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 결사대 (8) - 만인검
한건우가 일으킨 불꽃의 파도는 겉보기에만 화려할 뿐.
마인이 검법으로 불러낸 묵룡과 부딪치자 힘없이 사그라들었다.
냉기가 어린 묵룡이 화염을 잠재우며 요동쳤다.
마치 거대한 화염의 파도를 뚫고 묵룡이 승천하는 듯한 기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인은 내심 고무되었으나, 방심하지는 않았다.
‘한국 최강이자, 아시아의 패왕이라는 각성자 한건우다. 고작 이 정도에 끝날리가 없지!’
한건우는 아직 제대로 된 타격을 입었다고 볼 수 없었다. 묵룡의 기세에 그 기술을 쓴 마인도 함께해야 했다.
마인은 검날에 기운을 불어넣고 한건우가 있는 곳을 향해 빛살처럼 날아갔다.
묵룡을 상대하고 있는 한건우의 인영이 보였다.
슈우-
마인은 검끝을 세우고, 화염을 헤치며 단숨에 파고들었다.
빈틈을 놓치지 않고 한건우를 단번에 끝장내기 위해서였다.
푹-
마인의 검이 한건우의 몸을 꿰뚫고 지나갔다.
“해치웠···!”
마인의 눈이 커졌다.
분명히 거기에 한건우가 있어야 하는데.
마인을 마주한 것은 한건우의 형상을 닮은 골렘이었다.
골렘은 허공으로 부스스 흩어지고 있었다.
“!”
그때 공중에서 강력한 기운을 느낀 마인은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굴렸다.
한건우가 마창 게이볼그를 휘둘러,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고 있었다.
콰앙!
단지 창 한 자루.
그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흔적이 땅에 새겨졌다.
마치 자연재해가 일어난 땅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화르르르-
그와 함께, 마인이 뚫고 들어온 지옥의 염화가 다시 높이 일어났다.
불꽃의 벽은 한건우와 마인을 둘러싼 채로 한층 강해졌다.
외부의 어떤 것도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고, 마인 역시 다시 나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으으···.”
불꽃의 끄트머리가 희어지며 마인을 옥죄어왔다.
불꽃을 다루는 한건우는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으나, 마인의 표정은 일각이 다르게 일그러졌다.
“네가 가진 능력을 모두 꺼내어 봐라.”
한건우는 마인의 앞에서 창을 고쳐잡았다.
마인은 자신이 잘못 들었는지 해서 한건우를 다시 보았으나, 들은 대로였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두 번은 없을거야.”
“그럴 것 같군. <묵룡십이식>의 절초를 모두 꺼내볼 수 있겠어.”
한건우는 자신을 진지하게 상대하려는 것이었다. 마인도 그에 걸맞게 진중하게 정신을 집중했다.
“덤벼라.”
“흐아아압!”
마인은 자신이 <묵룡십이식>의 특성으로 연마한 최고의 절기를 한건우에게 쏟아냈다.
-묵룡출세
-묵룡겁천
-묵룡천하
마인이 자신의 기운을 모두 뽑아 검을 통해 출수하자, 9마리의 묵룡이 나타나 한건우를 향해 쇄도했다.
9마리의 용은 한데로 뭉쳐 거대한 하나의 용이 되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묵룡은 주위의 모든 것을 파괴하며 용틀임하고 있었으나 최후의 목표는 한건우 단 하나였다.
한건우는 창을 쥔 채 조용히 기운을 모으고 있었다.
‘<강신> 특성을 가지게 된 이후, <인드라의 뇌전>과 <아그니의 화염>은 더욱 강하고 정교해졌지.’
인드라와 아그니의 신격을 몸에 받은 이후.
새로운 경지가 열린 듯했다.
뇌전의 전격, 그리고 지옥불의 열기.
모든 기운을 모아 창 전체에 감쌌다.
신화급 무구인 마창 게이볼그가 떨리기 시작했다.
평범한 각성자라면 그 창을 쥔 것만으로도 창에 있는 불꽃과 뇌전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고 타버릴 것이다.
한건우는 창을 돌리며 원심력을 얻고, 몸을 회전시키며 마인을 향해 창을 쏘아냈다.
한건우의 손을 떠난 창은 더 이상 창이 아니었다.
마치 하나의 유성과도 같은 빛을 뿜으며, 마인을 향해 날아갔다.
9마리의 묵룡은 창을 보고도 거침없이 한건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창이 스치는 순간, 묵룡은 순식간에 분해되기 시작했다.
묵룡의 기운이 모조리 사그라드는 순간.
이미 창은 마인의 바로 코앞에 당도해 있었다.
“흐아아!”
마인은 검으로 창을 튕겨내려 했다.
오히려 마인의 검이 튕겨나가며, 마인의 손아귀가 찢어졌다.
콰아아아앙!
순식간에 마인 주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한건우는 마인을 향해 걸어갔다.
상반신의 반 이상이 날아간 마인에게서 생명의 빛이 꺼지고 있었다.
“네 특성을 극한까지 수련해서 얻은 너의 힘에는 경의를 표한다.”
“....”
“너가 가진 묵룡십이식은 내 무기에 맡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군. 좋은 특성을 얻게 해줬으니 그 부분은 고맙다.”
“...?”
마인의 상처 부위는 끊임없이 뇌전과 화염의 기운으로 불타고 있어, 재생도 불가능했다.
마인은 의문을 가진 채로 눈을 감았다.
“아니!”
임진호 형제를 상대하던 마인이 그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각자 다른 곳에서 싸우던 마인들도 모두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이 전율했다.
마인이 되기 전부터, 그자는 천망 요원들 중에서 가장 강한 실력자였다.
“절대 저렇게 쉽게 당할 분이 아니건만.”
“대체 무슨 수를 쓴 거냐!”
“단지 찌르기 한번이었어.”
충격을 받고 중얼거리는 마인들 쪽으로, 한건우가 고개를 돌렸다.
“너희 대장이 외롭겠군. 마저 따라가라.”
그때 공중을 날던 마인 하나가 구멍난 날개로 하늘을 위태롭게 맴돌고 있었다.
은설아가 지휘하는 자이언트 맨티스 떼에게 당한 것이었다.
은설아를 잡기 위해 혼자서 올라간 것이 그의 패착이었다.
북경 지방은 야생 곤충형 마수로 뒤덮여 있었다.
‘끈질긴 곤충들···.’
죽여도 죽여도 또 밀려왔다. 마인이 재생하는 속도보다 자이언트 맨티스 떼가 살을 파먹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결국 마인은 뼈가 훤히 드러난 채로 속절없이 추락하더니, 모용황의 정원에 떨어졌다.
그 모습을 은설아가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가 숨을 고르면서, 자이언트 맨티스 떼를 이끌고 모용황의 정원으로 내려왔다. 마인의 마지막 숨까지 끝장내기 위해서였다.
은설아가 죽인 마인을 보고, 한건우가 미소지었다.
“봐라, 벌써 대장을 따라가는 놈이 있잖아?”
남은 8인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한건우가 땅을 살짝 발로 차 몸을 공중에 띄웠다.
[특성 발동 : 묵룡십이식]
“이건가?”
방금 마인에게서 흡수한 특성이었다.
한건우의 창 끝에서 묵룡의 기운이 발출되기 시작했다.
스으으으-
이무기처럼 큰 묵룡이 공격 자세를 취하며 정원을 오시하고 있었다.
매끈한 뱀처럼 보이는 동양풍의 검은 용이었다.
한건우의 묵룡은 마인이 불러낸 것보다 훨씬 거대했고, 냉기가 아닌 뇌전의 기운이 어려 있었다.
하늘을 날던 한건우의 드래곤도 놀라서 아래를 굽어보았다.
드래곤의 발톱 사이에는 자신에게 덤벼들던 마인이 구겨져 있었다.
자신이 불러낸 묵룡을 보고, 한건우는 미소지었다.
‘실체가 아니니, 시전자의 힘과 능력에 따라서 묵룡의 모습도 달라지는군.’
콰아아아!
한건우의 몸 주변에서 에너지의 기류가 폭발했다.
8마리의 묵룡이 나타나 각각의 마인들에게 덤벼들었다.
길드원들은 한건우가 나선 순간, 마인들에게서 벗어나 거리를 두었다.
묵룡은 주위에 검은 번개를 두르고 마인들을 한입에 삼키기 위해 돌진했다. 대부분의 마인들은 이를 피하거나 막아내지 못하고 한줌의 재로 변해버렸다.
개중 강해 보이는 마인들이 간신히 버텨내고 있었다. 박이경과 싸우던 마인은 거대한 몸을 움크리며 회피했다.
파스스스···.
묵룡이 스친 마인의 온몸에서 검은 연기가 타올랐다. 간신히 목숨은 부지했으나 온 몸이 다 타버려 정상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시간을 오래 주면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겠지만.
이를 보고만 있을 박이경이 아니었다.
콰직!
박이경이 뛰어올라 무릎으로 마인의 머리를 가격했다.
수박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마인은 튕겨져 나가듯 쓰러졌다.
차은비는 신성력을 바닥까지 끌어내어 부상을 입은 마인들을 <신의 가호>로 지져버렸다.
신성력의 기운은 마인의 재생능력과는 상극이었다.
“다··· 죽었나?”
“형은 그런 말 하면 안되는 것도 몰라?”
임수호 형제가 투닥거리며 한건우에게 다가왔다.
다른 길드원들도 모두 모였다.
“좀 애를 먹긴 했지만, 형님 덕분에 끝냈군요.”
“마스터는 이제 같은 각성자가 아닌 것 같아요. 아예 다른 차원의 사람 같아요.”
길드원들의 흥분한 얘기가 들리는 가운데서도, 한건우는 여전히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모용황··· 그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어차피 모용황은 마음만 먹으면 어느 곳이든 순식간에 나타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미리 대비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방심할 수는 없었다.
한건우는 이비현을 기다려야 하는지 고민했다.
이비현은 한건우의 부탁을 받고 이번 작전의 제일 중요한 목표를 탈취하러 단독 행동 중이었다.
궁전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수수수···.
정원의 나무에서 잎이 흔들려 떨어졌다.
떨어진 잎은 부스스한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드디어 나타나는 건가.’
길드원들은 방어를 위한 진형을 짜고 긴장을 유지했다.
사방 어디에서 나타나든 곧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엇?”
평범해 보이는 노인 하나가 진형 가운데에 나타났다.
길드원들은 모두 당황하여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의 얼굴을 알아본 건 당연히 한건우였다.
“자네들이 바로 한건우의 사람들이군.”
노인이 입을 열었다.
평범한 얼굴, 범상한 목소리.
그럼에도 모두의 귀에 쩌렁쩌렁 울리는 불가사의한 음성이었다.
“살아서 만나니 반갑네. 하지만 내 지하성을 엉망으로 만들었으니, 그 대가로 만인검의 일합을 받아야겠네.”
모용황의 몸 주위.
수십 개의 검이 나타났다.
어떤 기운이라고 알기 어려울 만큼 복합적인 기운이었다.
‘길드원의 수와 같다!’
검이 각자에게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이까짓 것!”
박이경은 몸을 강화한 후 검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검은 박이경의 강화를 무시하면서 주먹 자체를 베어버렸다.
턱!
“크윽!”
박이경의 잘린 오른주먹이 땅에 떨어지는데도.
아무도 그 사실에 놀라지 않았다.
정확히는 놀랄 기운이 없었다.
임수호와 임진호는 각각 방어를 시도했다.
얼음의 장벽과 아다만티움 방패.
빈틈없는 방어였다.
그러나 모용황이 소환한 검은 얼음방패를 손쉽게 녹여버렸다.
째앵!
그리고 아다만티움 방패까지도 두부처럼 잘려나갔을 때.
임진호는 큰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제일 놀란 사람은 차은비였다.
방어에 관한 한 한건우 다음이라고 할 수 있는 <신의 가호>의 방어막조차.
모용황의 공격을 전혀 막지 못했다.
모용황의 말대로, 단 일합.
그 한 수로 인하여 대부분의 길드원은 큰 부상을 입거나 전투불능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룰 수 있네. 자네들의 힘은 고작 그 일부분일 뿐. 나머지 것들에 의하여 무력화되기 쉬운 것들 뿐이지.”
모용황은 인자한 할아버지가 손녀를 바라보는 듯한 표정으로 차은비를 바라보았다.
“내 공격은 신성력도 소용없다네. 신성력 또한 나의 힘이지.”
모용황의 검은 단 한 사람.
한건우만을 빗겨갔다.
일부러 맞추지 않은 듯했다.
한건우가 모용황에게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