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이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76. 이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구 전체가 얼어붙었다>
가디언, 캐슬 헌터의 귀환.
여론 매체들 일제히 입을 닫았다.
각국의 정부 대변인 침묵.
<의문사, 하지만 모두 알고 있다>
일본, 중국, 러시아, 인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등.
순차적으로 퍼져가는 연쇄 의문사.
이에 대해서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캐슬의 귀환과 함께 시작된 흑영의 활동.
도현은 복귀 즉시 국정원과 여원 정보팀으로부터 정보를 넘겨 받았다.
흑영을 이용할 수 있는 그들은 도현이 원하는 정보를 꼼꼼하게 정리해 주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은밀한 복수.
드러나지 않게 핵심 인물들을 암살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지구 전체가 꽁꽁 얼어붙은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러자, 일부에서 도현의 행동에 대한 반발이 생겨나기도 했다.
<캐슬은 무자비한 살육을 멈춰야 할 것>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서 정책의 결정 방향은 달라질 수 있는 것.
차원 전장에서 작전 중에 고립된 캐슬을 구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결정은 다분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그 결정에 사인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책임은 그 개인에게 물을 수는 없다.
그의 결정은 곧 국가나 정당, 국민 여론 등을 기반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살육은, 그러한 대의를 무시한 행위다.
개인의 책임이 아니니, 개인에게 복수를 하는 것은 정당치 못하다는 발언.
도현은 그 칼럼을 읽은 직후 성명을 내었다.
<가디언, 그렇다면 개인이 아닌 국가나 단체 국민에게 책임을 묻겠다>
캐슬을 구하기 위한 일체의 행위를 금지한 것이 단체이거나, 국가이거나, 국가의 국민 전체 여론이라면, 우리 가디언은 그 단체, 국가, 국민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도현이 발표한 내용은 이와 같았다.
그러자 곧바로 도현의 행위를 비난하는 말들이 사라졌다.
거기에 한 발 느리게 유성 그룹의 실력 행사가 벌어졌다.
유성 그룹은 도현의 죽음에 적극적으로 나선 나라에 특정 물자의 수출을 중단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물자란 곧 차원 전쟁의 핵심 자원들이었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는 차원의 벽이 허물어지곤 한다.
그리고 그렇게 허물어진 차원의 벽에서는 온갖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는 총화기의 탄두를 특별한 합금으로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격과 방어의 여러 상황에서 마력이 포함된 아이템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런 전략 물자의 대부분이 유성과 그 협력 기업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뉴어스의 여러 도시들 중에서 크라운 길드의 길드 시티가 가장 발전했다.
당연히 그 도시에서 나오는 지식과 기술, 레시피 등은 다른 도시들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수준이 높다.
유성 그룹은 바로 그러한 크라운 길드 시티를 뒷배로 두고 있었다.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구나.”
최성수는 수출 제한을 발표한 것이 마음에 걸리는지 안색이 어두웠다.
“아버지, 자식을 죽이려고 한 놈들입니다. 그런데 그걸 봐 주고 싶으세요?”
“아니지. 당연히 갈아마셔도 시원찮지. 하지만 쥐를 몰아도 도망갈 구석은 남기고 몰아야 하지 않겠냐? 이러다가 한꺼번에 반발이라도 하면······.”
“그럼, 국정원과 베타 팀이 바빠지겠죠.”
“끄응.”
국정원과 베타 팀이 바빠진다는 말은 그들이 운용하는 흑영들이 미쳐 날뛸 거라는 소리다.
그리고 흑영들이 날뛰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갈 것이다.
가디언의 뜻에 반대하는 자, 그릇된 의도로 유성 그룹이나 대한민국을 노리는 자.
도현은 그런 자들을 가차 없이 처리할 생각이었다.
“너무 과격한 것이 아닌가 싶구나. 힘과 공포로 억누른 지배는 오래 갈 수가 없다지 않느냐.”
“아버지, 그 동안 저도 나름 많이 참았습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한 몇 년 동안 차원 전쟁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싶습니다. 제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직접 느껴보라고 말입니다.”
“끄응.”
“아버지도 실감을 못하시겠지만, 저와 크라운이 빠지면 알케이네스는 빠르게 전력을 회복할 겁니다. 5구역, 6구역, 7구역에서 거점 점령의 우위를 빼앗기면, 차원 회랑의 금제도 역전됩니다. 그럼 우리는 놈들의 차원 전장에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곧 중립 도시도 빼앗길 겁니다.”
“아니, 그게 그렇게······.”
“제가 해 놓은 것이 있으니 어느 정도 시간은 버티겠지만, 우리 크라운 길드가 없다면 솔직히 헌터들의 수준은 알케이네스 병사들과 낫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정말 그러냐?”
“네. 게다가 지금까지 저와 크라운 덕분에 알케이네스 놈들과 제대로 된 싸움을 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차원 전쟁이 얼마나 끔찍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으음.”
“지금 차원 전장은 저와 크라운이 나서면 어떻게든 정리하고 승리로 끝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승리하면 차원 전장을 닫을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면······.”
차원 전장을 닫을 수 있다는 도현의 말에 최성수의 얼굴이 확 펴졌다.
“하지만 차원 전장은 닫아도 알케이네스와 연결된 통로는 남습니다.”
“응?”
“물론 그 통로에 대한 소유권은 지구 인류에게 있겠지만, 어쨌거나 통로를 없애진 못하고, 또 그런 통로가 있으면 알케이네스에서 지구로 넘어올 수단이 생깁니다.”
“통로를 우리가 가진다며?”
“하이마 드리아드 일족과 고브니 일족에 따르면 차원과 차원을 연결하는 통로를 닫아도 결국 우회로를 팔 수 있다고 합니다. 불안정하긴 하지만, 수 십에서 수 백까지 넘어올 수 있는 1회성 통로는 가능하다는 거죠.”
“그럼 그걸 통해서 알케이네스 놈들이 지구를 공격할 수 있다는 거로구나?”
“그것 뿐만이 아니죠. 다른 차원과 연결된 통로가 생기면 지구의 차원 좌표가 설정되는 겁니다.”
“차원 좌표?”
“그걸 찍고 통로를 열면 지구와 연결된다는 거지요. 물론 제대로 된 차원 통로는 양쪽 차원의 협상을 통해서 만들어야 하는 거지만.”
“좌표만 알아도 아까 말했던 1회성 통로 정도는 얼마든 만들 수 있다는 거냐?”
“바로 그겁니다. 지금 알케이네스와의 차원 전장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 이유가 그거죠. 지구의 차원 좌표를 최대한 늦게 알리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지구 인류는 스스로를 지킬 힘을 키워야 하는 거고요.”
“그냥 알케이네스 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구나?”
“네. 저도 요즈음 조금씩 알게 되는 내용들이긴 하지만, 어쨌건 지구 인류는 차원 교류에 대비해야 합니다. 자칫하다간 알케이네스가 아니라 어떤 차원이든 우리 지구를 집어삼키려고 들 수도 있습니다.”
“허어.”
최성수는 아들의 말에 깊은 탄식을 쏟아냈다.
참으로 격변의 세월인 듯 싶었다.
다른 차원의 침략을 받았다는 사실만도 믿기 어려운데, 이제는 여러 개의 다른 차원과 교류를 준비해야 한다니.
“그 교류란 것이 우호적인 경우보다는 힘의 논리로 찍어 누르는 경우가 더 많겠구나.”
최성수는 미래가 훤히 보이는 듯 했다.
대부분의 차원들은 이미 여러 차원과 교류하고 있을 것이다.
그에 반해 지구는 차원 교류의 신출내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것은 분명했다.
“그래도 우리에겐 하이마 드리아드 차원이 우방으로 있습니다.”
그런 최성수에게 도현이 힘이 될 이야기를 해 주었다.
“하이마 차원?”
“그들은 우리 인류가 먼저 배신하지 않는 이상, 언제까지나 우리의 우방일 것입니다.”
하이마 드리아드가 알케이네스로부터 독립할 수 있게 도와 준 것이 도현이었다.
그래서 도현은 그들의 종족 전체의 은인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가장 큰 세계수가 지구의 제주도에 있지 않은가.
그러니 그들이 지구가 위기에 닥치면 자동으로 개입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우호적인 차원이 하나 라도 있으니 다행이구나. 그럼 고브니 일족이라는 그들은······.”
“아직 고브니 차원은 알케이네스의 식민 차원입니다. 하지만 지금 지구에 있는 고브니 일족은 고브니 차원의 모든 기술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입니다. 그들과 기술 교류를 통해서 우리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쥘 수 있을 겁니다.”
“강력한 무기······.”
“타이탄과 기간트. 그게 의외로 지구의 과학 문명과 궁합이 잘 맞지 않습니까?”
“하긴, 거제도에 내려간 연구원들이 매일같이 환호성을 올리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긴 하더라.”
“고브니 일족도 마찬가집니다. 지구의 과학과 기계, 전자 지식이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 곧 고브니 차원과 지구 차원의 콜라보가 대박을 터트릴 겁니다.”
바쁜 와중에 거제도까지 가서 할켄과 룸켄, 모르켄의 세 장로를 만나서 확인한 내용이었다.
그 사이에 고브니 일족의 타이탄은 거의 완성이 되었고, 오래지 않아서 양산도 가능할 것이라 했다.
물론 거기에는 도현의 흙인형에서 받은 오러 로드의 영감도 녹아 들어갔고, 지구식의 전자와 기계 지식도 들어갔다.
그 결과물이 나온다면, 지구의 차원 전쟁 전력도 크게 상승할 것이다.
“거제도, 고브니 종족의 타이탄이라······.”
최성수도 타이탄이란 변수를 고려해서 지금의 상황을 따져 보기 시작했다.
“그것도 이미 알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어쩌면 저를 죽게 내버려 둬야 한다고 결정한 이면에 하이마 드리아드 일족과 고브니 일족에 대한 고려가 있었을 겁니다.”
“음? 그건 무슨 소리냐?”
“제가 죽어도 하이마 드리아드 일족이 등을 돌리진 못할 거라는 생각도 있었을 거고, 고브니 종족의 타이탄이 완성되면 인류의 전력도 강화될 테니, 제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한 거겠죠.”
“하지만 네가 없다면 하이마 드리아드나 고브니 종족의 협조를 받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을 텐데······.”
“제가 독주하는 꼴이 보기 싫었겠지요. 거기에 우리 유성이나 대한민국이 앞서가는 것도 싫었을 거고요.”
“끄응.”
“하지만 그런 생각 때문에 지금부터 그들은 가볍지 않은 대가를 받게 될 겁니다. 겉으로 보기엔 이전과 같더라도, 속을 들여다보면 평등하지 못한 관계가 될 테니까요.”
다시는 엉뚱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도현은 그렇게 다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도현의 의지를 전 세계에 퍼진 흑영들이 대변하고 있었다.
의문스런 죽음이란 이름.
그리고 징벌의 탑으로.
<징벌의 탑, 뇌전의 창을 뿌리다>
전 세계, 여덟 개의 다국적 기업 본사 건물과, 열일곱 곳의 연구단지에 징벌의 탑이 떠올랐다.
와이번을 타고 나타난 캐슬은 징벌의 탑과 함께 짧은 대피 시간을 준 후, 곧바로 뇌전의 창을 내리 꽂았다.
엄청난 뇌전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녹아내린 건물과 타버린 정보 저장 장치만 남았다.
특이한 것은 징벌의 탑에서 떨어진 뇌전의 창은 외부 전류를 차단하는 안전 구역이나 장치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번개에 직격당해도 내용물을 지킬 수 있다는 여러 안전시설들까지 뇌전의 창에 녹아 내려, 공격을 받은 기업과 연구소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그들 기업군과 연구소들은 모두 반 가디언, 캐슬 척살에 앞장서던 이들이었다.
와이번을 타고 전 세계를 누비며 징벌을 탑을 불러 낸, 캐슬.
이제 과거의 캐슬은 없다.
직접적이고 파괴적인 캐슬, 과연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누구인가.
* * *
<특보!! 로익 귀환!!>
알케이네스 4구역의 도시로 내몰렸던 로익, 소수의 길드원들과 함께 뉴어스 4구역으로 귀환.
<로익과 귀환 헌터들 무릎 꿇다>
복귀에 성공한 로익과 귀환 헌터들, 크라운 길드 시티의 중앙 광장에서 무릎을 꿇은 이유는?
<알케이네스, 전투 후, 인간 헌터를 구워 먹어>
도시 점령에 내몰렸던 로익과 그의 길드원들은 지옥을 경험했다.
그들은 알케이네스의 도시를 공략하던 중, 죽은 동료의 사체를 알케이네스 병사들이 구워 먹는 것을 목격했다고.
알케이네스 종족은 거리낌 없이 별식을 즐기듯 성벽 위에서 인간을 구워 먹으며 축복 길드원들을 조롱했다고 한다.
<로익! 차원 전쟁의 실체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로익과 귀환 헌터들이 크라운 길드 시티까지 와서 무릎을 꿇은 이유는, 차원 전쟁의 일면을 제대로 알게 된 후, 자신들의 잘못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로익, 백의 종군 하겠다>
로익, 앞으로 지구에 오지 않을 것.
골드 헌터지만 뉴어스와 알케이네스 차원 전장에 뼈를 묻을 각오.
차원 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그레이 헌터들과 동고동락하며 지낼 것.
<알케이네스 종족은 절대 인류와 공존할 수 없는 종족!>
귀환 헌터들 트라우마 호소.
알케이네스 종족에 대한 극단적인 적대감, 분노, 우울증 등등.
정신적인 충격이 큰 것으로 알려져.
<또 다시 귀환 헌터 등장!>
······.
<세 번째 귀환 헌터······>
······.
<네 번째 귀환 헌터······>
······.
로익 이후로 몇몇 길드가 알케이네스 부대의 도시를 점령하고, 심장석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들의 입을 통해 알케이네스 종족의 식인에 대한 증언이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즈음, 도현은 거제도에서 고브니의 세 장로를 만나고 있었다.
“우하하하하. 멋지지 않은가? 능히 마스터와도 견줄 수 있는 상급 타이탄이다.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