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차원 회랑을 넘어서다(2)
47. 차원 회랑을 넘어서다(2)
“저, 적이다!”
“미개한 놈들이 쳐들어왔다!”
“노예 따위가!”
“죽여라! 죽여!”
알케이네스의 원정군 병사들은 차원 회랑 게이트에서 나타난 한 무리의 군대를 보고 당황했다.
말로는 미개인이니 노예니 떠들고 있지만, 물밀 듯이 밀려오는 적들의 군세는 강력했다.
당장 중립 도시에 머물고 있는 병력으로 그 군세를 막아내기 어려워 보일 정도.
“어서 사령부에 전령을 보내!”
“우리 사령부에도 전령을 보내라!”
“성문에서 적들을 막아!”
“성문 밖으로 나가지 마라!”
“다른 사령부 놈들과 섞이지 마라.”
“자카모스 부대는 이쪽으로 와! 어서 하무로 부관님께 상황 보고를 해!”
“뭐하나! 자카모스 놈들이 설치게 두지 마라!”
“다른 놈들에게 뒤처지면 목을 잘라 주마!”
적이 몰려오는 상황에서도 소속이 다른 병사들은 서로를 경계하며 알력 싸움을 벌였다.
“이게 무슨 일이야?!”
그런 중에 가장 먼저 수정 기둥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자카모스 호카 만프레를 모시는 부관 토카 하무로였다.
“저쪽 차원 놈들이 나타났습니다.”
하무로의 등장에 자카모스 부대 병사들의 기세가 올랐다.
가장 먼저 고위 지휘관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이건···, 문제가 심각하군.”
하무로는 다가오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 병사들도 문제지만, 그 동안 사령관들의 다툼 때문에 결정하지 못했던 차원 회랑의 첫 진입 특전이 날아가게 생긴 것이 더 문제였다.
중립 도시가 열리자마자 사령관들은 서로 차원 회랑의 특전을 차지하기 위해 정치질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태.
그래서 차원 회랑 게이트의 첫 진입 특전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인데, 지금은 차원 회랑에 접촉할 방법이 사라졌다.
이렇게 되면 지금 공격해오는 적들이 돌아갈 때에 그 특전을 가지고 가게 될 것이다.
쿵쿵쿵쿵! 카가가강! 콰과과곽!
“커억!”
“아악!”
“크아아아악!”
하무로가 게이트의 특전 문제로 심각한 고민에 빠진 사이에 도현의 산성병사들이 알케이네스 중립 도시의 성문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바로 성문을 지키는 알케이네스 차원 병사들과 부딪혔다.
중립 도시를 지키는 병사들은 사령부에서 특별히 파견한 정예병들.
그래서 산성병사들의 공격에 일방적으로 밀리진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십인장이나 백인장이 끼어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십인장을 상대할 수 있는 병사는 정예병 중에서도 고참에 해당하는 몇 명 뿐이었고, 백인장을 홀로 상대할 수 있는 간부급 지휘관도 부족했다.
그 때문에 백인장 하나를 여러 명의 정예 고참이 막아섰는데, 피해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이거 꼴이 말이 아니군.”
“그것 참, 미개한 종족에게 뒤통수를 맞았어.”
그 때, 수정 기둥을 통해서 다른 사령부의 지휘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히 사령관이 나서는 곳은 없었다.
모두가 부관이거나 혹은 일선 부대의 부대장들이었다.
“일단 전장 정리부터 하지.”
하무로가 그 고위 지휘관들을 맞아 급한 불부터 끌 것을 제안했다.
이에 다른 사령부의 지휘관들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상황이 상황임을 인식했는지 곧바로 무기를 뽑아들며 몸을 날렸다.
그들이 움직이는 방향은 선명한 오러를 뿜어내는 산성병사 백인장들이 있는 곳이었다.
하무로 역시 검을 뽑아들고 공격에 나섰다.
파팟! 카가강!
순신간에 거리를 좁히며 검격을 날리는 하무로, 그리고 그것을 막아내는 산성병사 백인장.
“이거 뭐야? 이번 노예는 골렘 계열인가? 자아를 지닌 골렘?”
하무로는 자신의 상대가 흙과 돌로 이루어진 것을 알아차리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곧 그것이 아님을 알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군, 이건··· 사역체다. 이걸 움직이는 놈이 따로 있어! 어떻게 이런 일이?!”
하무로는 5백이 넘는 부대 전체가 한 명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파악했다.
하무로가 대상의 기운을 파악하는데 특별한 재주가 있었기 때문에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건 좋지 않아! 이런 놈이 차원 회랑의 특전을 얻었다고?! 어떻게? 놈들은 차원 전쟁을 치른 경험이 없을 텐데?’
이번 차원 침략의 대상은 차원 전쟁의 경험이 없는 곳임을 모르는 원정군은 없었다.
그런 정보는 침략 전에 이미 파악해 두었다.
다른 차원과의 교류가 없이 단절된 차원.
그래서 점령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던가.
‘지독하게 운이 좋은 놈이 있었던 건가? 게다가 놈에게 우리의 차원 회랑 특전도 빼앗기게 되면······.’
하무로는 거기까지 생각이 뻗어가자 한 가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사역의 주체가 되는 놈을 잡아야 한다.’
하무로는 산성병사 백인장을 상대하면서 은밀하게 흙과 돌로 이루어진 부대의 주인을 찾았다.
‘저기 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평원에 한 기의 병사를 거느리고 중립 도시 쪽을 바라보고 있는 ‘뿔없는’ 종족을 발견했다.
[다들, 사역체는 무시하고 평원에 있는 놈을 노려라! 여기 있는 부대는 모두가 저 놈이 부리는 인형들이다!]
하무로는 자신이 파악한 진상을 다른 사령부의 고위 지위관들에게 알렸다.
그리고 곧바로 상대하고 있던 흙인형을 밀어내고 허공으로 몸을 솟구쳤다.
이어서.
[도약!]
하무로는 자신의 능력 중의 하나를 사용해서 평원에 있는 적을 향해 이동했다.
순간적으로 공간을 뛰어넘는 이동 스킬.
이후 곧바로 검을 내리찍는 하무로.
카가강!
- 로드!
하지만 하무로의 공격은 곁에 있던 호위 병사의 방어에 막히고 말았다.
그리고.
“암습이라. 고위 지휘관이 할 짓은 아닌 거 같은데 말이지.”
도현은 에포르 병사와 검을 맞대고 있는 하무로를 향해 그렇게 말을 하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파지지지지직! 차자자장!
그러자 순식간에 허공을 수놓는 평면 마법진이 나타나고, 그 마법진에서 뇌전이 쳤다.
꽈릉!
파지직!
“커억!”
하무로는 눈앞에서 마법진이 완성되고 그 마법진에서 번개가 뻗어오는 것을 모두 지켜보았다.
하지만 눈으로 쫓을 수는 있어도 몸을 움직여 피할 수는 없었다.
어쩐 일인지 자신의 마력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도, 독인가?”
가까스로 마력을 끌어내어 번개의 피해를 줄인 하무로는 훌쩍 뒤로 물러나 도현에게 검을 겨누며 물었다.
“그걸 묻기 전에 몸부터 피했어야지?”
피잉! 피이잉!
그런 하무로에게 돌아간 것은 도현의 빈정거림과 화살이었다.
도현이 탑의 성을 이용해서 마법을 쓴 직후, 손목 보호대에서 활을 만들어 쏜 것이다.
카가강! 카강!
하무로는 다급하게 도현이 쏜 화살을 검으로 쳐 냈다.
그러면서도 도현의 곁을 지키는 에포르 병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에포르 병사가 그를 공격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2:1의 불리한 상황.
하무로는 마력을 움직여 뒤쪽의 기척을 살폈다.
하지만 그를 돕기 위해 도시 밖으로 나오는 지휘관은 없었다.
‘이것들이 지금!’
점령전은 사령관들의 경쟁이다.
그래서 지금도 자카모스 부대의 2인자인 하무로의 위기를 모르는 척 하는 것일 테고.
‘이렇게 되면 나만 위험을 자초할 필요가 없지. 도시로 후퇴한다.’
적의 주요 전력을 놓아주게 되겠지만, 여기서 자신이 죽으면 자카모스 부대는 큰 손실을 입게 된다.
그것은 자카모스 호카 만프레 사령관에게 누가 되는 일.
어차피 식민지 점령은 단시간에 끝날 일이 아니니 서둘 것은 없다.
하무로는 마음의 결정을 내리자 곧바로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 다시 [도약] 능력을 사용했다.
스슥! 푸욱! 서걱!
“커억!”
하지만 능력을 사용하기 직전, 허공에서 나타난 검은 그림자가 하무로의 등을 찌르고 팔 하나를 잘라냈다.
그것도 하무로가 민첩하게 반응하지 않았다면 목이 잘릴 공격이었다.
“아, 아깝네.”
- 그러게 말입니다. 죽지 않고 도시로 도망을 갔습니다. 하지만 부상은 심할 것입니다.
“팔 하나 잘린 거야 어렵지 않게 복구를 할 거야. 다만 가슴을 찔린 것은 좀 오래 가겠지.”
알케이네스 차원인들도 가슴은 중요한 급소다.
찔린 위치를 보면 흑영의 검은 두 개의 심장 중에 하나를 관통했을 것이다.
죽지는 않겠지만 마력 운용이 한동안 불가능할 정도의 중상이 분명했다.
“아깝네. 눈치가 빠른 놈이라 기회가 있을 때, 죽이려고 흑영까지 소환을 했는데.”
도현은 혀를 차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둘 수는 없었다.
‘이쯤 하고 빠져 볼까?’
- 로드, 아직 산성병사들이 건재한데 왜······?
도현의 말에 에포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인사는 했잖아. 게다가 보기보다 저놈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기도 하고.’
- 하지만······.
‘아쉬울 때, 물러나야지. 아까 나왔던 놈과 비슷한 수준의 놈들이 떼로 몰려오면 나도 곤란하고.’
조금 전에 상대했던 알케이네스 지휘관의 실력이 익스퍼트 중급 정도였다.
도현의 전투력을 등급으로 나누자면 익스퍼트 중급에서 상급 사이여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러 명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인사나 하자고 넘어온 거지, 저 도시를 점령하겠다고 온 건 아니잖아. 아직은 혼자서 저곳을 점령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이기도 하고.’
하지만 언젠가는 가능할 것이다.
산성의 점유율을 100%로 만든다면 천인장을 소환할 수 있을 터.
그렇게 되면 그 천인장이 이끄는 부대만으로도 지금 수준의 저 중립도시는 점령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 사이에 적들도 성장을 할 테지만.
- 아깝지만 로드의 뜻이 그렇다면 이 에포르는 그저 받들어 모실 따름입니다. 로드.
‘그래. 그럼 돌아가자.’
도현은 알케이네스의 중립 도시에서 싸우는 산성병사들을 뒤로하고 자신이 넘어왔던 차원 회랑 게이트로 향했다.
그리고 뉴어스로 넘어가기 위해서 차원 회랑의 게이트에 접촉했다.
【차원 회랑 게이트입니다.】
【차원 회랑에 입장하시겠습니까?】
도현은 게이트의 입장 여부를 묻는 질문에 중립도시에서 싸우는 산성병사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그러자 잠깐동안 중립도시에서 차원 회랑 게이트까지의 평원에 황사가 거칠게 휘몰아쳤다.
그렇게 산성 병사들을 모두 받아들인 후, 도현은 차원 회랑으로의 입장을 선택했다.
‘입장한다.’
【알케이네스 인류 최초의 차원 회랑 입장입니다.】
【특전을 부여합니다.】
【헌터 캐슬의 차원 회랑 제약을 제거합니다.】
【헌터 캐슬은 제약 없이 차원 회랑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승리를 쟁취하십시오.】
【············.】
【중복된 특전이 있습니다.】
【새로운 보상을 계산중입니다.】
【시스템 상점에서 한 가지 상품을 수령할 권리를 부여합니다. 헌터 캐슬이 알고 있는 아이템으로 한정하여 어떤 것이든 한 가지 상품을 수령할 수 있습니다.】
“어라? 뭘 준다고?”
- 로, 로드! 지금 이게 무슨······. 이런 혜택을 준단 말입니까?
시스템의 알림에 도현과 에포르가 동시에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개꿀!”
- 아이고, 로드! 체면을 지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