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인간도 먹거리가 될 수 있다는 소름 돋는 이야기
56. 인간도 먹거리가 될 수 있다는 소름 돋는 이야기
“누굴 병신 호구로 아나? 알케이네스 공작가 정도면 죽은 놈도 살려낼 수 있겠지. 내가 그걸 모를 것 같았나?”
토카 하무로가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도현이 그의 목을 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도현은 죽은 토카 하무로를 외면하고 가슴에 제 머리를 올리고 있는 자카모스 호카 만프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허리에서 검을 뽑아 휘둘렀다.
서걱! 서걱!
투둑! 투둑!
도현의 검에 자카모스의 뿔이 잘려 나왔다.
목 뒤로 바람머리처럼 휘어져 있던 뿔의 끝부분이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도현은 직접 허리를 숙여 잘린 뿔의 조각을 집어 들었다.
【알케이네스 차원의 백작급 뿔을 획득했습니다.】
【알케이네스 차원인에 대한 지배력이 생성됩니다.】
【남작급 이하의 알케이네스 차원인은 당신을 두려워합니다.】
【알케이네스 차원인에 대한 지배력이 생성됩니다.】
【당신은 알케이네스 차원인과 적대 관계입니다. 순종적인 복종은 끌어내기 어렵습니다.】
- 로드! 그 뿔에는 군왕성, 군왕성의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특수한 힘이 담겨 있습니다.
도현이 시스템 알림을 확인하는 동안, 에포르는 도현의 손에 있는 뿔에서 뭔가를 알아낸 듯이 갑자기 호들갑을 떨었다.
“이거 알케이네스 놈들에게 쥐약인 모양인데, 이걸 에포르 네가 흡수하면 그 효과가 사라지는 거 아닐까?”
- 절대!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완벽하게 흡수해 보이겠습니다. 로드. 이 에포르를 믿어 주십시오.
“그래?”
- 알케이네스 놈들에 대한 공포와 지배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군왕성의 점유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 에포르, 드디어 로드께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에포르 병사는 흥분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도현은 잠시 고민하다 결국 두 개의 잘린 뿔을 에포르에게 넘겨 주었다.
“잘 하자, 응?”
- 네, 로드!
“그래, 그리고 저 놈들은······.”
도현은 자카모스의 뿔까지 자른 후, 자카모스의 부대를 바라보았다.
자카모스의 목이 잘릴 때부터 저항 의지를 상실했던 병사들이 이제는 살아 있는 이가 몇 되지 않았다.
그리고 살아 있다고 해도 자세히 보면 온전한 정신 상태가 아닌 듯 보였다.
공작가 직계 혈족의 죽음은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도현도 알고는 있지만 이해는 할 수 없는 알케이네스 차원인들의 사고방식이고 가치관이었다.
“살아 있는 놈들은 일단 끌고 가야겠군. 일단 알케이네스 차원 인들의 실물을 보여주면 조금이라도 차원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겠지.”
- 로드, 그럼 회랑 밖으로는 나가지 않으시는 겁니까?
“시간도 제법 흘렀고, 차원 회랑에 쌓았던 에너지 소모도 제법 되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아니, 여기까지만이 아니지. 엄청난 일이 벌어졌으니까.”
도현은 뿔이 잘린 자카모스의 머리를 보며 그렇게 말을 하고는 곧바로 자카모스의 병사 백여 명을 끌고 뉴어스 쪽 출구를 향해 움직였다.
- 로드.
회랑의 출구로 가던 중, 에포르가 조심스럽게 도현을 불렀다.
“왜?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 이상한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상한 거라니?”
- 조금 전에 죽은 적의 지휘관 말입니다.
“지휘관이 왜?”
- 한 부대의 지휘관이 그렇게 무모하게 돌격을 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나는 항상 뒤에 숨어 있는데, 상대는 직접 발 벗고 나서서?”
-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로드께서 선봉에 서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죽은 적의 지휘관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하지만 조금 넓게 보면 그 놈이나 나나 다를 것이 없어.”
- 네? 로드와 죽은 적의 지휘관이 다르지 않다니요?
“나도 나 혼자서 알케이네스의 차원 전장으로 뛰어들었잖아. 이번이 두 번째였고.”
- 그거야 로드께선 충분히 감당할 능력이 있으시니······.
“죽은 놈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도현은 에포르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 네?
“그, 죽은 놈도 자기가 강하다고 생각했을 거라고. 그리고 실제로 놈은 익스퍼트 상급에 가까운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
- 하지만 결과만 보면 로드의 천인장 하나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그걸 보면 내가 조금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
- 무슨 말씀이신지.
“알케이네스 놈들, 지금 무척 약한 상태인 거 같다는 거지. 죽은 놈이 가장 강한 놈이라면 다른 놈들은 볼 것도 없잖아.”
- 하지만 그놈이 적들 중에 가장 강한 놈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에포르는 돌아가는 이야기의 흐름이 도현이 알케이네스 차원 전장으로 혼자 돌격하는 방향인 것 같아서 불안했다.
“아니야, 이번에 돌아가면 뉴어스를 대충 정비해 두고, 곧바로 알케이네스 놈들의 차원 전장을 점령해야겠어.”
- 하지만 로드 혼자서 어떻게······.
지구의 차원 전장은 뉴어스다.
당연히 알케이네스의 차원 전장도 뉴어스만큼 넓을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넓은 곳을 도현 혼자서 점령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중립 도시를 점령하겠다는 거야. 놈들이 지구로 직접 공격해 올 길을 싹수부터 막아버리겠다는 거지.”
- 그게 가능하다면······.
“지구는 조금 더 안전해지는 거지. 그리고 놈들의 길드 영지를 하나씩 빼앗을 수도 있고.”
- 길드 영지를 말입니까?
길드 타운과 그에 딸려 있는 땅.
그것은 곧 4구역을 의미했다.
“나도 정확히는 몰라. 과거엔 그렇게 해 본 일이 없지.”
- 중립 도시를 점령한 일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대신에 점령 당했던 적은 있었어. 알케이네스 놈들이 차원 회랑을 지나오면서 능력 제약을 크게 받을 때라서 곧바로 수복했지만.”
- 그런 일도 있었습니까?
“오늘 죽은 놈이 유명해진 것도 그 일 때문이었지. 그 당시 점령전을 지휘했던 놈이 그 자카모스라는 놈이었으니까.”
- 아, 그렇군요.
“그리고 그 놈이 알케이네스 차원 놈들 중에서 차원 회랑의 특전을 받은 놈이기도 했고.”
- 그런 놈이라 로드께서 놈의 등장에 그렇게 놀라셨던 거군요?
“아무튼, 자카모스 놈이 우리 쪽의 중립 도시를 점령하고, 곧바로 길드 하나를 택해서 길드전을 선포했었어. 그래서 중립 도시를 빼앗으면 상대 차원의 길드에 길드전을 선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 그렇군요. 그런 식으로 상대편의 4구역을 점령하게 되면, 거꾸로 3구역과 2구역, 1구역을 거쳐서 본토까지 밀고 들어갈 수도 있겠습니다.
에포르는 드디어 차원 전쟁의 전체적인 윤곽을 알아냈다는 듯이 밝은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도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모르는 일이야. 나는 그저 차원 회랑을 막다가 죽은 것이 전부고, 그 때까지 뉴어스의 중립 도시는 지구의 헌터들이 지키고 있었으니까.”
- 하지만 결국은 지구 인류가 패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뭐, 그랬지. 그냥 패배와 멸망을 가까스로 미루고 있는 상황이었지. 5구역과 6구역, 7구역에서까지 거점 점령에서 크게 밀리는 상황이었으니까.”
각 구역의 거점은 1차 자원 생산지였다.
그곳에서 자원을 수급해서 헌터들을 강화해야 했다.
그리고 그 거점들에서 일정하게 쌓이는 차원 에너지가 있어야 차원 회랑의 금제도 유지하고, 차원 회랑을 통해서 상대 진영을 공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거점 점령에서 크게 밀리는 상황이었으니, 사실상 희망은 거의 없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또 모르겠다. 8구역에서 알케이네스 놈들을 압도적으로 발라줬으면 일발 역전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었을지.”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겠지.
도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인류의 헌터 전체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똘똘 뭉쳐도 될까 말까 한 일인데.
당시엔 골드 헌터와 그레이 헌터 사이의 골이 너무 깊었다.
어차피 그레이 헌터들은 골드 헌터의 노예나 다름이 없어서, 대부분 의욕 없이 살고 있기도 했었고.
* * *
“어? 캐슬? 캐슬이 돌아왔다!”
“뭐냐? 저 뿔 달린 것들은? 저게 전에 캐슬이 말했던 그 알케이네슨가 하는 곳의 종족인 모양인데?”
“씨발, 정말 우주인이 있었던 거냐?”
“정신 차려! 저게 우주인이냐? 이계인이지? 아니 사람이 아니니까 그냥 종족이라고 하자. 이계 종족.”
“와, 뿔, 간지나네.”
“그보다는 갑옷하고 부츠 좀 봐라. 통일된 군복인 모양인데, 아주 간지가 좔좔 흐른다.”
“지랄한다. 여기저기 두들겨 맞고 밧줄에 꽁꽁 묶인 놈들이 간지는 무슨.”
“와, 계속 나오는데, 얼마나 되는 거야?”
“어, 끝났다. 백 명, 조금 안 되는데?”
우뚝!
도현은 중립 도시의 평원을 가로지르다가 구경꾼으로 몰려든 헌터의 말을 듣고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새파랗게 날이 서린 눈빛으로 헌터들을 훑어봤다.
“저것들은.”
꿀꺽!
도현의 말에 헌터들 몇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만큼 도현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인간이 아니다. 저것들의 수를 헤아릴 때에는 마리를 단위로 쓴다.”
도현은 선언하듯 그렇게 말을 하고는 가까이 있는 포로 하나를 향해 걸었다.
그리고.
츠릿! 푸확!
“어엇!”
“썅, 목을 잘랐어!”
“죽였네, 죽였어.”
“아니 왜? 무슨 충동장애야? 왜 급발진이야? 씨발. 토 쏠리게.”
포로를 향해 다가간 도현이 갑자기 발검과 함께 포로의 목을 잘라버렸고, 그 때문에 지켜보던 헌터들 사이에 소란이 일어났다.
“이 알케이네스 놈들에게 식민지 종족 노예는 가축이나 다름이 없다. 놈들은 간혹 식민지의 지성종을 식용으로 쓰기도 한다. 그걸 잊지 마라. 이것들은 우리 인간들도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놈들이란 사실을.”
“우엑!”
“식인을 한다고?”
“씨발, 우리를 잡아 먹을 수 있는 놈들? 그 소리를 들으니까 감이 확 오네.”
도현의 발언에 헌터들의 눈빛에 혐오가 들어앉았다.
사람을 잡아먹는 것들.
그것은 지구 인류로선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이야기였다.
오랜 세월 지구의 지배종으로 살았던 인간들은, 자신들을 식용으로 잡아먹는 존재에 대한 감을 잃은 지 오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막연하지만 강력한 거부감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느 후진국 독재자가 총이나 칼, 생화확 무기 따위로 수천 명, 수 만 명의 국민을 학살했다는 이야기와, 독재자 무리가 국민 수백 명을 식용으로 잡아 먹었다는 이야기는 전혀 느낌이 다르다.
차라리 수 천, 수 만을 죽였다는 것이 수 백 명을 잡아먹었다는 것보다 덜 충격적일 것이다.
그런데 알케이네스 종족이 지구 인류를 먹는다?
이건 확실히 지구 인류의 이해 범위를 넘어선 이야기였다.
“가자.”
도현은 다시 산성병사들을 움직여 포로들을 중립 도시의 수정 기둥 광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원하는 길드에 알케이네스 종족을 매각했다.
선착순으로 1만 길드 포인트와 1만 H.Point에 포로 하나씩.
대금은 뉴어스의 공용 화폐가 되어가고 있는 길드 포인트와 H.Point.
길드 포인트는 길드의 성장에 유용하고, H.Point는 시스템 상점을 통해서 헌터 개인을 성장시키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괜찮네. 다음에는 끌고 와 봐야 쓸모도 없겠지. 지금이니까 어떻게든 포로를 데리고 가서 뭔가 정보를 얻으려 하겠지만.”
도현은 포로 매각이 끝난 후,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번 포로들은 공작의 아들이 죽는 것을 보고 큰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이들이었다.
사실 온전한 정신이었다면 포로가 되기보다는 자살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니 포로에게서 뭔가 정보를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만, 알케이네스 종족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 테니, 그것이 이번 포로 매매에 숨겨진 이유였다.
“절대 타협할 수도, 함께 할 수도 없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