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 결사대 (7) - 10인의 적
천망에서 가장 강한 10인의 각성자.
진짜 실력자들은 따로 있던 모양이었다.
“저 자들, 이상해요.”
막강한 기세를 풍기며 나타난 10명의 요원을 보고, 차은비가 이마를 찌푸렸다.
그녀는 신성력을 다루는 힐러인 만큼 사람의 기운에 예민했다.
“...이상한 건 딱 봐도 알겠구만.”
땅에 처박혔던 박이경이 피 섞인 침을 퉤, 하고 뱉으며 일어났다. 태연한 척했으나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파앗!
“!”
10인의 외모가 눈에 띄게 변했다.
등에 검은 날개가 솟는 자들이 있었다.
김도경이나 염제 신광우가 그랬듯이, 원소 계열 특성을 극한으로 다루면 자유자재로 날아다닐 수 있는 날개가 생기기 마련.
그러나 원소 계열 특성으로 만들어낸 날개와는 사뭇 달랐다.
검고 번들거리는 피막, 흉측한 짧은 털까지.
마치 악마종 마수의 날개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몇몇의 이마에는 짧은 뿔이 솟아났다.
온몸이 검은 비늘로 뒤덮인 자도 있었고, 거인족처럼 몸집이 커지는 자도 있었다.
“이종 혼합이군. 악마종 마수와 혼합된 거다!”
경악한 동료들에게 한건우가 외쳤다.
그의 등에서도 빛의 날개가 뻗어나왔다.
“이종 혼합이요?”
각성자들이 믿기지 않는 눈으로 10명의 요원을 바라보았다.
이종 혼합, 일명 키메라.
각성자 세계에서 건드려서는 안될 금기였다.
회귀 전의 특수안보부가 그랬듯이, 중국도 정부 연구기관에서 키메라 마수를 키운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설마 사람을 악마종 마수와 섞을 줄이야.
‘평범한 각성자를 마수와 섞어도 괴물이 될 텐데. 훈련받은 상급 각성자를 상급 악마종과 섞다니.’
그들의 모습은 더이상 인간이 아니라 마인이라 불러야 할 만큼 흉측했다. 겉모습만이 아니라, 본질까지 변한 모양이었다.
‘인간을 상대로 하는 특성들은 통하지 않는군.’
<마인드 컨트롤>도, <피의 군주>도 마찬가지였다.
크르르르···.
상공에서 날던 드래곤이 비늘을 잔뜩 곤두세우고 으르렁댔다.
천망의 마인 중 하나가 긴 삼지창을 들고 날아올라 드래곤에게 접근했다.
키에에엑!
드래곤이 밤하늘을 두 갈래로 찢을 듯이 울부짖었다.
모든 생명을 두려워하고 움츠리게 만드는 드래곤 피어였다.
그러나 천망의 마인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거세된 듯, 거침없이 드래곤을 향해 직진했다.
“!”
한건우가 마인의 등을 향해 파괴 광선을 쏘았다.
명중할 수밖에 없는 거리였다.
팟!
그러나 마인은 점멸하듯이 빠른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했다.
휘잉-
드래곤이 꼬리와 날개를 휘둘렀다.
마인은 검은 날개로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며 드래곤의 공격 역시 피했다.
나머지 9인의 마인도 마찬가지로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한건우의 동료를 모조리 죽이라는 특명이라도 받은 듯.
한건우에게는 직접 덤비지 않고 각자 무기를 들고 흩어졌다.
마인들의 손속은 재빨랐다.
순식간에 은설아가 보낸 마수 몇 마리의 목숨이 끊어졌다.
“악!”
“설아야, 정신차려!”
차은비는 은설아 대신 그리핀의 갈기를 잡고, 마인을 피해 어지럽게 비행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뚜렷한 전선이랄 게 없이, 마인들과 각성자들이 각자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빈틈없는 접전이었다.
그때 날개를 단 마인 중 하나가 파충류 괴수 같은 형상으로 변하더니, 그리핀을 탄 은설아를 공격했다.
은설아는 황급히 정신을 집중해서 남은 마수들을 그러모았다.
“은비 언니! 저는 괜찮아요.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사람들을 도와주세요.”
“응? 하지만···.”
“어서요!”
은설아는 차은비를 다른 그리핀에 태워 보내고, 비행 마수들을 이끌고 밤하늘 높이 올라갔다.
“가라.”
은설아가 자이언트 맨티스 떼를 지휘했다.
투두두두두-
수십 마리의 자이언트 맨티스가 괴수가 된 마인에게 총알처럼 가서 박혔다.
“크롸아악!”
곤충형 마수들이 가장 무서울 때는 단체로 공격할 때였다.
마인이 피끓는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촤아악-
마인이 무기를 휘두르자, 두동강이 난 자이언트 맨티스들이 떨어져 나갔다.
테이밍한 마수가 죽는 것은 은설아에게도 큰 타격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정신 연결을 놓칠 수는 없었다.
은설아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목표로 한 마인을 공격했다.
슈웅-
모용황의 정원이 있는 아래쪽.
임수호는 자신에게 덤벼드는 마인에게 얼음 창을 날렸다.
치지지징-
임수호는 마인이 공격할 틈을 주지 않았다.
허공에서 끊임없이 얼음 창살을 만들며 마인 하나를 옥죄었다.
얼음 감옥에 갇힌 마인은 쭉 찢어진 입으로 웃더니, 열 특성으로 얼음 창살을 손쉽게 녹여버렸다.
“말도 안 돼!”
임수호가 놀라서 대처를 못 하고 있을 때.
까앙!
임진호가 이를 악물고 돌진해 아다만티움 방패로 마인을 쳐냈다.
마인의 몸은 바윗덩이 같았고, 충돌과 동시에 지옥 같은 열기가 후끈 밀려왔다.
‘확실히 강하군···.’
순수하게 각성자 대 각성자로 싸운다 해도 승산이 있을지 의심되었다. 그런데 악마종 마수와 섞여 강화되기까지 하니, 상황은 더 안 좋았다.
마인은 손끝에서 검은 불꽃을 불러내 수호와 진호를 향해 휘둘렀다. 움직이는 불꽃이 살아있는 뱀처럼 임수호 형제를 휘감으려 했다.
임수호는 불꽃이 닿는 끝부분을 향해 아주 좁은 얼음 방어벽을 형성했다.
주변 전체에 방벽을 만들면 방어할 수 있는 범위는 넓어지지만 방어력은 낮아졌다. 필요한 부분만 국소적으로 막으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불꽃과 얼음 방벽의 충둘이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두 자루의 검이 춤을 추는 듯했다.
임수호가 그만큼 섬세하게 자신의 특성을 컨트롤할 수 있기에 가능한 기술이었다.
임수호가 불꽃 공격에 대응하는 사이.
임진호는 아다만티움 방패를 들고 마인에게 돌진했다.
[특성 발동 : 일점돌파]
콰아아-
제대로 명중하면 집채만한 마수도 한번에 쓰러뜨릴 수 있는 특성이었다. 게다가 아다만티움 방패를 들었으니, 그 위력은 엄청날 터였다.
“크윽···.”
“형!”
임진호의 입에서 선혈이 흘러나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임진호는 곧 상황을 깨달았다.
일점돌파라는 특성은 충격을 일점에 집중하는 게 핵심이었다.
마인이 그 일점에 충격이 모이지 못하도록 흩어버린 것이었다. 방패가 상하지는 않았으나, 임진호는 내상을 입었다.
“후후, 잔재주를 부리는군.”
마인이 임진호 형제를 비웃었다.
정원 반대편에는 박이경과 그 부하들이 마인들과 싸우고 있었다.
“이놈, 악마종처럼 금방 재생됩니다!”
“신성력을 담아서 공격해야 합니다!”
부하들의 대화를 듣고, 박이경은 가죽 너클에 성수를 콸콸 부었다.
“오냐, 네놈들이 얼마나 빠르든, 주먹을 맞으면 한 방이다.”
그러나 마인 중에도 박이경의 호적수가 하나 있었다.
거인족처럼 육중하면서도 빠른 마인이었다.
콰아앙!
번개처럼 번뜩인 주먹이 박이경이 있던 곳에 내리꽂혔다. <신체 강화>를 발동한 상태인데도, 마인의 주먹이 스친 박이경의 팔뚝에 긴 스크래치가 났다.
박이경은 도리어 크게 웃었다.
“좋아, 네놈이 내 상대구나.”
박이경은 마인에게 달려들면서 온힘을 모아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을 휘두르는 주위의 공기가 일렁였다.
박이경은 신체 강화에만 기대지 않고, 수련을 거듭해 최적의 몸을 만들었다.
남들은 박이경을 보고 본능형 전투를 한다고들 하지만.
박이경의 본능은 철저한 계산을 압도했다.
그가 상대하던 마인도 박이경을 향해 맞서서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사람의 주먹끼리 맞부딪히면서 난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굉음과 함께 강한 충격파가 주위를 휩쓸었다.
그러나 타격을 받은 정도는 확연히 달랐다.
마인은 제자리에 서 있었고, 박이경은 십수 미터 뒤로 날아가버렸다.
“저놈, 엄청나군.”
박이경의 눈빛은 좀더 신중해졌다.
마인은 박이경에게 바로 달려들었다.
평소같으면 바로 맞대응할 박이경이었지만, 마인의 공격을 살짝 회피하면서 반격했다.
‘이건 내 만족을 위한 전투가 아니야. 무조건 버텨야 한다.’
당장 이기지 못하더라도, 시간을 끌어야 한다고.
박이경은 생각했다.
차은비와 길드원들 역시 마인 중 한명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녀가 상대하는 마인은 주술사인 듯. 온몸에 백골로 이루어진 장신구를 걸고 있었다.
‘내려오길 잘했어.’
은설아의 말대로, 지금은 지상에 있는 길드원들이 자신을 더 필요로 하고 있었다.
차은비 주위에 있던 길드원들이 차은비의 가호를 받고 마인에게 덤벼들기 시작했다.
마인은 소름끼치는 웃음소리와 함께 손에 쥔 방울과 부채를 휘둘렀다.
그러자 마인의 뒤에서 나찰과 같은 마귀가 소환되어 길드원들을 공격했다. 직접 공격을 받지 않은 사람들까지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며 괴로워했다.
강력한 저주의 기운이 차은비가 서 있는 후방까지 느껴졌다.
‘저 자를 먼저 제거해야 해!’
차은비는 자신이 쓸 수 있는 유일한 공격기를 사용했다.
‘지금 이걸 써버리면 에너지를 소모해서 힐링이 어려울 수도 있는데···.’
망설임은 있었지만, 당장 저 마인을 제압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차은비의 머리 위에서 신성력이 응축되어 실체를 가졌다.
드 라모트 백작부인에게도 타격을 입힌 공격이었다.
‘대천사 소환.’
은빛의 구체가 번쩍이더니, 마인을 향해 내리꽂혔다.
길드원들은 순백의 날개를 펼친 천사가 삼지창을 들고 내려오는 듯한 환각을 보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난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건우는 마창 게이볼그를 들고 가장 강한 마인와 대치하고 있었다.
천망의 제복을 걸치고 있던 다른 마인들과는 달리.
그는 전통 복장에 한 자루 검을 들고 서 있었다.
암흑의 기운이 풍기기는 했으나, 겉보기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뭐냐. 무림 고수라도 되나?”
한건우가 그 마인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
그러자 의외로 마인이 대답했다.
“그저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너는 다른 자들과는 다르군?”
“모용황 님을 따른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지.”
“모용황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알면서도 그의 편을 드는 것인가?”
마인이 비스듬히 웃었다.
“그분의 목적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강자와의 싸움에서 나를 증명하는 것. 한국 최강이라는 네놈의 목을 내 전리품으로 삼고자 한다.”
“덤벼라.”
한건우는 마창 게이볼그를 겨누었다.
마인은 얇은 검신으로 이루어진 검을 뽑아 한건우에게 달려왔다. 그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순간, 정면에서 달려오던 마인이 잔상만 이루며 사라졌다.
“!”
치잉-
마인의 움직임을 놓친 한건우는 본능적으로 창을 세워
뒤에서 날아오던 칼날을 막아냈다.
마인은 물리 법칙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한건우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무술의 깊이에서는 이자를 이기기 어렵겠다.’
한건우는 아그니의 화염을 창에 입혔다. 창끝에서 불타는 화염을 보며, 마인이 말했다.
“보답으로 나도 비슷한 것을 보여주지. 죽기 전에 그 이름은 알아야 할 터. 묵룡검법이다.”
마인의 검이 여러 갈래로 갈라진 듯 사방에서 쇄도했다. 검끝에서는 먹처럼 검은 용이 꿈틀거리며 휘몰아쳤다.
‘이자의 특성이군!’
검은 용은 살아있는 양 움직이며 한건우를 사방에서 압박하기 시작했다.
수세에 몰린 한건우는 뒤로 물러서며 창을 크게 휘둘렀다.
화아아-
불꽃의 파도가 일어나며 검은 용과 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