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차원 전장을 마무리 짓다(1)
82. 차원 전장을 마무리 짓다(1)
“알케이네스 차원과의 전쟁을 끝낸다.”
도현은 결정을 내렸다.
엑슬리드의 말에 의하면 이번에 일어난 차원 용병의 난입이 의뢰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렇다면 의뢰주로 떠올릴 수 있는 상대는 알케이네스 밖에 없었다.
“차원 용병단에 의뢰를 했다면,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아예 차원 전장의 승패를 결정지어서 놈들이 더는 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도현은 그렇게 생각했고, 뉴어스의 지배 세력인 크라운 길드의 간부들은 그런 도현의 판단을 받아들였다.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알케이네스 놈들을 정리한다.”
“그럼, 타이탄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건가요?”
이제는 크라운 길드에서 분리되어 혈장미라는 하위 길드를 이끌고 있는 자옥이 물었다.
그동안 헌터들이 많이 성장하기는 했지만, 전투력만 놓고 따진다면 12미터급의 타이탄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아직 마스터 등급 수준에 제대로 올라선 이들은 없다고 봐야 했다.
그러니 타이탄을 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전투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그동안 도현은 타이탄을 방어용으로만 쓰게 했고, 알케이네스 차원 전장은 반 가디언 연합에 속했던 헌터들에게 맡겨 두고 있었다.
뉴어스에서 길드전에 패하고 알케이네스 차원 전장의 중립 도시로 내몰린 이들에게 알케이네스의 도시를 공략하게 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알케이네스 부대의 도시는 거의 점령되었다.
하지만 그즈음 반 가디언 연합 헌터들의 전력도 대부분 소진되었다.
모두 죽은 것은 아니고, 알케이네스의 4구역 도시를 점령하고 뉴어스 4구역으로 돌아오면서 면죄부를 얻은 것이다.
지금은 도시 공략에 나서지 못하고 중립 도시에서 버티고 있는 일부를 제외하면 이제는 4구역 도시 공략에 억지로 밀어 넣을 헌터들은 없다고 봐야 했다.
그러니 마지막 마무리는 크라운 길드와 친 가디언 세력에 속한 헌터들의 몫이 된 셈이다.
“당연히 타이탄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지. 이제 전쟁도 끝나는 마당에 피해는 최소한으로 해야 하지 않겠어?”
도현이 활짝 웃으며 타이탄의 적극 활용을 공언했다.
이에 간부진들의 표정도 확 밝아졌다.
“그런데 차원 전장에서 승자가 되면 지구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확실합니까?”
그런 중에 도깨비 길드의 도비형 길드장이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하이마 드리아드와 고브니 종족에게 확인한 사실입니다. 차원 전장의 승패가 결정되면 패자는 골드 헌터에 해당하는 이들만 복귀가 가능하지만, 승자는 모두가 고향 차원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군요.”
도현의 대답에 도비형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그것은 다른 하위 길드의 길드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하위 길드의 길드장들은 길드장이 되면 골드 헌터의 자격을 얻을 방법이 생긴다.
길드의 활동에 따른 공헌 점수를 사용해서 길드장에게 골드 헌터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크라운 길드 산하의 하위 길드에서는 누구 하나 그런 방법으로 길드장이 된 사람은 없었다.
하물며 원래부터 골드 헌터였던 보국 길드의 박형렬 소령조차도 크라운 길드에 속한 후로는 공적인 일이 아니면 지구로 가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크라운 길드에서는 골드 헌터라도 지구로 귀환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함께 생활하는 그레이 헌터를 배려하기 위해서였다.
다만 뉴어스에서 생산되는 자원을 지구로 보내는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그런 경우에만 골드 게이트를 이용했다.
“돌아가 봐야 좋을 것도 없는데 뭘······.”
모두가 기뻐하는 중에 김재홍은 별 관심도 없다는 듯이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어차피 지구에는 정 붙일 것이 아무도 없는 그였기 때문이다.
“뉴어스에 남고 싶어도 남을 방법이 없으니까 아쉬워도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차원 전장이 닫히면 지구와 다른 차원의 교류가 가능해진다. 그러니 지구에 남고 싶지 않으면 다른 차원으로 모험을 떠나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
도현은 그렇게 말하며 재홍을 보았다.
“뭐, 일단 상황이 닥치면 그때, 보고 결정할 거야.”
“그래.”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나면 타이탄은 어떻게 할 거야?”
다른 이들은 쉽게 꺼내지 못하는 민감한 질문.
하지만 재홍은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거야 당연히 모두 회수해야지.”
“회수한다고요?”
“저기, 마스터! 그건 좀······.”
도현의 말에 하위 길드의 수장들이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타이탄, 그중에서도 12미터 급의 타이탄은 매우 강력한 전력이다.
그런 타이탄을 빼앗겠다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왜? 타이탄이 탐나? 그럼 대가를 지급하고 구매를 하면 되겠지. 그 정도 편의는 봐 줄 수 있으니까.”
이에 도현은 피식 웃으면서 구입이라는 해결책을 열어주었다.
“판다고? 형, 그럼 얼마나 줘야 하는 건데?”
재홍이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재홍이지만, 중2병답게 로봇에 열광하는 그였다.
그래서 쓰지도 않을 타이탄을 어떻게든 하나 얻어 보려고 도현에게 매달리곤 했었는데, 전투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아서 분배해 주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그 타이탄을 손에 넣을 가능성이 생기니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이 눈빛이 뜨거워져 있었다.
“간단하게 생각해. 타이탄 제작에 필요한 재료. 딱 그것만 받을 거야. 단, 이번 전투에서 타이탄을 잃게 되면 수리비까지 함께 내야 할 거고.”
“우와, 그거 너무 혜자스러운 거 아냐? 재료만 주면 타이탄을 준다고?”
“그 재료가 어지간한 수준이 아닌데?”
“에이, 뉴어스에서 굴러먹은 짬이 있는데 그 정도는 어떻게든 준비할 수 있을 걸? 모아 놓은 H.Point도 제법 될 테고, 차원 에너지에 길드 점수까지 동원하면 타이탄 재료 정도야 뭐······.”
재홍은 걱정 없다는 듯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타이탄이 이미 자신의 손에 들어온 것 같은 재홍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간부들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타이탄 재료야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지. 길드 창고에 모아 놓은 것들도 제법 되고.”
“마스터, 혹시 점수로도 구입이 가능합니까?”
옆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간부들 중에 누군가 손을 들었다.
비무장 전설 길드의 황재승 길드장이었다.
“점수도 괜찮지. 차원 전장이 닫힐 때, 가지고 있는 점수에 따라서 보상이 있다고 했으니까.”
“그렇습니까?”
“어떤 보상이 나오는지는 나도 몰라. 매번 차원 전장이 닫힐 때마다 보상이 달랐다고 하니까. 하지만 등가 교환은 확실하다고 하더군.”
점수의 가치에 딱 맞게 보상이 떨어진다고 했다.
그러니 점수로 대가를 받는다고 도현이 손해 볼 일은 없었다.
다만.
“하지만 요구하는 타이탄의 숫자가 지금 있는 것들보다 많다면, 점수가 아니라 재료로 가지고 오는 것이 좋겠지? 점수만 있다고 타이탄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아, 그렇군요. 어쨌거나 지금 대여하고 있는 건, 점수로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거잖습니까.”
“그것까진 그렇게 해 줄 수 있지. 그 정도 편의야 못 봐 줄 것도 아니니까.”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을 점수를 받고 넘기는 것 정도야.
손해 보는 것도 아닌데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럼 이제부터 알케이네스 놈들을 4구역에서부터 1구역까지 밀어내는 겁니까?”
박형렬 소령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차원 전장의 마무리에 대해서 물었다.
“그렇지. 1구역까지 밀고, 그다음에 그곳에 있는 골드 포탈과 그레이 포탈을 제거하면 되는 거지.”
“숫자가 많을 텐데요?”
“포탈을 없애면 곧바로 그 공간이 사라지고, 포탈이 남아 있는 1구역으로 이동된다더군. 1구역과 2구역의 경계로.”
“그럼······.”
“다시 밀고 들어가서 포탈 광장을 접수하는 과정을 반복해야지. 그렇게 모든 포탈을 제거하면 차원 전쟁이 끝나게 되는 거지.”
“하아,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찹니다.”
박항렬이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눈을 부릅뜨며 가슴에 손을 올리고 중얼거렸다.
“이번 회의 결과를 모든 협력 길드에 전파하고, 타이탄 구입에 대해서는 동등한 자격을 부여한다고 전해. 하지만 타이탄을 가지고 지구로 갔을 때, 나라마다 타이탄의 소유나 관리에 대한 규정이 다를 테니까 그건 알아서 해야 할 거야.”
“설마 타이탄을 빼앗겠다고 하진 않겠지요?”
“차원 전장에서 고생한 우리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지.”
“아마 귀환하는 헌터들이 무서워서도 그런 짓은 못할걸? 여기 있는 우리만 뭉쳐도······.”
“그건 그렇겠네. 이야, 그러고 보니까 우리가 돌아가면 헌터 전력으로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되는 거 아냐?”
“그건 우리 마스터가 캐슬 님이었을 때부터 그랬던 거고.”
“어? 그런가?”
“뭐, 마스터를 빼 놓고 봐도 크라운이 가장 강력하긴 하지. 솔직히 7구역이나 8구역 거점 점령은 우리들이 돕지 않으면 어려웠으니까.”
“하긴 마스터 덕분에 우리가 좀 앞서긴 했지. 아, 좀이 아니라 많이? 하하하.”
차원 전장을 마무리한다는 회의 결과를 두고 간부들의 표정이 더없이 밝았다.
그리고 그 회의 결과를 들은 뉴어스의 헌터들은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물론 그중에는 김재홍처럼 심드렁한 이들도 있고, 지구로 돌아가면 곤란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차원 전장의 마무리를 격렬하게 반기는 분위기였다.
* * *
쿠궁! 쿠궁! 쿠웅! 쿠웅!
숲을 헤치며 타이탄 군단이 진군하고 있었다.
12미터 급의 타이탄들과 8에서 9미터 급의 타이탄이 주를 이루고, 그 사이에 6미터 급의 타이탄들도 여럿 보였다.
12미터 급의 타이탄은 대부분 도현의 황금의 성에서 생산된 것들이고, 나머지는 지구에서 만들어져 포탈을 통해 들어온 것들이었다.
대략 2천 가량의 타이탄들이 일제히 숲을 헤치고 나아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여기저기서 나무들이 꺾이고 부러지며 타이탄들의 발 밑으로 삼켜졌다.
“이렇게 되어 있을 줄은 몰랐네.”
도현이 와이번을 타고 허공에 뜬 상태로 중얼거렸다.
- 그러게 말입니다. 1구역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생각해보면 저게 정상일 수도 있겠지. 알케이네스 종족은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되어 있으니까.”
부지런히 알케이네스 차원 전장의 3구역과 2구역을 정리하고 1구역에 도착했더니 의외의 상황이 벌어져 있었다.
알케이네스 차원 전장의 1구역이 하나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원래는 동등한 자격의 사령관들이 부대마다 제각각의 1구역을 가지고 있었지만, 부대를 하나로 통합하면서 1구역도 뭉쳐 버린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런 선택지가 없었는데 말이지. 우리 크라운이 뉴어스의 길드를 대부분 통합했어도 1구역은 원래대로 유지되었잖아.”
- 알케이네스가 제국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 어쨌거나 일은 편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곳만 정리하면 차원 전장을 닫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 저기 저렇게 결사 항전을 하겠다고 버티는 놈들만 모두 죽이면 그렇게 되겠지.”
도현은 밀려가는 타이탄들 앞에 버티고 있는 수십만의 알케이네스 병사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대부분 익스퍼트 등급 혹은 그 이하의 병사들이었다.
제일 뒤쪽에 서 있는 지휘관들은 그나마 나아서 익스퍼트 중급에서 상급.
가장 계급이 높아 보이는 사령관 몇이 마스터에 발을 걸친 듯 보였다.
그에 비해서 타이탄들은?
12미터의 대형 타이탄은 마스터에 필적하는 힘을 지녔다.
게다가 금속의 몸체를 지닌 타이탄의 특성 때문에 급이 낮은 이들의 공격은 거의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 삼십 만에 가까운 알케이네스 병사들은 12미터급 타이탄 앞에서 허수아비에 불과할 뿐이다.
“죽는 것이 목적인 모양이군.”
- 장렬한 최후, 뭐 그런 것인 듯합니다.
그게 눈에 보였다.
승산은 전혀 없는데, 굳이 마지막 포탈 광장 앞을 지키는 모습이라니.
“일단 재홍이 팀을 좀 불러야겠다.”
문득 도현이 와이번을 아래로 내리며 손짓을 해서 김재홍을 불었다.
그리고 달려온 재홍에게 뭔가를 지시했다.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쓰게 된다면 지옥을 보여주마.”
재홍이 자신의 팀원들을 이끌고 모습을 감춘 후, 도현은 타이탄과 싸움을 시작하는 알케이네스 병사들을 보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