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차원 전장을 마무리 짓다(2)
83. 차원 전장을 마무리 짓다(2)
“황제 폐하를 위하여!”
“황제 폐하를 위하여!”
“폐하께 충성을!”
“폐하께 충성을!”
“신께서 돌보시리라!”
“신께서 돌보시리라!”
콰과광! 후두두두둑! 퍼버버벙!
고브니 종족의 타이탄은 지구의 과학 기술을 만나서 새롭게 태어났다.
처음엔 고브니 일족의 타이탄 제조 기술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타이탄에 현대 과학 문명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그 획기적인 최초의 개조가 바로 타이탄의 원거리 공격 무기 장착이었다.
화약이나 전기가 아닌 마력을 이용한 원거리 타격 및 폭발.
타이탄의 팔뚝이 포신이 되고, 그 안에서 마력이 응축되어 폭발성을 지닌 마법 현상으로 만들어져 발사 되었다.
사실 타이탄이 그러한 원거리 공격 수단을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이전보다 한 단계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1의 싸움에서도 생각지도 못한 암습이 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다수의 타이탄이 모이면 다수의 적에게 화망을 구성한 타격이 가능했다.
그리고 지금 알케이네스 제국으로 통하는 포탈 광장에서는 타이탄들의 화망 타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삼십 만에 가까운 알케이네스 병사들이 숨을 곳도 없는 개활지에 노출된 상태로 타이탄들의 원거리 공격을 맞았다.
“황제 폐하······!!”
콰과과광!
“신께서 함께······!!”
콰과과광!
“충성을······!!”
콰광! 콰광! 콰과광!
후두두두둑! 후두두두둑!
굉음의 폭발과 비산하는 흙먼지, 그리고 그 속에 뒤섞인 알케이네스 병사들의 골육 파편들.
“너무 일방적이군.”
“이거 PTSD 제대로 오겠는데?”
“학살인데,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네.”
“씨발 것들이 죽을 작정으로 달려드는데 어쩌겠어? 조금만 방심하면 우리 목이 따일 텐데.”
“무슨 마약이라도 처먹은 것처럼 지랄들이네. 미친 거 같아.”
“그러게 말이야.”
뉴어스의 헌터들은 타이탄의 학살에 끼어들지 않고 후방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지금 일어나는 타이탄의 학살도 따지고 보면 타이탄 오너들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타이탄은 각각의 기체마다 한 명의 오너가 있어서 그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인다.
세세하게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까지 명령을 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공격 방향이나 방법 따위는 타이탄 오너들의 지시였다.
그러니 지켜보는 것도 힘겨운 상황에서 타이탄에게 살육의 명령을 내리는 오너들은 오죽할까.
“잠시, 타이탄의 공격을 멈춰라!”
그 때, 와이번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도현의 고함소리가 헌터들의 귀를 때렸다.
그러자 타이탄들이 일제히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적당히 거리를 뒀으면 멈춰서 대기하라! 거리는 타이탄이 달려들기에 멀지 않을 정도로!”
다시 도현의 명령이 내려왔다.
이에 타이탄들의 뒷걸음질이 알케이네스 병사들과 십여 걸음 떨어진 곳에서 멈췄다.
알케이네스 병사들은 적이 공격을 멈추고 물러나자 당황한 듯이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뒤쪽에 있는 간부들과 사령관들을 찾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지휘관과 사령관이 절반 이상 사라진 상태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어디갔지? 함께 싸우다가 죽었나?”
“무슨 소릴! 사령관 각하께선 아직 전장에 나오지 않았다.”
“그럼 어딜 갔다는 거야? 설마?”
“아니겠지.”
“폐하의 대리자인 고귀한 귀족들이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그럼 어딜 갔다는 거야? 숨을 곳도 없는 이곳에서!”
알케이네스 병사들의 시선이 조금씩 후방에 있는 포탈 건물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순백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신전같은 건물.
그곳에 그레이 포탈이 있고, 그 안쪽에는 골드 포탈이 있다.
지금 이 전장에서 모습을 감춘 사령관과 귀족 간부들이 갈 곳은 그곳밖에 없었다.
“폐하께서 뭔가 새로운 계획이 있으신 것일까?”
“우리 같은 평민들보다야 고귀한 귀족이 폐하께 더 도움이 되겠지.”
“그야 그렇겠지만, 함께 마지막까지 싸우자고 한 것은 그 귀족들이었단 말이지.”
“그리고 폐하께서는 분명히 우리의 충정을 보시겠다 하셨고, 그것을 기억하시겠다 하셨다고.”
“아니, 그 말조차도 귀족들이 전한 말이잖아.”
“아무리 그래도 귀족들이 폐하의 말을 지어내진 않았겠다. 그런 불충을 어떻게······.”
“그럼 지금 상황은 뭔데? 모두 함께 죽어서 폐하께 충정을 증명하자고 했던 것이 귀족들이었다고. 그런데 지금 여기 어디에 귀족이 있다는 거지? 간부들도 평민 출신만 남았고, 귀족 출신의 사령관과 간부들은 모두 사라졌잖아!”
누군가 울분에 찬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그의 성토는 다른 알케이네스 병사들의 가슴을 두드렸다.
“이것은 분명 귀족 놈들이 폐하를 속인 것이다.”
“맞아. 폐하께 충성하는 놈들이라면 절대 이럴 수가 없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없었다. 그것도 폐하의 이름으로 거짓말을 했다면 그것은 분명 배교나 다름이 없다. 죽여야 한다!”
“맞다. 폐하의 이름을 더럽힌 놈들을 살려둬서는 안 된다.”
“죽이자!”
“죽이자!”
상황은 순식간에 급변했다.
도현이 잠시 공격을 멈추고, 알케이네스 병사들이 주변을 살펴볼 여유를 주었을 뿐인데, 그들은 귀족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는 분노를 터트렸다.
“가자아아아!”
“죽여라아아아!”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으아아아아아아! 폐하 만세에!”
“만세! 만세에!”
알케이네스 병사들은 그들을 공격하던 타이탄들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리고 무기를 들고 포탈 신전을 향해 내달렸다.
우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
“으음, 이걸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 그렇습니까?
“우리 헌터들이 너무 힘들어 하는 거 같아서 잠시 쉬어가려고 했을 뿐이야. 저 놈들이 귀족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저렇게 발작을 할 거란 생각은 못했지.”
-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구경 가셔야지요?
“그래. 가야지. 마지막이 어떻게 끝나는지 내 눈으로 확인을 해야지.”
도현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헌터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잠시 대기!”
그리고 곧바로 와이번을 움직여 포탈 신전을 향해 날아갔다.
“어? 혼자서 간다고?”
“뭐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긴 한 모양인데, 우리 그냥 여기서 기다리는 게 맞나?”
“그럼 캐슬님을 쫓아가서 뭘 하려고? 아니면 캐슬님의 명령을 어기고 타이탄이라도 움직이려고?”
“아니, 그건 아니지. 하지만 마지막 싸움이고, 저기 포탈만 닫으면 차원 전장이 끝나는데······.”
“왜? 마지막 순간에 캐슬 님 대신에 니가 포탈을 닫고 보상이라도 받아 보려고?”
“무, 무슨 소리야? 그런 스틸이 가능하지도 않겠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도 그 즉시 목이 날아갈 걸? 감히 캐슬 님의 몫을 훔쳐? 그냥 자살을 하는 쪽이 나을 거 같은데?”
“그런데 저긴 왜 가고 싶은데? 가서 뭘 하려고?”
“그래도 마지막이니까 어떻게 끝나는지는 직접 눈으로 보고 싶잖아.”
“그렇게 따지면 여기 있는 헌터들 수십만이 모두 저길 들어가고 싶을 걸?”
“에이! 쯧, 그래, 니가 옳다. 캐슬 님이 대기라하고 했으면 대기하는 게 맞겠지. 내가 뭐 잘난 게 있다고 저길 가겠냐. 젠장!”
아쉽지만 그게 맞았다.
지금 크라운 길드의 하위 길드장들도 꼼짝 않고 전선을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알케이네스의 포탈 신전으로 갈 수 있을까.
있다면 아마도 캐슬을 형이라고 부르는 김재홍 밖에 없을 것이다.
* * *
“이게 뭐 하는 짓이냐!? 감히 명을 어기고 여기로 들어오다니!”
“시끄럽다! 역적들!”
“뭐라? 역적?!”
“폐하의 뜻을 멋대로 재단한 놈들이 역적이 아니면 뭐란 말이냐?”
“이런 미친 놈들이 있나! 감히 폐하께 통치의 권한을 내려받은 우리에게 뭐라? 역적?! 이것들이 감히!”
포탈의 신전 깊은 곳.
그레이 포탈을 지나 골드 포탈이 있는 광장에 알케이네스의 일반 병사와 귀족이 대치하고 있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귀족들은 골드 포탈을 이용해서 알케이네스로 돌아가려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럼에도 귀족들은 일반 병사들이 그곳까지 온 것을 두고 질책하는 중이었다.
귀족의 질책, 그것은 알케이네스의 평민들에겐 신의 명령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귀족들의 한 마디에 흙바닥에 엎어져 목을 길게 빼고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제국에서 흔한 모습이었다.
그것은 바로 오늘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저 일반 병사들 역시 분명 같은 모습이었을 터.
하지만.
“함께 죽어 폐하게 충정을 증명하자고 한 것이 너희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너희의 모습은 뭐란 말이냐!”
하지만 지금의 병사들은 얼마 전의 병사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글거리는 분노와 새빨간 적의(敵意)를 담은 눈빛이 귀족 지휘관들을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폐, 폐하께서 명하신 것이다. 너희와 달리 우리들은 폐하께서 안배하신 일이 있다 하시고······.”
“개소리!”
귀족 지휘관의 말에 일반 병사들 중에 하나가 투척용 손도끼를 내던졌다.
휘리릭!
“이 놈이 감히!”
카가강!
하지만 귀족 지휘관은 기본적으로 평민 병사들에 비해서 실력이 뛰어난 자들이었다.
평민 병사가 던진 손도끼 따위를 쳐 내는 것은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쳐 낸 도끼를 던진 놈에게 되돌리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피리리리링! 퍼억!
“컥!”
“이런 씨벌!”
“죽여!”
“역적이다! 역적 놈이 우리를 공격했다.”
“죽여라!”
하지만 되돌려 준 도끼 하나가 상황을 파국으로 몰아갔다.
어차피 죽음을 각오했던 알케이네스 병사들이지만, 저들끼리 도망가려던 비겁한 놈들의 손에 동료가 죽은 것은 경우가 달랐다.
그들은 이곳 포탈 신전까지 내달리며 외쳤던 외침을 기억해냈다.
“죽여라!”
“죽여!”
“죽여버려!”
억눌린 분노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그것이 귀족을 향한 것이라고 굳게 믿었지만, 실상은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서 깨어나지 못하던 자유 의지의 발현이었다.
비록 황제까지는 넘보지 못하고, 귀족들조차도 절대자인 황제의 이름을 빌려서야 칠 수 있지만, 그래도 뭔가 맺힌 것이 풀리는 시원함을 느꼈다.
그래서 알케이네스의 평민 병사들은 죽어가면서도 이유 모를 미소를 짓고 있었다.
“크하하하. 죽여라! 죽여라!”
“커억! 이런 버러지 같은 것들이!”
“커어어어! 주, 죽여라아!”
“꺼어어어억!”
“죽였따아아!”
서걱!
죽음을 각오한 공격.
비록 하찮은 실력이라고 해도, 그 수가 많으면 결국에는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덤비는 평민 병사들.
상처 입은 귀족 지휘관이 비틀거리면 그 틈을 비집고 창이 날아든다.
그리고 창에 맞으면 그 즉시 수십 개의 검과 창, 도끼가 날아와 박히고, 힘겹게 몇 개의 수급을 취해도 결국 귀족 지휘관 역시 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모습이 광장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수벽 명의 평민 병사가 죽어도, 결국 귀족 지휘관 하나를 죽이면 사기가 올랐다.
이십만에 가까운 병사들이 죽으면서도 타이탄은 쓰러뜨리지 못했다.
그런데 귀족 지휘관은 그래도 하나 둘 쓰러뜨려 죽이는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가.
“우아아아! 죽여라! 폐하께 불충한 역적이다!”
“으하하하. 폐하, 소인들이 폐하의 적을 소탕하는 중이옵니다.”
“부디 기억해 주시옵소서. 신께서 함께 하심을 믿사옵니다.”
“신께서!”
“함께!”
“하신다아! 죽여라!”
“죽여라아!”
묘한 광기가 지배하는 광장.
그 가장 안쪽 골드 포탈 앞에는 몇 남지 않은 상위 귀족의 혈족들이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왜? 어째서 포탈이 작동을 하지 않는 거야!”
“아직 전장의 승패가 선언되지 않았단 말이야. 그럼 포탈은 살아 있다는 건데, 어째서!”
“호, 혹시?!”
“뭐, 뭔가 알아냈나?”
“차원 이동을 제한하는 마법이나 신비가 깔려 있다면?”
“여기 그런 게 있을······. 아니 잠깐만!”
반론을 제기하려던 사령관이 소매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에 마력을 주입하여 천정을 향해 던져 올렸다.
휘익, 퍼버벙!
파지지지직! 쩌저저저저정!
그러자 황금빛의 둥근 구슬은 4미터 정도 올라간 후에 빛의 폭발을 일으켰는데, 그 빛이 닿는 곳에서 묘한 마력 충돌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충돌과 함께 드러나는 기이한 나무 기둥들.
“빌어먹을 하이마 드리아드의 신목 가지로 만든 아이템이다! 차원 이동을 방해하는 것이 분명해!”
“저런 게 왜 여기 있다는 거야? 왜!”
“은신한 놈들이 있다! 그 놈들이 저걸 여기 세웠을 거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저 기둥을 뽑아야 해! 서둘러!”
“이런 빌어먹을!”
귀족 지휘관들은 드디어 골드 포탈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를 알아냈다.
그리고 서둘러 하이마 신목의 가지로 만든 마법 아이템을 없애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파스스스스스스스스!
“우웁!”
“허억! 이게 뭐야?”
“왜 먼지 구름이?”
“아, 미개종! 미개종 우두머리 놈의 흙인형 소환이다!”
“제, 젠장!”
광장 전체에 눈도 뜨지 못할 정도로 자욱하게 퍼진 흙먼지.
알케이네스의 귀족 지휘관들은 그 정체를 알아차린 순간 모든 의욕을 잃은 듯 어정쩡하게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이어 광장 전체를 가득 채우며 도현의 산성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쿠구구구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