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3구역 여포(1)
21. 3구역 여포(1)
“아버지, 여원이랑 이야기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음? 연구협력 말이냐?”
“네.”
도현은 오랜만에 아버지를 찾아왔다.
벌써 1년 가까이 아들의 일탈을 믿음으로 지켜 봐 주신 아버지다.
이젠 그에 대한 보답을 할 때였다.
“그렇지 않아도 여원 쪽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일단 외형은 만들어 놨다만, 내실이 없구나.”
최성수는 마음에 차지 않는 듯 굳은 표정을 지었다.
“합금 연구를 준비하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래. 그렇게 이야긴 해 뒀다만, 우리 쪽에서 먼저 뭐라도 내 보일 것이 있어야 할 텐데, 그게 없구나.”
“연구가 쉽게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죠.”
“그야 그렇다만.”
최성수는 별 기대감 없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도현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활짝 웃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또 획기적인 뭔가가 한순간에 나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하하.”
“응? 뭐가 있다는 이야기냐?”
아들의 말과 표정에서 뭔가를 느낀 듯이 최성수의 얼굴에 희망이 번졌다.
“이걸 연구원들에게 전해 주십시오.”
그런 최성수에게 도현이 나무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최성수의 사무실에 들어올 때부터 들고 들어와 지금까지 도현의 발밑에 놓여 있던 상자였다.
“이게 뭐냐? 열어 봐도 되는 거냐?”
최성수가 도현을 보며 물었다.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열어보세요.”
딸깍!
최성수가 나무상자를 열자 그 안에서 금속 조각들이 보였다.
“이게 뭐냐?”
“쇳조각이죠. 하지만 그저 그런 물건은 아니에요. 특별한 쇳조각입니다.”
“음, 특별한?”
“일단 분석부터 하고, 성질 검사도 하라고 하세요. 그럼 그 결과를 가지고 여원하고 딜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딜을 할 수 있다는 건, 그 특별한 합금을 우리도 만들 수 있다는 거구나?”
“그게 쉽겠어요? 하지만 가능은 할 테니까 우리 유성하고 여원이 공동 연구로 방법을 찾아 봐야죠.”
도현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구나.”
최성수는 진짜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도현의 말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이 일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에 대해선 전혀 짐작도 못한 최성수였다.
그리고 그 상자를 받은 유성공업 금속 연구소.
연구소장인 구한승은 유성공업의 사장인 최성수가 직접 들고온 쇳조각을 분석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분석을 돌려봐도 파악되지 않는 성분이 존재했다.
“이건 도대체 뭐지?”
그는 그 성분을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소장님, 이거 좀 이상합니다.”
그 때, 금속의 성질 확인을 하던 연구원이 구한승을 불렀다.
“뭔가?”
구한승이 다가가 연구원의 데이터를 확인했다.
“이게 뭐야? 열전도율이 왜 이렇게 높아? 어? 반대 방향으론 또 전도율이 거의 제로야? 뭐가 이래? 이게 무슨 열반도체야?”
구한승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지금 그가 보고 있는 자료에 따르면 이 금속은 한쪽 방향으로는 열 전도율이 거의 100%에 가깝고, 반대로는 0%에 가까웠다.
이런 금속은 지금까지 보고된 바가 없었다.
“소장님 이쪽도 뭔가 이상합니다.”
“소장님, 여기도 좀 이해가 안 되는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열전도율에 대한 문제는 시작에 불과했다.
사장인 최성수가 가지고 온 쇳조각은 연구원들의 이해를 까마득히 뛰어넘는 결과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유성공업의 금속 연구소는 불난 호떡집처럼 난리가 났다.
그리고 곧바로 사장인 최성수가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 * *
“소장님, 알고 있겠지만 대외빕니다.”
최성수가 간단하게 정리된 보고서를 읽고는 구한승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구한승도 최성수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정말 획기적인 발견입니다. 이게 밖으로 퍼지면 유성공업 전체가 난리가 날 겁니다.”
최성수가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알고 있습니다. 사장님. 그래서 지금 샘플들을 모두 회수해서 따로 보관하고 연구에 필요한 최소한만 남겼습니다.”
구한승이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자신이 취한 사전 조치를 보고했다.
“네, 잘 하셨습니다. 음, 하지만 이건 우리가 혼자 먹기엔 좀 부담이 되겠죠?”
최성수가 구한승을 보며 물었다.
“그야··· 워낙에 활용 범위가 넓은 녀석이라 제대로 생산만 된다면 엄청날 겁니다.”
구한승은 유성의 힘으론 지키기 어렵다는 말을 그렇게 돌려 말했다.
“어차피 여원과 연구협력을 하기로 했으니 그 쪽과 손을 잡아야지요.”
최성수는 그렇게 말하며 의자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마음속에서 이리저리 계산기를 돌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결심을 굳힌 듯이 구한승을 바라봤다.
“연구소장님.”
“네! 사장님.”
“일단 확인된 것만 정리해 주세요. 그리고 샘플로 쇳조각 하나 주시고요. 여원에 다녀와야겠습니다.”
최성수는 시간을 오래 끌어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어차피 칼을 쥔 것은 자신의 아들인 도현이었다.
어떻게 이런 것을 가지고 왔는지 정확힌 알 수 없지만, 이것들이 포탈 안에서 나온 것임은 분명했다.
아들이 지금까지 했던 말이나 행동들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으로선 공급자가 갑이지. 그러니 유성과 여원그룹이 서로 대등한 입장에 설 수도 있다.’
최성수는 약간 욕심을 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곧바로 여원그룹의 노(老)회장 번호를 눌렀다.
알고는 있지만 지금껏 한 번도 눌러보지 못한 번호를 지금은 당당하게 누르고 통화가 연결되기를 기다렸다.
“음?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그래요. 유성공업의 최사장이 어쩐일로 전화를 다 했습니까?”
여원의 노회장은 덤덤한 음성으로 물었다.
하지만 이 물음에 만족스런 답을 하지 못하면 앞으로 여원그룹과의 관계가 꼬일 것이 분명했다.
노회장은 자신의 시간을 헛되게 빼앗아 가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노여워하지 말고 들어 주십시오. 저희 유성과 회장님의 여원이 함께 할 일이 있을 거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유성과 함께 하는 일들이 있는 걸로 아는데요?”
“그런 차원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요?”
“그래서 지금 제가 회장님 댁으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약속도 없이 찾아올 정도로 자신이 있다는 거군요? 그리고 그만큼 중요하고?”
“게다가 회장님께서 일을 믿고 맡길 사람도 불러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주 중요한 일이니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만한 권한도 있어야 합니다.”
“믿을 수 있고, 권한도 있어야 한다?”
“그렇습니다.”
“최사장이 모든 것을 건 모양이구먼.”
노회장의 목소리가 사신의 그것처럼 차갑게 들렸다.
하지만 최성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 말을 받았다.
“회장님께서 수용하지 않으시면 다른 곳으로 가야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원을 위해서 말입니다.”
“크음. 준비하고 기다리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것을 가지고 오는지 궁금하군.”
“알겠습니다. 한 시간 내로 도착할 거 같습니다.”
“알겠네.”
띠이이이이!
“휴우우우.”
전화가 끊어지자 최성수는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아닌 척 해도 바짝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하하, 회장님이 아무리 그래도 양보는 없습니다. 이번엔 이쪽이 확실한 갑입니다. 하하하.”
최성수는 몸을 뒤로 젖히며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하며 크게 웃었다.
* * *
[3구역에 최초로 진입하셨습니다.]
[2구역 관문을 1인 도전으로 최종 시험까지 통과하셨습니다.]
[3구역 진입으로 길드 관련 시스템이 해금되었습니다.]
[2구역 관문 최초, 최종, 1인 통과 보상으로 500,000H.Point을 획득하셨습니다.]
[2구역 관문 최초, 최종, 1인 통과 보상으로 [와이번 소환]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2구역 관문 최초, 최종, 1인 통과 보상으로 확장된 아공간을 획득하셨습니다.]
“음, 헌터 포인트, 와이번 소환, 아공간인가?”
- 로드, 로드의 새로운 창고가 생겼습니다. 이 에포르가 관리해도 되겠습니까?
도현이 보상 목록을 확인하는데 에포르가 흥분된 목소리로 물어왔다.
“설인 여왕의 가죽 주머니를 대신해서 아공간을 쓰지. 그리고 지금까지 가죽 주머니를 관리하던 지침대로 아공간을 관리해.”
- 네, 알겠습니다. 로드. 그런데 설인 여왕의 가죽 주머니는 어떻게 할까요?
“그건 당장 쓸모가 없으니까 크라운 쪽에 주면 되겠지. 크라운에서 보급 용도로 쓰라고 하면 되겠네.”
- 알겠습니다. 로드.
“그런데 이 [와이번 소환]은 정말 괜찮은데?”
도현은 아공간을 에포르에게 맡기고 [와이번 소환] 스킬을 확인했다.
스킬 확인과 동시에 머릿속에 그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이 스킬로 소환하는 와이번은 공격 능력이 전혀 없었다.
용도는 오직 탑승.
장거리 이동을 위해서 존재하는 승용 와이번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먹을 거 줄 필요 없고, 언제든 필요하면 소환해서 쓸 수 있다는 것은 괜찮네. 문제는 타고 있는 동안 지속적으로 마력을 소비한다는 건데, 그건 뭐 <꿈꾸는 월광초>로 어떻게 해결이 될 거 같으니까 걱정 없네. 마침 두 명까진 더 태울 수 있는 거 같으니까.”
- 로드, 이 에포르는 머리에 꽃을 꽂는 것이 싫습니다.
“어, 알았어.”
- 건성이시군요.
에포르가 침울한 음성으로 말했지만 도현은 상태창을 확인하느라 관심을 주지 않았다.
헌터네임 : 캐슬
이명 : 일곱 성의 주인
등급 : 3등급
스킬 : [산성 장착][하급 마력 연공법][산성병 소환][숲의 성 장착][정원수 소환][지원요청:탑의 성][와이번 소환][확장된 아공간]
특권 : 개인 포탈
H.Point : 532,480
권속 : 에포르
장비 : 설인여왕의 가죽 주머니
장비 : 떡갈나무 스태프
장비 : ······
······
늘어난 스킬의 숫자와 헌터 포인트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당장 헌터 포인트는 쓸 곳이 없다.
1구역의 시스템 상점은 이미 문을 닫고 폐허가 되었다.
2구역으로 넘어 온 사람들의 숫자가 열한 명이 되는 순간 상점이 사라진 것이다.
사실상 열 명까지는 그 상점을 이용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지만, 실제론 김재홍만 몇 번 들어가 구경을 했을 뿐이다.
어쨌건 그런 이유로 50만이 넘게 쌓인 헌터 포인트는 당분간 봉인 상태.
남은 것은 이제 밖으로 나가 3구역에 적응하는 것뿐이다.
* * *
3구역은 관문을 통과해서 도착하는 장소가 2구역과 달리 한 곳으로 정해져 있다.
도현은 상태창까지 확인하고는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그가 있는 곳이 텅 빈 실내 공간이니 밖으로 나가야 뭔가 해도 하지 않겠나.
“어이, 거기! 동맹군인가?”
도현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다시 넓은 실내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저쪽 맞은편에 책상을 놓고 앉아 있던 사내가 도현을 발견하고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도현은 그 책상을 향해 다가갔다.
과거에도 이곳에서 이 남자를 처음으로 만났다.
이 사내는 오직 이 공간에만 존재하며 3구역으로 넘어온 헌터들을 맞이하는 이였다.
“동맹군이냐고 묻잖아. 아, 그렇지 동맹군이 아니면 저 문에서 나오지 않겠지.”
사내는 도현을 보며 혼잣말을 하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우선 길드를 만들고 싶은데?”
도현이 그 사내를 보며 말했다.
“음? 하긴, 지금 그 쪽 나라의 길드가 하나도 없지? 당연히 길드부터 만들어야겠군.”
사내는 도현의 말에 그렇게 반응했다.
“어쨌거나 반갑군. 동맹국에서 이렇게 전투 지원을 해 준다니 우리 콤모디왕국으로선 정말 고마운 일이지. 악적 레스폰을 무찔러 승리를!”
사내는 마지막에 구호까지 외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길드는 어떻게 만들지?”
도현이 다시 사내에게 용건을 말했다.
“일단 첫 길드니까 따로 필요한 것은 없어. 처음이란 다 그런 거지. 꼭 필요한데 그걸 만들라고 비용을 청구할 수는 없잖아? 자, 그럼 일단 길드 이름부터 정해 보자고. 어떤 이름으로 할 거야?”
사내가 서류 한 장을 꺼내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잉크병에서 깃펜을 꺼내 들며 물었다.
“크라운, 크라운으로 하지.”
도현이 대답했다.
“좋아. 그럼 구성원은? 일단 지금은 자네 혼자 왔으니까 한 명 뿐이네?”
“그래. 내 이름은 캐슬이야. 그러니까 크라운의 길드 마스터는 캐슬이 되는 거지.”
“그래, 그럴 수밖에 없지. 자, 그럼 이제 끝났군. 이 서류만 넘기면 동맹국 대한민국의 크라운 길드가 만들어 질 거네. 잘 부탁하겠네. 악적 레스폰을 무찔러 승리를!”
다시 한 번 사내는 목청을 높여 구호를 외쳤다.
“그래, 악적 레스폰을 무찔러 영광을!”
도현은 그런 사내에게 맞장구를 치듯 비슷한 구호로 화답해 주었다.
그리고 사내의 책상 옆에 있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본격적인 3구역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