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차원 의회의 수호자 엑슬리드
81. 차원 의회의 수호자 엑슬리드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불법적인 차원 이동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걸 막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고?”
“그렇다. 그것이 우리 수호자의 일들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그럼 이제 일이 끝났으니 돌아가면 되겠군.”
앞서 나타난 악어 인간이나, 눈앞에 있는 수호자나, 도현의 입장에서는 차원을 넘어온 이방인일 뿐이다.
엑슬리드가 좋은 마음으로 지구에 왔다고 했지만, 그것을 온전히 믿어주기도 어렵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왔던 곳으로 돌려보내려는 것이지만, 고작 이런 말 몇 마디로 엑슬리드가 돌아갈 것 같지는 않았다.
만약 다른 용건이 없었다면 도현이 이곳에 올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워워, 뭘 이렇게 급하게 그래? 손님 대접이 영 시원찮네.”
역시나 이제 돌아가면 되겠다는 도현의 말에 엑슬리드가 손바닥을 내저었다.
“아직 남은 일이 있나? 우리 차원의 맛집이라도 소개를 해 줄까?”
“맛집?”
“관광을 할 거라면 맛있는 음식점을 찾는 것이 먼저지.”
“관광이라······. 그러니까 적당히 구경이나 하다가 돌아가란 말이군?”
“달리 할 일은 없을 텐데? 불법 차원 이동자는 이미 도망가고 없는 상황이니까.”
“그건 또 그런데 말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곳에 흥미가 생겼거든.”
“흥미라고?”
도현은 엑슬리드를 사나운 눈빛으로 노려봤다.
“아아, 그렇다고 나쁜 의미는 아니야.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영입이라고 할까? 아니면 초대라고 할까. 그런 걸 해 볼 생각을 한 거지.”
“영입? 그 차원 의횐가 하는 곳에?”
“맞아. 내가 조금 늦게 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많이 늦은 것도 아니었거든.”
“그 불법으로 차원 이동을 했다는 그놈 말인가?”
“그래, 최대한 빨리 온다고 왔는데, 와서 보니까 이미 문제가 해결된 상태더란 말이지.”
“그래서?”
“아직 정식으로 차원 교류도 이루어지지 않은 곳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궁금했지.”
“아까도 말했지만 마스터 상급이라고 하지만 고작 한 명뿐이었다. 그런 놈을 물리친 것이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당연하지. 네가 쉽게 말하는 그 마스터 등급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차원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은 곳이라면 혼자서 차원을 점령할 수 있을 정도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우리 지구에 마력이나 오러가 없었다고 해도, 그 놈 하나를 감당하지 못했을 것 같으냐?”
지구의 과학과 현대 화기의 위력은 강력하다.
마스터급이라 하더라도 한둘 정도는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도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아니지. 우선 마스터 급의 실력자는 어리석지 않아. 정면 대결을 고집할 이유가 없지. 그 정도 실력자가 차원의 지도자들을 하나씩 제압해 나간다면 그것을 어떻게 막을 거지?”
“음?”
“단체나 조직은 대체로 그 우두머리를 제압하면 암중으로 지배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 식으로만 하더라도 차원 하나를 점령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그런 식이라고 해도, 쉽게 당하진 않았을 거다.”
“뭐, 우리가 떠들어봐야 추측일 뿐이니,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 답을 내긴 어렵지.”
“그건 그렇군.”
도현도 엑슬리드의 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정말 마스터 수준의 실력자가 암약하며 지구의 지도층을 세뇌하거나 회유한다면 엑슬리드의 말처럼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인류를 배신하는 놈들이 나올 수도 있고.
‘아니, 그런 놈들이야 항상 있어 왔지.’
씁쓸하지만 역사의 기록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무튼 차원 교류가 시작되기 전부터 대단한 능력을 보인 이곳 차원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겼고, 능력자가 있다면 영입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지.”
“거기에 우리 지구에 대한 정보도 얻고?”
“그렇지. 여길 지구라 부르는 모양인데, 솔직히 궁금한 게 많지. 그 불법 차원 이동자를 어떻게 쫓아낸 건지부터 시작해서 이곳 원주민의 구성과 능력 같은 것도.”
“원주민의 구성?”
“그래, 저기 있는 저 들은 너와는 전혀 다른 종족이잖아.”
도현은 엑슬리드가 턱짓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그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대기하고 있는 하이마 드리아드를 말하는 것이었다.
엑스리드는 하이마 드리아드도 지구 차원에 속한 종족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지만, 솔직히 기분 좋게 그런 것들을 알려주고 싶지는 않은데? 무작정 너를 믿기에는 세상이 워낙 각박해야 말이지.”
“하하하하. 이거 참 곤란하네.”
도현의 말에 엑슬리드는 과장된 표정으로 크게 웃더니 투구를 쓴 상태로 뒷머리를 긁었다.
우스운 모습이지만 도현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 일단 나쁜 뜻은 없다고 다시 한번 말하지. 정말이다. 그리고 영입 의사가 있다는 말도 거짓이 아니다. 보아하니 네가 이 지구라는 차원의 실력자들 중에 하나인 모양인데, 이걸 받아라.”
엑슬리드는 허공에 손바닥을 펼쳐서 뭔가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손바닥보다 작은 금속 판이었다.
“뭐지?”
천천히 허공을 날아서 손만 뻗으면 닿을 곳까지 다가와 둥둥 떠 있는 금속판과 엑슬리드를 번갈아 보며 도현이 물었다.
“차원 의회의 초대장이다.”
“초대장?”
“이곳 지구가 정식으로 차원 교류를 시작하면 그 초대장을 이용해서 차원 회랑의 중심에 올 수 있을 거다.”
“차원 회랑의 중심?”
“모든 차원 회랑이 교차하는 곳. 그래서 모든 차원과 연결된 곳. 그곳이 차원 회랑의 중심이다.”
“그곳에 의회나 용병단 따위가 있다는 건가?”
“그렇다. 어디든 차원 회랑에서 그 초대장을 사용하면 중심으로 올 수 있다.”
“차원 전장에 있는 차원 회랑에서도 가능한가?”
“차원 전장의 차원 회랑? 음, 가능하긴 하지만, 권하진 않는다.”
“어째서?”
“중심으로 올 수는 있는데 다시 돌아갈 수가 없을 테니까.”
“음?”
“차원 회랑의 중심, 모든 차원 회랑이 연결된 곳이지만, 허락되지 않은 통로는 이용이 금지되어 있다. 당연히 이곳 차원과 통하는 차원 회랑도 이용에 제약이 있지.”
“그래서 돌아오고 싶어도 올 수 없다는 거군?”
“그렇다.”
“알았다. 그런데 이 초대장을 쓰면 무조건 차원 의회에 들어가야 한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겠지?”
“물론······. 아니다. 다만 차원 의회와 먼저 협상을 하는 조건이다.”
“협상?”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용병단이나 학술원이나 사냥꾼 길드 같은 곳이 있다. 그들 역시 뉴페이스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으니까.”
“그렇군.”
“하지만 용병단······. 아니다. 이건 지금 할 이야기가 아니었군.”
엑슬리드는 용병단에 대해서 뭐라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도현은 엑슬리드의 분위기만으로도 그가 용병단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뭔가 제약이 있는 모양이군. 하지만 알겠다. 용병단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생각하도록 하지. 그런데 그 불법 차원 이동자라는 악어 인간, 그 놈이 혹시 용병단에 속해 있나?”
“맞다! 그렇게 제멋대로 구는 놈들 절반 이상은 용병단 놈들이지!”
도현의 질문이 가려운 곳을 긁어준 듯, 엑슬리드가 밝아진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것만으로도 엑슬리드가 용병단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좋아. 갈 수 있는 여유가 되면 반드시 한 번 가겠다.”
“그야 당연하지. 이런 기회가 흔한 것이 아니라고. 전 차원의 실력자들 중에서 진취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은 모두 모였다고 할 수 있는 곳이니까!”
도현의 약속에 엑슬리드는 확고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 때, 도현이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며 주의를 끌었다.
“응? 또 무슨 일이지?”
엑슬리드는 도현의 표정에 살짝 긴장한 눈빛으로 물었다.
“오늘 같은 일? 그러니까 비정상적인 차원 이동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은 없나?”
그게 중요한 문제였다.
그리고 그 소속이 용병단이라면 의뢰를 받고 행동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건 좀 곤란한 질문이군.”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군.”
엑슬리드는 다시는 오늘과 같은 일이 없을 거라고 확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도현도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음을 짐작했다.
“그렇지. 솔직히 수많은 차원 회랑을 모두 감시할 수는 없거든. 그나마 이곳 지구 차원으로 누군가 건너간 것도 운이 좋아서 발견한 거니까.”
“그 말은 우리 지구로 통하는 차원 회랑을 감시한다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 줄 수 있다는 말인 것 같은데?”
“하하하. 그야 물론이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의뢰를 한다면 당연히 가능하다.”
도현의 말에 엑슬리드는 밝은 표정으로 의뢰란 말을 다시 꺼냈다.
“그 의뢰, 분명 대가가 필요한 거겠지?”
도현은 차원 의회나 수호자가 흙을 파먹고 살 것이 아니면 분명 보수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하지만 이곳 차원에서 뭔가를 내어 놓을 필요는 없어.”
“뭐라고? 대가가 필요 없다고?”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우리 의회에서 받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란 말이지.”
“그럼?”
“차원 의회의 동맹.”
“······.”
엑슬리드의 말에 도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엑슬리드를 보며 물었다.
“차원들의 관계도 무척 복잡한 모양이군. 거기에 세력 싸움도 있는 모양이고.”
“그거야 그렇지.”
“우리 지구가 차원 의회의 동맹이 되면 그에 따른 의무도 생기겠지?”
“아무래도 단체에 속하게 되는 거니까. 적의 공격이나 도발에 공동으로 대응한다거나 하는 내용이 있지.”
“무슨 말인지 알겠군.”
“하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건 아니야. 많은 차원들이 그런 식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고. 도리어 외톨이로 있으면 공격을 받을 확률이 높아지는 거야.”
“차원 회랑이 그렇게 쉽게 열리는 것이 아닐 텐데? 그리고 소수의 도발이나 공격이라면 우리 지구도 충분히 감당할 능력이 있어.”
“으음. 뭐, 아직 이 바닥을 잘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 같으니까 이해해 줄게.”
엑슬리드는 당해보지 않아서 그런 소리를 한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쨌건 차원 의회의 동맹이 되지 않으면 도움을 받기는 어렵다는 거군?”
“동맹만 된다면 공식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지. 하지만 지금은 그것도 곤란해.”
“뭐? 왜? 아, 우리가 아직 정식으로 차원 교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맞아. 그래서 비공식적으로 도울 수밖에 없지.”
“당연히 정식 교류를 시작하면 차원 의회의 동맹이 된다는 약속을 해야겠지?”
“그야 당연한지.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엑슬리드가 재촉하듯 물었다.
이에 도현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그런 큰 일을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야. 다수의 협의가 필요한 일이지.”
“응? 네가 결정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그래.”
“그거 곤란하네. 나는 이제 돌아가야 하는데. 체류 시간을 한계까지 쓴 거 같거든.”
“그래?”
“그나마 이쪽 차원에서 아무 활동도 하지 않아서 다행이긴 한데, 너에게 준 정보들 때문에 체류 시한이 많이 줄었다.”
“그런 것도 있는 모양이지? 그런데 그걸 어기면 무슨 문제라도 있나?”
“벌점이 쌓이면 차원 회랑의 중심에서 내쫓길 수도 있지.”
“음? 그런 것도 있다고? 그런데 어떻게 용병단 놈이 우리 지구를 공격하고 무차별 학살을 저지를 수가 있지?”
“의뢰를 받고, 그 페널티를 의뢰자 쪽에서 책임을 진 모양이지.”
“알케이네스!”
도현은 씹어 삼키듯이 알케이네스의 이름을 읊었다.
“어쨌건 동맹 가입을 결정할 수 없다면 여기서 더 이야기를 해 봐야 의미가 없겠네. 나는 이만 가 봐야겠다.”
도현의 일그러진 표정에도 불구하고 엑슬리드는 구매력 없는 손님을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며 허공에 손을 뻗어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도현이 받은 초대장과 비슷한 금속판이었는데, 엑슬리드는 그것을 손에 쥐고 말했다.
“뭐, 당장 어렵다면 어쩔 수 없지만, 언제든 우리 차원 의회의 동맹이 되는 길은 열려 있어. 내가 준 초대장 잘 간직했다가 정식 교류가 시작되면 찾아 오라고.”
“자, 잠깐!”
“아, 시간이 없어서 말이지.”
“용병단이 다시 불법적으로 차원 이동을······.”
“내가 개인적으로 이곳으로 오는 차원 회랑을 좀 지켜보긴 하겠지만, 용병단 놈들을 막긴 어려울 거야. 그래도 불법적인 차원 이동이 생기면 나도 도우러 오려고 노력은 해 볼게. 그럼······.”
“아니······.”
스스스홧!
도현이 다시 말을 걸어 보려 했지만 엑슬리드는 이전 악어 인간이 그랬던 것처럼 섬광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무슨 생존기냐? 순식간에 차원을 넘어서 사라져?”
도현은 사라진 엑슬리드 보다는 그들이 쓴 차원 이동에 더 관심이 갔다.
그런 방법만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을 듯했다.
위험하다는 판단이 서면 곧바로 차원을 벗어나면 그만이니.
- 로드, 분명 차원 이동을 막거나 방해할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우선 그것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에포르의 말이 도현의 정신을 일깨웠다.
‘그렇겠지?’
- 그렇습니다. 그 방법을 찾아야 마음대로 지구 차원으로 넘어와 분탕질을 치지 못할 것입니다.
‘하이마 드리아드와 고브니 일족에게 물어보자.’
- 네, 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