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뉴어스, 국가의 장벽이 허물어지다(2)
45. 뉴어스, 국가의 장벽이 허물어지다(2)
반나절 정도가 지날 무렵, 수정 기둥의 소환이 뚝 끊겼다.
수정 기둥을 이용해서 넘어온 길드의 숫자는 모두 마흔.
그 중엔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한국처럼 둘 이상의 길드가 넘어온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국가별로 하나의 길드가 넘어와 있었다.
도현은 올 사람은 모두 왔다는 생각이 들자, 광장에서 성문으로 이어진 대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이 도현에게로 몰렸다.
그리고 그 중에 천화성은 도현이 제일 앞장서서 걸어가는 것이 못마땅했던 모양이었다.
“가자!”
천화성이 무리를 이끌고 빠른 속도로 성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도현을 추월하겠다는 뜻이 분명했다.
이에 다른 길드의 사람들도 분위기에 휩쓸린 듯이 성문을 향해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도현은 그런 현상에 고개를 저었다.
‘가 봐야 뭐가 있다고 저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겠군.’
- 로드, 성문을 먼저 나가면 시스템이 무슨 보상을 주지 않겠습니까?
‘성문 밖으로 나간다고 보상이 나오진 않지. 보상 보다는 응징이 기다리겠지.’
도현은 그렇게 말을 하며 자신을 앞질러 달려가고 있는 천화성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그러는 중에도 눈치를 보며 몇몇 길드들이 도현을 추월해서 성벽으로 달려갔다.
“뭐야? 아무것도 없어?”
“넓은 황무지 밖에 없는데?”
“아니, 저기 저 끝에 뭐가 있잖아. 게이트 같은데?”
“그레이나 골드도 아니고 붉은 게이트는 또 처음이네.”
“그러게? 어디로 통하는 게이트지?”
사람들은 성벽 밖에 드넓은 평원만 있다는 사실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도현이 성문 밖으로 나설 때까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도현은 다시 말없이 평원 끝에 있는 붉은 게이트를 향해 걸었다.
천화성은 이번에도 도현을 앞질러 가려다가, 그를 말리는 수하들의 몸짓에 도현과 거리를 두고 나란히 서서 게이트를 향해 걸었다.
도현은 문득 지금 자신이 걸음을 멈추면 천화성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다.
하지만 그런 궁금증보다 급한 것이 있었다.
푸화화화화홧!
갑자기 도현의 몸에서 흙가루가 뿜어지며 그의 몸을 감췄다.
그리고 그 흙가루들은 주위로 넓게 퍼져 뭉치며 하나의 군단을 만들어냈다.
“어어어? 뭐야?”
“토병(土兵)?”
“군대를 만들었어?”
“저게 저 자의 능력인가?”
“엄청나! 단번에 수천 명의 병사를 소환하다니! 저게 말이 되는 거야?”
“미쳤군. 미쳤어. 1인 군단이라는 말을 이렇게 실감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어.”
흙먼지가 뭉치며 수 천 명의 병사를 만들어내자 헌터들은 저마다 무리를 지어 뭉치며 경계 태세를 갖췄다.
특히 천화성은 쉰 명의 부하들을 모두 주변에 끌어 모으고 도현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물론 천화성은 이곳이 서로 공격할 수 없는 안전 지역이라고 믿고 있었기에 애써 태연한 모습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 로드! 굳이 군왕성의 점유율까지 써서 이런 대군을 불러낼 이유가 있었습니까!
그 때, 에포르가 산성병사 하나에 빙의해서 가면을 쓰고 숲의 성 갑옷을 착용한 도현에게 다가왔다.
‘이참에 격의 차이를 확실하게 보여줘야지. 그리고 저 놈들은 그 시범 케이스가 되는 거고.’
도현이 그렇게 말하며 천화성 무리를 가리켰다.
척척척! 쿠궁! 쿠궁! 쿠궁!
지금 도현의 산성 점유율은 90%.
거기에 군왕성의 점유율 15%를 더하면 105%의 점유율을 가지게 된다.
‘100% 점유율을 넘어서는 산성병사 소환이 이렇게 무지막지 할 거라곤 생각을 못하기도 했지.’
도현은 천화성 일행을 향해 포위망을 형성한 2222명의 산성병사들을 보며 속으로 매우 놀라고 있었다.
헌터들의 교류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임펙트 있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에 무리를 했다.
군왕성의 점유율을 산성에 더해서 소환 가능한 최대 숫자를 소환했는데, 그 수가 2222명이라니.
일반 병 2천, 십인장 2백, 백인장 20, 천인장 둘.
“뭐? 뭐냐?”
어쨌거나 그 많은 숫자의 군대에게 포위된 천화성 일행.
천화성은 두려움과 경악에 뒤섞인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도시 안에서는 공격이 안 되던데, 여기선 어떨까 모르겠군.”
그런 천화성을 보며 도현이 말했다.
“뭐, 뭐라고?! 서, 설마?”
“나도 몰라. 공격이 통할지 아닐지. 하지만 네가 도시 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도 여기서 문답무용으로 공격을 해 볼 생각이야!”
“자, 잠깐!”
“공격!”
천화성이 뭐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그 전에 도현의 공격 명령이 먼저 떨어졌다.
쿠구구구구구구구!
군대가 포위망을 형성한 가운데, 두 명의 천인장과 스무 명의 백인장만 천화성 일행을 향해 내달렸다.
두 천인장은 방패 없이 검만 들고 있었고, 나머지 백인장들은 방패까지 빼들었다.
원래 천인장이 없이 백인장이 최고 지휘관일 때에는 방패 없이 검만 들었는데, 지금은 지휘를 받는 입장이라 그런지 검방을 모두 패용하고 있었다.
카가가강! 카강! 파샥! 터더덩!
천화성 일행은 짓쳐 오는 산성병사를 맞아 최선을 다해서 저항했다.
하지만 천화성의 독은 산성병사들에겐 무용지물.
그야말로 극상성의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일행들도 익스퍼트 상급의 천인장은 물론이고, 익스퍼트 중급의 백인장도 제대로 상대하기 어려웠다.
몇몇 공격이 백인장을 향해 날아들기도 했지만 그조차도 방패에 막혀서 허무하게 흩어질 뿐이었다.
“크악!”
“아아악!”
“살려줘! 항복!”
“항복하겠···, 모두 천화성이 시켜··· 컥!”
“흐어어억!”
산성병사들은 어떤 말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원래부터 감정이 없는 전투 병기들.
어떤 호소도 들어줄 귀가 없고 심장이 없는 병사들이었다.
이천이백의 산성 병사들의 포위망 안에서 벌어지는 일방적인 살육.
천화성이 아무리 좋은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다고 해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익스퍼트 상급의 천인장이 휘두른 검은 천화성을 어깨에서부터 허리까지 사선으로 갈라버렸다.
“이, 이러······.”
허무한 죽음.
천화성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곁으로 그의 부하들 역시 하나씩 쓰러져 뒹굴었다.
“무, 무슨 일이야?”
“못들었어? 저 놈들이 광장에서 캐슬을 죽이려고 기습을 했다잖아.”
“그, 그건 들었지만.”
“그러니까 캐슬이 못 참고 저렇게 작살을 내는 거지.”
“하지만 저래도 되나?”
“안 될 건 또 뭔데? 너는 널 죽이려는 놈이 있으면 그냥 살려줄 거냐?”
“그건 아니지만.”
“그나저나 안에 상황을 제대로 알 수가 없네.”
“비명소리 그쳤잖아. 그럼 끝난 거지 뭐.”
“그렇겠네.”
“와, 씨발. 혼자서 저런 군대를 불러내면 우린 뭘 하라는 거지?”
“그러게. 보아하니 일반 병사들은 좀 약해 보이긴 하는데, 십인장도 어찌어찌 감당할 수 있겠고.”
“그 이상은?”
“말해 뭐해? 안 되지. 아직은 못 비벼.”
“그렇지? 너도 그렇게 느끼지?”
“저건 그냥 미친 거지. 혼자서 수 천 마리의 소환수를 불러낸 거잖아.”
“저게 끝이 아니지. 그거 있잖아. 징벌의 탑.”
“그건 무슨 1회성 아이템 그런 거였을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어?”
“병신, 한국 헌터들 사이에서 나온 이야기 못 들었냐? 캐슬이 가끔 징벌의 탑을 쓰기도 한다는 거? 뭐 위력은 조금 떨어진다고 하지만, 그거야 필요한 만큼만 쓴 거겠지.”
“정말? 정말로 징벌의 탑을 띄웠다고?”
“그렇다니까? 그거 탑의 색이 변하는 만큼 위력이 달라지는 모양인데, 전에 현실에서 징벌의 탑이 떴을 때도 절반 정도였나?”
“와, 무섭네.”
“그러니까 그런 게 어디 도시 위에 뜬다고 생각을 해 봐라. 작정하면 백악관도 날릴 걸? 그런 이능을 막을 방법이 없으니까.”
“아, 끝났나 보다.”
천화성 일행의 최후를 직접 눈으로 본 헌터들은 많지 않았다.
몇몇 헌터들이 각성 능력을 이용해서 허공에 몸을 띄우거나 정찰용 스킬을 사용해서 전투 상황을 지켜봤을 뿐이다.
하지만 직접 보지 못한 이들도 도현의 산성 병사들이 도열해서 전장에서 물러나는 것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산성 병사들이 물러난 자리에 쓰러져 있는 천화성과 그 부하들의 모습.
“다 죽었네.”
“그렇지 뭐.”
“씨파, 정말 사려야겠다. 잘못하다간 한 방에 훅 가겠네.”
“아니지. 가디언이나 캐슬에게 지은 죄가 있는 놈은 중립도시 밖으로 나설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그게 그렇게 되나?”
“그리고 캐슬이 지구에서도 저런 짓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중국 똥줄이 타겠는데?”
“그러게.”
헌터들의 시선이 한쪽에 있는 중국 헌터들에게로 향했다.
중립 도시에 도착한 후, 요란하게 떠들던 이들의 목소리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져 있었다.
“와, 중국 놈들이 저렇게 예의바른 태도를 보일 수 있다니, 역시 물리, 주먹이 답이다.”
“그러게. 조용하네.”
헌터들은 찌그러져 있는 중국 헌터들을 일별하고는 다시 도현을 바라보았다.
도현은 오와 열을 맞춘 산성 병사들을 뒤에 두고 헌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저들을 죽인 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도현이 헌터들을 보며 물었다.
하지만 누구하나 도현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은원이 워낙 분명한 상황이라 천화성 일행을 변호할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일방적인 살육이었다는 점에서 느껴지는 반감은 어쩔 수 없었다.
강자의 아량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표정들.
“저기 보이는 저 붉은 게이트가 무엇일까?”
도현이 그런 헌터들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헌터들의 시선이 도현의 등 뒤, 평원 끝에 있는 붉은 게이트로 향했다.
“나는 저것이 우리 지구를 침략하기 위한 적들이 나올 재앙의 게이트라고 생각한다.”
도현이 말했다.
그러자 헌터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우리 가디언은 헌터를 지키기 위해서 존재한다. 하지만 헌터를 지키려는 목적은 지구 인류 지키기 위해서다. 그런데 헌터 사이에 불화를 만들고, 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인류를 위험하게 만든다? 그럼 우리 가디언은 언제든 냉정하게 칼을 휘두를 것이다.”
“그 말은 가디언이 헌터들을 통제하겠다는 건가?”
도현의 말을 듣고 있던 카질 데인이 한 걸음 나서며 불쾌한 표정으로 물었다.
힘에 의한 억압.
카질은 그것을 참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통제? 헌터의 존재 이유에서 벗어나는 일탈을 저지하겠다는 것이 통제인가?”
도현이 그런 카질을 보며 물었다.
카질은 수긍하기 어렵다는 듯이 도현을 노려보았다.
“우리 가디언의 뜻은 분명하다. 인류 수호에 방해가 되지 말라는 것.”
“방해가 되지 말라?”
“그렇다. 그것이 최소한이다. 각각의 능력으로 부와 명예와 권력을 취하는 것에 간섭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인류 수호라는 대의에 어긋나는 행위는 하지 말 것. 우리 가디언의 뜻은 이렇듯 분명하다.”
“그런가?”
카질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도현이 강자이기 때문에 여전히 강제와 억압이라는 불편한 느낌이 남았다.
하지만 가디언의 뜻, 그것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제 길드 사이의 점령전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저 붉은 게이트를 통해서 적들이 몰려오겠지.”
도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헌터들을 바라보았다.
“길드를 점령하고 세력을 키우는 것도 필요한 일이긴 하다. 그 과정을 통해서 전력의 강화와 집중이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하지만 희생은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 좋겠지.”
“그렇게 모인 힘으로 저 붉은 게이트 너머의 적을 상대한다는 거로군.”
이제는 카질이 다른 헌터를 대표하듯 말을 받았다.
“그렇다.”
“그럼 길드 전체를 가디언이 점령할 수도 있는 건가? 모든 길드를 하위 길드로?”
카질은 가디언이나 캐슬의 크라운 길드가 그와 같은 행보를 밟을지 물어보고 있었다.
“길드 점령전에 크라운 길드도 참가할 것이다. 이미 우리 길드를 목표로 움직인 무리가 있음을 알고 있다.”
“으음.”
“하지만 독점, 독재는 아니다. 인류가 여러 나라로 갈라져 있기에 뉴어스의 세력 역시 하나가 되기 어렵다. 그러니 적당한 세력화 이후에 협의체 구성으로 가야겠지.”
“하지만 힘이 곧 발언권이 되겠지?”
“그건 봐야 알겠지.”
도현은 대답을 피했다.
카질의 말대로 되겠지만 그걸 또 인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자, 그럼 이야기는 여기서 정리하고, 일단 저 붉은 게이트부터 확인을 해 보자.”
도현은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밝혔다는 생각에 몸을 돌려 붉은 게이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