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크라운 조직과 도현의 2관문 도전(3)
20. 크라운 조직과 도현의 2관문 도전(3)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
그리고 일흔둘.
여섯 번에 걸친 도전이 계속 이어졌다.
한 번의 도전 때마다 몬스터는 매번 열 마리씩 늘어났다.
2구역 관문의 정원은 최고 여덟 명.
아무리 2구역에서 힘을 기른 헌터라고 해도 그 여덟 명이 수십 마리의 몬스터를 잡기는 어렵다.
그것도 사방이 훤하게 뚫려 있는 개방된 공간이라는 불리한 조건에선 더더욱.
과거의 도현은 이곳에서 통과 기준만 채우고 그대로 3구역으로 넘어갔었다.
그리고 2구역 관문에서 끝을 봤다는 이야긴 죽을 때까지 듣지 못했고.
[열여섯 번째 시험이 끝났습니다.]
[도전자 캐슬은 다음 단계 도전과 관문 통과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두 시간 내로 선택하십시오.]
마지막 몬스터, 뿔바실리스크가 쓰러지자 알림이 들려왔다.
도현은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 로드, 괜찮으십니까?
곧바로 에포르 병사가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그런 에포르 병사가 들고 있는 검에도 녹색의 피가 묻어 있었다.
도현을 지키기 위해서 검을 휘둘렀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이번 싸움은 긴박했다.
평범한 몬스터 일흔 마리에 두 마리의 보스급 몬스터가 나왔다.
뿔바실리스크와 미노타우로스.
미노타우로스는 그야말로 물리 공격의 끝판왕이고 뿔바실리스크는 거대한 덩치에 석화 브레스까지 가진 무지막지한 몬스터였다.
도현은 산성병사로 공방을 펼치며 활로 일반 몬스터의 숫자를 착실히 줄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미노타우로스를 직접 상대하면서 뿔바실리스크는 산성병사로 견제했다.
[산성장착]으로 방어력을 높이고, 숲의 성이 주는 재생력으로 무장한 도현은 미노타우로스와 육박전을 벌였다.
산성병사의 검과 창이 미노타우로스의 가죽을 제대로 뚫지 못했기 때문에 도현이 직접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어떻게든 뿔바실리스크의 접근도 막아야 하는 상황이라 산성병사도 끌어쓸 여유가 없었다.
결국 도현과 미노타우로스 사이에 가장 무식하고 또 단순한 싸움이 벌어졌다.
한 대 맞고 한 대 때리는 식의 싸움.
키가 4미터나 되는 미노타우로스와 도현은 체급부터 달랐지만 그래도 승자는 도현이었다.
[산성장착]의 효과 중에 하나인 무게 증가로 체중 차이를 극복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같은 체중이라면 작은 쪽이 단단하다는 것을 증명하듯 도현은 차근차근 미노타우로스를 공략했다.
미노타우로스가 들고 있던 방망이는 결국 도현의 방패를 두드리다 깨졌고, 미노타우로스의 단단한 몸도 그 뒤를 이었다.
정강이뼈에서 생긴 작은 균열이 미노타우로스의 패배를 만들었다.
한 번 생긴 약점을 도현이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미노타우로스가 쓰러질 때까지 산성병사에게 막혀서 헛힘만 쓰던 뿔바실리스크는 원거리에서 날린 도현의 화살에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졌다.
바실리스크의 무서움은 석화 브레스다.
석화 가스를 뿜어내는데 거기에 닿으면 몸이 돌처럼 굳는다.
그런데 그 역시 생체에만 작용한다는 약점이 있다.
산성병사같은 무생물 소환체에겐 효과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뿔바실리스크는 산성병사들에게 경기장 한쪽 구석으로밀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난동을 부리다가 끝내 허무하게 쓰러진 것이고.
“휴유, 지치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란 말이지.”
도현이 오랜만에 투구를 벗으며 중얼거렸다.
- 로드, 여기서 그만 하실 생각은 당연히 없으신 거죠?
에포르가 도현을 말리는 것을 포기했다는 듯이 물었다.
어차피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만하자고 설득한 것이 몇 번인가.
죽어라 말을 들어먹지 않는 로드였다.
“벽에 새겨진 문이 전부 합쳐서 일흔둘이야. 방금 상대했던 몬스터의 숫자도 일흔 둘이고.”
- 그러니까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 그래서 더 위험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래서 나도 지금까지 숨겨뒀던 것을 꺼낼까 생각중이다.”
에포르의 물음에 도현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도 이번에 도전하면 정말 위험할 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 숨겨뒀던 거라면 이번에 개방한 탑의 성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에포르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음, 그거.”
- 하지만 로드, 탑의 성은 지불해야 할 대가가 너무 큽니다.
에포르가 도현의 말에 난색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탑의 성은 대가를 주고 힘을 빌리는 형태의 성이었다.
그 대가란 것은 마력.
하지만 도현이 지닌 마력으로는 탑의 성에서 힘을 빌리기 어려웠다.
만약 탑의 성을 사용한다면 도현의 마력은 그대로 바닥을 드러내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잖아. 정상이 눈앞인데 예서 말 수야 있나.”
- 로드···.
도현이 투구를 눌러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단계에 도전한다.’
그리고 도현은 에포르가 걱정을 하건 말건 다음 단계에 대한 도전 의사를 밝혔다.
[2구역 관문 최종 시험을 시작합니다.]
그러자 이전과 달리 마지막 시험임을 전하는 시스템 알림이 들렸다.
그리고 도현이 딛고 선 콜로세움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쿠르르릉 쿠르릉.
- 어엇, 지진입니다 로드!
에포르가 놀라서 고함을 질렀다.
도현은 다급히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가 급하게 산성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탈! 벗어나라. 중앙 지역에서 벗어나!”
도현이 고함을 지르며 재빨리 콜로세움 외곽으로 달렸다.
그리고 도현과 의지가 이어진 산성병사들이 재빨리 사방으로 흩어졌다.
콰과과과광!
그리고 그 순간 투기장의 중앙, 검은 흙이 깔린 부분에서 뭔가가 솟아올랐다.
그것은 땅에서 솟구치며 커다란 입을 벌려 검은 흙을 모두 집어 삼켰다.
콰직, 콰드드득!
그런 중에 도현의 산성병사 몇이 함께 휩쓸려 들어가 씹혔다.
지금껏 안전했던 중앙 지역에서 허를 찌르며 등장한 몬스터.
- 자이언트 웜입니다 로드!
에포르가 도현의 곁으로 따라붙으며 고함을 질렀다.
“나도 보고 있다. 저런 규격 외의 놈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밖으로 드러난 부분만 20미터는 될 것 같은 거대 지렁이.
놈은 몸의 지름이 10미터에 가까울 정도로 두꺼웠다.
그렇다면 땅 밑에 숨어 있는 부분은 얼마나 된다는 걸까?
도현은 100미터 이상의 웜을 상상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 때, 놈이 몸을 사방으로 돌리며 적들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주둥이 부분이 곧바로 도현과 에포르 병사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쯧, 내가 메인이란 사실을 알아차린 모양인데?”
- 로드! 어떻게 합니까?
에포르가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쓰으, 어쩌긴. 저건 지금 내가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야. 산성 점유율 80%는 넘어야 이빨을 견딜 수 있을 걸?”
- 로드, 지금 그렇게 느긋하게 말씀하실 때가 아닙니다. 자이언트 웜이 옵니다!
“나도 보고 있어!”
타다다다다닥!
도현은 대답과 동시에 콜로세움투기장의 외곽을 따라 달렸다.
콰과과과곽!
그리고 자이언트 웜은 도현과 에포르 병사가 있는 곳을 찍어 누르며 입으로 삼켰다.
순식간에 커다란 구덩이가 파이며 흙들이 사라졌다.
모두 자이언트 웜의 입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그 사이에 도현의 산성병사들이 일제히 자이언트 웜에게 돌격해서 그 몸통을 찌르고 두드렸다.
하지만 땅속을 헤집고 다니는 자이언트 웜의 가죽은 산성병사들의 칼이나 창으론 상처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역시 안 되나?”
도현도 그것을 확인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던 것이다.
- 로드! 또 옵니다.
커다란 구덩이 하나를 만들었던 자이언트 웜이 몸을 세웠다가 다시 도현을 향해서 입을 내리찍었다.
순식간에 몸이 길어지며 도현을 향해 밀려드는 커다란 입.
도현은 기겁을 하며 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날렸다.
콰과과과곽! 우당탕탕!
자이언트 웜은 다시 한 번 애꿎은 투기장 바닥을 파먹었고, 도현은 흙바닥을 요란하게 굴렀다.
“쓰읍. 그 새끼!”
도현은 몸을 가누며 자이언트 웜을 노려봤다.
손목보호대의 활을 잠시 떠올렸지만 그것으론 답이 없었다.
자이언트 웜을 죽이기 전에 도현 자신이 먼저 저 이빨에 씹힐 것이다.
결국 방법은 하나 밖에 없었다.
“에포르, <설인의 수정> 그거 내놔.”
도현이 다시 가장자리를 타고 달리며 에포르에게 말했다.
그러자 도현의 손에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면서 얻은 <설인의 수정>이 나타났다.
순도 높은 얼음의 마력을 품고 있는 <설인의 수정>은 일종의 재료 아이템이었다.
이후에 제작 능력을 지닌 헌터를 통해서 아이템 제작에 쓸 계획으로 보관해 뒀던 것이다.
마력을 품은 재료들은 여러 용도로 쓸 곳이 많았다.
“이렇게 쓰기엔 아까운데 말이지.”
쉽게 얻기 어려운 아이템이었다.
꽤나 고품격의 마력 아이템이라 도현의 속이 쓰렸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살고 봐야 할 때였다.
<설인의 수정>을 손에 쥔 도현이 심상 속에서 그의 세 번째 성을 떠올렸다.
피사의 사탑처럼 생긴 잿빛 탑이 도현의 부름에 반응했다.
그리고 <설인의 수정>이 빛을 내면서 흐릿하게 변했다.
그 대신에 도현이 떠올린 심상 속의 잿빛 탑이 아래쪽에서부터 하얀 색으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웅!
동시에 도현의 몸 주변에 새하얀 마력이 실처럼 흘러나와 뭉치기 시작했다.
콰롸롸롸롸롸롸!
뭔가를 느낀 모양인지 자이언트 웜이 도현을 향해 포효를 터트렸다.
그리고 그 입에서 녹색의 액체가 살수차가 물을 뿌리듯이 쏟아져 나왔다.
치치치칙 치지지직!
- 로드!
에포르 병사가 놀라서 도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녹색 액체에 맞은 에포르 병사가 흐물흐물 녹기 시작했다.
- 로드, 위험합니다.
녹아서 땅바닥으로 흘러내리면서도 에포르는 도현을 걱정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도현은 안전했다.
도현의 몸에서 나온 새하얀 마력의 실들이 고치처럼 도현을 둘러싸고 보호했던 것이다.
자이언트 웜의 녹색 독액은 도현에게 닿지 못하고 투명한 벽을 만난 듯이 흘러 내렸다.
“크으으으!”
정작 도현의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탑의 성이었다.
<설인의 수정>을 대가로 바치고 탑의 성의 힘을 소환했다.
그러자 탑의 성 삼분의 일이 새하얗게 변하더니 엄청난 냉기가 도현에게 흘러들었다.
도현에게 흘러든 냉기는 탑이 뿜은 것의 수만 분의 일도 안 되는 수준.
그렇지 않았다면 도현은 이미 얼어 죽었을 것이다.
도현의 몸을 휘감은 하얀색 마력.
실처럼 흘러나온 것이 이리저리 엉키더니 허공에 커다란 마법진을 만들어갔다.
새하얀 마력으로 이루어진 원형의 마법진이 도현의 전면에 수직으로 만들어졌다.
그 마법진이 완성된 순간 도현은 저도 모르게 양 손바닥을 자이언트 웜에게로 향했다.
쩌저저저저저정!
동시에 마법진에서 자이언트 웜에게 뻗어가는 새하얀 얼음 기둥.
그것은 마치 창처럼 뻗어서 자이언트 웜을 관통했다.
크롸롸아아아.
쩌저저적!
결과는 너무도 단순하고 명확했다.
얼음 창에 꿰뚫린 자이언트 웜이 통째로 얼어붙은 것이다.
“으윽!”
그리고 도현도 한 순간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어지러움에 비틀거렸다.
쩌적! 쩌저적!
그 순간, 마법진에서 균열이 생기더니 그 균열이 얼음기둥을 따라서 자이언트 웜에게까지 전해졌다.
쩌저저정 쩌정! 파지지직!
그리고 얼음 조각에 균열이 생겨 부서지듯, 그렇게 자이언트 웜이 박살난 것은 순식간이었다.
- 로드! 이겼습니다! 이겼다고요!
에포르가 도현의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떠들었다.
“나도 알아! 좀 조용히 해. 머리가 울려서 죽겠다 에포르.”
도현이 인상을 쓰며 에포르를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2구역 관문의 최종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2구역 관문의 1인 도전을 확인합니다.]
[1인 도전으로 최종 시험을 통과하는 업적을 확인합니다.]
[경이로운 업적에 보상이 상승합니다.]
[3구역으로 지금 이동하시겠습니까?]
“자, 잠깐. 워워워. 진정하라고 싸움이 끝났으면 파밍을 해야지. 이대로 가면 억울하잖아!”
도현이 어지러움에 비틀거리다가 시스템 알림에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서둘러 자이언드 웜의 사체를 향해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