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미리미리 준비를(3)
9. 미리미리 준비를(3)
도현은 한동안 목록을 살피다가 스킬 항목에서 원하는 것을 찾아냈다.
스킬 : [하급 마력 연공법]
도현은 바싹 말라오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그 스킬의 세부 내용을 확인했다.
[하급 마력 연공법] : 마력의 성장과 회복에 도움이 되는 연공법이다.
‘이거다.’
자신이 알고 있던 바로 그 스킬이었다.
- 로드, 그게 그렇게 좋은 겁니까? 고작 하급인데요?
에포르는 도현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물었다.
‘처음 배우는데 중급이나 상급 같은 걸 배울 수 있을 거 같아? 절대 못 배워.’
도현이 대답했다.
그런 경우가 있었다.
시스템 상점이 해금된 후, 헌터 포인트를 잔뜩 모은 골드 헌터가 고급 단계의 스킬을 구입했다.
그리고 그것을 익혔고 한동안 폐인이 되었다.
고급 단계의 스킬이 그 헌터의 몸을 망가뜨렸기 때문이다.
물론 치료법이 있기는 했다.
특수 항목의 치료제를 사서 몸을 치료했다고 들었다.
일반 그레이 헌터들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골드 헌터라 가능했던 일이었다.
도현은 잠시 떠오른 기억을 몰아내듯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 집중했다.
‘8000H.Point란 말이지.’
도현은 [하급 마력 연공법]의 가격을 확인하고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포인트로 충분히 구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도현은 일단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머지 항목을 차근차근 확인했다.
스킬은 특별히 세심하게 살폈다.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항목들이 즐비했다.
이 상점에서는 무조건 구입 가능한 목록만 보여준다.
그러니 가지고 있는 헌터 포인트 이상의 상품은 볼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 제약을 첫 손님이란 타이틀로 뛰어넘었으니 뽑을 수 있는 건 다 뽑아 먹어야 했다.
목록의 아래쪽으로 갈수록 괴랄한 액수의 포인트를 요구하는 것들이 즐비하다.
무기든 방어구든 액세서리든 상관없이 하위 목록은 꿈에나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천문학적인 헌터 포인트를 요구한다.
그것들은 헌터 포인트를 긁어모을 수 있는 골드 헌터들이나 엄두를 내 볼 것들이었다.
‘일단 킵.’
도현은 몇 가지 스킬을 눈여겨보고 생필품 항목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특수 항목을 살폈다.
- 오오오, 로드. 저거, 저건 로드의 성에 대한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것입니다. 저것도, 저것도 그렇습니다.
특수 항목에서 에포르가 잔뜩 흥분하며 소리쳤다.
과거에 헌터 포인트를 거의 모으지 못했던 도현이 확인하지 못했던 부분.
거기에 자신의 근본인 성(城)에 대한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상품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가격이 만만치 않다.
제일 위쪽에 있는 것들이 가격이 개당 2만 포인트였다.
2만 포인트면 쓸만한 장신구 몇 개 살 수 있을 점수다.
‘흐음.’
도현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졌다.
‘에포르, 액세서리가 좋을까 아니면 성의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 좋을까.’
도현이 에포르에게 물었다.
그리고 당연히 에포르가 점유율을 선택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에포르의 대답은 의외였다.
- 마이 로드. 모든 결정은 로드께서 내리시는 것입니다. 이 에포르는 로드의 결정에 따를 뿐입니다.
‘아니, 그래도 조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 그리 말씀하셔도 저는 로드께서 어떤 복안을 가지고 계신지 모릅니다. 액세서리에서 어떤 종류를 어떻게 구하실지 모르고, 그것들이 이후에 로드께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제 조언은 허상일 따름이지요.
도현은 에포르의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에포르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좋아. 그럼 그건 그렇다고 치고, 저 2만 포인트짜리 특수 아이템을 구입하면 점유율을 얼마나 올릴 수 있지?’
도현은 방향을 바꿔서 에포르에게 질문을 던졌다.
2만 포인트를 투자했는데 당장 쓸모가 없다면 곤란했다.
- 제가 보기에 2만 포인트로 살 수 있는 것들은 0% 점유율을 20% 정도까지 올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에포르는 정말 아쉽다는 투로 대답했다.
사실 20%를 올리기 위해서 2만 포인트를 쓴다고 해도 새로운 성(城)을 활용할 수가 없다.
최소 30%.
그것이 성을 활용할 수 있는 최소 수치인 까닭이다.
‘그럼 그걸 사는 건 포기해야겠군.’
도현의 결정은 간단했다.
2만 포인트를 투자했는데 쓸모가 없다면 그건 정말 곤란한 일이었다.
“어떠신가요? 정말 괜찮은 물건들이 많지요?”
그 때, 상점 주인이 도현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도현은 그녀의 말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시스템이 움직이는 인형일 뿐이다.
“그래서 물건을 결정을 하셨나요? 참, 이걸 말씀드린다는 걸 잊었네요. 소유하고 계신 포인트로 구매할 수 있는 물건 중에 하나는 공짜랍니다. 호호호.”
“뭐? 그게 무슨?!”
여전히 여자의 말을 무시하려던 도현도 이번에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머? 설명이 더 필요하신가요? 손님께서 가지고 계신 포인트로 살 수 있는 상품 하나는 공짜라고 말씀드렸어요. 이 상점을 찾아서 복구한 것에 대한 보답이죠. 그게 어려운가요?”
“아, 아니. 충분히 알아들었어.”
도현은 여자의 말에 그렇게 대답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상품 목록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가 가진 포인트는 29776.
상점을 해금하느라 500포인트를 썼기 때문에 3만 포인트가 되지 않았다.
‘아쉽군.’
도현은 속으로 혀를 찼다.
3만 포인트에 살 수 있는 상품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가격 단위가 달라질 때마다 상품의 질이 달라지는 것은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3만 포인트짜리 상품을 살 수 없다는 것은 뼈아팠다.
‘에포르, 이것과 이것을 사면 성의 점유율을 얼마나 올릴 수 있지?’
도현이 바쁘게 머리를 굴려서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조합을 예측해서 에포르에게 물었다.
- 로드, 그 두 가지를 사용하면 숲의 성 점유율을 32%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도현의 물음에 에포르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두 개를 썼는데도 32% 밖에 안 된다고? 2만9천 짜리 하나하고 2만짜리를 더해도?’
- 2만 포인트의 <엔트열매>가 약 20%까지 점유율을 올려줍니다. 그리고 2만9천의 <세계수 낙엽>이 21%에서 32%까지 점유율을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럼 숲의 성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는 소린데 어떤 스킬을 쓸 수 있지?’
- 그건 성을 해금할 때까진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로드의 회복력과 숲에 대한 친화력이 늘어날 것은 분명합니다.
‘회복력?’
- 숲의 성은 생명력의 보고니까요.
‘그렇군. 그럼 다른 성을 해금할 조합은 없나?’
- 없습니다. 대신에 산성의 점유율을 50%까지 끌어올릴 조합은 있습니다.
‘산성 50%?’
- 그렇습니다 로드.
‘그게 지금 상황에서 의미가 있나? 산성 100%가 된다고 해도 산성 장착의 위력이 높아질 뿐인데?’
도현은 전혀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과거 도현은 점유율을 99%까지 끌어 올린 [산성의 주인]이었다.
이미 점유율 99%까지를 경험해 봤다는 이야기다.
- 로드, [산성의 주인]과 [일곱 성의 주인]은 다릅니다. [일곱 성의 주인]이신 로드께서는 성의 점유율이 높아질수록 엄청난 능력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에포르는 도현이 예상치 못한 부분을 지적했다.
‘엄청난 능력이라고?’
- 로드, 50%의 점유율이면 성의 병사를 부릴 수 있습니다.
‘성의···병사?’
- 예스, 마이 로드.
‘그건 또 무슨······.’
* * *
상점에선 최초 구입 무료 이외에 더 이상의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다.
도현은 고민 끝에 산성의 점유율을 50%까지 끌어 올리는 선택을 했다.
<골렘의 심장 파편>이라는 특수 아이템과 <흐릿한 대지의 정수>를 각각 2만 포인트와 2만9천 포인트에 구입한 것이다.
당연히 <흐릿한 대지의 정수> 2만9천 짜리를 먼저 구입해서 무료 혜택을 받았고, 이후에 <골렘의 심장 파편>을 2만 포인트에 구입했다.
그리고 8천 포인트를 주고 [하급 마력 연공법]을 구입했다.
결국 남은 포인트는 1776 포인트.
“더 필요한 것이 있으신가요?”
상점 주인이 도현에게 물었다.
“안전구역 설정 3일짜리 하나.”
도현이 대답했다.
“호호호, 1500포인트네요.”
도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여자가 건네는 카드를 받아들었다.
“그럼 이제 다 된 건가요? 아직 포인트가 조금 남은 거 같은데요?”
“아직 276포인트가 남았다. 쓰는 김에 알뜰하게 써야겠지.”
도현은 여자의 말에 그렇게 대답하고는 생필품 항목에서 이런저런 물건들을 구매했다.
천막이나 조리도구, 조미료와 생활복, 편의성 카드 따위였다.
그런 것들은 의외로 싼 가격에 나와 있었다.
말 그대로 생필품들.
“정말 알뜰하게 포인트를 소비하셨군요. 이젠 남은 포인트가 하나도 없네요?”
마지막 포인트까지 소비가 끝나자 여자가 표정없는 얼굴로 말했다.
“나가달라는 소리지?”
“호호호. 포인트가 없는 분은 손님이 아니니까요. 그럼 잘 가세요.”
“그래. 잘 있어라.”
도현은 여자의 말에도 기분 나쁜 기색이 아니었다.
어차피 인형이니 거기에 화를 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도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상점 밖으로 나갔다.
딸랑 딸랑 딸랑!
문에 달린 작은 종이 요란스럽게 울었다.
도현은 밖으로 나와서 상점을 돌아봤다.
그가 복원해 놓은 그대로 깔끔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헌터들이 이곳을 발견하면 그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서 애를 쓰겠지.
도현은 다시 상점의 문에 손을 대 보았다.
[자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떠오르는 시스템 알림은 간단명료했다.
그리고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힌트 이외에 어떤 정보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물며 H.Point가 필요하다는 말도 없었다.
“좋아. 쉽게 비밀이 드러나진 않겠네. 그럼 나 때문에 뭔가 큰 변수가 생기진 않겠어.”
도현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2구역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곳에서의 볼일은 끝났다.
이제 <흐릿한 대지의 정수>와 <골렘의 심장 파편>을 흡수해야 했다.
도현은 다시 1구역과 2구역의 경계를 넘었다.
그리고 2구역으로 조금 들어간 후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어차피 2구역 초입은 대부분 안전지역이었다.
운이 없으면 아울베어 같은 놈을 만나기도 하지만.
헌터들의 실질적인 성장이 시작되는 곳이라 초입 부분에는 위험 요소를 거의 두지 않았다.
물론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갖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제 도현은 그런 곳으로 들어가야 했고, 그 전에 최대한 전력을 끌어올려야 했다.
- 에포르 안전구역 설정 카드를 꺼내 줘.
도현은 에포르에게 상점에서 구입한 카드를 요구했다.
생활용품을 사면서 구입해 놓은 물건이었다.
모든 물건은 설인여왕의 가죽 주머니 안에 들어 있고, 그것은 에포르가 관리하고 있었다.
에포르는 곧바로 도현의 손에 카드를 쥐여 주었고 도현은 그것을 [사용]했다.
안전구역 설정 카드는 시스템의 힘을 빌려서 일정 시간동안 외부의 위험을 막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도 완벽한 것은 아니어서 정도 이상의 충격을 가하면 깨트릴 수 있다.
하지만 2구역에선 절대적이랄 수 있는 방어력을 지녔다.
도현이 받은 카드에 마력을 주입하자 카드가 사라지며 초록색 빛이 확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됐군.”
도현은 그 현상을 확인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 로드,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아무 일도 안 일어났습니다만.
에포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도현에게 물었다.
에포르가 보기엔 빛과 함께 카드만 사라지고 아무 변화도 없었던 것이다.
‘방금 빛이 퍼진 범위가 안전구역이야. 그 바깥에선 이쪽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거지. 게다가 이쪽 안전구역은 밖에서 보이지도 않아.’
-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로드?
‘그냥 그렇게 알아. 시스템, 그러니까 니가 말하는 규칙이 그렇게 정했어. 여기 안전구역은 살짝 시공에서 어긋나 있다고 볼 수 있지. 마법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는 거야. 뭐 더 강력한 힘에는 깨질 수도 있지만.’
- 그렇습니까? 전혀 알아차릴 수도 없는데 그런 현상이 적용되었다는 말씀이군요?
‘시스템이 하는 일이니까. 그걸 파고들어 봐야 머리만 아파. 답은 얻기 힘들지. 적어도 지금은. 그보다 에포르?’
- 예스, 마이 로드.
“천막을 좀 꺼내 줘. 여기서 그냥 해도 되지만 천막을 치는 것이 좀 더 나을 거 같네.”
- 예스, 마이 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