 읽어들이는 중이었다.

그래서 시종장이 마차의 창문을 닫고 움직이는 상황을 하찮은 수작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하지만 에포르의 말처럼 익스퍼트 정도의 실력이었다면 시종장의 눈을 피해서 마차 밖을 살피긴 어려웠을 것이다.

우우우웅!

도현은 슬쩍 오러를 운용해 보았다.

그러자 곧바로 시종장이 눈을 떴다.

“지금 뭘 하려는 것이냐?”

그리고 도현을 사납게 노려보며 물었다.

“네네, 마음이 불안해서 그냥 몸에 오러를 좀 돌리려 했습니다.”

“마차가 어디로 가는지 알아내려 했던 것이 아니라?”

“네네, 아닙니다. 그럼요. 설마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그러면 괜히 의심 살 행동은 하지 마라.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조용히 앉아 있으란 소리다. 알겠느냐?”

“네네, 하지만 그것이······.”

“이미 몇 번이나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 말했다. 설마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것이냐? 가주님의 뜻이라 말했음에도?”

“네네, 아닙니다. 미, 믿습니다. 네네.”

시종장은 도현의 행동이 자신의 주인을 불명예스럽게 만든다고 생각했는지 목소리가 격앙되고 있었다.

이에 도현은 순순히 고개를 숙여 다른 뜻이 없음을 표현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서야 시종장은 발끈했던 기세를 가라앉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도현을 노려보며 경고의 말을 던졌다.

“조용히, 기다려라! 마차가 멈출 때까지.”

* * *

‘이게 정상적일까?’

경고의 말 이후에 다시 눈을 감은 시종장.

덕분에 도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의자에 몸을 맡기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차는 점점 이상한 곳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 도시의 성벽 밖으로 나가서 성벽을 따라 돌다가 다시 작은 쪽문을 통해서 도시 안으로 들어오다니, 많이 이상하긴 합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도시의 슬럼가라는 것이 더 이상하지.’

뒷골목, 빈민들이 모여 사는 곳.

마차는 그런 빈민가의 좁은 골목을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마차가 골목길을 지나가는 동안 한 번도 진행을 방해할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약이나 술에 취한 듯이 비틀거리던 부랑아조차도 마차가 지나기 전에 골목길에서 치워졌다.

‘훈련된 이들도 아닌데, 마차 앞을 깔끔하게 치우고 있군.’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마차가 지나갈 길을 깔끔하게 치우는 사람들.

그들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것만 보아도 빈민가의 사람들이 마차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귀족가의 마차를 이곳 사람들이 어떻게 알아보는 걸까?’

- 마차에 특별한 표식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로드.

‘그래도 여기 사람들은 마차를 알고 있어. 아니면 마차를 끄는 골렘을 알고 있거나.’

-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은 확실하니 뭔가 있긴 하겠습니다.

도현이 불안한 표정으로 눈동자을 굴리는 연기를 하며 속으로 에포르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마차는 결국 목적지로 보이는 곳에 도착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

- 결국 귀족가의 가주가 불렀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이었을까요?

마차가 멈춘 곳을 확인한 도현과 에포르는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빈민가 깊은 곳에 있는 허름한 주점, 그리고 그 주점의 한쪽에 있는 마구간으로 마차가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거 봐라? 마구간 안에 비밀 공간이 있어?’

마차가 마구간으로 들어가자 앞쪽의 벽이 넓게 열리며 비스듬히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 나타났다.

마차는 그 열린 벽을 지나서 계속 달렸다.

- 뭐가 되었건, 그냥 단순한 뒷골목 세력은 절대 아니겠습니다. 이런 규모라면 말입니다.

마구간 벽을 지난 후, 터널 형태의 길을 수천 미터는 달렸다.

그 정도면 벌써 위성 도시를 가로지를 수 있을 정도의 거리다.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마차가 어디로 가는지 절대 알 수가 없었겠군. 마스터급 실력자라고 해도.’

- 하지만 로드껜 수많은 산성병사가 있고, 흑영이 있지요.

‘터널이 아주 큰 원을 그리고 있어서 결국은 도시 내부라니.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는지 모르겠군.’

- 그만큼 정체를 감추고 싶다는 뜻이겠지요.

‘그렇겠지? 그리고 이런 터널을 갖출 정도면 굉장히 큰 권력을 지니고 있을 테고 말이지.’

도현은 터널을 달리는 거리가 길어질수록 상대 귀족의 저력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중에 드디어 마차가 속도를 줄이더니 터널의 곁가지로 나갔다.

‘제법 규모가 있는 귀족 저택인데?’

도현은 경사를 따라서 조금씩 지면 위로 올라가는 마차의 종착지를 확인했다.

이미 흑영 몇 기가 앞서가서 목적지를 확인한 상태였다.

덜컹 덜컹!

결국 골렘이 끄는 마차는 목적지에 도착해서 멈춰섰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마차가 멈추자 시종장은 도현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는 혼자만 마차 밖으로 나갔다.

“네네, 네, 알겠습니다.”

도현은 여전히 불안한 기색으로 시종장에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때, 도현은 흑영의 눈을 통해 시종장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시종장은 마차에서 나가, 지하실 계단을 올랐고, 1층 홀에 도착해서 안쪽에 있는 서재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파에 기대 앉아 책을 읽고 있는 한 사람 앞에 깊이 허리를 숙였다.

“가주님, 포일로 종족의 차원 상인을 데리고 왔습니다.”

시종장의 보고에 사내는 책에서 시종장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 상인이 젊음의 비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겠지?”

사내는 청년의 티를 겨우 벗은 젊은 나이였는데, 특이하게도 이마에서 귀 위를 거쳐서 등 뒤로 뻗어내린 뿔이 은색이었다.

그의 뿔은 다른 알케이네스 종족들에 비해서 훨씬 큰 편에 속했고, 굵기도 굵었다.

“분명 그렇게 소문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차원 상인 길드에서도 보증한 내용입니다.”

“그래. 초보 상인은 믿기 어려워도 길드의 보증이라면 믿을 수 있겠지. 그런데 상인이 요구한 대가가 텔레포트 이용권이라고 했던가? 그것도 횟수 제약이 없는 것으로?”

“네, 가주님. 거기에 상당량의 마력석이나 그에 준하는 가치의 물품을 더 요구하고 있습니다.”

“물건만 확실하다면 그 정도는 들어줄 수 있겠지. 어떤가?”

“물론입니다 가주님. 상인에게 대가를 주는 정도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역시 일처리를 확실하게 하자면······.”

“그렇긴 합니다만, 문제는 차원 상인 길드입니다. 차원 상인 길드의 정보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그냥 거래만 하는 것이 좋겠다는 거냐?”

“아닙니다. 역시 포일로 종족의 초보 상인은 처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째서?”

“거사를 치를 때까지 상인 길드의 눈을 속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

“네, 가주님.”

“그렇다면 굳이 상인 놈을 살려둘 이유가 없겠군. 어차피 거사를 치를 때까지만 들키지 않으면 되니까.”

“그렇습니다.”

“좋다. 그럼 상인을 데리고 와라. 내가 불렀으니 거래에 내 얼굴을 비춰야겠지.”

“네, 알겠습니다 가주님.”

시종장은 은빛 뿔의 사내에게 다시 인사를 하고는 서재를 나와서 홀을 지나 지하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와, 이거 나를 죽이겠다는 소리가 분명한데?’

- 뭔가 큰 일을 꾸미고 있는 모양입니다.

‘거기에 젊음의 묘약이 필요하겠지. 그렇다면 그건 선물일 가능성이 높겠군.’

- 선물이라면 고위 귀족이나 황족이 대상일 수밖에 없겠습니다. 로드.

‘그러고 보니 사흘 후에 황궁에서 연회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도현이 알케이네스 차원에 도착했을 때, 차원 회랑에서 일종의 입국 심사를 하던 관료가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황실 연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절대로 소란을 일으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황실 행사가 있기 전에는 평소보다 치안에 대한 경계 수준을 높이는 편이어서 자칫하면 곤욕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도현과 에포르가 거기까지 추측을 했을 때, 마차의 문이 열리며 시종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오너라. 가주님께서 너와 직접 거래를 하시겠다니, 영광으로 알고 따라 오너라.”

“네네, 가주님을 뵙는단 말씀이군요. 알겠습니다.”

“가주님 앞에서는 언행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만약 무례하게 군다면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으니.”

“네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조심, 또 조심하겠습니다.”

도현은 시종장을 따라서 계단을 오르며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마다 턱 아래로 두둑하게 처진 살이 출렁거렸다.

그렇게 도현은 시종장에게 이끌려 서재로 갔고, 그곳에서 큰 은색 뿔을 가진 알케이네스 제국 귀족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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