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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먹는 플레이어-236화 (236/238)

#236 결사대 (12) - 초진화

“처음에<자격 검증>이 시작된다는 메시지가 있었지?”

- 호오.

“나와 모용황이 싸운 건 오류의 일환이지, 검증인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 역시 세계선의 대표가 될 만한 자로군. 네 말이 맞다.

빛무리는 즐거운 듯 활발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 이제는 진짜 자격 검증이 시작될 것이다. 통과하게 되면 예언 석판의 진짜 주인이 되어, 예언의 힘과 관리자의 권한을 받을 거야.

“통과하지 못한다면?”

- 하하, 어차피 가보면 알게 될 텐데. 그럼 행운을 빈다.

“망할!”

순 제멋대로인 빛무리를 욕했으나, 그 소리는 어디에도 메아리치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시야가 다시 한번 뒤집혔다.

눈을 뜨니 아까와는 다른 공간이었다.

‘이건 또 어디야?’

우주의 한복판에 있던 듯한 느낌과는 달리, 이번에는 검붉은 세상이었다.

산맥이 조각조각 갈라져 주홍색 바다 위에 떠다니고 있었고, 한건우는 그 중 한 조각 위에 서 있었다.

‘균열 안인가? 아니면 이계?’

한건우는 주위를 살피면서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았다.

이제 영혼의 상태가 아니었고, 원래의 몸을 되찾은 채였다.

‘특성과 무기를 쓸 수 있어!’

먼저 아공간 무기집에서 마창 게이볼그를 뽑았다.

그리웠던 창이 손에 착 감겨왔다.

몸 상태는 최상이었다.

오랜 전투로 인한 피로는 말끔히 사라져 있었고, 온몸을 새로 개조하기라도 한 것처럼 개운한 기운이 솟았다.

‘이건 뭐지? 영혼 상태로 전투했던 것 때문인가···.’

모든 신체 감각이 한 꺼풀을 벗은 것처럼 선명해졌다.

마력의 운용까지도 몇 단계나 성장한 듯했다.

스탯 상으로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이번엔 좀 더 편하게 시험에 통과할 수 있으려나.’

그렇게 생각하고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

한건우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짙은 자줏빛 하늘에는 황금색 반지 모양의 커다란 태양이 보였다.

아니, 그가 아는 지구에는 저렇게 가까운 태양 같은 건 없다.

<개기 일식, 아니 금환식. 태양은 완벽한 원을 그린 반지 모양으로 떠 있다>.

예지자 유영원이 보고 기록한 구절이 생생히 떠올랐다.

“유영원···. 저게 어딜 보아서 개기 일식이고 금환식이냐.”

한건우는 사방의 하늘을 바라보며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콰아아아아-

한건우가 피한 곳에, 정확히 노린 것처럼 운석이 떨어졌다.

메테오.

자연 재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우주의 재앙.

이상하게도 그 공격이 무척 익숙하게 느껴졌다.

<거대한 악마의 형상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검은 형상이 태양을 가로지르며 내려왔다.

사악한 요기가 자줏빛 하늘을 뒤덮었다.

‘마수? 악마종?’

이족 보행을 하는 사람의 형상이었다.

그는 박쥐처럼 검은 피막 날개를 펴고 있었는데, 그 날개는 몸에 비해 기이할 만큼 컸다.

태양을 역광으로 등지고, 그가 말했다.

“기다렸다, 한건우. 죽을 자리를 제대로 찾아왔군. 네 힘은 잘 흡수해서 써주마.”

낯선 듯하면서도 놀랍도록 익숙한 음성이었다.

“맙소사.”

악마라고 생각했던 상대는 바로 한건우 자신이었다.

한건우는 태어나서 이토록 놀란 적이 없었다.

자신과 미묘하게 다른 점이 보였다.

새로 나타난 한건우는 검은 도복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에는 길게 검상이 나 있었고, 좀더 거칠고 광기 어린 느낌이었다.

오른손에 쥔 주무기 역시 창이 아닌 검이었다.

“그 검은···.”

“이것도 알고 있나? 일본의 검귀를 해치우고 얻은 요검 이페탐이지.”

한건우가 무기집에서 꺼내지 않고 영영 유폐해 버린 사악한 요검.

어찌나 많은 이를 베었는지, 깨끗하게 닦은 검날에서 혈향이 풍기는 듯했다.

도플갱어나 사람을 흉내내는 마물 같지는 않았다.

상대에게서는 가짜로 꾸밀 수 없는 존재감이 느껴졌다.

한건우가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당신은 다른 세계선에 실재하는 나인가?”

한건우의 얼굴을 한 상대가 웃었다.

제3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웃는 모습을 본다니. 섬뜩한 경험이었다.

“역시 머리가 잘 돌아가는군. 맞아, 나는 너다.”

“...나와는 걸어온 길이 다른 듯한데. 요검 이페탐을 선택한 것만 봐도, 좀더 멍청하다는 것도 알 수 있고.”

상대는 즐거워했다.

“크하하! 선택지는 분명히 달랐을 거다. 나는 아무도 곁에 두지 않으니까. 내 앞길을 막을 거추장스러운 자들은 모조리 베어버렸지.”

저게 또다른 나의 모습이라니.

한건우는 듣고 있기가 거북했다.

“...너도 지금 예언 석판의 시험을 받고 있나? 모용황과 싸우고 온 건가?”

한건우가 ‘예언 석판’이라는 단어를 꺼낼 때.

상대는 마치 아무것도 듣지 못한 듯이 멈추어서 무반응이었다.

마치 정보가 차단된 것처럼, 뒤의 물음에만 대답했다.

“모용황? 그 중국 노인네를 말하는 건가. 5년쯤 전에 그 괴팍한 노인장을 하늘로 보내주었지. 뭐, 그쯤 살았으면 지옥에 갈 때가 되었잖아?”

“5년 전이라고?”

한건우가 그를 마주보았다.

“그래. 넌 나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군. 아직 회귀 초반인건가?”

“....”

“한건우, 즐거운 대화는 이쯤 할까. 요새는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애송이들이 없어서··· 내 요검이 목이 마르다고 하거든.”

상대가 입이 찢어질 듯 웃으며 이페탐을 휘둘렀다.

한건우는 그때 깨달았다.

‘이거였나.’

이계 유적을 빽빽하게 메우고 있던 단 하나의 문장.

[예언의 힘을 얻으려는 자, 자신을 이겨야 한다]

‘비유나 상징이 아니라, 말 그대로였구나.’

두 명의 한건우는 각자의 무기를 쥐고 서로에게 돌진했다.

카아아앙-

치지지-

창대와 검날이 스치면서 폭발 같은 스파크가 터졌다.

서로 한 치의 물러남도 없었다.

두 사람이 공중에서 자세를 가다듬을 때.

콰과가가가-

다시 한번 한건우를 향해 유성우가 떨어졌다.

그때 한건우는 그 공격의 정체를 확신했다.

‘저건 설마 <아그니의 화염>...?’

한건우가 다루는 공격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한건우 역시 <강신>을 통해 신격의 화염으로 대응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는 동안.

공방은 점차 상대쪽이 우세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마창 게이볼그의 주인> 특성 덕분에 회복 불가 디버프가 있었지만. 요검 이페탐에도 비슷한 저주가 걸려있었다.

상대는 한건우보다 전투 경험도 더 많고, 윤리와 원칙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망설임 없는 살육의 길을 걸어온 자였다.

목숨을 내건 생사결에서 그쪽이 유리한 것은 당연해 보였다.

그러나 한건우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여기서 이기는 건 나야.’

요검의 부름에 유혹당해 살육을 즐기는 어리석은 자.

그런 자신에게 패할 생각은 없었다.

[특성 발동 : 골렘 소환]

한건우가 손짓하자, 산맥의 바위들이 골렘이 되어 일어났다.

하나하나의 크기는 수십 미터 이상. 전설의 거신상 같은 바위 골렘들이 상대를 노리고 손을 뻗었다.

“그깟 잔재주를!”

상대방이 한건우를 비웃으며 요검 이페탐을 휘둘렀다.

주홍색 바다에서 해일 같은 불길이 높이 용솟음치며 바위 골렘을 삼켰다.

그때, 온 하늘이 높이 솟아오른 불길로 뒤덮였다.

태양까지 가려질 정도였다.

두 명의 한건우 역시 밀려오는 불꽃 해일에 뒤덮였다.

“크하하하!”

화염 속에서 상대가 광소했다.

불꽃은 그 둘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했다.

그러나 불꽃의 해일이 지나갔을 때.

상대는 더이상 웃을 수 없었다.

“어···?”

발록의 화염 채찍이 상대의 발목을 칭칭 감고 있었다.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구속하는 용도였다.

[일렉트릭 건 스톤]

- 사용 횟수 1회 차감.

- 남은 횟수 0 / 5

쿠구구···.

파즈즈즈즉!

한건우의 몸을 타고 전자기파가 번뜩였다.

터엉!

손에 쥔 일렉트릭 건 스톤이 터져나갔다.

“뭐, 뭐냐!”

위를 올려다본 상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늘에서 땅 방향으로.

거대한 총구 하나가 수직으로 그를 겨누고 있었다.

죽음의 입구를 마주한 순간.

이미 승패는 갈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쿠콰과과과과-

충격음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작은 위성 하나를 박살낼 정도의 위력이었다.

치이이이···.

그럼에도 상대는 목숨이 붙어있었다.

그는 여전히 살기 어린 눈으로 한건우를 노려보았다.

“이야앗!”

석탄처럼 까맣게 타버린 요검 이페탐은 주인의 말을 듣지 않았다.

터엉-

요검 이페탐의 날이 부서지자, 상대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한건우는 창으로 적의 심장을 꿰뚫었다.

“크흑!”

“넌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도구 따위에, 욕망 따위에 자신을 빼앗기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한건우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

한건우는 천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이제 이골이 나는군.’

또 이계인가 했지만, 다행히 아니었다.

이비현과 동료들이 한건우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건우 씨 괜찮아요? 정신이 들어요?”

“지금 내가 이런 상태로 얼마나 지난 거지?”

이비현이 큰 눈을 깜빡거렸다. 그녀가 눈가에 맺힌 물기를 소매로 닦았다.

“5분 정도일까요···. 갑자기 건우 씨와 모용황이 석판을 잡은 채로 멈추더니, 갑자기 석판에서 빛이 나고, 모용황이 사라져 버리는 거예요.”

“사라졌다고?”

“네. 가루가 되어 흩어져 버렸어요. 도망간 건 아닌 것 같고···.”

한건우의 손에는 완성된 예언 석판이 들려 있었고, 모용황이 있던 자리에는 검은 재만 흩날리고 있었다.

“마스터, 제가 회복에, 해독에 다 시도해 봤는데 도저히 반응이 없어서 걱정하고 있었다구요.”

“두들겨 깨울까도 했수다.”

차은비와 박이경은 걱정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한건우가 깨어난 것에 안심한 듯, 연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건우 형, 모용황은 어떻게 된 거야?”

“그자는 죽었을 거야. 결투에서 패배했거든.”

임수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가만히 멈추어 있었는데 무슨 결투가 있었다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야기를 해주려면 길어. 여기서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여기까지 결사대로 함께 와준 각성자들.

함께 싸우고 살아남은 소중한 이들의 얼굴을 돌아보며, 한건우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분명히 자격 검증을 통과한 것이 불과한데, 아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시급한 일이 있었다.

“모용황은 곧 0시부터 한국에 했던 실험을 전세계에 퍼뜨린다고 했어. 그것부터 막아야 해.”

“지하성 안을 뒤져볼까요? 분명히 모용황이 직접 운용하는 장치가 있을 텐데.”

이비현과 부하들은 금방이라도 다시 지하성으로 뛰어들 기세였다.

“잠깐.”

한건우는 좀전부터 염두에 둔 방법이 있었다.

예언 석판이 만들어낸 이공간을 나와 현실로 돌아왔으니.

시스템은 정상 작동을 시작할 것이다.

‘분명히 그 안에서 내 손으로 모용황을 죽였어. <화안금정> 특성이 흡수되어 모든 걸 읽을 수 있게 된다면, 모용황이 무슨 장치를 해놓았든 멈출 수 있을 거야.’

모용황을 굳이 자기 손으로 끝장낸 건, 화안금정을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권능창이 가동되고 있었다.

[악마의 권능(유일) 발동 : 탐식]

- 죽인 자의 특성을 흡수합니다.

- 특성 흡수 중

···

···

“뭐 이렇게 오래 걸려?”

한 개의 특성을 흡수할 뿐인데.

한건우는 의아했다.

‘특성창에 추가되었나 볼까?’

그때 한건우의 뇌리에 뭔가 스쳤다.

“설마?”

그가 숨을 죽인 순간.

알림음의 폭풍이 밀려왔다.

[특성 진화 : 아그니의 화염]

[특성 진화 : 인드라의 뇌전]

[특성 진화 : 화식조의 눈]

[특성 진화 : 염동력]

[특성 진화 : 진동 감지]

[특성 진화 : 그림자 맹시]

[특성 진화 : 마창 게이볼그의 주인]

[특성 진화 : 거짓 간파]

[특성 진화 : 그래비티 필드]

[특성 진화 : 마그네틱 필드]

[특성 진화 : 아이기스의 보호]

[특성 진화 : 포탑 건설]

[특성 진화 : 공간 왜곡]

[특성 진화 : 암흑의 별]

[특성 진화 : 기억의 석판]

[특성 진화 : 잠금 해제]

[특성 진화 : 위상 전환]

[특성 진화 : 부패의 시간]

[특성 진화 : 믿음의 방패]

[특성 진화 : 용맹의 가호]

[특성 진화 : 침묵]

[특성 진화 : 골렘 연성]

[특성 진화 : 검풍]

[특성 진화 : 금속 조작]

[특성 진화 : 마인드 컨트롤]

[특성 진화 : 타임 리와인드]

[특성 진화 : 주시자의 뱀]

[특성 진화 : 테티스의 길]

[특성 진화 : 포르투나의 주사위]

···

···

···

파아아앗!

정신없이 눈뜨는 새로운 감각에 제정신을 붙잡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다른 세계선의 한건우가 갖고 있던 특성들이 모조리 흡수되면서, 중복되는 특성이 한 단계씩 진화한 것이었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특성들이 추가되어 있었다.

다른 세계선의 한건우가 죽인 자들의 능력이었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한건우의 눈이 황금색으로 빛났다.

<화안금정>을 부릅뜨고 모용황의 지하성을 바라보자,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 보였다.

성벽 너머, 내부에 숨겨진 구조까지 훤히 들여다보였다.

“저기였나.”

콰아앙-

한건우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겨서 지하성의 비밀 공간을 폭파시켰다.

모용황이 작동시키려던 파동 장치를 손끝 하나로 무력화한 것이었다.

“허억!”

사람들의 눈이 경악으로 휘둥그레졌다.

그것도 A급 이상 되는 강한 자들의 사정이었다.

동료들은 갑자기 밀려든 압박감에 호흡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몇몇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그 존재감의 중심에는 한건우가 있었다.

“거··· 건우 씨···?”

한건우가 달라진 걸 느끼고, 이비현이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한건우가 천천히 그녀를 돌아보자, 그녀는 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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