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매를 버는 하룻강아지들(1)
35. 매를 버는 하룻강아지들(1)
타닥 타닥! 타닥 타닥!
“하악! 하악!”
최도혜는 걸음을 바삐 놀리느라 숨이 가빴다.
“여기가··· 어디야!”
분명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낮선 골목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 도혜였다.
무심중에 드는 불길함과 두려움.
도혜는 발걸음을 재촉해서 익숙한 골목을 찾으려 했지만, 아무리 걸어도 낯선 골목, 인적도 없이 무서운 곳만 이어졌다.
“어, 엄마······.”
두려움은 도혜의 발걸음을 계속 재촉했다.
멈추는 순간,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이 그녀의 어깨를 짓눌렀다.
“아!”
도혜는 어느 순간 손목에 걸려 있는 팔찌를 다른 손으로 잡았다.
오빠가 준 선물.
위험이 있어도 신비한 능력으로 자신을 지켜줄 거라고 했다.
그것을 떠올리자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는 듯.
“이상해.”
도혜는 주변 상황이 정상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골목의 벽과 이어지는 대문들은 두루뭉술했다.
간판이 달렸는데 글자를 읽을 수가 없고, 사람은 없는데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뭔가 꺼풀이 씌워져 있는 것 같은.
“勘がいいね. 精神力も強くて.(감이 좋구나. 정신력도 강하고.)”
그 순간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일본어라는 것을 곧바로 알았지만 그 뜻을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나마 고등학교 제2 외국어가 일본어였고, 도혜의 학업 성적이 좋았던 덕분이다.
“누, 누구?”
도혜가 다급하게 몸을 돌렸다.
그러자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짧은 머리카락, 날카로운 눈매, 태양에 그을린 얼굴.
도혜는 군대에 갔을 때, 가끔 휴가를 나왔던 오빠의 모습을 떠올렸다.
“구, 군인?”
“あれ, それをどうして分かったんだ?(어라? 그걸 어떻게 알았지?)やっぱり勘がいいのかな?(역시 감이 좋은 걸까나?)”
“······.”
도혜는 태연자약한 상대의 말과 행동에 불안감을 느끼고 조금씩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사내는 그런 도혜를 장난감 보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遊んであげたいけど、残念ながら余裕がないね。 はぁ、もう捕まえてやる.(놀아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여유가 없네. 하아, 이만 잡혀 줘야겠어.)”
“무, 무슨······.”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좋은 말은 아닐 것이다.
도혜는 위기감을 느끼고 재빨리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 뿐, 도혜의 발은 꼼짝도 하지 않고 땅에 붙잡혀 있었다.
다리가 굳어 버린 듯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아악! 사람···헙!”
“静かに、静かに。騒がしくしては困る.(조용, 조용. 시끄럽게 하면 곤란하다고.)”
도혜가 고함을 지르려는 순간, 그녀의 입을 막아버리는 손바닥.
도혜는 몸부림을 쳤지만 어쩐지 점점 몸이 굳어가는 느낌이어서 힘을 쓸 수가 없었다.
“よし、もうおしまいだ.(좋아. 이제 끝났군.)”
사내는 등 뒤에서 도혜를 끌어 안 듯이 받쳐 세우고 환하게 웃었다.
일본의 골드 헌터인 그는 밀명을 받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가 받은 명령은 최도현에게 목줄을 걸라는 것.
당연히 목줄이라는 것은 상대를 자유롭게 부릴 수 있는 약점을 말했고, 사내는 그 약점으로 도현의 가족을 선택했다.
이제 여동생을 확보했으니, 다음은 부모를 차례로 손에 넣으면 된다.
그건 뉴어스에서 얻은 각성 능력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그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유성 공업의 사장인 최성수는 경호 인력이 붙은 것 같으니 조심해야겠지만, 다음 대상인 늙은 여자는 더 쉬울 것이다.
“それではもう······.(그럼 이제······.) あれ?あれ?これはまあ······.(어? 어라? 이건 뭐······.)”
하지만 그는 도혜를 안고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갑자기 도혜의 몸을 감싸는 구(球) 형태의 실드에 몸이 밀려난 것이다.
게다가 그 직후 그의 몸을 뒤덮는 검은 보자기 같은 것이 있었다.
사내는 그 보자기에 휩싸인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 * *
“이런 개새! 죽을라고!”
도현은 실드 안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도혜를 받쳐 들었다.
실드가 도혜를 보호하고 있었지만, 도현은 그 방어를 쉽게 풀어냈다.
원래 팔찌 액세서리를 도혜에게 준 것이 도현 아닌가.
그 실드의 마력 패턴은 이미 도현이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아니라도 도현의 힘이라면 방어막을 뚫는 것이 어렵진 않았겠지만.
“그거 챙겨서 따라와.”
도혜를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린 후, 도현이 누군가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쓰러진 사내를 휘감고 있던 검은 보자기가 몸을 일으켰다.
칠흙같은 무광의 검은색 무언가가 사람의 모양을 만들었다.
도현이 이전에 흡수한 <타락 천사의 날개 죽지>로 점유율을 확보한 어둠의 성에서 나온 흑영(黑影)이었다.
원래 이름은 그림자 암살자인데, 발음이 거슬려서 흑영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특기는 은신과 암습, 정보 획득.
몸을 일으킨 흑영은 곧바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사내를 도현이 도혜를 안은 것처럼 안아 들었다.
“그걸 그렇게······. 아니다, 알아서 해라. 내가 안고 가는 것도 아니고.”
- 제가 나중에 교육을 시키겠습니다.
“그래. 그러든지.”
도현은 흑영이 안고 있는 사내를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고개를 흔들며 걸음을 옮겼다.
도현이 가는 방향은 조금 전에 그가 나온 게이트.
하지만 그 게이트는 도현이 평소 사용하는 지구와 뉴어스를 연결하는 게이트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둠의 성에 딸린 액티브 스킬.
그림자 게이트였다.
3일에 한 번, 흑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이동할 수 있는 이동 스킬로 한 번 열린 게이트는 도현의 마력으로 유지된다.
다만 게이트를 통과하는 사람이나 사물에 따라서 마력 소비가 늘어나기에 무제한 이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렇게 남의 시선을 피해서 이동을 하기엔 더 없이 좋은 스킬이었다.
흑영이 은신으로 이동한 후, 그림자 게이트를 열고 이동하면 되니 활용성이 높았다.
그런 스킬을 이렇게 동생을 구하는 데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 로드, 로드의 가족을 노린 놈들입니다. 모두 찾아내서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예전 같으면 구족을 멸하라 할 것이지만, 조금 순화해서 삼족을······.
* * *
“그래도 다행이네.”
도현은 동생을 침대에 눕혀두고 돌아서며 중얼거렸다.
5구역에서 새로운 거점을 점령하기 위해 정찰을 하던 중에 어둠의 성이 신호를 보냈다.
흑영에게 기억시킨 몇 가지 상황에만 울리는 긴급 신호였다.
그래서 도현은 정찰을 포기하고 급히 게이트를 열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긴급 상황을 알린 흑영이 있는 곳으로 그림자 게이트를 다시 열었고, 그곳에서 쓰러진 도혜와 흑영에게 제압당한 사내를 발견했던 것이다.
동생이 놀라긴 했지만, 크게 다친 곳은 없으니 다행이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속은 또 다를 것이다.
아마 깨어나면 이번 일이 꽤나 큰 후유증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런 짓을 벌인 놈들 그냥 둘 수 없음은 당연하다.
“자, 그럼 이제는······.”
돌아서는 도현의 눈빛에 서늘한 살기가 감돌았다.
* * *
“야쿠자와 자위대가 어떻게 손을 잡을 수가 있지?”
- 육상 자위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일본 놈들이 원래 육군하고 해군하고 사이가 안 좋아. 그래서 이번에도 둘이 서로 갈라진 모양이야. 항공대는 서로 적당히 나눠 먹은 모양이고.”
-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이번에 잡은 놈은 고작 심부름꾼에 불과하잖아요.
“당연히 그냥 둘 수는 없지. 경고를 해야지.”
- 가디언의 이름으로요?
“그래. 이번 기회에 다른 나라의 정부나 관계자들에게도 경각심을 좀 일깨워 줄 필요가 있겠어. 헌터는 골드든 그레이든, 사적으로 운용하지 못하게.”
- 하지만 가디언이라고 해 봐야 허상이잖습니까. 로드 밖에 없는데요.
“어허! 그 하나가 나잖아. 너 지금 나 무시하냐?”
-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로드께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아포르입니다. 어떻게 제가 로드를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하하. 알았다. 알았어. 뭘 그렇게 또 버럭 하고 그러냐?”
- 로드, 버럭이라니요. 제가 어떻게······.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 게 있는데 말이지. 골드 헌터는 충원이 안 된다는 걸 몰라.”
- 네? 갑자기 그게 무슨······.
“그레이 헌터 천 명이 게이트로 들어가면 골드 헌터 세 명을 만들 수 있어.”
- 네,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골드 헌터가 죽으면 그 자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채울 수 있을까?”
- 그게 안 된다는 말씀이군요?
“그러니까 골드 헌터는 무척 귀한 자산이란 말이지. 그런데 내가 육상 자위대와 야쿠자의 골드 헌터들을 잡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 아, 그러면 뉴어스에서 이득을 취하기가 어려워지겠군요?
“맞아.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뉴어스의 지식들이 알려질 거야. 그에 맞춰서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지겠지. 그럼 당연히 골드 헌터는 그만큼 귀해지는 거고.”
- 귀해 지는 이유는 뉴어스에서만 가지고 올 수 있는 자원들 때문이지요?
“그래. 마법진을 예로 들면, 내가 마법진에 대한 정보를 세상에 퍼트려도, 그걸 만들 재료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
- 그 재료의 핵심 자원은 뉴어스에만 있고요?
“그런 거지.”
- 그래서 일본의 골드 헌터들을 납치해 오실 생각이신 거군요?
“죽이면 재활용이 불가능해지지만, 살려두면 교섭용으로 써먹을 수가 있지. 거기에 SNS로 영상 몇 개 올리면 끝장인 거지.”
- 영상이라면 조금 전에 찍은 그 자백 영상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거기에 좀 더 더해야지. 이번 일을 꾸민 실무자 놈들 몇을 묶어서.”
- 하여간 멍청한 놈들입니다. 어떻게 로드를 건드릴 생각을 했을까요?
“내가 특별하다는 것을 알았겠지. 어쩌면 청와대 파티에서 내가 골드 게이트를 가장 먼저 접촉했던 것도 알려졌을 거고.”
도현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그런 정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함에 한숨이 나왔다.
‘당시 목격자가 많았던 때문이라고 생각하자. 보국 팀처럼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강력한 신념을 가진 이들도 있다.’
도현은 치밀어 오르는 실망감을 그렇게 달래며 흑영을 이용한 작전 준비를 시작했다.
‘지도와 거리 뷰를 통해서 작전 지역을 대충이라도 익힌 다음에 흑영을 보내. 그리고 목적지에 잠입하면 이쪽에서 그림자 게이트를 열어서 직접 출동하는 거지.’
작전은 어려울 것이 없었다.
하루에도 수십 편의 항공기와 선박이 대한민국과 일본을 오간다.
그 중에 어디든 흑영이 스며들지 못할 곳은 없다.
지금 지구에서 흑영을 막을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진짜 그림자처럼 움직일 수 있는 흑영이다.
게다가 그 검은색마저 없애는 은신 능력도 있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상태로 어디든 스며들 수 있는 흑영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이후 지구에 뉴어스의 산물이 늘어나고, 마법과 이능을 이용한 방어가 수준 이상에 오르면 모를까, 그 전까지 흑영은 치트키나 마찬가지다.
“자, 가라.”
그런 치트키가 도쿄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리고 다시 하루 후, 흑영은 도현에게 목줄을 걸라고 명령한 명령자의 등 뒤에 붙어 있었다.
- 이젠 로드께서 가실 차례군요.
“가기 전에 동영상 하나 올리고 가야지.”
- 자백 동영상 말씀이군요?
“그거하고, 가디언의 응징이 시작된다는 것도 함께.”
- 대비할 시간도 없을 텐데요?
“우리가 올린 동영상을 보고 있는 놈을 잡으면 재밌지 않겠어?”
- 그건 그렇겠습니다.
“그럼 진짜 가 보자고. 딱 그림자 게이트 쿨타임도 돌아왔으니까.”
도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곧바로 도쿄 외곽의 어느 지하 기지에 있는 흑영 옆으로 그림자 게이트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