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회귀인가 예지몽인가(2)
2. 회귀인가 예지몽인가(2)
“네. 사장님의 차를 맡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누군지 아시나봐요?”
“하하하. 그럼요. 유성공업의 미래라고 하시는 최 대리님 아니십니까.”
유성공업의 미래.
그건 직원들이 도현의 뒤에서 부르는 소리였다.
차기 후계자이기도 하고 기획부에서 나름 능력을 보였기에 얻은 평가였다.
“그렇군요. 그런데 오늘 운전은 제가 하고 싶은데요?”
도현은 기동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직접 운전을 하시겠다고요?”
기동호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아침저녁 출퇴근은 항상 제가 사장님을 모십니다. 제가 운전을 하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지요.”
도현은 놀란 표정의 기동호에게 내민 손을 치우지 않았다.
기동호의 시선이 도현의 손으로 향했다.
“아, 자동차 키를 달라는 겁니다.”
도현이 잘라 말했다.
거부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단호한 목소리다.
“그, 그래도 제가 모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게 제 일인데요. 제가 출근한지 이제 얼마 되지도 않는데 벌써 업무에서 빠지는 것은······.”
기동호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미적거렸다.
“그냥 주세요. 키.”
하지만 도현은 기동호의 사정은 봐 줄 생각이 없다는 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회사 사장의 아들이 아버지를 직접 모시겠다니 기동호도 끝까지 고집을 피우진 못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자동 인식 스마트 키를 꺼내 머뭇거리며 도현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도현은 키를 받아들고 운전석에 들어가 앉았다.
괜히 밖에 있다가 아버지가 나와서 기동호에게 운전대를 맡기면 곤란했다.
기동호, 그는 꿈속에서도 등장했던 인물이었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운전을 했던 인물이고 이후에 대경 그룹의 마성현과 연결점을 가진 사람이었다.
‘당장 확실한 것은 없어. 정말 꿈대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지. 하지만 처음 보는 기동호를 꿈에서도 봤다는 것이 중요해.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 거지.’
“도현아, 너 거기서 뭐 하냐?”
그 때, 도현의 아버지인 최성수가 뒷자리에 올라타며 도현을 발견했다.
“하하, 오늘은 제가 모실까 하고요. 가면서 개인적으로 드릴 말씀도 있고요.”
기사가 있으면 불편하다는 뜻을 내비치는 도현, 최성수도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말에 그러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그럼 그렇게 해라. 약속장소는 알지?”
“네, 그레샹 호텔이요.”
“알면 출발하자. 늦으면 안 되니까.”
“네, 아버지.”
도현은 대답과 함께 곧바로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버지, 안전벨트 하세요.”
회사를 나서서 한참이 흐른 후, 정체구간이 시작되자 도현이 뒷자리의 최성수에게 말했다.
“안전벨트? 뒷자리에서?”
최성수가 뭔 소리냔 표정으로 도현을 쳐다봤다.
“에이, 모르세요? 법이 바뀐 거요.”
“법이?”
“전 좌석 안전벨트 착용이요. 이제 그렇게 됐잖아요.”
“커엄. 그건 나도 들었다만, 뒷자리에서 벨트는 좀······.”
“에이, 왜 그러세요. 평소 준법정신 투철하던 아버지께서.”
“아니 그래도 그건 좀···.”
최성수는 내키지 않는 듯이 말꼬리를 흐렸지만 운전석의 아들이 자꾸만 룸미러를 힐끗거리며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원, 녀석도. 안 하던 짓을 하게 하는구나.”
최성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뒷자리라도 3점식 안전벨트라 크게 모양 빠지는 꼴은 면했다 싶어 마음이 놓이는 최성수였다.
“아버지.”
그렇게 안전벨트를 착용한 후, 도현이 은근한 목소리로 최성수를 불렀다.
“왜?”
“요즘 대경하고 뭔 일 있어요?”
도현이 혹시 자기가 모르는 일이 있는가 싶어서 최성수에게 물었다.
“음? 대경?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최성수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룸미러 안의 도현을 쳐다봤다.
“일이 있긴 한 모양이네요?”
“대경에서 이번에 작정하고 우리 유성을 흡수하려는 모양새를 보이곤 있다. 그래서 여원과의 계약이 중요하지. 여원과 계약을 마치면 그 그늘을 좀 쓸 수 있을 테니까.”
“대경에서 우리 회사를 욕심내고 있다고요?”
“아무래도 우리 회사가 금속 가공업에선 제철만 빼곤 최고 아니냐. 그러니 밑에 두고 싶은 거지. 대경에서 새로 시작하는 사업에 합금이나 금형 같은 것이 꽤나 필요한 모양이고.”
“하긴 우리 회사 주력 사업이 꼭 어느 하나만 있는 건 아니죠. 우리 회사가 알짜긴 알짜니까요.”
“그래, 그런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대경의 움직임을.”
최성수가 새삼스런 눈빛으로 룸미러를 통해 아들을 다시 쳐다봤다.
“어쩌다보니 그런 이야기가 들어오더라고요. 하하하. 제가 아버지 아들이잖아요.”
“이거 간부진들을 좀 조여야겠네. 그런 이야길 대리밖에 안 된 너한테 하다니.”
“아니, 직접 그런 이야길 누가 한 건 아니고요······.”
“됐다. 뭐 그것도 네 능력이지.”
도현이 변명을 하려고 하자 최성수는 별 일 아니란 듯이 말을 하고는 입을 닫았다.
그 사이에 도현이 모는 차는 꿈속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났던 그 장소로 다가가고 있었다.
교통량이 많은 사거리.
특히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차들이 많아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곳이다.
그에 비해서 좌우로 이어지는 길은 넓기만 하고 교통량이 적었다.
그래서 그 쪽으로 다니는 차들은 꽤나 속도를 냈다.
도현은 신호 대기를 하며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앞에 두 대의 차가 있었다.
그리고 뒤쪽에도 꼬리를 물고 차들이 따라오고 있었고.
도현은 앞쪽 두 대의 차를 눈여겨봤다.
하지만 특별히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뒤에 있는 차가 자꾸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차간 거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따라 붙은 상태였다.
이럴 때에는 본능적으로 차를 앞으로 이동시켜서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도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앞쪽 차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꿈에선 이곳에서 신호 대기를 하던 중에 왼쪽에서 대형 트럭이 달려와 아버지의 차에 올라탔다.
왼쪽 도로를 힐끔 바라봤다.
왕복 6차선, 넓은 길이 우로 굽어 있는 길이다.
지금은 텅 비어 차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꿈에선 사고 당시 지금 바로 뒤에 붙어 있는 차는 트럭이 달려드는 순간 급하게 후진을 해서 추돌을 피했다고 했다.
‘이렇게 바짝 붙어 있던 차가 후진을 했다고?’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나마 앞에 있는 차가 이상 행동을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부우우우우우웅!
그 때, 격렬한 엔진 소리와 함께 왼쪽 도로에서 사거리를 가로질러 한 대의 대형 트럭이 도현을 향해 돌진해 왔다.
굽은 도로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트럭이었다.
“어어어?!”
뒷좌석에서 최성수가 그것을 발견하고 놀란 소리를 냈다.
도현은 다가오는 대형 트럭을 쳐다봤다.
썬텐 때문에 운전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트럭은 브레이크를 밟거나 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엔진음이 커지고 속도가 높아졌다.
부아아아앙!
콰자자장! 콰직!
트럭이 가까이 다가온 순간, 도현은 미리 머릿속에 그려 뒀던 대로 급하게 가속 페달을 밟았다.
도현의 차는 곧바로 앞으로 튀어 나가며 앞차의 좌측으로 나가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앞차의 후진등이 들어왔다.
하지만 도현은 아슬아슬하게 그 차를 피해서 자신이 모는 차를 왼쪽으로 빼냈다.
앞차와 가벼운 충돌이 있었지만 그건 별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도현의 차가 움직이자 달려오던 트럭도 급히 방향을 바꾸려 했다.
하지만 너무 가까운 곳에서 빠르게 움직인 도현의 차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그저 트렁크를 크게 박살낸 트럭은 옆 차선의 차량 몇 대를 연속으로 추돌하며 멈춰섰다.
“크으.”
최성수가 살짝 신음소리를 냈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도현이 급하게 최성수를 찾았다.
측면 충돌이라 그런지 에어백도 제대로 터지지 않았다.
도현은 문득 에어백에도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당장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괜찮다. 괜찮아.”
최성수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도현을 향해 손을 저어 보였다.
도현은 급히 바깥 상황을 살폈다.
트럭은 옆 차선의 차들을 밀고 들어갔고, 사고 전에 도현의 앞과 뒤에 있던 차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있었다.
모두 짙은 색의 양복에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젊은 사람들이었다.
‘깡패?’
도현은 단단한 체격의 사내들을 보며 순간 그런 생각을 했다.
도현은 곧바로 차의 블랙박스를 확인하고 옆자리에 놨던 스마트폰의 녹음기능을 켰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차에서 내렸다.
만약을 위한 대비였다.
“아이고, 이거 사고가 크게 났네.”
그러자 앞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도현을 향해 다가오며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그러게요. 그런데 그 쪽 운전하시는 분은 사고 직전에 후진을 하셨네요?”
도현이 앞쪽 차를 몰았던 운전자를 보며 말했다.
“아, 그게 워낙 당황해서······. 이거 죄송합니다. 차 수리비는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뭐 뒤쪽 망가진 것은 저 트럭 운전사가 해결해야 할 문제겠지만요.”
도현의 말에 앞차의 운전자는 조금 민망하단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그 사이에 구경꾼들은 점점 늘어났다.
‘일단 여기서 더 일이 벌어지진 않겠네.’
도현은 슬그머니 물러나는 앞뒤 차량의 사람들을 보며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꿈속에서야 전투로 단련된 몸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책상물림의 직장인일 뿐이다.
“괜찮으냐?”
그 때, 최성수가 뒷문을 열고 내리며 도현에게 물었다.
도현은 급히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부축하는 시늉을 했다.
“네,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아버지가 걱정이죠.”
“이만한 일에 걱정은 무슨. 차가 좀 많이 부서지긴 했다만.”
삐뽀삐뽀 삐보삐뽀!
웨에에에에엥 웨에에에에엥!
도현이 최성수에게 붙어서 만약을 대비하는 사이에 견인차가 도착하고 이어서 구급차와 경찰차가 달려왔다.
그렇게 사고는 일단락이 되었다.
최성수는 급히 회사와 계약한 로펌의 변호사를 불러 사고처리를 맡겼다.
그리고 도현과 함께 여원 그룹과의 약속장소로 향했다.
교통사고 소식이 전해졌기에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한 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그만한 사정을 봐 주지 못할 정도로 여원과 유성의 관계가 메마르진 않았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여원 그룹과 유성공업의 협력 계약은 순조롭게 진행 되었다.
꿈과는 달리.
* * *
‘꿈이 꿈이 아니다. 이건 믿어야 해.’
여원과의 만남을 끝내고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도현은 자신의 방에 홀로 앉아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오늘, 아버지의 사고를 막았다.
자신이 없었다면 꿈에서와 같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몰라도 이번 사고는 의도된 것이 분명했다.
뒤쪽에 바짝 붙어 있던 차, 사고 상황에서 후진을 하던 앞 차,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방향을 바꾸던 트럭.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도현은 이번 사건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 말은 믿기 어려운 이 꿈도 단순한 꿈이 아니란 뜻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고? 정말?’
하지만 쉽게 믿기도 어려운 꿈이었다.
이계로 통하는 포탈이 열리다니.
그 포탈로 들어가 초인이나 다름없는 힘을 얻고 몬스터들과 싸우다니.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날 거라고 쉽게 믿을 수 있을까?
오늘은 꿈의 내용이 아버지와 가족의 불행과 얽힌 일이라 혹시 하는 생각에 움직였던 도현이다.
그런데 그 덕분에 불행을 피할 수 있었다.
결국 자신이 꾼 꿈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 그렇게 증명되었다.
‘미쳤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입 닥치고 있어야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어.’
꿈이 진짜라면 그건 또 다른 위기이며 동시에 기회였다.
세상이 뒤바뀌는 격동의 시기가 다가온다.
그리고 거기서 자칫 잘못하면 개인을 떠나서 인류 전체가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꿈속에서 도현은 그 멸망을 조금 늦추기 위한 버림돌로 쓰였다.
단지 시간을 벌기 위해서 버려진 돌.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시간을 벌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꿈에서 이미 기울어진 전세를 회복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었다.
그 끝을 보지는 못했지만 인류 멸망이라는 미래는 예견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쩌면 그걸 바꾸라고 내가 그 꿈을 꾸게 된 건지도 모르지.’
도현은 몇 번을 고쳐 생각한 끝에 결심했다.
‘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꿈에서 봤던 미래를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