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뉴어스에 들어온 헌터들(3)
15. 뉴어스에 들어온 헌터들(3)
“크흐흐흐. 그래? 안 되긴 했지. 그런데 말이야. 난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거든. 놈들이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내가 푸짐하게 상을 차리면 놈들이 몰려와서 퍼먹을 거란 것도 알고 있었어!”
“네?”
“놈들은 그런 놈들이야. 조금이라도 남을 괴롭히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놈들. 인성이라곤 한 올도 없는 것들이지. 내가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조차 허락하지 못하는 놈들.”
“그, 그래서요?”
“나하고 아버지, 그리고 그 사채업자 놈들까지. 한 상에 앉아서 먹고 마셨지. 크하하하하. 그리고 남은 것은 나뿐이었다.”
“그, 그게 무슨?!”
“아버진 뻔히 알면서도 복어알을 가득 떠서 씹어 삼키셨지. 놈들이 경쟁하듯 퍼먹게 하려고.”
“보, 복어알이라니요?”
“매운탕의 주재료가 그거였거든. 크흐흐흐. 아버진 굳이 드시지 않아도 상관없었어. 놈들은 나와 아버지가 수저를 놀리는 것조차 못마땅해 했으니까.”
“그런데 왜······.”
“내게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으셨던 거다 우리 아버지는. 그리고 놈들에게 복수를 하고 싶으셨던 거고.”
“아, 아아!”
“죽은 놈들과 아버지를 한 방에 그대로 눕혀두고 나는 포탈을 넘어왔다. 어차피 다음 회차의 헌터들이 들어오면 나에 대해서도 알려지겠지.”
“모, 몰랐어요. 정말로.”
“그런데 그런 내 뒤통수를 성희씨, 네가 친 거지. 아주 거하게.”
“미,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제발!”
“왜? 이 던전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좀 더 높은 곳으로 가려고 했나? 응?”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나는 몰랐어요. 재홍씨가 겉으로 보기엔 고생 없이 편하게 산 사람처럼 보였어요. 뭐든 쉽게 쉽게 일처리도 하고 그러니까······.”
“그래서 등에 칼을 꽂았나? 지금까지 그렇게 애틋하게 굴더니? 응?”
“재, 재홍씨···.”
“크흐흐흐. 내 인생이 다 그런 거지. 이런 막장에서 좋은 여자 하나 만났나 싶었지. 그런데 그 여자가 등에 칼을 꽂네? 응? 성희씨, 당신 같으면 그런 여자를 어떻게 할 거 같아? 응?”
“······.”
성희는 재홍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신이라면?
볼 것도 없이 심장에 칼을 꽂았을 것이다.
“살려주면 안 될까? 응? 나 살고 싶은데······.”
한참 뒤, 성희가 깊이 잠긴 목소리로 들릴 듯 말 듯 말했다.
우뚝.
성희의 몸에서 움직이던 재홍의 칼끝이 멈춘 것도 그 순간이었다.
* * *
“음? 막았던 입구가 열렸어?”
도현은 1구역의 관문 던전이 있던 곳에 도착해서 깜짝 놀랐다.
자신이 무너뜨렸던 동굴 입구가 열려 있었다.
누군가 무너진 돌과 흙을 치우고 좁은 통로를 만들어 놓았다.
도현은 급히 마력을 끌어 올려 동굴 안쪽을 살폈다.
‘사람이 둘 있군.’
- 벌써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 있습니까? 아니 그건 그렇고 여길 어떻게 발견했을까요?
에포르 병사가 도현의 곁으로 다가붙으며 물었다.
‘일단 상황을 좀 살펴볼까?’
도현은 기척을 죽이고 조심스럽게 동굴로 다가갔다.
하지만 동굴 안쪽으론 들어가지 않았다.
어차피 몇 미터 되지 않는 통로고, 그 안쪽은 던전이었다.
지금 먼저 들어온 두 사람은 그 던전의 입구에 있었다.
입구에 다가가 귀를 기울이자 곧 사내의 음침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말이야, 좀 조용히 살고 싶었어. 그런데 세상이 날······.”
도현은 조용히 움직이지 않고 사내의 이야기를 들었다.
- 로드, 여자가 잡힌 모양인데 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에포르 병사는 도현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자 그렇게 물었다.
‘당장 여자를 죽일 거 같진 않으니까 기다려 보자. 괜히 자극하다가 한 순간에 여자가 죽을 수도 있어.’
도현은 입구에서 사내가 있는 곳까지의 거리를 가늠했다.
그리고 사내가 여자의 몸에 칼을 대고 있는 상황도 마력을 통해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하지만 아무리 마력을 사용해도 눈으로 보는 것만큼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긴 어려웠다.
게다가 재홍이란 사내의 이야기는 중간에서 끊기 어려운 뭔가가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재홍의 이야기가 끝났다.
그리고 한참의 침묵 후에 성희가 말했다.
“살려주면 안 될까? 응? 나 살고 싶은데······.”
워낙 작은 목소리였지만 도현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이전과 달리 성희란 여자의 진심이 담긴 것임도 알 수 있었다.
도현은 재홍의 선택이 궁금했다.
사실 지금 상황에서 재홍이 성희란 여자를 죽이는 것을 막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재홍을 먼저 죽이려 했던 것이 성희라면 재홍이 그녀를 죽일 명분은 충분했다.
이곳은 뉴어스, 지구의 법이 적용되는 곳이 아니다.
뉴어스에서 성희는 죽을 짓을 한 것이다.
도현의 판단은 그랬다.
하지만 선택은 재홍의 몫이었다.
도현은 조용히 그 결정을 기다렸다.
- 이야기가 이렇게 되는 겁니까? 저 여자가 잘못한 거군요. 죽어도 할 말이 없을 겁니다.
에포르 역시 도현과 같은 생각인 모양인지 그렇게 말했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어차피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지 못해. 이제 두 달 후면 2기 헌터들이 들어오겠지. 그리고 나에 대한 이야기도 퍼질 거고.”
재홍이 한숨을 쉬듯이 말했다.
“어차피 밖에서 벌어진 일이잖아요. 여긴 포탈 안이라고요. 밖의 일로 문제 삼진 않을 거예요.”
성희가 재홍을 설득하듯 말했다.
“웃긴 소리. 그래봐야 살인자니 뭐니 하면서 지랄들을 하겠지. 아니면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거나.”
재홍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어쩌겠다고요?”
성희가 물었다.
“떠나야지. 이제부터 혼자 살아야겠지.”
“나, 살려줘요. 그럼 내가 재홍씨 뒷바라지 할게요.”
“크흐흣. 널 믿으라고?”
“내가 나쁜 년인 건 맞아요. 하지만 난 몰랐어요. 재홍씨가 그런 사람인 줄은.”
“이젠 날 안다는 거야?”
“나 같은 밑바닥 인생은 번지르르 한 사내놈들을 믿지 않아요. 솔직히 재홍씨가 그런 놈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이젠 아니고?”
“그래요. 정말 크게 실수를 한 거죠. 돌이킬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 번만 더 믿어줘요. 나도 재홍씨를 믿을게요.”
“웃기지 마!”
“좋아요. 그래서 나 같은 거 죽여서 뭐 할 거예요? 나 같이 더러운 거 죽여 봐야 기분이 좋아질 거 같아요? 그럼 죽여요! 썅!”
성희가 악을 썼다.
재홍은 그런 성희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곳 던전에 대해선 입도 뻥긋하지 않을 게요. 그러니까 좀 살려 줘요. 당신이 늑대들과 싸우는 거 봤다고 해 줄게요. 그러다가 죽었다고 생각하도록.”
“날 죽은 걸로 해 주겠다고?”
“그래요. 그렇게 해 줄 테니까 재홍씨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요. 여기 던전에 들어가거나 말거나 맘대로 하고요.”
성희의 말에 재홍이 등 뒤에 있는 던전을 쳐다봤다.
저 입구에 접촉하면 머릿속에 알림음이 들린다.
[1차 관문의 도전자를 확인합니다. 도전자의 이름을 알려주십시오.]
1차 관문.
도전자 확인.
재홍과 성희는 그 알림을 듣는 즉시 손을 떼고 물러났다.
1차 관문이란 곳을 둘이서 통과할 거란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 1기 헌터들은 숲에서 맹수들을 만나면 도망치는 것도 버거운 상황이다.
물론 그 중에는 소수의 맹수와 싸워 이긴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싸워 이긴다고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죽은 동물의 사체만 전리품으로 남을 뿐이다.
그래서 헌터들은 될 수 있으면 싸움을 피하면서 이 세계의 정보를 얻기 위해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재홍과 성희는 그 중에서도 제일 깊은 곳까지 돌아다니는 팀이었다.
그건 재홍이 가진 특성 때문이었다.
재홍은 감지 능력이 뛰어났다.
맹수가 숨어 있거나 다가오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그리고 뭔가 이질적인 것을 잘 찾아냈다.
그래서 위험을 피해서 깊은 곳까지 오갈 수 있었다.
그러다가 재홍의 능력으로 이곳 무너진 돌더미 안에서 던전까지 발견하게 되었다.
성희는 지금껏 재홍의 능력에 빌붙어서 꿀을 빨고 있었다.
물론 성희도 헌터가 되면서 육체 능력이 많이 올랐다.
그래서 재홍의 곁을 따라 붙을 수 있었다.
게다가 성희도 각성해서 생명체를 현혹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정확하게 어떤 능력인지는 몰라도 마음을 파고들어 호감을 심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심지어 맹수와 마주쳐도 한 마리라면 그 능력으로 맹수를 무력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다가가 심장을 찌르면 한 방에 마무리를 지을 수 있다.
물론 적이 하나가 아니라면 대책이 없어지지만.
어쨌건 재홍과 성희는 그런 능력으로 서로를 도우면서 지금까지 함께 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던전을 발견한 후에 성희는 그 능력으로 재홍을 안심시키고 등을 찔렀다.
하지만, 재홍의 위기 감지 능력이 한 수 위여서 성희의 시도는 불발로 끝났고, 지금의 상황이 된 것이다.
“좋아, 그렇게 하자. 어차피 널 죽이는 것도 별 의미가 없는 일이니까.”
재홍은 결국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어차피 자신은 버린 인생이었다.
이제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홀로 살아야 할 상황인데, 성희가 무슨 짓을 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을 거 같았다.
사실상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건 재홍만의 생각일 뿐, 그걸 용납하지 못할 사람이 있었다.
“그건 내가 좀 곤란한데?”
동굴 입구에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난 것은 그 순간이었다.
“누, 누구냐?”
“누구세요?”
재홍과 성희가 깜짝 놀라 검은 그림자를 보며 물었다.
입구에서 들어오는 빛 때문에 사람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저벅, 저벅, 저벅!
하지만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역광이 아니었어도 얼굴은 볼 수 없었을 것임을 알았다.
그는 눈과 코 부분만 T자로 틈이 있는 투구를 쓰고 있었다.
게다가 온 몸을 두꺼운 갑옷으로 감싸고 있기도 했다.
“누, 누구냐?!”
재홍이 엉거주춤 일어나 칼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물었다.
“그거 치우지? 무기를 내미는 건 적의를 뜻하고 적의를 보이는 건 죽어도 할 말이 없다는 뜻이지. 죽고 싶나?”
도현이 재홍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 순간 동굴 안의 공기가 차갑고 무겁게 변했다.
“으윽?”
“이, 이게······.”
재홍과 성희가 놀란 표정으로 도현을 쳐다봤다.
“너희 정도는 손끝으로도 죽일 수 있다. 그러니 어설픈 반항은 할 생각도 말아.”
도현이 말했다.
“젠장!”
철크렁!
재홍이 손에 들고 있던 단검을 도현의 발치로 던졌다.
그의 위기 감지 능력이 절대 덤비지 말라고 충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희는 두려운 표정으로 도현을 올려봤다.
여전히 몸이 묶인 상태로 바닥에 누워 있었던 까닭이다.
“좋아. 판단이 빠르네. 오래 살겠어.”
챙그랑!
도현이 재홍이 던진 칼을 발로 툭 차서 밀어 주며 말했다.
재홍은 다시 돌아온 칼을 힐끗 보고는 도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어차피 그런 걸로 나를 어쩔 수는 없어. 용을 써봐야 박히지도 않아. 지금 내 몸 어디에 그걸 박을 거지?”
도현이 과시하듯 살짝 팔을 벌린 상태로 재홍을 보며 물었다.
재홍은 도현의 투구에 있는 T자형 틈을 떠올렸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런 곳을 공격하게 둘 정도로 허술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 이외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공격할 틈은 없어 보였다.
그 정도로 상대의 갑옷은 대단해 보였다.
“자, 그럼 이제 상황 정리를 해 보자고. 앉아. 그렇게 서 있지 말고.”
도현이 두 사람 앞으로 몇 걸음 다가와 그렇게 말하며 먼저 자리에 앉았다.
언제 다가온 것인지 에포르 병사가 나무 의자를 꺼내 주었다.
갑자기 등장한 에포르 병사의 모습에 재홍과 성희의 눈이 커졌다.
딱 봐도 사람이 아님을 알았던 것이다.
“앉으라니까?”
도현이 재홍을 보며 말했다.
재홍은 성희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