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타락한 드라이어드의 던전(1)
11. 타락한 드라이어드의 던전(1)
“좋아. 좋아. 제법인데? 에포르?”
도현은 식사를 하며 맞은편에 있는 흙인형 병사를 보며 말했다.
- 궁의 관리인으로서 기본 소양으로 알고 있었던 요리 실력입니다. 제대로 된 궁중 주방장에 비하면 하찮은 실력일 뿐입니다.
병사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흙으로 만들어진 산성병사.
그것은 도현이 소환해 낸 병사로 돌방어구를 착용한 흙인형이었다.
산성병사는 착용하는 무기만 다를 뿐, 갑옷이나 투구는 도현이 [산성착용]을 하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소환한 개체들 중의 하나를 에포르가 통제할 수 있었다.
그것은 산성병사를 소환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에포르가 산성병사 하나를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에포르가 직접 도현의 수발을 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설인여왕의 가죽주머니를 관리하는 에포르는 일상에 필요한 것들은 언제든 꺼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도현의 허락을 받았다.
그리곤 도현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천막을 치고, 씻을 물을 준비했다.
말 그대로 완벽한 시종이 생긴 셈이다.
도현은 생각지도 못한 호사를 누리며 연신 ‘좋아’를 외치는 중이었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잔치는 없는 법이다.
에포르 덕분에 호사를 누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미룰 도현은 아니었다.
“이제 2구역 탐색을 시작해야겠군.”
도현이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는 에포르 병사를 보며 말했다.
- 로드께 2구역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로드의 용감한 병사들을 앞세우십시오.
에포르는 식기와 조리도구를 정리하고 천막을 치면서 도현의 말을 받았다.
“그래, 나 혼자도 별로 어렵진 않을 거야. 하지만 2구역은 넓고 선점해야 할 것들도 많지.”
- 선점해야 할 것들이라니요 로드?
“지금까지 봐서 알겠지만, 이곳 시스템은 최초를 무척 중요하게 여겨.”
도현이 말했다.
- 네, 그건 확실히 그런 거 같았습니다.
에포르 병사가 천막을 착착 접어서 설인여왕의 가죽 주머니에 넣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주변을 살펴 혹시 빼놓은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는 도현의 오른쪽 뒤에 와서 섰다.
영락없는 시종의 태도였다.
“관문을 앞서서 통과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긴 해. 하지만 그것 말고도 챙겨야 할 것들이 적지 않지. 내가 쓰지 못하더라도 엉뚱한 놈의 손에 들어가게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어.”
- 그렇습니까?
“내가 가지고 있다가 적당한 놈에게 주는 것이 더 좋을 거야. 제대로 활용도 못하는 놈이 들고 설치면서 도리어 이쪽의 전력을 깎아 먹게 할 수는 없으니까.”
도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포르 병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도현이 앉았던 의자를 챙겨 설인여왕의 가죽 주머니에 넣었다.
“그럼 일단 차근차근 가 보자. 산성병사들의 전투 능력도 정확하게 알아보고.”
도현은 에포르의 일이 모두 끝나자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스화화확!
드드드드 드드드득!
도현은 걸음을 옮기는 중에 [산성장착]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도현의 몸에서 황사처럼 흙가루가 뿜어지더니 그것이 들러붙어 전신갑옷을 만들었다.
눈과 코만 드러내는 T형 틈이 인상적인 투구가 포함된 특유의 갑옷을 입은 도현이 묵직해진 걸음을 옮겼다.
“자, 달려보자.”
* * *
2구역은 헌터들의 성장이 시작되는 곳이다.
때문에 초기 성장에 도움이 될 여러 가지 아이템이 준비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아이템은 시스템 아이템을 가리킨다.
도현이 가지고 있는 설인여왕의 가죽 주머니처럼 시스템에 인식시킬 수 있는 아이템.
다르게는 준 귀속 아이템이라고도 한다.
주인이 원하지 않으면 어떤 수를 쓰더라도 빼앗을 수 없는 아이템이라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물론 준 귀속이라는 말처럼 주인이 원하는 경우엔 시스템에 등록된 아이템을 다시 분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점이 골드 헌터들의 득세를 부채질 한 요소 중의 하나기도 하다.
시스템이 아이템에 준귀속이라는 여지를 둔 것은 소유자의 죽음으로 그 아이템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죽기 전에 그 아이템을 다른 이에게 전할 기회라도 주자는 뜻.
그렇게 해서 헌터들의 전체적인 전력 약화를 방지하자는 의미였던 것이다.
하지만 골드 헌터들은 그것을 다르게 사용했다.
그들의 지구를 오갈 수 있는 그들만의 특별한 권력을 이용해서 그레이 헌터들이 가진 아이템을 빼앗았던 것이다.
그렇게 아이템들은 골드 헌터들에게 집중되었다.
그들 중에는 자신이 쓰지도 않을 아이템을 콜렉션이란 이름으로 모으는 놈도 있었다.
심지어는 지구로 가지고 가서 박물관을 만들었다는 미친놈도 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어디서 뻘짓을 하다가 아이템을 가진 상태로 죽어 나자빠지거나.
어쨌건 헌터들의 전력 약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만은 분명했다.
골드 헌터의 입장에선 그레이 헌터의 성장은 절대 허락할 수 없었던 것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던 탓에 골드 헌터들은 언제나 그레이 헌터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잘못된 출발이었던 거지. 휴우.”
도현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 * *
- 로드, 여기는 어떤 곳입니까? 전에 봤던 관문처럼 마력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던전인 것 같은데 말입니다.
에포르 병사가 도현의 앞에서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물었다.
도현과 에포르 병사가 있는 것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숲이었다.
녹음이 우거져 어둑어둑한 숲에 겨우 햇빛이 드는 작은 공터가 있었다.
그 공터에는 쓰러져 썩어가는 커다란 나무 등걸 위로 풀과 꽃들이 무성했다.
특별히 이상할 것은 없는, 숲 속의 작은 공터일 뿐이었다.
하지만 에포르 병사의 말처럼 이 공터에선 묘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혹시 드라이어드라고 알아?”
도현이 공터 중앙으로 걸어가며 에포르에게 물었다.
- 그 나무의 정령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로드의 성들 중에서 숲의 성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 있지 않겠습니까?
“음, 숲의 성에 드라이어드가 있다는 건가?”
- 있는지 어떤지는 저도 잘은 모릅니다만 숲의 성이라면 왠지 있을 것도 같아서 드린 말씀입니다. 저도 점유율에 따라서 로드의 성을 파악할 수 있을 뿐이라서······.
에포르가 조금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 어쨌건 상관없겠지. 어차피 여기 있는 드라이어드는 정상적인 것들이 아니거든.”
도현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 공터 중앙에 쓰러져 있는 썩은 나무의 가지를 잡아 꺾었다.
끼에에에에에에에!
순간 귀를 막고 싶게 만드는 비명과 함께 썩은 나무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도현과 에포르 병사는 순식간에 그 기운에 휩싸였다.
- 로, 로드!
‘진정해, 이건 시스템의 작용이야 피할 수도 없으니까 그냥 기다려.’
도현이 놀란 에포르를 진정시켰다.
그러자 다음 순간 도현과 에포르 흙병사는 검은 흙으로 된 토굴 안에 들어와 있었다.
- 로드,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에포르 병사가 도현의 앞으로 나서 주변을 경계하며 물었다.
어느새 병사는 방패와 검을 착용하고 있었다.
“시종에서 호위병으로 업종 변경이냐?”
도현이 그 모습에 놀리듯이 물었다.
- 이 에포르 언제나 로드께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에포르 병사가 결의에 찬 어조로 말했다.
“됐다. 그래봐야 흙인형만 죽지 넌 상관없잖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비켜봐.”
도현이 마치 파리를 쫓듯이 손을 흔들며 에포르 병사 앞으로 나섰다.
검은 흙으로 된 토굴이 저 멀리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시야가 확보되는 것은 군데군데 흐릿한 빛을 내는 나무뿌리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뿌리들에 맺힌 빛은 간혹 뿌리에서 떨어져 너울너울 흔들리며 위로 올라가 흙으로 스며들었다.
- 묘하게 음습하고 기분이 좋지 않은 곳입니다. 로드.
에포르 병사가 도현의 옆에 바짝 다가서며 말했다.
“쯧, 겁은 많아가지고.”
도현이 혀를 차며 앞으로 손을 내밀어 [산성병 소환] 스킬을 사용했다.
스화화화확!
꾸드드드드득!
그러자 도현의 몸에서 예의 황토색 흙먼지가 나타나더니 앞쪽으로 날아가 뭉치면서 산성병사들을 만들어냈다.
- 로드, 로드의 안전을 위해서 너무 많은 병사를 소환하지는 마십시오.
그런데 에포르 병사가 도현에게 의외의 조언을 했다.
안전을 위해서 병사의 수를 줄이라니?
하지만 그 말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도현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산성장착]의 견고한 갑옷과 방패다.
그 방어력 덕분에 도현은 어딜 가든 별다른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산성병사를 소환하면 그 방어력이 약해진다.
산성병사를 만드는 흙과 돌이 빠져나간 만큼 도현의 몸을 보호하는 갑옷과 방패의 성능이 저하되는 것이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서 등장하는 몬스터하고 산성병사는 딱 역상성이거든.”
- 역상성이라니요 로드?
“놈들에게 산성병사가 천적과 같다는 말이지.”
도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산성병사를 검은 토굴 앞쪽으로 이동시켰다.
방패병 셋, 검병 셋, 장창병 셋으로 이루어진 산성병사들이 진형을 갖추고 전진했다.
스륵, 스륵, 스륵.
병사들은 자세를 낮춘 상태로 발을 땅바닥에 붙여서 왼쪽 발을 내밀고, 오른발을 끌어 붙이는 식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속도는 느리지만 앞선 방패병의 방어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뭉쳐 있는 모습이었다.
- 로드 우리는 안 가는 겁니까?
그렇게 병사들을 앞세운 도현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에포르 병사는 그런 도현의 뒤에서 궁금한 듯이 물었다.
“넌, 안 가냐? 검하고 방패 들었으면 가서 뭐라도 해야지?”
도현이 그런 에포르 병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 저야 로드의 호위 아니겠습니까. 언제든 로드께 위험이 닥치면 이 한 몸 던질 준비를 해야지요.
에포르 병사는 자신의 자리인 도현의 곁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듯이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현은 잠시 멀뚱히 에포르 병사를 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마침 꽤나 앞서간 산성병사들이 던전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푸쉬쉬쉬쉭!
토굴의 좌우에서 뿜어져 나온 녹색 분말을 산성병사들이 뒤집어썼다.
딱 봐도 무척 유해해 보이는 녹색의 가루.
도현이 슬쩍 한 걸음 물러났다.
스륵 스륵 스륵!
하지만 가루를 뒤집어쓴 산성병사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진형을 유지하며 걸음을 옮겼다.
- 로드 저게 뭡니까?
에포르가 궁금한 듯이 물었다.
“저거 환각과 마비를 동시에 일으키는 독가루야.”
도현이 별 것 아니란 듯이 대답했다.
- 그렇군요. 그래서 역상성이라 하신 거군요. 환각과 마비, 그게 산성병사들에게 통할 일은 없으니까요.
“그렇지. 마력에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생체 활동에 간섭하는 거라서 무생물인 산성병사에겐 안 통해.”
-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이곳 2구역에서 산성병사가 제일 쉽게 클리어 할 수 있는 던전이 바로 이곳이야. 그래서 제일 먼저 들어온 거고.”
- 그렇군요.
“거기다가 여기 던전이 <타락한 드라이어드의 뿌리>라는 이름인데 드라이어드의 능력이 대부분 정신계열이란 말이지.”
- 그게 산성병사에겐 통하지 않고요?
“게다가 여기서 아이템이 나와. 정신계 마법을 강화시켜주는 종류지. 그건 반드시 없애야 해.”
- 아이템을 없앤다고요?
“그 아이템 이름이 드라이어드의 계약이야. 효과가 뭘 거 같아?”
도현이 아이템을 없앤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는 에포르 병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 드라이어드가 보통 숲에 들어온 사람을 홀려서 그 정을 흡수한다고 합지요. 때론 그 때문에 사람이 죽기도 하지만 보통은 어느 정도 정을 흡수하고 숲에서 내보낸다고 들었는데요?
“그 다음은?”
- 아, 드라이어드는 자신이 깃든 나무에서 멀리 떨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부하를 부리기도 합니다. 나무에 집을 짓고 사는 꿀벌에게 적의 눈을 찌르게 한다고요.
“그렇지. 마침 저기 오네. 드라이어드의 자객.”
도현이 에포르의 말을 듣다가 앞쪽을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