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현실의 사업과 일본의 배상(賠償)(2)
43. 현실의 사업과 일본의 배상(賠償)(2)
일본의 배상과 포로로 잡힌 골드 헌터의 송환은 비공개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송환이 이루어진 장소나 시간도 평범하지 않았다.
“자, 먼저 첫 번째 몸값부터 받아 볼까?”
산성 장착으로 온 몸을 가린 도현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뒤에는 아홉 명의 골드 헌터와 이제는 직장을 잃은 육장보(陸将補) 다나카 아키라가 나란히 서 있었다.
몇 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공장 건물이지만 천정의 조명을 밝혀 뒀기에 내부는 훤하게 밝았다.
“여기 있습니다.”
도현의 말에 유창한 한국어로 답하는 일본 측 헌터.
그 헌터의 뒤에도 일곱 명의 헌터들이 더 있었다.
도현은 그들이 육군성과 야쿠자 연합에 속해 있는 골드 헌터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쨌건 도현으로선 3구역의 공적 점수만 챙길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도현은 몇 걸음 더 걸어나가 일본 헌터로부터 손가락 크기의 수정 기둥 하나를 받았다.
그리고 헌터가 가진 시스템의 능력을 이용해서 그 수정 기둥에 들어 있는 전공 점수를 확인했다.
“맞군. 공적 100만.”
도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만 귀 옆으로 들어 올려 손가락을 튕겼다.
그 핑거 스냅에 열 명의 포로 중에 하나가 움직였다.
그는 다름 아닌 육장보(陸将補) 다나카 아키라였다.
“아니, 헌터가 아니라 왜 아키라 장군이······.”
그 모습에 도현에게 수정 기둥을 넘겼던 일본 측 골드 헌터가 낮게 중얼거렸다.
도현은 혼잣말도 한국어로 하는 그 헌터가 신기해서 빤히 쳐다봤다.
“커엄.”
도현의 눈빛에 헛기침을 하는 일본 골드 헌터.
“한국어를 참 잘 하는군.”
도현이 그를 보며 뭔가 설명을 요구하는 어조로 말했다.
“나는 여러 언에 능통하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지역에서는 항상 이렇게 그 지역이나 국가의 언어만 사용한다. 그냥 습관이다.”
“그렇군. 그래도 혼잣말까지 그렇게 할 수 있다니 굉장한 재능이군.”
도현은 진심으로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다나카 아키라가 도현의 옆을 지나서 일본 헌터들 사이로 들어갔다.
도현은 다시 눈앞에 있는 헌터를 바라보았다.
“다음 몸값을 받을 때가 되었군.”
도현의 말에 일본인 헌터는 말없이 새로운 수정 기둥을 꺼내 내밀었다.
“공적 45만. 맞네.”
도현이 수정에 들어 있는 공적 점수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진 핑거 스냅에 남아 있던 포로들 중에 하나가 천천히 걸어 일본측 헌터들에게로 넘어갔다.
“그럼 다음 몸값······.”
“여기 있다.”
“다음······.”
“여기······.”
거래는 같은 방식으로 이어졌다.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수정에 들어 있는 공적 점수가 조금씩 적어진다는 것.
마지막 한 명의 포로까지 팔아먹기 위해서 뒤로 갈수록 몸값을 싸게 책정한 것이다.
“마지막이군. 공적 점수는 5만. 좋다. 데려가라.”
딱!
조금씩 줄어든 공적 점수는 결국 5만, 그것까지 확인한 도현이 핑거 스냅으로 신호를 주었다.
그러자 성큼성큼 걸어서 일본 헌터들에게로 걸어가는 포로.
그 마지막 놈은 도혜를 찾아왔던 바로 그 헌터였다.
그렇게 열 명의 포로가 모두 일본 측 헌터들 사이로 들어갔다.
“거기 아키란지 뭔지 하는 일반인 외에 아홉 헌터들은 지금 마력 제약을 받고 있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다. 하루만 지나면 제약이 사라질 테니까.”
“믿어도 되는 건가?”
도현의 말에 일본인 대표 헌터가 물었다.
“안 믿으면 어쩔 건데? 어차피 포로 교환 조건에 헌터의 상태에 대한 이야긴 없었는데?”
“신체 건강한 상태로 돌려준다는 조건이 분명히 있었던······.”
“마력을 못 쓴다고 건강하지 않은 거 아니지. 헌터들 말고는 마력을 쓰는 사람도 없는데, 그럼 지구 인류 대부분이 문제가 있다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리고 가디언의 이름으로 포로를 온전한 상태로 돌려보낸다고 했을 텐데?”
“그걸······.”
“그냥 믿어. 우리 가디언의 목적은 차원 침략자들로부터 지구의 인류를 지키는 거야. 그리고 그런 점을 생각하면 헌터 하나가 귀한 존재야. 약속을 안 했다면 모를까, 약속까지 해 놓고, 헌터 전력을 못쓰게 만들거나 하지는 않아.”
“······. 알겠습니다. 믿겠습니다.”
인류를 지키는 것이 목적이라 죄를 지은 헌터도 전력으로 생각한다는 도현의 말에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일본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잘 가.”
거래는 끝났다.
도현은 더는 볼 일이 없다는 듯이 등을 돌렸다.
그런 도현의 모습에 일본 헌터들은 바쁘게 눈빛을 교환했다.
그 눈빛 속에는 지금이라도 도현을 공격하자는 뜻을 담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몇몇이 고개를 흔들자 결국은 포기하고 넘겨받은 포로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한 번 덤벼 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 쯧.”
그런 일본 헌터들의 움직임을 느끼며 도현은 아쉬운 듯 혀를 찼다.
* * *
- 로드!
‘알고 있어.’
도현은 일본 헌터들과 거래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후부터 자신을 뒤따르는 이들이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이미 흑영 몇을 그쪽에 붙여 두었다.
그 동안 어둠의 성에 대한 점유율이 조금 더 높아진 덕분에 소환할 수 있는 흑영의 수도 늘어났다.
‘예상했던 대로 쥐새끼가 꼬였네.’
도현은 이번 거래에 대한 정보가 어디서 흘러나갔을까 추측을 해 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일본과 가디언의 거래는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었다.
어차피 일본이라는 국가와 가디언이란 단체가 만나는 일을 숨기긴 어려웠다.
‘관심을 보이는 것과 이렇게 선을 넘는 건 다른 문제지.’
도현을 따르는 헌터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 로드, 마흔 명이 넘습니다. 이건······.
‘그냥 미행만 하겠다는 뜻이 아니지. 어떻게든 나를 끝장내 보겠다는 의도지.’
도현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여기서 적당히 게이트를 열어 뉴어스로 숨는 방법도 있었다.
미행하고 있는 놈들은 절대로 도현을 찾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만만하게 보겠지. 더구나 이 새끼들은 애초에 교화가 안 되는 놈들이고.’
도현은 흑영을 통해서 미행자들을 살피던 중에 그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쉰 명으로 이루어진 이들은 동남아의 여러 나라에 속한 골드 헌터들이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실제론 중국 놈들이지.’
나라마다 허락된 골드 헌터의 숫자는 100명이다.
하지만 지구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으로선 100명이란 골드 헌터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숫자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꼼수가 다른 나라의 골드 헌터 자리를 중국에서 차지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골드 헌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적합자는 중국인들 중에서 뽑아서 게이트에 밀어 넣었다.
아직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중국이 그런 식으로 확보한 골드 헌터의 수가 수 백 명이란 소리가 있었다.
‘과거에도 중국 놈들이 문제였지. 알케이네스 놈들 편이 아니냔 소리까지 나왔으니까.’
도현은 시내로 향하던 걸음의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 얼마 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지?”
도현은 공단이 끝나고 건축 토목 공사가 진행 중인 곳에 멈춰서 어둠 속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달빛 속에서 어둑어둑한 그림자들이 도현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난 이해가 안 된단 말이지.”
도현이 각양각색의 복장을 하고 있는 헌터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우리 가디언이 그렇게 만만해 보여?”
파치잉! 쉬리리리리릭!
도현의 갑옷이 폭발하듯 흙가루를 뿜어낸 것은 순식간이었다.
게다가 그 흙가루들이 산성병사로 완성되기 전에, 도현의 몸에는 다시 숲의 성 갑옷이 장착되었다.
도현은 숲의 성 갑옷을 착용하면서 동시에 얼굴을 가리는 가면을 하나 꺼내 썼다.
숲의 성으로 된 갑옷의 투구는 얼굴을 드러내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도현이 가디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것을 직접 확인시켜 줄 필요는 없었다.
“是召唤吗?(소환인가?)”
“怎么会一次就召唤出这么多士兵呢.(어떻게 한 번에 이렇게 많은 병사를 소환하지?)”
카가강! 카강!
“이런! 소환체가 약하지 않다. 강해!”
겁 없이 산성병사를 향해 달려들었던 헌터가 뒤로 밀려나며 고함을 질렀다.
“乞讨!全部后退! 后退!(빌어먹을! 모두 후퇴! 후퇴해!)”
그러자 곧바로 누군가 명령을 내렸다.
“疯子!我们反被包围了,你让我撤到哪里去!(미친 새끼! 우리가 도리어 포위가 된 상탠데 어디로 후퇴를 하라는 거냐!)”
“他妈的.(제기랄!)”
도현은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분위기만 보아도 대충 이해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게다가 산성병사들이 나타난 순간부터 헌터들의 무기는 도현이 아니라 산성병사들을 향하고 있었다.
피잉!
“어이쿠!”
물론 그런 중에도 도현을 노린 저격이 날아왔다.
그것도 마력을 담은 화살이었다.
- 로드! 예로부터 군주를 죽이는 것들 중에 하나가 전장에서 날아오는 눈 먼 화살입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도현은 장난처럼 화살을 피하는데 에포르가 깜짝 놀라며 주의를 주었다.
“아아악!”
그리고 산성병사의 포위망 밖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도현이 흑영을 이용하여 저격 헌터를 처리한 것이다.
“세상에는 고쳐 쓰지 못할 인종이 있어. 태어나면서부터 염치란 것을 배우지 못한 족속들. 교화가 안 되는 것들이지.”
도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산성병사와 대치하고 있는 쉰 명의 헌터들을 바라보았다.
아까운 이들이었다.
저들도 알케이네스 차원과의 전쟁에 전력으로 쓸 수 있는 이들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저들을 그냥 둔다면, 도리어 뉴어스에 해가 될 뿐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뉴어스에서도 한 번은 피를 봐야 하는 놈들이다. 여기서 그 첫 발을 뗀다.’
도현은 각오를 다지며 활시위를 당기는 한편, 산성병사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공격!”
후우웅! 지이이이잉!
“什么呀?劍氣?用那么深的劍氣?!(뭐냐? 검기? 저렇게 짙은 검기를 쓴다고?!)”
산성병사의 선두에 선 것은 당연히 백인장, 그리고 그 뒤에는 십인장 산성병사가 섰다.
모두 마력을 가공한 오러를 무기에 두를 수 있는 수준이니 중국의 헌터들이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놀란다고 산성병사들의 행동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산성병사들은 도현의 명령에 따라서 포위망에 갇힌 헌터들을 도살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救命...救命!(살려··· 살려줘!)”
“으아아악!”
“这到底...(대체 이게···) 크악!”
콰과과광! 콰광!
“杀了!杀了! 是我杀的。 嗯?嗯嗯嗯? 种八!(죽였다! 죽였어! 내가 죽였다고. 어? 어어어? 씨팔!) 크아악!”
그런 중에 산성병사 한 두 기를 파괴하는 성과를 얻는 헌터도 있었지만, 그래봐야 별 의미가 없었다.
압도적인 숫자의 차이, 그들의 전매특허 같은 인해전술 앞에서 도리어 속수무책으로 목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쯧, 이러면 안 되는데, 적을 죽이고 전리품을 얻는다는 마음이 드니, 이거 참. 사람이 몹도 아니고.”
도현은 그것이 과거 기억에서 저들 중화 헌터라는 이들에게 당한 것이 많았던 까닭이라고 생각했다.
과거 인류를 위해서도 득보다 실이 컸던 중화 헌터들이었다.
‘너희도 한 번 당해 봐야지. 인해전술 그 뭣 같은 거에.’
도현은 이제 거의 정리가 되어가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산성병사의 수를 유지하기 위해 재소환이나 복구를 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