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는 회귀해서 군주가 되었다-16화 (16/184)

16. 도현, 크라운을 만들다(1)

16. 도현, 크라운을 만들다(1)

“자, 그럼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자기소개는 대충 들었는데, 거기 성희씨?”

“네, 네?!”

도현의 부름에 성희가 화들짝 놀라며 꿈틀거렸다.

“성희, 그거 본명 맞나?”

“맞아···, 아뇨. 아니에요.”

성희는 맞다고 대답하려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곧바로 말을 바꾸었다.

“아니란 말이지? 그럼 본명이 뭐야?”

도현이 그런 성희를 보며 물었다.

“배, 배삼순이요.”

“배삼순?”

“그래요. 배삼순이에요.”

도현이 확인하듯 물어보자 성희는 맥빠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좋아. 그건 확인을 해 보면 알겠지. 하지만 이게 거짓말이면 뒤는 없어. 우린 신뢰하지 못할 사람을 쓰지 않으니까.”

도현은 그런 성희에게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란 표현으로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은근히 강조했다.

그리고 김재홍을 쳐다봤다.

과거, 김재홍은 1구역에서 죽었다.

그는 3기 헌터들이 들어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1기와 2기 헌터들의 협공을 받아서 죽었다.

그 전까지 김재홍은 몇 번이나 헌터들과 충돌하며 사상자를 냈다.

사체업자 열 명을 죽인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저 그가 밖에서 열 명을 독살하고 포탈을 넘어 왔다는 이야기만 퍼졌다.

그래서 헌터들은 김재홍을 무슨 살인마로 생각했고, 마주칠 때마다 도망을 가거나 공격을 하거나 했다.

그렇게 충돌이 거듭되다가 결국 재홍이 헌터 몇을 죽이는 일이 생겼고, 이후엔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반복되었다.

헌터 빌런 1호로 불리며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이가 바로 살인마 김재홍이었던 것이다.

도현이 4기 헌터로 들어왔을 때에는 이미 죽고 없었던 사람이지만 꽤나 오래 이름이 남았던 사람이기도 했다.

“넌 김재홍이지?”

“그렇습니다.”

재홍은 버팅기지 않고 순순히 대답했다.

“너는 우리와 함께 가자.”

“네?”

“우리가 널 키워주겠다는 거다. 구체적으로는 내 직속으로 삼겠다는 거고. 싫으냐?”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그냥 그러려니 해. 어차피 넌 갈 곳도 없고, 기댈 곳도 없잖아.”

“그야······.”

“나는 네 사정을 모두 들었고, 이해도하고, 공감도 한다. 그래서 데리고 가고 싶은 거고. 무슨 말인지 알아?”

“네에.”

“그러니까 넌 나하고 함께 가는 거다. 알겠냐?”

“씹다가 버리려는 건 아닙니까?”

재홍이 고개를 들어 도현을 노려보며 물었다.

“뭘 씹다 버려? 니가 껌이냐? 난 그런 거 안 좋아한다.”

“알겠습니다.”

재홍은 도현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사실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당장 반항할 틈도 보이지 않는데 뭘 어쩌겠는가.

“좋아. 그럼 저 아가씨가 남았네?”

도현의 시선이 다시 성희에게로 향했다.

“저어, 저도 좀 봐 주시면 안 될까요?”

성희가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씁, 그딴 능력은 씨도 안 먹혀! 어디서 수작이야?!”

도현이 그런 성희에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척!

순간, 에포르 병사의 검이 성희의 목에 닿았다.

“아, 죄송······.”

* * *

“그렇게 보내도 되는 겁니까?”

재홍이 도현을 보며 물었다.

성희를 놓아준 것에 대한 의문이었다.

“왜? 목을 잘랐어야 했나?”

도현이 투구 속에서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닙니다. 살려둬도 문제될 거야 없겠죠. 던전에 대해서만 입을 다문다면 말입니다.”

“그래. 던전이 문제긴 하지. 하지만 괜찮을 거다. 그리 머리가 나빠 보이진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건 뭐였습니까?”

“뭘 묻는 거지?”

“그 볼품없어 보이는 왕관 표시 말입니다.”

“볼품없어 보이는?”

도현은 투구 속에서 눈썹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겉으로 듣기에는 그저 덤덤히 되묻는 목소리였다.

“삼각산 위에 작은 동그라미 하나씩 올려놓은 거 같은 모양이었지 않습니까.”

“그게 그렇게 보였나? 왕관처럼 안 보이고?”

“크라운이라고 해서 그나마 연상을 한 거지, 아니었으면 누가 그걸······.”

“됐어. 어차피 그건 상징일 뿐이야.”

도현은 더는 매몰찬 평가를 듣고 싶지 않은지 재홍의 말을 끊었다.

“상징이라고요?”

“헌터들 중에서 우리의 손을 탄 이들이 있지. 그들은 그 왕관을 알아볼 거야.”

“그래서 돌아가서 그 표시를 내걸라고 하신 겁니까?”

“성희, 그 여자가 그걸 내걸면 누군가 찾아갈 거야.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우리가 준 정보를 확인하면 판단을 하겠지.”

“그 정보란 것이 도대체 뭡니까?”

“음? 그러고 보면 너도 알긴 해야겠군. 지금은 가진 것이 없으니 다음에 볼 때는 그걸 가져다주지.”

도현은 현실에 있을 서류봉투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설인여왕의 가죽 주머니>에 그것들도 좀 챙겨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어딜 가는 겁니까?”

도현이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재홍이 물었다.

그들은 1관문 던전의 입구를 다시 돌무지로 막아 놓았다.

그 후, 성희는 헌터들이 있는 신서울로 돌아가고, 도현과 재홍만 따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네가 알아야 할 것이 있어서 그곳으로 가는 거다. 그리고 좀 더 실전 경험을 하고 난 후에, 관문에 도전을 해야지.”

“아까 그 던전 말입니까?”

“그래. 어차피 지나야 할 과정이다. 아주 기초적인 과정이지.”

도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재홍을 데리고 1구역과 2구역의 경계까지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재홍은 구역의 경계를 마음대로 오가는 도현과 그렇지 못한 자신을 확인했다.

“그러니까 그 관문 던전을 지나면 여길 마음대로 오갈 수 있다고요?”

“그렇지. 그렇게 되면 너는 굳이 다른 헌터들과 마주칠 일이 없어지는 거다. 적어도 그들이 이곳 2구역으로 넘어올 때까지는.”

도현이 2구역에서 1구역에 있는 재홍을 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그러니까 이제부터 네가 해야 할 일은 한 가지다. 죽어라 실전 경험을 하는 거.”

“실전 경험을 해 봐야 능력이 오르는 것도 아니라면서요? 1관문을 넘어야 그 상태창이란 것도 생기고, 성장 가능성도 생기는 거라고 했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하지만 기초는 항상 중요하지. 그나마 1관문에 관문지기가 없으니까 마지막은 쉽게 갈 수 있어. 그리고 함정 구간이 있는데, 그것도 네 특성이면 무난할 거고.”

“그렇습니까?”

“물론 네 능력을 최대한 일깨운 다음이란 조건이 붙지. 어설프게 거길 들어갔다간 죽는다.”

“알겠습니다.”

“그럼, 죽자고 해. 어떻게든 관문을 통과해야 좀 쓸 만해 질 가능성이라도 생기니까.”

“가시는 겁니까?”

“너희 때문에 해야 할 일을 못했거든. 이쪽에서 해야지. 그리고 너는 알아서 움직여. 관문 던전 주변에 베이스 캠프 차리면 내가 알아서 찾아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잘 쓰겠습니다.”

재홍이 도현이 준 단검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림자의 마무리 단검>

어둠 속에서 은신 효과가 증가한다.

암습 후 다음 공격의 효과가 증폭된다.

원래는 시스템 장비지만 아직 상태창을 열지 못한 재홍은 그냥 손에 들고 다녀야 하는 단검이었다.

그래도 단검이 지닌 효과는 그대로 나타난다.

언제든 어두운 곳에서 은신 효과를 볼 수 있고, 기습 후에 다음 공격이 더 강하게 들어간다.

그래서 단검의 이름에 마무리란 말이 붙어 있는 것이다.

“그럼 수고 해라.”

도현은 경계 너머에 재홍을 남겨두고 2구역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저대로 둬도 될까요?

옆으로 따라붙은 에포르 병사가 걱정스런 음성으로 물었다.

“뭐? 뭐가 문젠데? 배신? 아니면 저 놈이 위험할까봐?”

- 둘 다입지요. 배신을 해도 문제고, 죽어 버려도 문제 아닙니까.

“에포르. 저 재홍이란 놈은 어차피 갈 곳이 없는 놈이야. 그러니까 배신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거지. 그리고 전에도 저 놈은 3기 헌터들이 들어올 때까지 무사했던 놈이야. 아이템 하나 없이도.”

- 그러니까 그 단검 하나 던져 줬으니까 괜찮을 거란 말씀입니까?

“그렇지. 그리고 내가 종종 들러서 확인하기도 할 거고.”

- 그럼 그 배삼순이란 여자는 어쩔겁니까?

“그 쪽도 문제없어. 그 크라운 표시를 내보이면 내가 심어 놓은 씨앗들이 그 여자를 찾아갈 거야. 그리고 본격적으로 크라운의 조직이 만들어지겠지.”

- 로드의 세력이 드디어 만들어진다는 말씀이군요?

“그걸 위해서 살려 보낸 거야. 일종의 허브 역할을 하는 거지. 뭐 능력 없으면 거기서도 도태되겠지만, 과거의 그녀를 생각하면 아마 잘 할 거야.”

- 그 여자의 과거를 아십니까?

“그 여자의 과거라고 하니까 이상하잖아. 어쨌건 쉽게 죽을 여자는 아니야.”

도현은 그렇게 말하며 성희란 여자에 대해서 떠올렸다.

과거의 기억에 그녀는 어떤 골드 헌터의 밑에 있었다.

그러면서 여러 남자를 현혹시켜 끌고 다녔다.

여왕벌.

사람들은 그녀를 그렇게 불렀지만 그녀가 실제로 어떤 골드 헌터의 명령을 받는 것은 알지 못했다.

골드 헌터를 대신해서 악명을 뒤집어쓰고 살았던 여자였다.

‘이번에는 적어도 그럴 일은 없겠지.’

도현은 내심 그렇게 중얼거리며 <엔트의 열매>를 복용하기 위해 안전한 장소를 찾아 움직였다.

* * *

성희는 몇 번의 위기를 넘기고 신서울로 돌아왔다.

포탈 홀 언덕 아래에 마을을 만들며 헌터들은 신서울이란 이름을 붙였다.

성희는 함께 다니던 재홍이 없어진 것을 늑대들의 습격 탓으로 돌렸다.

한꺼번에 수십 마리의 늑대가 나타나는 바람에 따로따로 흩어져 도망쳤다고.

재홍도 무사히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그런 성희의 말은 그녀가 입은 잔부상들로 신빙성을 얻었다.

여기저기 상처 입은 그녀의 모습이 사람들의 동정심을 산 탓이다.

물론 찔끔찔끔 사용한 성희의 특성도 한 몫을 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조금씩 호감을 심었으니 대부분 그녀의 말을 믿어 준 것이다.

성희는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온 후, 천막의 입구에 작게 크라운을 그렸다.

도현이 보여준 그대로.

“그건 뭐니?”

제일 먼저 성희와 친한 민자가 다가와 물었다.

“그냥, 왕관이야. 재미있지 않아?”

“미친 년. 그걸 왕관이라고 그렸냐?”

민자는 성희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꾸하곤 제 천막으로 들어가 버렸다.

성희는 혹시나 하며 가졌던 기대가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말한 ‘우리’의 끈이 닿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의외의 사람이 늦은 밤, 성희를 찾아왔다.

“뭐야? 자옥이 언니가 또 뭐라고 해?”

성희는 자신을 찾아온 희애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한 번 오래.”

희애는 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을 생각이 없다는 듯이 간단하게 용건만 말했다.

“또 왜?! 나는 나대로 살겠다고 했잖아.”

성희가 살짝 신경질을 내며 희애를 노려봤다.

“알아, 너한테 다시 우리한테 들어오란 소리는 안 할 거야. 자옥이 언니 알잖아. 강요 같은 건 안 해.”

“그럼 뭔데?”

“나도 몰라. 그냥 언니가 너 한 번 조용히 보자더라.”

“휴우, 알았어. 언제 가면 되는 거야? 지금?”

“빠르면 좋지. 언니 새벽까지 잘 못자는 거 알잖아. 지금 가도 상관없어.”

희애의 대답에 성희는 망설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안 보고 살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여자 헌터 200명 중에서 160명 정도가 자옥의 밑에 있었다.

잘 나가는 1% 클럽의 마담이었던 자옥이다.

그 바닥에서 자옥을 모르면 바닥 물 먹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니 자옥의 밑에 160명이나 되는 여자들이 몰려 있는 것이다.

“저 왔어요.”

자옥의 천막으로 들어가자 투박한 나무 탁자에 앉아 한 손으로 이마를 받치고 있는 자옥이 보였다.

“이거 어디서 봤니?”

그런데 자옥이 불쑥 손수건을 펼쳐 보이며 물었다.

성희의 눈에 손수건에 그려진 왕관이 선명하게 날아와 박혔다.

“언니!”

성희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자옥을 불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