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뉴어스에 들어온 헌터들(2)
14. 뉴어스에 들어온 헌터들(2)
5천 명의 헌터들.
그들은 투입 전의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작게는 대여섯 명, 많게는 백여 명이 뭉친 무리가 생겼다.
그것은 투입 전에 세웠던 계획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물론 기존에 정부에서 계획한 대로 뭉친 이들이 제일 큰 세력이 되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을 모두 합쳐도 한 개 연대 즉 2500명이 되지 못했다.
절반 이상이 흩어져 독자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그나마 다행히 그런 중에도 한 가지 질서는 명확하게 잡혀 있었다.
매일 포탈을 통해서 보급되는 물자에 대한 분배.
그 분배는 명확하게 사람 숫자에 따라서 이루어졌다.
수가 많은 쪽에서 그 보급품을 선점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그것은 곧바로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자칫 유혈사태가 벌어질 뻔 한 상황.
이 때, 최고 지휘관이라 할 수 있는 연대장이 결단을 내렸다.
보급품에 대한 투명한 분배를 약속한 것이다.
어차피 포탈 홀에 일정 시간마나 나타나는 보급품이라 따로 숨길 방법도 없었다.
“그게 신의 한 수가 되었군.”
도현은 며칠 동안 헌터들의 상황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 나름 사람을 다뤄본 티가 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로드.
에포르 병사가 도현 옆에 포복을 한 상태로 말했다.
“보급품 문제를 그렇게 해결함으로서 첫 질서를 만들었어. 그리고 그걸 기준으로 다른 질서들을 만들었지.”
보급품을 정확하게 분배한다는 것은 그에 따른 행정절차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무리 별로 명단을 작성하고 인원 파악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걸 토대로 보급품 배급을 한다.
처음 계획대로 2개 연대의 열 개 대대, 쉰 개 중대로 조직을 꾸리진 못했다.
게다가 밖에서 정한 지휘체계도 무너졌다.
하지만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지고, 그 조직을 대표하는 우두머리들이 나왔다.
“그 우두머리를 대상으로 포섭에 들어가는 거지. 통제만 할 수 있다면 조직이야 어떤 구성이건 별 상관없는 일이니까. 제법 머리 쓰는 놈이 있는 거지. 여기든 밖이든.”
- 하지만 거기에 로드의 세력이 있다는 건 아무도 모르겠지요.
“내 세력? 아직은 아니지. 그냥 끈만 이어 놓은 거야.”
- 하지만 로드께서 말씀하신 그 골드 헌터란 놈들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역시 로드 한 분뿐이지 않습니까. 저들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겠지요.
“그렇겠지. 그리고 골드 헌터 놈들이 패악을 부릴수록 내가 유리해지는 거고. 물론 현실에서 공권력을 상대하는 것이 쉽진 않겠지만.”
- 로드께서 어련히 잘 알아 하시겠습니까. 이 에포르는 로드를 믿습니다.
“그래, 믿어라. 믿으면 복이 온다.”
도현이 그렇게 말을 하며 몸을 일으키자 에포르 병사가 물었다.
- 로드, 어디로 가십니까?
“여긴 한동안 저 상태로 유지될 거 같으니까 난 내 할 일을 해야지.”
- 로드께서 하실 일이라니요?
“저 놈들이 2구역에 도착하기 전에 던전들을 털어 먹어야지. 각 직업별로 특화된 던전들이 내가 아는 것만 서른 개가 넘어.”
- 그걸 로드께서 몽땅 차지하신다고요? 그럼 전력 불균형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전력 불균형?”
- 이곳 뉴어스가 헌터들을 육성하기 위한 공간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그걸 로드께서 몽땅 선점하면······.
“어차피 과거에도 골드 헌터 놈들이 다 쓸어갔던 거야. 그리고 그걸 다시 분배하지도 않았지. 적어도 나는 재분배는 할 생각이다만?”
- 정말이십니까?
“당연하지. 밑에 두고 부릴 놈들도 어느 정도는 힘을 쓸 수 있게 해야지.”
- 로드께서 굳이 부하들을 두고 부리실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요. 이 에포르가 있고, 산성병사들이 있지 않습니까.
“겨우 너하고 산성병사로 되겠냐? 시끄럽고! 일단 가자.”
* * *
도현은 열흘에 한 번 정도 1구역의 헌터들을 살피기 위해 돌아왔다.
그 외엔 2구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던전을 찾아 최초 클리어의 타이틀을 휩쓸었다.
물론 그에 따라 H.Point도 가파르게 쌓여갔다.
그리고 그 포인트는 다시 1구역의 유적 폐허에 있는 시스템 상점에서 아이템이나 스킬 따위로 바뀌는 선순환이 이어졌다.
- 로드, 드디어 숲의 성 점유율을 30% 이상으로 끌어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1구역 헌터들을 살피러 가는 길에 시스템 상점에 들러 쇼핑을 마치고 나오는 길.
에포르 병사가 호들갑을 떨었다.
이전에 <떡갈나무 새싹>을 흡수하면서 7%가 올랐던 숲의 성 점유율은 그 후로 몇 가지 특수 아이템을 흡수하면서 26%까지 올라 있었다.
그런데 이번 시스템 상점 특수 항목에서 숲의 성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었다.
2만 포인트를 주고 <엔트의 열매>를 구입한 것이다.
에포르가 호들갑을 떠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다.
“이걸 흡수하면 점유율이 얼마나 올라갈까?”
- 로드의 마력심장이 그 동안 조금 더 성장했으니 효율이 올라갈 겁니다. 그래서 지금 숲의 성 26%인 점유율이 31% 이상으로 올라갈 거라고 예상합니다.
“흐음. 31%라. 드디어 활용 가능한 수준이 된다는 거네? 생각보다 성의 점유율을 높이는 게 쉽지 않네.”
- 아직 2구역의 던전들이 많이 남았습니다. 최초 클리어 보상으로 포인트 2천을 얻을 수 있으니 적어도 2만 포인트나 3만 포인트 상품을 하나는 더 구입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걸로 어찌어찌 세 번째 성까지는 활성화가 가능할 거란 말이지.”
- 그렇습니다. 로드.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거기다가 운이 좋다면 성들 중에 하나의 점유율을 50% 이상으로 올릴 가능성도 없진 않습니다.
“그야 그러려면 던전에서 아이템 운이 좋아야겠지.”
- 로드를 믿습니다!
“운 따위를 믿어서 어디에 쓰게? 일단 어디 가서 <엔트의 열매>나 흡수를 해야 하는데 어디가 좋을까?”
그냥 흡수라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고 위험할 일도 없다.
그래서 굳이 장소를 따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도현은 <엔트의 열매>도 그냥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복용 후 흡수를 할 것이다.
복용 후에 마력 연공법으로 마력 수치를 높이고, 이후에 남은 기운을 흡수해서 성의 점유율을 높인다.
이것이 지금까지 도현이 성의 기운을 지닌 아이템을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 가까운 곳이라면 1구역 관문이 있는 곳이 어떻겠습니까? 아직 헌터들의 활동 범위가 아닐 거 같은데 말입니다.
에포르가 1구역 관문이 있는 동굴을 추천했다.
도현은 에포르의 말에 따라서 그곳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곳에서 어떤 인연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예상치 못하고.
* * *
“내가 말이야, 좀 조용히 살고 싶었어. 그런데 세상이 날 가만히 두질 않잖아.”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재홍씨 제발······.”
“쉬, 쉬쉬쉬이. 조용히 해야지. 응? 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고. 그런데 그걸 안 들어주겠다는 거야? 응?”
“흐흐흑, 흐흑!”
“그래. 조용히, 조용히 하고 내 말을 들어 봐. 그러니까 세상이 날 가만히 두질 않았단 말이야.”
김재홍은 칼날을 여자의 귀밑에서 쇠골까지 천천히 이동시키며 말했다.
아슬아슬하게 피부를 상하지 않을 정도로 누른 칼날이 섬뜩하게 움직였다.
“내가 여길 왜 들어왔는지 모르지? 크크큭.”
김재홍은 눈을 희번득거리며 여자에게 물었다.
“모, 몰라요. 흐흑.”
“세상엔 같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다는 놈들이 있어. 그걸 유식한 말로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하지.”
김재홍은 연신 칼끝을 여자의 피부에 대고 움직였다.
그러다가 가끔 힘이 과해서 얕은 상처가 생기기도 했다.
여자는 두려움에 떨면서 최대한 몸을 움직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몸이 떨릴 때마다 김재홍의 칼날에 피부가 베이고 있었다.
“나한테 그런 놈들이 있었어. 흔한 이야기지. 사채업자들 이야기 말이야.”
김재홍은 사채업자란 말을 하면서 눈에 붉은 빛을 번뜩였다.
“아버지가 사채를 썼어. 어머니 병원비가 필요했거든. 그런데 그걸 제대로 갚질 못한 거야. 어머니 곁을 지키느라 일을 제대로 못했거든.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응?”
“재, 재홍씨, 제발······.”
“그건 답이 아니지. 성희씨, 그건 답이 아니잖아!”
“아악!”
김재홍의 칼 끝이 성희의 어깨를 깊이 찌르고 들어갔다.
“미, 미안해요. 재홍씨! 살려줘요!”
“그래, 성희씨, 그러니까 대답을 해 봐.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응? 그리고 나와 내 동생에게. 참고로 내 동생은 아주 예쁜 여동생이었어.”
“흐흐흑.”
성희는 재홍의 이야기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비극은 너무도 선명했다.
사채업자에게 걸린 불행한 가족의 이야기는 굳이 듣지 않아도 결말이 뻔해 보였다.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냈다간 재홍의 분노만 키우는 꼴이 될 것 같았다.
“결국 돈이 없어서 우리 어머니는 병원에서 쫓겨났지. 그리고 그 사이에 집이 없어지고 여동생이 사채업자 놈들에게 끌려간 사실을 아시고 충격을 받아 돌아가셨어. 아버지는 여동생을 찾으러 갔다가 허리 병신이 되고.”
재홍은 뭔가에 홀린 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동안 가슴에만 묻어 두었던 한스런 이야기를 분노와 함께 토해내는 중이었다.
“내, 동생. 그 예쁜 것이 어떻게 되었을까? 응? 겨우 한 달도 되지 않아서 그 귀여운 것이 손목을 그었어.”
“아아!”
성희는 재홍의 이야기에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자신 역시 시작이 비슷했었다.
그 때, 자신도 하루에도 몇 번이나 죽음을 떠올리곤 했었다.
“그런데 못 죽었어. 대신에 더 험한 꼴을 당했지. 그리고 더 강한 약을 억지로 먹어야 했고. 맞아, 그 예쁜 것은 약 때문에 죽었어. 과다복용 뭐 그런 걸로. 크흐흐흐. 제 스스로 목숨을 끊지도 못하고 죽임을 당한 거지. 크하하하하.”
재홍의 광소에는 깊은 한과 분노가 담겨 있었다.
재홍은 한동안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재홍은 다시 성희를 노려봤다.
콰곽!
재홍의 칼이 다시 성희의 어깨를 찍었다.
“아아악!”
“아직 내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어 성희씨.”
“아,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제발!”
성희는 그 사이에 자신의 힘을 끌어 올리다가 모진 칼날에 집중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런 중에도 놈들이 나를 찾아 온 거지. 빚을 갚으라면서 말이야. 크흐흐. 웃기지 않아? 그런데 그게 또 갚아야 한다는 거야. 빚이 남았다면서. 법이 그렇다네?”
재홍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놈들이 그러더라. 포탈로 들어가게 해 주겠다고. 그러면서 5억이 나오면 빚을 갚고도 돈이 남으니까 병신이 된 아버지가 편히 살 수 있을 거라고 하더라고.”
성희는 재홍의 말을 들으며 더는 힘을 끌어 올리지 않았다.
재홍이 성희의 시도를 귀신같이 알아낸다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어쩌겠어? 포탈에 들어가겠다고 신청을 했지. 그리고 입장하기 4일 전에 5억이 통장에 꽂혔지. 그리고 그걸 놈들도 알았어.”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성희가 물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빈틈을 만들어야 했다.
“돈이 들어온 날, 난 시장에서 푸짐하게 장을 봤지. 우리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매운탕을 거리를 잔뜩 사서 집으로 돌아왔어. 그리고 커다란 양은찜통 가득 매운탕을 끓였지. 아주 많이.”
“그래서요?”
성희가 다시 물었다.
“그래, 그렇게 매운탕을 끓여서 우리 아버지하고 마지막으로 푸짐하게 먹으려고 했는데, 그런데 놈들이 들이닥친 거지. 사채업자 우두머리와 그 똘마니까지 모두 열 놈이 우르르 몰려왔더군.”
재홍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마지막 식사까지 제대로 못했다는 말이네요? 안 됐어요. 정말.”
성희는 정말로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재홍을 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