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두꺼비 도롱뇽 인간, 포일로 종족
88. 두꺼비 도롱뇽 인간, 포일로 종족
“반가워요. 신목님을 통해서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네요. 엘리아네라고 해요.”
검은색의 눈동자와 머리카락을 가진 아름다운 미녀, 엘리아네.
그녀의 모습은 지구에 있는 에일리와 자매라고 생각할 정도로 닮아 있었다.
게다가 눈동자와 머리카락의 검은 색은 에일리보다 훨씬 더 짙었다.
색이 짙을수록 지위가 높은 것이 하이마 드리아드 일족이니, 그녀가 하이마 드리아드 일족 중에서 매우 높은 신분임을 뜻하는 것이었다.
“듣던 것처럼 온통 수목이 우거진 세상이군.”
“보기에 어떠신가요?”
“아주 좋아. 특히 공기가 끝내주는군. 지구의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이곳처럼 좋은 공기는 없을 거야.”
단순히 산소가 많다거나 오염이 없다거나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마력이 풍부한 것은 물론이고, 생명력이 공기 중에 가득 담겨 있었다.
눈에 보이는 곳은 모두가 나무와 풀이 무성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온갖 곤충과 동물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우리 차원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이런 곳을 누가 싫어하겠어? 가만히 있기만 해도 몸이 정화되는 것 같은 느낌인데.”
“그래요?”
“특히 지구인이라면 더 할 걸? 지구는 좀, 그래 많이 더러운 편이지. 이런 저런 것들로 오염이 되어서.”
“그런가요? 지구에 있는 일족들은 별 이야기가 없던데요?”
“그나마 하이마 드리아드 일족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진 않았으니까 그럴 걸?”
“그렇군요.”
“그런데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알고 있지?”
“물론이죠. 우리 차원을 경유해서 다른 차원으로 가려고 한다면서요?”
“음, 고부니 차원이라고 알지?”
“네, 난쟁이들의 차원이라죠. 직접 본 적은 없고, 신목으로부터 전해받은 지식을 통해서 알고 있는 곳이에요. 최종 목적지가 거기라면서요?”
“그래. 그런데 전에 알카이네스의 침입이 있었을 때, 고브지 차원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대답이 없었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이유는 모르지만 그들은 우리 차원을 돕지 않았죠.”
“그 후에, 고브니 차원 역시 알케이네스의 식민 차원이 되었고.”
“안타까운 일이죠. 우리와 힘을 합쳤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데 말이죠.”
엘리아네는 정말로 당시 고브니 차원의 선택을 안타깝게 여기는 표정이었다.
“그들을 원망하지는 않나?”
“아뇨. 우리가 그들을 난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저 단순한 호칭일 뿐이에요. 우리는 그들의 선택을 비난하지 않아요.”
“결과는 그들 역시 알케이네스의 식민지가 되었는데 거기에 대한 감상은?”
“안타깝죠. 우리와 같은 신세였을 테니까요.”
“그럼 앞으로도 고브니 일족와 우호적인 관계로 교류할 여지가 있다는 건가?”
“그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겠죠.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신뢰를 주고 받을 정도가 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지만요.”
“좋아. 고브니 종족을 적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서로의 관계는 시간을 두고 만들어 가면 되는 거니까.”
“그래서 은인께서는 난쟁이들의 차원으로 가시려는 거겠지요?”
도현이 하이마 드리아드 차원으로 온 이유는 엘리아네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이쪽 차원으로 오려는 이유를 지구에서부터 밝히고 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곧바로 고브니 차원으로 가지는 않을 거야. 다른 차원을 몇 곳 경유해서 우리 지구나 이곳 하이마 드리아드 차원이 알케이네스 놈들에게 드러나지 않게 해야지.”
“네, 알케이네스 제국과의 싸움은 당분간 피해야 할 테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죠.”
“그런데 내가 이용할 수 있는 차원 회랑이 있을까 모르겠네? 아직 본격적인 차원 교류는 안 되는 걸로 아는데 말이지.”
하이마 드리아드 차원은 지구와 제일 먼저 차원 회랑을 연결했다.
그 전에도 여러 차원에서 교류 신청을 했지만, 첫 번째라는 의미 깊은 자리를 다른 차원에 줄 수 없다며 버텼다.
그런 중에 도현이 하이마 신목의 도움을 받아서 지구와 하이마 드리아드 차원을 연결하는 차원 회랑을 만들었다.
거기에 약간의 포인트를 에일리와 윌로우트에게 준 것이 전부.
그 이후에 하이마 드리아드 종족이 어떻게 차원을 운영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제가 알기론 우리 차원보다 지구에 더 많은 차원 회랑이 열리고 있는 걸로 아는데요?”
“그래서 내가 여기 온 것이 못마땅해?”
“아뇨. 은인께서 와 주신 것은 반가운 일이죠. 그저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지구에 차원 회랑이 여럿 열린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그 차원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어. 그래서 하이마 신목의 도움을 좀 받을까 하고 찾아온 거지. 겸사겸사 하이마 드리아드의 여왕인 엘리아네 당신도 만나고.”
“호호호. 그렇군요.”
“그런데 하이마 신목의 열매가 곧 열린다는 소리가 있던데?”
“에일리와 윌로우트가 애를 많이 쓰고 있죠.”
“다행이네.”
“감사해요.”
“응?”
“여러모로 은인께 감사한 일이 많아요. 우리 하이마 일족 모두는 그 은혜를 잊지 않을 거예요.”
“뭐, 하하하. 난처하네. 이런 인사를 받는 거엔 익숙하질 않아서 말이지.”
도현은 엘리아네가 당장이라도 온 몸을 펼치고 꽃을 피우지 않을까 걱정하며 시선을 피했다.
하이마 드리아드 일족 최고의 감사 인사이긴 하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 인사였기 때문이다.
“아, 일단 내게 권해 줄 차원이 있을까? 알케이네스 제국과도 교류가 있는 그런 종족이면 좋겠는데.”
“그런 차원과 종족이야 많이 있죠. 알케이네스 제국의 세력이 크긴 하지만, 그런 알케이네스도 어쩌지 못하는 차원이나 단체도 많으니까요.”
“그 중에 내가 변장을 할만한 종족도 있겠지? 아, 한 번은 내가 직접 만나 봐야 변신을 할 수 있으니까 그 점도 고려해서 추천을 해 주면 좋겠는데?”
“알았어요. 떠오르는 종족이 있네요.”
“그래?”
“네.”
엘리아네는 도현을 얼굴에서 발끝까지 한 번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을 뻗어 주위의 나뭇가지들을 움직여 게이트를 만들었다.
나뭇가지가 타원형을 이루며 얽히더니 그 안쪽에 수면 같은 막이 생겨났다.
“저희 일족이 먼 곳을 갈 때 사용하는 방법이에요. 안으로 들어가세요.”
엘리아네가 눈짓으로 그 게이트를 가리켰다.
도현이 어딜 가냐는 눈빛으로 그녀를 보자.
“추천할 종족이 떠올랐다고 했잖아요. 그 종족의 차원으로 통하는 차원 회랑이 있는 곳이에요.”
엘리아네의 말에 도현은 서슴없이 게이트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러자 엘리아네가 그 뒤를 따랐다.
* * *
두꺼비 도롱뇽 인간.
짧은 팔과 굵은 다리 그리고 긴 꼬리에 넉넉하다 못해 넘치게 나온 아랫배.
얼굴과 턱, 가슴과 아랫배는 돌기가 없이 매끄러운 가죽으로 되어 있고, 옆구리에서 등과 팔다리의 바깥쪽은 두껍고 거친 가죽으로 된 종족.
도현은 포일로라 부르는 그 종족으로 변신했다.
이 포일로 종족은 차원 상인으로 이름이 높은 종족이었는데, 차원 상인 길드에서 무척 높은 위상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차원 상인에는 포일로 이외에도 여러 종족이 있지만, 포일로 종족이 차원 상인이 아닌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는 종족.
하이마 드리아드의 여왕인 엘리아네는 도현에게 이 종족으로의 변신을 권했다.
도현은 포일로 종족의 외형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차원 상인이라는 신분이 마음에 들어서 결국 포일로 종족으로 변신했다.
“호호호호. 배가 아주 귀엽네요.”
엘리아네는 도현이 포일로 종족으로 변신하자 재미있다는 듯이 한참을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변신한 도현의 모습에서 귀를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라며 멈추고 말았다.
“깃털 귀를 하셨네요? 그것도 황금색 깃철로 된 귀를요.”
포일로 종족은 두꺼비를 닮은 머리를 하고 있다.
입이 크고 넓으며 콧구멍은 수중에서 여닫을 수 있는 기능이 있는 것에 비하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그런데 유독 포일로 종족의 이목구비에서 눈에 띄는 것이 바로 귀다.
포일로 종족의 귀는 매우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인간의 귀를 닮은 경우도 있고, 박쥐의 피막 날개처럼 생긴 것도 있으며, 토끼나 사슴의 것을 닮은 것도 있다.
그런데 그런 중에 가장 드문 것이 새의 깃털 날개를 닮은 귀였다.
작은 깃털 날개가 머리 양쪽 옆에 달려 있는데, 날개의 용도가 아니라 귀인 경우다.
“이게 희귀한 거라며? 그렇다고 이런 걸로 신분을 나누는 것은 아니고.”
“그야 그렇죠. 하지만 깃털인데 황금색 깃털이라니, 너무 눈에 띄는 거 아닌가요?”
“이제 첫 상행을 나온 상인에겐 아주 괜찮은 홍보 수단인 거 같지 않아?”
“홍보요?”
“나를 한 번이라도 만난 고객이라면 절대 이 황금색 깃털 귀를 잊지 못하겠지.”
“그건 그러네요.”
“그리고 이렇게 눈에 띄는 꼴을 하고 다닐 첩자는 없지 않겠어?”
“그러니까 그 모습이 의심을 피하는 방법도 된다는 거군요?”
엘리아네도 곧바로 도현의 말을 알아들었다.
포일로 종족 사이에서도 특별한 취급을 받을 모습이라면, 알케이네스의 제국인들도 의심을 줄일 것이다.
“그런데 주력 상품은 뭐로 하시려고요?”
엘리아네는 짧은 팔을 내려서 아랫배의 배주머니를 뒤지고 있는 도현을 보며 물었다.
포일로 종족이 차원 상인으로 성공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그것은 바로 지금 도현이 뒤지고 있는 아랫배의 배주머니였다.
포일로 종족의 배주머니는 그 자체로 커다란 아공간이기 때문이다.
아공간에 갖가지 물건을 가지고 다니며 차원과 차원 사이의 판매 차익을 거두는 포일로 종족.
도현은 그 흉내를 내며 아랫배의 배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당연히 그 배주머니 안에 넣은 손에 물건을 내어 준 것은 도현의 의전담당관이자 창고 관리인인 에포르였다.
도현 역시 아공간을 자지고 있으니 아랫배의 배주머니를 통해서 아공간을 이용하는 것이다.
“내가 팔아먹을 것이 뭐가 있겠어? 이런 거나 팔아야지.”
포일로 종족으로 변한 도현의 짧은 팔이 배주머니에서 나오며 수정을 깎아 만든 병 하나가 딸려 나왔다.
“그건······.”
“내가 괜찮은 연금술 공장을 하나 가지고 있거든.”
공장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일곱 개의 성 중 하나인 황금의 성을 말하는 것이었다.
도현은 엘리아네를 향해 수정 병을 흔들어 보였다.
그것은 황금의 성에서 연금술사들이 만들어 낸 귀한 물약이었다.
병 안에 들어 있는 액체는 흔들릴 때마다 여러 가지 색으로 변하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건 뭐죠?”
“젊음의 묘약?”
도현이 병을 커다란 두꺼비 눈앞으로 끌어와 뚫어져라 들여다보며 도리어 질문 같은 어조로 말했다.
“하이마 신목의 씨앗과 비슷한 효과가 있는 건가요?”
엘리아네는 뭔가 짐작이 간다는 듯이 물었다.
“그렇지. 하이마 차원이 식민 지배를 벗어나면서 알케이네스 귀족층에 하이마 씨앗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겠지. 그런 상황에서 효과가 비슷한 이 젊음의 묘약이 나타나면?”
“너나없이 그 약을 구하기 위해서 달려들겠군요.”
“그렇겠지. 하지만 이건 그저 미끼 상품일 뿐이야. 비싼 값에 팔 거고, 고작해야 서너 개 밖에는 없는 물건이지.”
“덕분에 알케이네스의 고위 귀족들과 만날 기회를 얻겠군요.”
“그러려고 이런 귀한 것을 내어 놓는 거지.”
도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들고 있던 병을 엘리아네 여왕에게 내밀었다.
“뭐죠? 그걸 왜 저에게 주시는 거죠?”
“이거 당신에게도 효과가 있을 거야. 여기 하이마 신목의 기운이 포함되어 있거든.”
“뭐라고요!? 설마 하이마 신목을 훼손하기라도······.”
도현의 말에 엘리아네가 깜짝 놀라며 표정이 사나워졌다.
“설마? 그런 거 아니야. 그저 전에 얻어갔던 하이마 신목의 가지를 잘 키웠을 뿐이야.”
“신목의 가지를 키웠다고요? 하지만 새로운 신목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는데요? 어디서라도 신목이 새로 탄생하면 우리 일족이 그것을 모를 수는 없어요. 다른 차원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더라도요.”
그건 도현도 알고 있었다.
지구에서 하이마 신목이 새로 뿌리내렸을 때, 이쪽 차원의 하이마 신목은 그것을 알아차리고 지구의 하이마 신목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고 스스로 소멸을 택했다.
차원이 다르다고 해도 새로운 신목의 탄생은 숨길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차원이 아니라 도현의 의식 공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도현은 하이마 신목의 가지를 에로프에게 주어서 숲의 성에 심도록 했던 것이다.
그렇게 심은 신목이 크게 자라서 연금 재료로 가지나 잎, 뿌리, 꽃, 씨앗 따위를 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비록 의식 공간 안에서의 일이긴 하지만.
“가지를 접붙여 키운 거라서 신목과는 다르지. 그래서 그런 걸거야.”
“그런가요?”
“그래도 하이마 신목의 기운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어서, 이런 것을 만들어 내는데 도움이 되었지.”
도현이 다시 한 번 젊음의 묘약이 들어있는 병을 엘리아네에게 내밀며 흔들었다.
엘리아네는 조심스럽게 그 병을 받아들었다.
“자, 그럼 나는 이만 포일로 종족의 차원으로 가 볼까? 거길 들렀다가 고브니 종족의 차원으로 가야지. 그게 안 되면 알케이네스 차원으로 가서 고브니 차원으로 갈 방법을 찾아야 하고.”
“식민 차원엔 차원 회랑이 많이 열리지 않으니, 포일로 차원에서 고브니 차원으로 직접 갈 방법은 없을 거예요.”
“그럼 알케이네스 차원을 들러야지. 잘 됐네. 그렇지 않아도 알케이네스 제국에 갚아줄 것도 있는데.”
엘리아네의 말에 도현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