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샘물 이끼와 마력수와 마력석
57. 샘물 이끼와 마력수와 마력석
“샘물 이끼 때문에 곤란하시다고요?”
도현은 아버지의 부름에 유성 본사로 들어왔다.
뉴어스에 있는 도현이지만 지구에 남겨 놓은 흑영들을 통해서 간단한 정보 전달이 가능했다.
이번에 아버지가 상의할 일이 있다는 연락을 해 와 잠시 지구로 나온 것이다.
“몇 가지 의논할 게 있지만, 제일 급한 건 샘물 이끼가 너무 부족하다는 거다.”
최성수는 아들을 보자마자 급한 문제부터 꺼냈다.
“차원 이종족에 대한 문제로 부르신 게 아닌 모양이네요?”
도현은 아버지의 연락을 받고, 자신이 매매한 알케이네스 포로들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샘물 이끼 이야기가 먼저 나오다니.
“그거야 말들이 많기는 하지만, 당장 우리 유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잖으냐.”
“그건 그러네요. 그래도 저는 포로들이 지구로 넘어올 때가 된 시점에 연락을 하셔서, 그것 때문에 저를 부르신 줄 알았죠.”
“각국의 골드 헌터들이 그것들을 데리고 나왔다는 이야기로 시끄럽긴 하지.”
“아버진 어떠세요?”
“뭐가 말이냐?”
“그것들이 실제로 나타났을 때, 뭔가 위기감 같은 걸 느끼지 않으셨나 해서요.”
“솔직히 말하랴?”
“네.”
“나는 말이다······.”
최성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아들을 바라보다가 심호흡과 함께 말을 이었다.
“좀 안심이 되었다고 할까? 뭐 그런 기분이었다.”
“안심··· 이라고요?”
도현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는 표정으로 말이 주춤거렸다.
“그래.”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차원 이종족이 실존한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그것들과 전투을 벌여서 포로까지 잡아 온 마당에요!”
도현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속이 터질 듯이 화가 치밀었다.
물론 아버지에게 화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사고가 그런 쪽으로 흐를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화가 난 것이었다.
“전투에서 이겼으니 그런 거지. 그것도 별 희생도 없이 쉽게.”
“쉽다니요. 어떻게 전투가······. 아, 이런.”
도현은 말도 안 된다고 따지려다가 중간에 말을 멈췄다.
생각해보면 희생자 하나도 없이, 도현 혼자 나서서, 적 부대를 격멸한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100명 가까운 포로도 잡아 왔으니, 실제론 그보다 많은 알케이네스 종족을 상대로 승리한 사실도 추측이 가능했을 거고.
그러니 사람들이 알케이네스 종족과의 전쟁을 가볍게 여길 수도.
“쉬운 승리···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도현은 맥없이 중얼거리며 그나마 차원 회랑에서의 전투에 대해서 자세히 알리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곳에서 알케이네스 제국의 공작 아들을 죽인 것이 지구에 알려졌다면?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차원 전쟁을 가볍게 여길 수도 있었다.
알케이네스 제국이 얼마나 강대한 차원 제국인지도 모르면서.
“일방적인 싸움이었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으니 걱정은 뒤늦게 드는 거지. 아들인 네 일인데도, 내가 걱정보다는 여유를 먼저 느낄 정도였으니,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더하지 않을까?”
최성수는 도현이 원하는 것이 그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을 숨기거나 왜곡해서 들려준다고 아들에게 좋을 것은 없었다.
그러니 자신이 느낀 그대로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어째, 가면 갈수록 늪에 빠지는 느낌입니다. 팔다리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지 마라.”
“그건 알지만······.”
“차원 전쟁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겠지? 네가 말한 대로라면 지구 인류의 멸종을 걱정해야 할 전쟁이지 않으냐.”
“네.”
“그런 상황인데 너는 인류를 온실 속의 화초로 만들려는 것이냐?”
“음.”
아버지의 말에 도현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최대한 많은 짐을 지려고 했던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온실 속의 화초를 키우려는 생각은 없었다.
도현이 원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 악다구니를 쓰는 전사들이었다.
“알겠습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되었다. 그런데 샘물 이끼 말이다.”
“네, 그게 부족하다고요?”
“그래. 물 부족 국가나 지역에서 워낙 요청이 많아서 말이다.”
“곤란하네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샘물 이끼도 무한정 소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 마력만 있다고 소환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
“샘물 이끼도 생명체입니다. 증식을 통해서 개체수를 늘려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지금 공급되는 이상은 공급이 어렵다는 말이냐?”
“네, 열흘에 작은 컨테이너 하나 정도가 한계입니다. 그리고 그 정도면 샘물 이끼의 부피가 3만 리터가 넘습니다.”
샘물 이끼는 그 부피에 따라서 생산할 수 있는 물의 양에 한계가 있다.
그런데 샘물 이끼는 한 시간에 부피의 열 배에 해당하는 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거면 하루에 72만 리터의 물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약 5만 명이 넉넉하게 쓸 수 있는 양이죠.”
그것도 1인당 하루 150리터의 물을 소비한다고 가정했을 때 5만 명이다.
하지만 세계의 평균 물 소비량은 한 사람이 하루에 100리터를 조금 넘는 정도다.
물이 많이 부족한 나라에서는 하루 10리터도 안 되는 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아버지, 설마 어디에서 압력이 들어오기라도 한 겁니까?”
도현은 최성수가 말하는 샘물 이끼가 어쩌면 일반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원래 샘물 이끼는 마력을 품은 물, 즉 마력수로 엄청난 가치를 지녔던 것이다.
하지만 도현은 판매를 결정하면서 샘물 이끼를 두 종류로 나눴다.
그저 평범한 식수를 생산하는 것과 마력수를 생산하는 것으로.
당연히 도현이 열흘에 한 번씩 컨테이너 하나를 채우는 샘물 이끼는 일반 식수를 생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력수를 만들 수 있는 샘물 이끼는 소량만 만들고 있었다.
“그건 아니다. 러시아와 중국 사태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압력을 넣고 그러겠냐?”
“그게 아니면······.”
“사막 녹화 사업 때문에 그러는 거지. 그게 사막을 가진 나라들마다 아우성이니 말이다.”
국토의 일부가 사막인 나라가 많다보니 요청이 많은 모양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도현을 불러낼 일은 아니었다.
“그거야 순차적으로 분배를 해 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생산량에 한계가 있는데 뭘 어쩌겠습니까?”
“그래, 그런데······.”
최성수는 슬그머니 자신 쪽으로 있던 노트북 화면을 도현 쪽으로 돌려놓았다.
그곳에는 사하라 사막을 국토로 가진 알제리, 리비아, 말리, 차드 등의 나라들이 샘물 이끼 쟁탈전을 벌인다는 내용이 나와 있었다.
그냥 비유적인 쟁탈전이 아니라, 실제로 샘물 이끼를 강탈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샘물 이끼를 통째로 훔쳐간다는 말입니까?”
도현이 놀라서 최성수를 보며 물었다.
“그렇지. 그러다가 샘물 이끼가 훼손되기도 하고.”
“하아, 미치겠네. 지금 이 와중에 그런 짓들을 한단 말입니까?”
“거긴 아직까지 부족 단위로 움직이는 이들이 많아서 더 그런 모양이더라. 여길 보면 샘물 이끼를 싣고 있는 차량을 훔쳐서 사라졌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되어 있잖으냐.”
“그런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란 말이지요?”
“그렇지. 한 곳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고, 또 훔쳐서 다른 곳에 팔아먹으려는 이들도 있고. 아주 난장판이 된 모양이더라.”
“아니, 국가는 뭘 하고······.”
도현은 화를 내려다가 입을 다물고 말았다.
땅은 넓고, 인구 밀도는 희박한 곳이다.
그래서 국가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은 지역이기도 하고.
“인공위성을 이용하면 범인을 특정할 수는 있을 거다. 물론 강대국들의 힘을 빌려야하겠지만.”
최성수가 그렇게 말을 했지만 도현은 고래를 흔들었다.
“그냥 두세요. 그건 아버지나 유성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일단 팔린 샘물 이끼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걸로 하죠. AS가 필요한 물건도 아니고.”
“그러면······.”
“지들끼리 지지고 볶고 하면서 시간이 지나다보면 샘물 이끼가 흔해진 걸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꾸준히 계속 팔다보면 말입니다.”
“음, 일단 팔았으니 우리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구나?”
“네. 그게 맞을 거 같습니다.”
“그래. 알았다. 그럼 그건 그렇게 하고. 마력수 샘물 이끼는······.”
“아버지가 꼭 필요하다 싶을 때에만 말씀을 하세요. 그게 아니면 따로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마력수를 장복해서 건강한 몸을 얻는 것은 좋지만, 그런 사람들이 차원 침략에 맞서서 최전선으로 갈 일은 없었다.
마력수를 마시는 이들은 대부분 사회 지도층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현은 마력수 샘물 이끼를 만드는데 인색했고, 특별히 마력수 샘물 이끼에는 수명도 부여해 놓았다.
정확하게는 3년 정도 지나면 마력수가 아닌 일반 식수가 나오도록 조절해 둔 것이다.
그걸 아직은 아무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 마력수가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면, 아버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다.
있던 것이 없어지면 더 아쉬운 법이니까.
“아시겠지만 마력수는 최대한 전략적으로 써야 합니다. 제가 아버지와 유성의 뒤에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마력수로 우군을 만드는 것이 더 좋겠죠.”
“걱정하지 마라. 꼭 필요한 경우에만 쓰려고 하고 있으니까.”
최성수는 단호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 역시 마력수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건강한 몸.
돈과 권력, 명예를 모두 갖춘 이라고 해도, 마력수의 마력을 벗어날 수 없다.
더구나 건강에 문제가 있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아버지, 마력수로 만든 인맥이 나중에 꼭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지구 인류 전체를 움직일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지구 인류 전체?”
“차원 전쟁은 뉴어스에서 벌어지는 싸움이지만, 지구에도 그 여파가 전해질 겁니다. 그런 때에 인류 전체의 뜻을 하나로 모을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알았다. 좀 더 시야를 넓게 보고 높게 봐야 한다는 거구나? 전 세계적으로 놀아야 한다는 거지?”
“네, 무려 가디언 캐슬의 아버지 아닙니까.”
“하하하. 알았다. 알았어.”
이제 캐슬의 정체는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퍼져 나가는 상황이다.
그러니 숨기는 것도 의미가 없어졌다.
“참, 샘물 이끼 쟁탈전은 그렇다고 치고, 마법진을 이용한 아이템 제작도 제법 성과가 크다. 그런데······.”
“마력석이 문제겠군요?”
“맞다. 지금까지는 시험삼아 만드는 것이어서 마력석이 부족하지 않았지만, 실용화 해서 양산하기엔 마력석이 많이 부족하다.”
“다른 나라에서 구입하는 방법은요? 아직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을 텐데요?”
“그래도 연구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 게다가 마력석이 마법진 운용에 꼭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 아니냐. 그러니 국가에서 관리하는 특수 전략 물자로 삼아서 반출을 금지했다. 안 그런 나라는 몇 되지 않는데, 그런 경우에도 서로 확보하려고 경쟁이 치열하지.”
“유성이나 대한민국이 강대국과 돈싸움을 하기는 어렵다는 말씀이군요?”
“가디언에서 마법진이나 아이템 제작에 대한 기초를 배포한 것 때문이지.”
“하하하. 그거야 뭐 가디언이 인류 전체를 위한 단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래도 크라운 시티에서 얻는 마력과 오러, 신비에 대한 것은 유성에만 제공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긴, 그것도 제대로 소화를 못하는 상황에서 기초를 풀었다고 불만을 품을 일은 아니지.”
“어쨌거나 마력석 확보가 어렵다는 말씀이지요?”
“그래. 생각보다 마력석이 많이 필요하더구나.”
“대부분 최하급이나 하급 마력석이라 그렇죠. 중급 마력석은 어쩌다 하나씩 나오는 것들이고.”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마력석을 더 많이 구할 방법은 없는 거냐?”
“길드 도시 주변과 5구역 거점의 광산에서 나오는 마력석은 이미 모두 유성으로 넘기고 있는 건데요?”
“그거야 알고 있다만.”
“어쩔 수 없이 6구역 거점 점령에 속도를 붙여야겠네요.”
“너는 6구역도 돌아다닌다고 하지 않았어? 그렇게 들었는데?”
“네, 6구역에서도 거점을 점령하고 있는 중이긴 했죠. 하지만 거점을 점령했다고 끝이 아니잖아요. 광산 거점이 있어도 채광을 해야 광석을 얻죠.”
“아, 아직 위험해서 자원 생산은 어렵다는 이야기구나?”
“6구역은 5구역 보다 훨씬 위험하거든요. 거기다가 6구역에서는 알케이네스 놈들과 만날 수도 있고 말이죠.”
“6구역이 전장이 된다는 말이구나?”
“우리 쪽의 길드와 알케이네스 쪽의 부대 하나가 싸우게 되는 거죠. 상대가 약하면 쉽게 가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6구역을 포기해야 할 경우도 생기죠.”
“길드가 많으니까, 그런 경우도 있겠구나. 6구역을 알케이네스 놈들에게 빼앗기는.”
“그렇죠. 그럼 좀 더 강한 길드가 그 길드를 하위 길드로 들인 다음에, 길드원을 파견해서 6구역을 수복하는 방법을 써야 합니다. 그렇게 조금씩 뉴어스의 길드들도 덩치를 키워가는 거죠.”
“무슨 말인지 알겠다.”
“네, 아무튼 마력석이 문제라면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6구역을 어느 정도 안정시키면 마력석 광산을 개발하겠습니다. 6구역이면 중급 마력석도 제법 나올 겁니다. 운 좋으면 상급도 구경할 수 있을지 모르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네가 워낙 겁을 줘서 언제 지구에 몬스터가 나타날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나마 아이템이라도 잘 만들어 놓으면 그런 경우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을까 하는 거고.”
“네, 알겠습니다. 최대한 서두를게요. 그리고 이미 개발해 놓은 합금 탄두가 있으니까 어지간한 몬스터는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 알았다.”
“그리고 정 급하면 흑영들이 나서서 주위를 정리해 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도현은 흑영 열 마리 정도를 여원의 베타 팀과 국정원에 대여해 준 상태였다.
그 흑영이라면 중급 이상의 몬스터라도 어느 정도는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까지 지켜줄 수는 없지만, 하는 수 없지. 팔은 안으로 굽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