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크라운에 합류한 팀(team) 보국(保國)
34. 크라운에 합류한 팀(team) 보국(保國)
쿠구구구구구궁!
“우왓!”
“이거 그거지?”
“길드원들 새로 왔나보다.”
“그러게, 온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일이 바빠서 잊고 있었네.”
모루에 올린 철편을 두드리고 있던 손 씨는 땅이 흔들리는 느낌에 망치만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옆집의 석수장이 변 씨를 만났다.
변 씨 역시 망치와 정을 들고 나온 참이었다.
웅성, 웅성, 웅성!
그들 이외에도 공방 거리의 길드원 대부분이 밖으로 나와서 도시의 중심, 길드 하우스가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땅이 요동치며 흔들리는 쪽은 도시의 외곽.
“어어? 도로가 넓어지는데?”
“저길 봐, NPC들 건물들이 변하고 있어. 좀 더 고급스러워지는데?”
“에이, 우리 것도 좀 해 주지.”
“그게 되면 해 줬겠지. 우리 헌터들 건 우리가 직접 짓거나 건축 길드에 의뢰를 해야 한다고.”
“누가 그걸 몰라?”
“알면서 뭘 그리 불퉁거려?”
“요즘 대장간을 좀 넓히고 싶은데 길드 공헌점수가 모자라니까 전에 빼앗긴 3구역 공헌 점수가 아쉬워서 그런 거지.”
“야! 뺏기다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손 씨, 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
“아, 아니. 그게······.”
“말조심 해라. 그러다가 찍혀서 길드에서 쫓겨나면 그걸로 끝이야. 우리 길드만한 곳이 없다는 거 몰라? 이런 곳에서 사는 대가로 3구역 전공점수를 낸 건데, 그게 아까워? 그럼 전공점수 찾아서 다른 길드로 가든가!”
“아, 내가 잘못했다. 말이 헛 나온 거야. 나도 그런 생각은 아니야.”
“그러니까 말조심 하라고. 말이 씨가 되는 거야. 그런 얼토당토 않은 불만을 품고 있으면 언젠가 그게 불씨가 되어서 타오를 수도 있단 말이지.”
“에이, 아니라니까 자꾸 그러네.”
“신경질 내지 말고, 가슴에 새겨! 한 번만 더 그런 소리를 하면 옆집 이웃이고 뭐고 확!”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저녁에 맥주 산다! 맥주 사!”
“그, 그래? 뭐, 그러면······.”
쿠구구구구구궁!
“그나저나 이번엔 꽤나 오래 걸리네?”
맥주를 산다는 말로 변 씨의 화를 잠재운 대장장이 손 씨는 멀리 성벽 쪽을 보며 중얼거렸다.
길드 하우스에서 가끔씩 업그레이드를 할 때가 있었다.
길드 마스터인 캐슬이 필요에 따라서 없던 건물을 올리기도 하고, 있던 건물을 증축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이런 식으로 작은 지진이나 진동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손 씨가 지금껏 본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인 듯 했다.
“3구역 클리어하고 새 길드원들이 넘어 온 거잖아. 그래서 그 전공점수를 모아서 이번에 길드 하우스를 대도시 규모로 키우는 거고.”
“그건 어렵다고 하지 않았나? 전공점수가 모자랄 거 같다고?”
“나도 들은 이야긴데 보국(保國) 길드가 우리 크라운에 흡수된다는 소리가 있었어.”
“뭐? 보국? 그거 정부 어용 길드 아냐?”
“어용은 무슨, 간부들이 대부분 군인하고 경찰, 소방관 그 쪽이라서 그랬던 거지.”
“그런 놈들이 우리 길드에 왜?”
“왜겠어? 밖에선 답이 없으니까 안으로 어떻게 파고들어 볼 생각이겠지.”
“아니, 그걸 알면서 그런 놈들을 왜 받아들이냐고. 우리 간부진들은 생각도 없는 거야?”
손 씨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크라운 길드의 길드 도시 전체에서 논란이 되고 있었다.
* * *
“허! 말은 들었지만 이건······.”
박형렬 소령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지금 크라운 하우스의 하트 홀에 있었다.
물론 그 길드 하트는 밖으로 노출되어 있는 외부 단말기였다.
진짜는 길드 하우스의 지하 깊은 곳에 있고, 그곳은 아직까지 캐슬 이외에는 누구도 출입할 수 없었다.
도현은 기둥과 천정만 있는 건물을 세우고 그 안에 길드 하트의 외부 단말기를 설치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유럽의 신전 같기도 하고, 돌로 지은 팔각정 같기도 한 건물이었다.
박소령은 그곳에서 크라운 길드의 도시를 내려다보며 감탄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쿠구구구구구궁!
도시 외곽의 성벽이 땅 밑으로 흡수되고, 거미줄처럼 퍼진 도시의 길들이 넓어졌다.
그리고 그 변화에 맞춰서 건물들이 제각각 자리를 잡으며 몇 개의 건물은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증축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사라진 성벽이 저 멀리 백여 미터 밖에서 다시 솟아나며, 그렇게 생긴 빈 공간을 도로가 쭉쭉 밀고 나가며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깔린 도로의 교차점에 동일한 형태의 건물들이 드문드문 나타났다.
“경비대 건물이다. 일종의 경찰 지구대 같은 역할을 하지.”
박형렬 소령이 새로 깔리는 도로와 그곳에 들어서는 건물을 보고 있을 때, 허공에 뭔가 조작을 하던 도현이 말했다.
도현은 여전히 온 몸을 가린 산성 갑옷을 장착한 모습이었다.
“그렇······ 습니까?”
이제는 상관으로 대우해야 할 도현이지만 박형렬은 쉽게 존댓말이 나오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길드 마스터 캐슬은 높은 확률로 유성 그룹의 최도현이 분명했다.
그 신상을 알고 있는 박형렬은 나이가 어린 도현에게 하는 존대가 아직 어색했다.
“경비대는 전쟁이 벌어지면 군대가 되는 이들이다. 그래서 조금 넉넉하게 배치를 하고 있지.”
“전쟁이라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다른 길드에서 점령전을 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거든. 길드전의 끝은 길드 하우스의 하트를 장악하는 것이라, 경비대의 역할이 중요하지. 솔직히 우리 길드원들이 죽는 것보다는 저 NPC가 죽는 게 좋지 않겠나?”
“그야 당연하지요.”
“그래서 그 쪽으로 비용 지출이 좀 많은 편이지만, 도시가 성장한 만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거야.”
“그야 길드장이 알아서 할 일이지요.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박형렬은 자신들이 관여할 수 없다는 말로 도현의 독재적인 길드 운영을 꼬집었다.
“보국 팀이 우리 길드에 들어온 것은, 국가와 민족의 안녕을 위한 대국적인 결정이라고 들었다.”
도현이 투구 안에서 눈빛을 번뜩이며 박형렬을 노려봤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박형렬은 절대 꿀릴 것이 없다는 듯이 당당하게 도현의 눈빛을 맞받았다.
“그렇다면 보국 팀은 거기에 맞춰서 행동하면 된다. 크라운이 너희 이상에 맞지 않으면 길드 탈퇴도 가능하다고 했을 텐데?”
“······.”
“하지만 운영 자체에는 간섭하지 않는 걸로 합의하지 않았나?”
“죄송합니다.”
박형렬은 자신이 쏟아낸 작은 불만에 강렬하게 대응하는 도현을 향해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보국 팀이 크라운에 들어오는 조건이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보국 팀은 조국과 민족의 위협이 될 적을 막는 것을 최우선 목적으로 하는 무리였다.
그래서 크라운에서도 그런 목적에 맞게 보국 팀을 운용하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팀, 보국이 크라운에 속하게 된 것인데, 박형렬이 시작부터 선을 살짝 넘은 셈이었다.
“계약을 어기면, 그 때는 곧바로 길드에서 탈퇴시킬 거야. 그렇게 되면 보국 팀은 전공점수만 손해보고 무소속으로 떠돌게 될 거야. 물론 무력이 있으니까 다른 길드에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래봐야 결국 사냥개 노릇만 하게 될 뿐이야. 명심해, 보국을 받아들인 것은 보국이 인류를 지키겠다는 초심을 지키겠다고 했기 때문이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사과를 받아들이지. 그리고 다시 한 번 약속하는데, 보국을 길드의 사적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일은 없을 거야. 약속하지.”
“감사합니다.”
“자자, 보국이 합류한 덕분에 길드 도시가 대도시 규모로 승격했어. 덕분에 더 많은 기술과 이능, 마법들이 공개 되었지.”
“유성과 여원이 또 한 번 앞서 가겠군요.”
박형렬은 지금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를 뒤흔드는 대부분의 것들이 유성과 여원에서 나오고 있음을 떠올렸다.
박형렬은 골드 헌터였기 때문에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도 잘 알고 있었다.
“이젠 파이를 키워야지. 유성과 여원만으로 모든 것을 감당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박형렬의 생각과 다르게 도현은 이제 뉴어스 문명의 지구 이식을 가속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야만 미래에 지구에 닥칠 이능의 위협을 이겨낼 수 있을 테니까.
“보국!”
그때, 판금갑옷을 깔끔하게 차려 입은 헌터 하나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도현과 박형렬에게 거수 경계를 했다.
“보국!”
박형렬이 마주 경례하며 그 인사를 받았다.
그러자 그 기사는 도현의 눈치를 보더니 곧바로 박형렬에게 보고를 했다.
“팀 보국의 소집 및 인원 점검이 끝났습니다. 총원 655명, 사고 무! 집합 완료!”
“그래. 각 간부들 인솔하에 숙소로 이동해서 개인 정비 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보국!”
“그래, 보국!”
박형렬의 지시에 기사 복장의 헌터는 인사를 하고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언덕 아래, 광장에 도열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 후에는 무리를 지어 한 쪽으로 이동했다.
“일단은 분대 단위로 숙소를 사용하지만, 요구하면 개별 숙소도 가능해. 도시가 넓으니까 집을 내어 주는 것은 어렵지 않지.”
도현이 박형렬과 나란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아닙니다. 저희 보국 팀은 군대에 준하는 조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분대 이하로 인원을 분산시키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거야 박 팀장이 알아서 할 일이지. 하지만 언제든 팀원들 중에 노선을 갈아타는 이들이 있다면······.”
“정상적인 탈퇴라면 막지 않습니다. 마음이 떠난 팀원을 억지로 데리고 있는 것은 도리어 팀을 위험하게 할 요소가 됩니다.”
“그래. 다행이네. 그리고 나도 보국 팀이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사람이야. 지금은 실감이 안 날 수도 있지만, 인류 전체를 향해 다가오는 위험은 실제하는 것이고, 그것은··· 두렵지.”
“길드장이 두렵다고 할 정도입니까?”
박형렬은 합류 협상을 하느라 도현을 몇 번 만났다.
그리고 그 중에는 실력 확인을 위한 충돌도 몇 번 있었다.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하고 소대 단위가 박살이 났었는데, 그런 사람이 두렵다고 하는 적이라니.
“조만간 5구역으로 들어가게 될 거야. 거기서 맛보기를 보게 되겠지. 거기 나오는 놈들이 차원 침략군의 하급 병사 정도로 보면 되니까.”
“5구역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이 하급 병사 수준이란 말입니까?”
“대충 비슷하겠지. 그리고 놈들은 하급, 중급, 상급, 최상급에 그 위의 오등작 귀족으로 등급을 나눌 수 있어. 위로 갈수록 숫자가 적기는 하지만, 그만큼 강력하지. 나는 지금 대충 상급 정도와 비벼볼 수 있을 거고, 박 소령은 중급과 싸워도 승산이 많지 않아.”
“끄응.”
박형렬은 도현의 말에 앓는 소리를 냈다.
자신이 도현에게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많은 등급 중에서 고작 밑에서 두 번째 등급과도 생사를 다툴 정도라니.
“뭐, 그거야 좀 더 좋은 무기, 방어구, 장신구로 커버 할 수 있지. 그러자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니까.”
벌레 씹은 표정이 된 박형렬에게 도현은 그나마 희망을 던져 주었다.
4구역은 5구역과 6구역을 점령하기 위한 군수 기지.
풍족한 보급은 질 전쟁도 이기게 해 주는 힘이 있다.
그리고.
‘지금 크라운 시티는 2차 대전 당시의 미국보다 높은 생산성을 가지고 있지. 그것도 삼엽기 만드는 적을 상대로 제트기를 뿌리는 수준으로.’
- 이제 전투 인원이 어느 정도 채워졌으니 본격적으로 5구역에 도전하실 겁니까?
‘이미 거점은 만들어 뒀으니까 병력을 투입해도 되겠지.’
- 로드의 고생을 저들이 알아야 할 텐데 말이죠. 수하들을 위해서 보이지 않은 곳에서 고군분투하는 로드, 정말 존경합니다아!
‘쯧, 얼굴 뜨겁게, 그만해라!’
- 넵, 로드.
‘어쨌건 5구역 점령이 시작되면, 조만간 타차원 놈들을 직접 볼 일이 생길 수도 있겠네.’
- 그런데 로드.
‘왜?’
- 그 타차원 놈들, 어떤 놈들입니까?
‘······. 동정의 여지가 전혀 없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제국주의자 놈들!’
- 제국주의면 식민지 입니까?
‘모두 죽이거나, 아니면 노예로 삼지.’
- ······. 그렇군요.
‘이번에는······.’
씨를 말려버리겠다.
도현은 속으로 그렇게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