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233화 (233/238)

#233 결사대 (9) - 약점이 없는 상대

‘만인검이라.’

만물을 변화시키는 모용황의 능력.

그걸 바탕으로 한 공격기가 분명했다.

모용황의 말대로라면, 그는 약점이 없는 상대였다.

모든 각성자에게는 당연히 상성에 의한 약점이 있다.

고유 특성이 화염 계열인 자는 냉기와 물에 취약했고.

저주를 거는 주술사는 신성력에 취약한 식이었다.

보통의 각성자들이 약점을 이겨내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첫째, 취약한 상성을 스킬이나 아이템으로 보충하는 것.

둘째, 능력 자체를 올려서 웬만한 상성을 씹어먹어 버리도록 강해지는 것.

모용황은 어찌 보면 둘 다였다.

우선 취약한 상성 자체가 없이 모든 힘을 가지고 있었고, 능력도 세계 최강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그걸 깰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타다닷-

한건우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들어갔다.

매서운 창끝에는 섬광과도 같은 예기가 서려 있었다.

방금 마인으로 변한 천망의 실력자를 끝장낸 창이었다.

모용황은 평이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약간 구부정한 등에 작은 키. 중국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노인의 모습이건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아무리 거리를 좁혀도, 모용황과의 거리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였다.

한건우와 모용황 사이의 짧은 거리가 무한히 늘어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영원히 달려가다가 힘이 빠져 죽게 될 것이다.

손만 뻗으면 닿을 듯, 바로 코앞에 있는 모용황이 엄청나게 먼 존재처럼 보였다.

“공간 능력인가!”

“공간 능력 또한 나의 힘이지.”

한건우는 응수하듯이 그의 특성을 사용했다.

[특성 발동 : 그래비티 필드]

[특성 발동 : 공간 왜곡]

강한 중력을 걸고, 모용황이 끊임없이 늘어뜨리는 공간을 반대로 잡아당겼다.

엿가락처럼 늘어나던 공간을 붙잡는 것이었다.

“허?”

모용황이 흥미롭다는 듯 한건우를 바라보았다.

거리가 좁혀지자, 모용황은 발로 땅을 박차 하늘로 몸을 띄웠다.

쿠웅-

모용황이 가볍게 발을 디뎠을 뿐인데.

황금 지붕을 얹은 지하성 전체가 진동했다.

바닥에 겨우 주저앉거나 쓰러져 있던 각성자들이 신음했다.

모용황이 공중으로 올라가자, 한건우는 따라서 솟구쳤다.

그리고 의문점에 대한 해답도 얻었다.

‘모용황은 날 죽이려 하지 않는군.’

반신반의했던 황룡의 말이 진짜였다.

그 이유라면 뻔했다.

‘예언 석판의 봉인 때문이겠지.’

이집트에서 아르고스의 주인들은 예언 석판의 금고를 봉인했다.

각자가 가진 고유의 특성으로 열 수 있는 봉인이었다.

그건 주인들끼리 서로 죽이지 않겠다는 결의이기도 했다.

그 결의의 혜택을 한건우가 누리고 있었다.

한건우가 죽어버리면 금고는 영영 열 수 없고, 예언 석판도 맞출 수 없게 되니까.

모용황 같은 자라면, 혹시 봉인을 열지 않아도 금고를 열 수 있도록 백도어를 마련하지 않았을까 의심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던 모양.

밝은 달이 뜬 밤하늘 위에서, 한건우는 모용황과 마주했다.

한건우는 긴 창을 들고 있었고, 모용황은 빈손으로 긴 옷자락만 휘날렸다.

“천망의 요원들은 왜 다 죽게 두었지? 네 부하들 아닌가.”

모용황이 좀더 일찍 나타났다면, 천망의 요원들은 죽음을 면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게 궁금해서 묻는 것은 아니었다.

모용황이 대체 무엇을 하느라 늦었는지 떠보는 것이었다.

“흐하하하···.”

“?”

뜻밖에 모용황이 목젖을 드러내며 껄껄 웃었다.

“자네는 아직 20여 년밖에 살지 않은 젊은이니 그리 생각할 만도 하지!”

“....”

“그들은 그들의 싸움터에 가서 죽은 것뿐이다. 나와는 상관이 없어.”

이상한 궤변이었다.

한건우가 눈썹을 찡그렸다.

“무슨 헛소리냐?”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내가 죽게 만든 것이 아니지.”

“그렇다 치자. 실험이 완료되지 않았는데 왜 부하들을 죽게 내버려두는지 궁금했을 뿐이야.”

“아하,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한건우의 등골에 불길한 기운이 스쳤다.

“...뭐?”

“한국에서의 실험은 절반의 성공이라는 판단이다. 예상보다 많이 살아남았지만, 비각성자와 미등록자를 모두 제거하는 건 나중의 일. 우선은 지배종의 수를 충분히 줄인 것으로 만족했지.”

“그렇다면···.”

“그래, 바로 오늘 자정. 0시가 되면 세계는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거다.”

한건우는 오싹 소름이 돋았다.

한국에 벌어진 일이 세계에 전부 펼쳐진다면···.

한건우는 자신이 외국에서 만나고 구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일본의 대마도에서 구출한 여자들.

아프리카의 무칸을 타도하고, 새로운 희망이 된 로지 마소크와 그녀를 따르는 사람들.

멕시코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리콘과 레이나 남매.

루마니아의 고성에서 구해낸 사람들까지···.

그들의 이야기가 힘이 닿는 데까지 이어지기를, 한건우는 바랐다.

‘자정까지는 1시간도 채 남지 않았어.’

모용황의 뜻대로 된다면.

한건우가 알던 모든 이들은 내일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분노가 치밀었다.

“그건 내가 허락 못 한다.”

“허락? 허락이라?”

모용황의 웃음소리가 온 북경의 하늘에 쩌렁쩌렁 울렸다.

“하하하하! 자네는 항상 이 늙은이를 놀라게 한단 말이야. 다른 사람의 특성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도 그렇고.”

“누구든지 자신의 모든 면을 보이지 않는 법이지.”

“그렇지, 자네는 매우 영리하니까 말이야. 지금 내가 자네를 죽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나 보군?”

모용황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한건우를 떠보았다.

“그렇겠지. 내가 없으면 영영 예언 석판을 완성하지 못할 테니까.”

“맞네, 하지만 자네를 죽이지 않더라도 자네를 제압하는 방법은 아주 많지.”

모용황의 등 뒤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검들이 소환되었다.

모용황의 권능으로 만들어낸 만인검이었다.

아까는 일행의 숫자와 같았지만, 이번엔 그 열 배가 넘는 수였다.

“자네는 자네의 사람이 다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것 같으니, 한번 막아보게.”

“!”

모용황의 등 뒤에 있던 검들이 일순간 공중으로 치솟았다.

당장이라도 아래로 내리꽂혀 사람들을 공격할 듯했다.

한건우가 다급하게 외쳤다.

“모두 흩어져!”

[특성 발동 : 죽은 자의 날]

한건우는 만인검이 쏟아지는 곳 아래로 날면서 공중을 향해 수백의 마력 총기를 발사했다.

만인검과 마력 총화기가 정면으로 부딪쳤다.

각성자들의 고막이 터져나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폭음이 일었다.

<죽은 자의 날>의 기세에 만인검의 궤도가 휘었다.

측면으로 날아가는 검들은 창으로 쳐내거나, 공간 왜곡을 사용하여 궤도를 비틀었다.

그런 한건우와 함께, 드래곤 역시 빠르게 휘몰아치듯 날아가며 만인검의 공격을 비늘로 튕겨내려 했다.

치지지지지징-

만인검의 날이 드래곤의 비늘에 어지럽게 스치면서 상흔을 남겼다.

키에엑!

드래곤을 상처입힐 수 있는 건 다른 드래곤 뿐.

그렇게만 알고 있던 한건우의 드래곤은 괴로워하며 울부짖었다.

“피해!”

한건우가 만인검을 막고 있는 동안.

섬뜩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쉬익!

검이 미처 눈치채지 못한 궤적으로 날아오며 한건우의 발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처음부터 발목을 노린 듯, 아래쪽으로 휘어오던 검이었다.

“크윽!”

발목을 당해 스피드가 떨어진 한건우가 검들을 막아내기 어려워지자, 만인검은 한건우의 일행을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 분노한 드래곤이 모용황을 향해 브레스를 발사했다.

크와아아아아-

한건우가 공격당한 것을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것이었다.

충분히 힘을 모으지 못했어도 명실공히 드래곤의 브레스.

한 생명체의 공격이라기보다 재앙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브레스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담은 채. 모용황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자 모용황은 브레스가 날아오는 방향으로 거대한 방패를 형성해냈다.

“용의 숨결을 맞는 것은 오랜만이군.”

모용황은 드래곤의 브레스 앞에서도 여유로운 태도였다.

드래곤도 각성자와 같이 어떤 속성을 가지기 마련.

모용황은 <화안금정>을 통해 드래곤의 속성을 읽으려 했다.

그때 모용황의 허연 눈썹이 일그러졌다.

그가 웃음 외에 또다른 표정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모용황은 드래곤과 한건우를 번갈아 보며 당황했다.

“대체 왜···?”

‘왜 저토록 놀라는 거지?’

마수의 알에서 태어난 드래곤.

빙룡의 심장을 넣어 용으로 태어났지만, 중간에 한건우가 가진 뇌룡의 기운이 섞여 들어갔다.

색깔도 짙은 보라색으로, 이 같은 드래곤은 아무런 자료에도 나오지 않았다.

드래곤의 브레스에는 빙정과 전격뿐 아니라 중력장의 왜곡까지 섞여 상상 이상의 위력을 발휘했다.

이 드래곤의 제대로 된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빙룡과 뇌룡, 그리고 한건우의 기운이 섞여 태어난 세상에 하나뿐인 조합이니까.

‘그것 때문인가?’

쿠과과과과-

드래곤의 브레스는 모용황이 만든 방어막을 뚫었다.

한건우도, 일행들도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놀랍군!”

모용황은 선뜻 감탄하면서 몸을 피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한건우가 창을 들고 돌진했다.

[특성 발동 : 강신]

며칠의 수명을 아낄 때가 아니었다.

창 주위로 인드라와 아그니의 신격에서 나온 힘이 일렁였다.

휘유우웅-

“이야앗!”

한건우가 창을 휘두른 것만으로 대지에 폭풍이 일었다.

화염과 전격은 밤하늘을 밝혔다.

“와···.”

그건 마치 신들의 싸움 같았다.

젊은 신과 늙은 신의 싸움.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나.

턱!

모용황은 한건우의 창을 손으로 잡았다.

힘겹게 막아낸 것도 아니었고, 손쉽게 잡을 뿐이었다.

“세상에···.”

모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아무리 강한 적이라 해도, 저 창을 맨손으로 잡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내지른 창을 잡힌 한건우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당신은 몸 주변에 항상 아공간의 실드를 형성하고 있군.”

모용황의 손아귀에 창이 잡힌 순간.

이물질 같은 다른 차원의 느낌이 느껴졌다.

모용황은 그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고 미소지었다.

“꽤 뜨겁군. 내 방어를 뚫고 이 정도 열기를 전달해주다니 역시 자네는 대단해.”

모용황은 한건우의 창날을 잡은 손을 자신의 몸 쪽으로 확 당기면서, 어깨로 한건우의 몸통을 들이받았다.

“크악!”

한건우는 창을 놓치면서 아래로 날아갔다.

콰아앙!

한건우의 몸이 땅에 처박혔다.

모용황의 반격을 예상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몸 내부가 진탕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한건우가 기침을 하자 선혈이 울컥 튀어나왔다.

모용황은 한건우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공중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듯, 느릿느릿 움직이는데도 그는 금세 한건우의 코앞에 도달했다.

“나를 권능에만 매달리는 늙은이로 보았나?”

그때였다.

박이경과 임진호가 모용황에게 덤벼들었다.

박이경은 반쯤 잘려나간 손아귀를 회복으로 겨우 지혈한 상태였다.

“이야아앗!”

박이경과 임진호.

육체적으로 강력한 둘이 피해를 감수하고 몸통으로 모용황에게 피해를 주려는 시도였다.

그 사이, 임수호는 거대한 얼음창을 만들어 모용황에게 날렸다.

“허허.”

모용황은 진호의 돌격을 힘으로 맞받아내지 않고, 몸의 위치를 순간이동했다.

파앗-

“커억!”

모용황의 팔에 임진호가 걸렸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진호를 가볍게 들어 박이경의 주먹 앞으로 내밀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박이경은 당황한 나머지 억지로 몸의 방향을 틀었다.

그로 인해 균형을 잃은 박이경을 모용황이 가볍게 걷어찼다.

퍽!

박이경의 거구가 조약돌처럼 날아갔다. 박이경을 걷어찬 방향에서는 수호의 얼음창이 날아오고 있었다.

“악!”

수호는 당황한 나머지 얼음창을 억지로 뒤틀었다.

기운이 역류한 반동으로 수호는 내상을 입었다.

“한건우를 뺀 너희들은 개미 새끼에 불과하구나.”

모용황은 안쓰럽다는 얼굴로 한건우의 일행을 바라보았다.

“개미 새끼가 덤벼도 그저 유흥에 불과하니, 더는 나와 한건우의 대화에 끼어들지 말거라.”

그때, 한건우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왔구나.”

“?”

<그림자 맹시>를 풀고 이비현이 나타났다.

그녀는 긴장된 얼굴로 품에 금고를 안고 있었다.

예언 석판 다섯 조각이 담긴 금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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