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알케이네스 사령관 회의에 닥친 급보
60. 알케이네스 사령관 회의에 닥친 급보
넓은 회의장.
원탁을 가운데 두고 알케이네스 원정군의 사령관들이 모두 모였다.
그런데 원래는 열여섯 명이 있어야 할 자리에 두 명이 모자랐다.
“상황이 좋게 돌아간다고 해야 할까?”
뭔가 중요한 안건이 있는 듯, 서로 눈치를 보며 뒤에 있는 부관이나 옆자리의 사령관과 뭔가를 의논하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였다.
그런 중에 뿔이 유독 붉은 빛을 띠는 사령관이 옆자리의 사령관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금속성 광택의 뿔을 지닌 사령관이 대충 짐작이 된다는 듯이 그 말을 받았다.
“왜? 만프레 공작가가 칩거를 선택해서?”
“그렇잖아. 가장 강력한 세력인 만프레 공작가가 물러났어. 그러니 얼마나 좋아?”
붉은 기운의 뿔을 지닌 사령관이 옆 사령관의 대꾸에 흥이 났는지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자카모스의 실책이 결국 만프레 공작가를 위기에 빠트린 거지. 덕분에 만프레 공작가의 1공자인 하이트렌도 원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금속 광택 뿔을 지닌 사령관의 대꾸에 지금 이 자리에 두 명의 사령관이 없는 이유를 알수 있었다.
원래 만프레 공작가에서 1남과 2남, 두 명이 원정군 사령관의 자격을 얻어 차원 전쟁에 참가했었다.
그런데 2남인 자카모스 호카 만프레가 미개인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자그마치 공작가의 직계가 적에게 패하여 목숨을 잃었다.
이것은 공작가로선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만프레 공작은 이번 원정 자체를 포기하고 공작가를 일시적으로 폐쇄하는 결정을 내렸다.
귀족 사회에서 한동안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리란 예측이 나돌았다.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이고, 수치스러운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 명은 죽어버려서 회의에 나오지 못했고, 다른 한 명은 공작의 명령에 알케이네스로 귀환을 해야 했다.
그렇게 돌아간 1남의 이름이 하이트렌 호카 만프레였다.
“하이트렌은 속으로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어차피 우리보다 뒤쳐진 성과를 내고 있었던 상황에서 귀환을 하게 되었으니.”
간신히 선두권에 있기는 했지만 1위에 있었던 자카모스에 비해서, 하이트렌은 네다섯 번째를 오가던 상황이었다.
그러니 공작의 명으로 귀환하는 것이 어쩌면 불명예를 피할 좋은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공작가의 직계라면 1등을 하지 못하는 것이 곧 불명예였을 테니까.
땅땅땅!
그 때, 누군가 원탁을 뽑지 않은 단검으로 두드렸다.
그는 하얀 뿔이 귀를 감싸는 귀마개처럼 자란 사령관이었다.
“자자, 이제 결정을 하지. 어떻게 나눌 건가? 여기에 열네 명의 사령관이 있는데, 그렇다고 만프레의 병사들을 똑같이 나눠 가지는 것은 말도 안 되지 않나.”
그의 말에서 이번 회의의 목적이 드러났다.
이번 회의는 원정을 포기하고 지휘부만 본 차원으로 복귀한 후, 차원 전장에 남겨지게 된 만프레 공작가의 병사들.
지금 이 자리는 그 병사들을 어떻게 나눠 가질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한 회의였던 것이다.
“똑 같이 나누는 건 말도 안 되지. 그렇다면 지금까지 이곳 차원 전장에 들어와서 고생한 보람이 없잖아. 그러니까 딱 정확하게 부대의 거점 도시를 얼마나 성장시켰느냐에 따라서 분배를 하자.”
하얀 뿔 사령관의 말에 붉은 기운의 뿔을 지닌 사령관이 거점 도시의 성장에 따른 분배를 주장했다.
거점 도시는 뉴어스의 길드 타운과 같은 곳이었다.
“무슨,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만프레 공작가의 병사들도 모두 폐하의 신민들이다. 만프레 공작가가 그들에 대한 권리를 포기한 순간부터 모든 권리는 폐하에게로 다시 돌아간 상황. 당연히 폐하의 것을 분배하는 일은 공평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곧바로 강력한 반발을 맞이해야 했다.
지금껏 생각에 잠겨 말이 없던 사령관 하나가 색다른 주장을 펼친 것이다.
지금 차원 전장에 남아 있는 만프레 공작가의 병사들은 소속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다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그들은 누구의 것인가.
이에 대해서 황제를 들먹이며 그 병사들이 황제의 것이라 주장하는 것인데.
“끄응.”
“폐하의 신민이라면······.”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분명 그렇게 볼 수 있긴 하지. 이러면 논의를 다시 해야 하나?”
회색의 뿔을 가진 사령관의 주장은 그야말로 회심의 한 수가 되어, 다른 선두권의 사령관들을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일반 병사들은 우리와 달리 차원 전쟁의 승패를 가르지 못하면 본 차원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러니 그들 역시 부대에 배속되어 영광스런 식민지 개척에 나서는 것이 당연하다.”
붉은 기운의 뿔을 지닌 사령관이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서 말을 돌렸다.
하지만 그런 시도에 하얀 뿔의 사령관이 버럭하고 나섰다.
“그걸 누가 모르나? 문제는 폐하의 신민을 우리가 마음대로 분배해도 되느냐 하는 것이지.”
이에 자카모스가 죽은 덕분에 원정대에서 선두에 서게 된 금속 광택 뿔의 사령관이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상황이 이러니 나누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수순이지. 하지만 여기서 개인적인 욕망과 이기심으로 그들을 나눠 가지는 것은 곤란하다는 말이지. 우리 사령관들은 폐하 앞에서 모두 동등한 권리를 부여받았으니”
그리고 그의 말은 다른 사령관들의 동의를 얻어내기에 충분했다.
작은 사안이라도 황제와 연관되면 잡음 없이 일을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니 모두들 불만을 가지지 않고 만프레 공작가 소속이었던 병사들의 공평한 분배에 찬성하기 시작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사령관들이 폐하께 부여받은 권리가 동등하니, 폐하의 신민을 분배하는 것에도 차별을 둘 수는 없겠군. 모두 똑 같이 나누기로 하지.”
“그게 옳겠군. 폐하의 신민이니.”
“뭐, 그렇게 한다고 해도 지금 사령관들의 격차가 뒤바뀌는 것도 아닌데 크게 연연할 것도 없지.”
“그래도 병사들이 늘어나면 뭔가 일발 역전의 기회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지. 다들 힘 내 보라고. 크하하하하.”
회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병력의 균등 분배 쪽으로 기울었고,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는가 싶은 때였다.
콰광!
“사령관 각하! 급보입니다.”
“급보가 왔습니다.”
“차원 회랑에 미개인 놈들 쪽의 에너지가 급격하게 충전되고 있습니다.”
“미개한 놈들이 차원 회랑을 넘어오려는 징후를 파악했습니다.”
“이전과 달리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 듯 보입니다. 차원 회랑에 충전된 에너지의 양이 심상치 않습니다.”
“큰일입니다. 중립 도시가 공격받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고작해야 서너 걸음 차이를 두고 달려오는 전령들의 보고에 사령관들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중립 도시?!”
“대규모 공격이라고?! 감히?!”
“서둘러 차원 회랑으로 에너지를 쏟아 부어! 그래야 놈들이 받는 금제가 강력해진다!”
“모두, 아껴 뒀던 차원 에너지를 아낌없이 투자하도록! 숨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야!”
“서둘러야겠군. 나는 이만 도시로 돌아가 중립 도시에 파병을 해야겠어.”
“아, 그것도 급하군. 중립 도시에 남겨 놓은 병력이 별로 없는데.”
“하지만 중립 도시로 병사들을 보내려면 부대 점수가 필요한데······.”
“모두들 부대 점수도 그리 많지는 않겠군. 도시 성장에 우선 투자를 하고 있었을 테니.”
“걱정이군. 어떻게든 중립 도시의 방어병력을 보내야 하는데.”
“가자. 각자 돌아가서 최대한 방어병력을 보내는 걸로 하지. 정예만 골라 보내고, 이번 방어는 폐하의 깃발을 걸고 하는 걸로 하지.”
“폐하의 깃발을?”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시간이 없으니 거수로 결정하자. 이번 방어전에 폐하의 깃발을 세우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라!”
“없군! 그럼 모두 최선을 다하리라 생각하겠다. 그럼.”
“급하군.”
“폐하의 깃발을 세우는 일이니 최선을 다해야겠군. 서둘러야겠어.”
갑작스런 공격 소식에 사령관들은 잠시 허둥거렸지만, 곧바로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책을 찾았다.
황제의 깃발을 세우는 것.
그것은 어느 누구도 개인의 이득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고, 전체를 위해서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의미였다.
황제의 깃발이 서면, 그 전쟁에서의 공과 과는 따로 따지지 않는다.
무조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하는 것.
그것이 황제의 깃발을 세우는 의미였다.
* * *
산성 점유율 90%에 군왕성 점유율 45%를 더한 도현이 산성병사 부대를 소환했다.
그렇게 소환된 부대는 두 개 천인대.
원래 100%가 되면 한 개 천인대를 부를 수 있고, 149%까지는 두 개의 천인대를 부를 수 있다.
다만 101%와 149%에서 같은 숫자의 병사를 소환해도 그 병사들의 질이 달랐다.
101%가 신병이 뒤섞여 있는 부대라면 149%에선 모두 정예 엘리트 병사들로만 채웠다고 할까.
- 로드! 다행히 수비 병력이 별로 없습니다.
산성병사에 빙의한 에포르가 도현의 곁에 서서 중립 도시 성문의 전투를 보며 말했다.
에포르의 말처럼 알케이네스의 중립 도시는 방어가 허술했다.
도현이 2222기의 산성병사를 이끌고 차원 회랑을 나왔을 때, 알케이네스의 중립 도시에서도 상황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방어에 나섰다.
원래 문짝이 없이 훤히 뚫려 있는 중립 도시의 성문이라, 문을 닫아 걸 수도 없는 상황.
그러니 알케이네스 병사들은 어쩔 수 없이 성문을 몸으로 막는 방진을 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수는 고작해야 7백 명도 되지 않았다.
열네 명의 사령관들이 부대별로 50명씩 파견을 해 놓은 것인데, 도현의 산성병사 부대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성문을 악착같이 막고 있는 것은 중립도시의 소식이 전해지면 지원병력이 쏟아질 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투화황! 투화황! 투화황!
“음, 역시 레인저가 있으니까 편하긴 하네.”
도현은 성문 상황을 보면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성문을 뚫기 위해서 격렬한 전투를 벌이는 산성병사들,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도현은 레인저 서른한 기를 소환했다.
점유율 62%인 지금 도현이 소환할 수 있는 레인저의 최대 숫자는 서른하나였다.
2%에 한 기씩인 셈이다.
그 레인저들이 쉬지 않고 화살을 날리고 있고, 산성병사 부대의 앞에서 익스퍼트 상급의 천인장 둘이 날뛰고 있는 상황.
알케이네스의 수비 병력은 수수깡처럼 깨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 레인저의 화살은 무섭습니다.
그런 중에 에포르는 레인저가 남긴 흔적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에포르가 가리킨 것은 레인저의 화살을 맞고 죽은 알케이네스 종족이었는데, 그들은 지금 한 그루의 나무로 변해 있었다.
레인저의 화살이 몸에 박히면 그 화살에서 잔뿌리가 빠르게 자라나며 피격자를 내부에서 공격한다.
그리고 대상이 죽음에 이르면 빠르게 나무로 자라나는 것이다.
물론 그 전에 화살에 맞은 부분을 잘라내는 식으로 대처를 하는 이들도 있지만, 벌써 백여 그루의 작은 나무들이 성문 안팎으로 가득했다.
“화살의 위력도 엄청난데, 그 화살에 여러 가지 특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더 대단하지. 뭐, 아쉬운 점이 없진 않지만.”
도현은 화살을 쏠 때마다 몸이 부실해지는 레인저를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몸에서 넝쿨과 가지, 잎과 새순 따위를 끌어내어 화살을 만드는 레인저였다.
그래서 화살을 많이 쏠수록 몸의 구성이 성겨지고, 그 성겨진 부분을 채우다보면 체격이 작아진다.
숲의 성 레인저가 가지는 한계인데, 그것을 회복하려면 숲의 성에서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저기 저 놈들, 마력 포자 좀 덮어 씌워 봐!”
그러다가 도현이 성문 안쪽에서 셋이 협력해서 산성병사부대 천인장을 상대하는 알케이네스 부대 지휘관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레인저중에 셋이 그 지시를 받고 곧바로 활시위를 당겨 거대한 활에 화살을 걸었다.
그리고 그 화살 끝에는 마력을 흡수해서 전달하는 포자낭이 들어 있었다.
투투투화화화황!
포자낭이 달린 화살을 완성하자마자 세 레인저가 활시위를 놓았다.
그 직후 세 개의 화살은 레이저 포인터의 빛처럼 선명한 궤적을 그리며 알케이네스 부대 지휘관들을 향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