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음, 일본이? 그럼 뭐 일단 물어나 볼까?
69. 음, 일본이? 그럼 뭐 일단 물어나 볼까?
“흙으로 만든 인형인가?”
“그런 것 치고는 오러 로드가 몸 안에 있는 것 같은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있는 것 같군. 타이탄과 비슷해.”
세 명의 고브니 일족은 도현이 소환한 산성병사를 보며 눈빛을 반짝거렸다.
그리고 빠르게 산성병사를 파악해내기 시작했다.
도현은 그들이 자유롭게 산성병사를 살필 수 있도록 잠시 지켜보기만 했다.
산성병사에 대해서 알아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들의 파악 능력이 뛰어나다면 숨기려 한다고 숨겨질 것도 아니었다.
“관찰은 그쯤하면 된 것 같은데? 너희가 내 소환 병사를 보기 위해 여기에 나온 것은 아니지 않나?”
하지만 시간을 길게 줄 수는 없었다.
가만히 두면 산성병사에 대한 관찰을 언제 끝낼지 모를 정도로 고브니 종족이 깊이 빠져든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차자자장!
도현의 의지를 받은 대장군이 검을 뽑아 고브니 일족을 향해 겨누었다.
대장군은 산성의 점유율이 150%를 넘기면서 소환이 가능해진 부대의 사령관이었다.
그 위치는 다섯 천인장을 지휘하는 지휘관의 위치였다.
그런 대장군이 검을 뽑자 그 뒤에 서 있던 다섯 천인장 역시 같은 모습으로 검을 뽑아 고브니 장로들을 겨누었다.
“으음.”
“이런, 실례를 했군.”
“허락 없이 남의 지식을 탐하려 하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다행히 깊이 엿본 것은 아니니, 크게 문제될 것은 없겠지.”
“끄응, 그것 참.”
검이 뽑히고 날카로운 오러의 기운이 엄습하자 고브니의 세 장로들은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리더니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고브니 일족은 지식의 소유와 교환에 무척 완고한 종족이다.
그들은 제작에 대한 지식은 그것이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주인의 허락 없이 취하는 일이 없다.
만약 실수나 우연으로라도 그런 일을 벌였다면 반드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그런데 정당한 거래라도 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허락 없이 어떤 깨우침을 얻었다면?
고브니의 관습으로는 스스로 다섯 배의 가치를 산정하여 보상하게 되어 있었다.
지금 한 장로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지? 할켄 장로?”
“설마, 저 흙인형에서 뭔가 얻은 것이 있단 말인가?”
“어허, 어찌 그런 일이!”
안절부절,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고브니 장로를 보고 다른 두 장로는 곧바로 상황을 짐작했다.
할켄이라 불린 장로는 셋 중에 중앙에 서 있는 이였다.
그는 동족의 힐책에 눈을 질끈 감고 한동안 침묵에 빠졌다.
그러다가 잠시 후 도현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키 작은 헬켄은 도현을 올려보며 맑은 눈빛으로 말했다.
“뜻하지 않은 일이지만 나는 원주민, 너의 흙인형에서 타이탄을 강화할 방책을 떠올릴 수 있었다.”
“뭐라? 할켄 장로! 그게 정말인가?”
“타이탄을 강화한다고?”
할켄 장로의 말에 다른 두 장로가 화들짝 놀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그런 둘을 무시하고 할켄 장로는 더 심각한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그 뿐만이 아니지. 타이탄을 강화할 수 있다면, 기간트 역시 강화할 수 있겠지. 만들 수만 있다면.”
“기간트를 강화할 수 있다고? 아니 타이탄을 강화할 수 있다면 당연한 것이긴 하겠지. 타이탄은 몰라도 기간트는 만들기 어렵겠지만.”
“왜, 못 만들어? 이곳에는 우리를 감시할 알케이네스 놈들도 없는데! 감시만 없으면 어떻게든 만들어 낼 수 있어!”
할켄의 오른쪽에 있던 장로가 비관적인 두 장로의 말에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그는 정말 알케이네스만 없다면, 기간트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듯 했다.
“타이탄은 몰라도 기간트는 어렵지. 우리는 기간트에 대한 핵심 기술을 많이 잃어 버렸으니까.”
“끄응.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 모르켄, 그대도 인정할 건 인정해. 당장은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기간트를 만들 수 없어.”
“흥! 두고 봐라. 할켄, 룸켄, 너희는 못해도 나는 하고야 말 테니까.”
고브니 장로들은 갑자기 말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숨길 생각도 없는지 서로의 이름을 거침없이 밝혔다.
도현은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그런 중에 나온, 알케이네스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는 말이 도현의 관심을 끌었다.
“잠깐! 알케이네스와 적대한다고?”
도현이 손을 뻗어 고브니 장로들의 언쟁을 중단시키며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세 장로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할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우리는 차원을 넘으면서 이미 각오를 하고 왔다.”
“우리가 알케이네스에 저항하게 되면, 고향에 있는 우리 일족은 모두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모두 그것을 감수하기로, 남아 있는 가족들과 합의에 이르렀다. 알케이네스 놈들이 금지했던 상급의 타이탄과 기간트. 우리는 그것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할켄이 말을 시작하자 룸켄과 모르켄 역시 동조하며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타이탄과 기간트를 만들기 위해서 이곳에 기지를 짓고 있었던 건가?”
“그렇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곳 차원의 원주민과 싸울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면 진작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들과 이야기를 했으면 좋지 않나?”
도현이 고브니 일족이 굳이 숨어 있을 이유가 없었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아니다. 우리는 이미 이곳의 원주민들과 협상을 끝마쳤다. 이곳의 원주민들도 우리의 뜻을 받아 주었다.”
예상치 못한 말이 룸켄 장로의 입에서 나왔다.
“뭐라고? 이곳의 원주민? 그게 무슨 소리지? 설마 나와 만나기 전에 누군가와 협상을 하기라도 했단 말이야?”
도현은 불쑥 튀어나온 원주민이란 말에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보다 먼저 이들과 교류를 하고 협상까지 한 이들이 있다니 믿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 우리는 이곳의 원주민을 만났다.”
할켄은 믿기 힘든 그 일이 사실이라는 답을 주었다.
“어떻게? 말도 통하지 않았을 텐데?”
도현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조차도 에포르가 없다면 하이마 드리아드 일족이나, 이들 고브니 일족과 대화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종족인 이들과 대화를 하고 협상을 진행한 이들이 있다고?
“차원 전장을 오가는 원주민 전사 중에 정신 교감 능력을 지닌 전사가 있었다.”
“그 전사를 통해서 서로의 뜻을 교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화 끝에 원주민들과 합당한 거래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안심하고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정신 교감 능력이라니 놀랍다.
그런 능력이 있다면 대화가 통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고브니 일족과 협상을 진행하고, 그 후에도 사실을 숨기다니.
도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곳을 감시하던 일본 정부의 관료들을 떠올리면 고브니 일족과 협상을 했다는 주체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상을 주기로 했나?”
도현이 물었다.
굳이 일본이 아니어도 협상에서 이득을 챙기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쨌건 협상이 이루어졌다면 당연히 서로 주고받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기술을 원주민들과 공유하기로 했다.”
“정확하게는 타이탄 제작에 대한 기술의 공유다.”
“물론 기간트에 대해서는 절대 알려줄 수 없기에 타이탄까지만 기술을 전수하기로 했던 것이다.”
세 장로들이 번갈아가며 협상의 내용을 이야기했다.
내용 대로라면 일본 입장에서 보면 굉장한 기회를 얻은 셈이다.
“타이탄 제작 기술을 가르쳐 준다고? 그게 이곳에 머무는 대가라고?”
“그렇다.”
“그 외에, 우리가 필요한 재료를 원주민 쪽에서 제공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물론 재료 제공에는 또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겠지만, 우리로선 싸움을 피하고 연구와 제작에 집중할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일이라 판단했다.”
“그것 참. 쯧쯔.”
도현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짧게 혀를 찼다.
윌로우트에게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타이탄은 고브니 일족이 알케이네스 제국과 싸울 때에 전력의 한 축을 담당했던 전투기갑이다.
그런데 그 제작 기술을 일본에게 전수하기로 했다니.
“이건 좀 잘못된 것 같군.”
아쉬운 마음에 도현은 딴지를 걸어보기로 했다.
“잘못이라니?”
“뭐가 잘못되었다는 거지?”
“원주민들과의 협상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건가?”
세 장로는 도현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맞아. 어떤 약속을 했는지 모르지만 너희와 협상한 이들은 이곳 차원의 수많은 나라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차원 침략을 일으킨 너희 일족과 홀로 거래를 할 대표가 될 수 없지.”
도현은 일본이 지구 인류를 대표해서 고브니와 협상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자격을 가진 단체나 사람을 찾자면, 도현 자신보다 우위에 설 사람이 없고, 가디언보다 앞설 단체도 없다.
그것은 모든 국가나 기업, 국제단체 따위를 통틀어도 달라질 것이 없는 사실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그렇다면 너희들은 너희 일족이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단 말이냐?”
“고브니 일족은 어떤지 모르지만, 이곳 차원에서는 각각의 집단들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싸우는 일이 흔하다. 가까운 역사만 보더라도 너희가 협상한 나라는 내 나라와는 무척 사이가 좋지 않지. 우리 나라, 우리 민족이 당한 게 좀 많거든.”
“그 말은 원주민, 너는 우리의 협상 내용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구나. 우리를 공격할 수도 있겠어.”
할켄은 곧바로 도현의 말뜻을 이해했다.
“일단 그럴 수 있지. 그런데 만약 그런 경우 너희와 협상한 나라는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너희가 공격을 받게 되면 약속은 깨지는 것이 아닌가?”
“끄응. 확실히 그렇게 되겠지. 협상을 벌인 원주민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다고 반론을 펼친다면, 우리가 내 놓은 대가는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해야겠지.”
“맞다. 그렇지 않다면 타이탄의 지식을 내어줄 이유가 없겠지.”
“너, 원주민. 너는 그래서 우리를 공격할 것인가? 우리가 이곳의 원주민과 했던 협상을 깨트리기 위해서?”
협상을 깨트릴 수 있는 어렵지 않은 방법이 찾아지자, 모르켄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도현을 보며 자신들을 공격할 것인지 물었다.
이에 할켄과 룸켄 역시 대답을 기다리며 도현을 바라보았다.
“그게 가장 간단한 방법이지만, 그렇다고 너희와 적대적인 관계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니 너희가 아닌 다른 쪽을 공략해야겠지.”
고브니 일족과 척을 질 수는 없다.
도현은 그들로부터 타이탄과 기간트에 대한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마침 유성이 금속 공업을 주로 하던 기업 집단이 아니었나.
어쩌면 고브니 일족의 기술은 유성 그룹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울러서 제대로 타이탄이나 기간트를 만들게 되면, 차원 전장을 벗어나서도 알케이네스 제국을 상대할 수단이 생긴다.
그런 기회를 일본에게 내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도 있겠지만, 그러기에 왜 감당하지 못할 약속으로 협상을 했냔 말이지.’
- 옳습니다 로드. 잘못은 그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 네, 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