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230화 (230/238)

#230 결사대 (6) - 천망

“벌써 야영지 안쪽까지 들어왔어?”

“이놈들처럼 변장을 한 건가.”

박이경이 으르렁댔다.

인피면구로 단순히 얼굴만 덮어썼다면 모를까.

목소리와 말투까지 복사한 듯 베끼는 놈들이었다.

“예전에 도플갱어를 상대할 때와 똑같아. 그때도 대화를 해보고 이상한 점을 찾아냈거든.”

임진호는 <거울의 숲> 균열을 떠올렸다.

동생인 임수호의 도플갱어가 실제와 얼마나 비슷하던지. 겉보기만으로는 구별할 자신이 없었다.

“일단 들어가자.”

한건우는 야영지 중앙으로 앞장서서 돌아갔다.

한밤중의 진지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각성자들은 모두 뛰쳐나와 무기를 들고 있었고, 몇몇 각성자들은 이미 당해서 쓰러진 채였다.

“마스터, 이상합니다! 내부에서 분명히 공격이 있었는데··· 아무리 보아도 침입자의 흔적은···.”

한건우의 길드원이 다급하게 사태를 보고했다. 한건우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안타깝군.’

슈웅!

대답도 없이, 한건우는 손바닥을 들었다. 흰 광선이 뻗어져 나가 길드원의 목을 꿰뚫었다.

“헉!”

임수호와 임진호는 턱이 빠지겠다 싶을 정도로 크게 입을 벌렸다. 다른 각성자들의 표정도 매한가지였다.

그때 이비현이 섬광처럼 움직였다.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려는 길드원의 시체로 다가가서 인피면구를 벗긴 것이다.

찌익!

아까와 마찬가지였다.

웬 낯선 각성자의 얼굴이 드러나자, 모두 크게 동요했다.

“이자도 가짜였군요.”

한건우의 눈에서 기이한 빛이 번뜩였다.

그는 원유선의 <마인드 컨트롤>을 발동하고 있었다.

천망 요원들을 대상으로 심리 조종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건 쉽지 않을 뿐더러, 정신 방어벽이 높은 일부는 걸리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심리 조종의 전 단계, 상대방의 정신상태를 탐지하는 ‘마인드 프로브’에 안 걸리는 사람은 드물지.’

한건우의 감각은 탐침을 세운 것처럼 날카롭게 각성자들을 훑었다.

‘생각한 대로군.’

스콰악!

한건우의 손끝에서 시작된 전격이 번뜩이더니, 다섯 명의 각성자가 한 번에 쓰러졌다.

물론 인피면구를 쓴 천망의 요원들이었다.

“마, 마스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가짜입니다. 밤 사이 내부에 천망의 요원들이 잠입해 있던 겁니다.”

“그럼··· 이들은···.”

“....”

한건우는 고개를 짧게 좌우로 저었다.

이미 죽었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이비현이 혀를 내두르며 물었다.

“어떻게 바로 가짜라고 확신하셨죠?”

“초저녁에 외곽 보초를 섰던 인원들이더군.”

한건우가 침통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죽은 부하들은 비교적 약한 축에 드는 이들이었다.

초저녁의 보초이니, 비교적 등급이 낮은 이들을 내보낸 것이었다.

아무리 죽음을 각오하고 온 길이라지만.

자신을 믿고 따라온 부하들이 개죽음을 당한 듯하여 마음이 무거웠다.

“더 있어요?”

“아니, 지금은 없어.”

‘마인드 프로브’로 더 살펴보아도 이제 수상한 자는 없었다.

“형님, 침입자를 보냈으니 적의 본진은 방심하고 있을 거요. 이 기세를 몰아서 본진으로 밀고 들어가시죠!”

박이경이 주먹을 불끈 쥐고 건의했다.

“같은 생각이다.”

한건우는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멀리 순찰하고 있는 드래곤과 은설아를 부르기 위해서였다.

“죽은 사람들의 복수를 하겠어.”

임수호의 눈에도 분노의 불꽃이 튀었다. 얼굴을 빼앗기고 죽은 이들 중에서는 임수호와 친한 길드원도 있었다.

“그래, 가자. 놈들의 기지 위치라면 알고 있으니까.”

모용황의 본거지인 지하성.

그 근처, 지상 가까운 곳에 천망의 비밀 기지가 있었다.

‘어쩐 일인지 모용황이 지하성에 꽁꽁 숨어서 나오지 않으니, 모용황을 찾아가는 길에 천망도 쓸어버리면 될 일.’

한건우는 죽은 부하들을 떠올리며,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그러나 감정에 매몰되면 일을 그르치는 법.

“비현아.”

“네?”

“도착하면 부탁이 있어.”

한건우는 이비현과 솜브라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부탁했다.

*

쿠과와와아아-

드래곤의 브레스가 위장에 덮인 격납고를 부수었다.

천망의 기지 지붕이 브레스 한방에 날아갔다.

그 다음은 테이머 은설아의 <비스트 마스터> 특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투두두두-

비행 마수 군단이 뻥 뚫린 기지 안으로 낙하했다.

네 발 달린 마수들도 기지 안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키이잇! 키기기긱!

자이언트 맨티스와 전투개미 군단도 일제히 천망의 기지로 밀려갔다.

은설아의 친화력 스탯이 올라가면서, 마지막 보루였던 곤충형 마수까지 테이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집결!”

“으허억!”

“흩어지지 마라! 제자리에서 대응한다!”

“크악! 놔! 내 다리!”

천망의 요원들은 혼비백산한 채로 마수 군대를 맞이했다.

지상 통로로 빠져나가려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들은 야수 같은 표정을 한 한국의 각성자들에게 가로막혔다.

“어딜!”

콰직!

박이경의 분노한 주먹이 천망 요원들의 머리를 깨부쉈다.

무릎으로는 뒤돌아 도망가는 요원의 등을 박살냈다.

그렇게 죽은 천망 요원들의 시체는 편히 잠들지도 못했다.

스으윽-

시체의 눈동자에 푸른 기운이 감돌더니, 곧 강시처럼 팔다리를 삐걱거리며 일어나는 것이었다.

“어어?”

머리통이 깨진 동료가 다시 일어나는 걸 보고, 천망의 요원들은 몹시 당황했다.

박이경의 부하, 네크로맨서의 실력이었다.

“저들과 싸워서 죽여라.”

네크로맨서가 낮게 명령했다.

키야아악!

천망 요원이었던 시체는 괴성을 지르며 생전의 동료에게 덤벼들었다.

또다른 시체가 생길수록, 네크로맨서의 수족만 늘어날 뿐이었다.

“크하하! 들어가자!”

박이경과 알파스 길드원들의 입가에 미소가 올라왔다.

“이상하네.”

다른 쪽 통로로 진입하던 임진호가 중얼거렸다.

침착한 표정과는 달리.

그의 아다만티움 방패 앞에는 십수 명의 요원들이 참혹한 시체가 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왜 그래, 형?”

임수호가 물었다.

방금 진호의 방패 뒤에서 얼음 창으로 살육을 벌인 후였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임진호는 섣부른 판단을 하기는 이르다고 생각해,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 반대쪽 공중.

비행 마수에 올라탄 차은비는 은설아를 집중 케어하고 있었다.

‘설아를 꼭 지켜야 해. 지금 전투에서 가장 중요하면서 취약한 전력은 설아니까!’

은설아는 공중에서 수많은 마수들을 내려다보며 정신을 연결하고 있었다.

테이밍은 고도의 정신 집중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테이머는 외부의 공격에서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는 때가 있었다.

하지만 테이머가 뒤에 멀찍이 물러나 피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마수들과 멀리 떨어지면 테이밍이 풀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슈욱-

테이머인 은설아를 알아보고, 천망의 요원들이 집중적으로 원거리 공격을 날렸다.

“설아야, 조심해!”

차은비는 <신의 가호>로 물리적인 방어벽을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공격 저주를 방어하는 해주를 걸며 열심히 은설아를 보호했다.

“아니다, 총 이리 줘!”

차은비는 은설아의 손에 쥐어진 마력 기관단총을 빼앗듯이 들었다. 가볍고 미끈하게 빠진 총신은 손에 착 들어왔다.

‘보나마나 장영표가 만든 게 분명하군. 잘 됐어!’

각성자 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녀였다. 기초적인 마력 총기 사용법 정도는 알고 있었다.

타아앙! 타다다다-

차은비는 비행 마수에 탄 채로 천망의 요원들에게 마력 탄환을 퍼부었다.

“와, 진작 이럴걸.”

차은비가 헛웃음을 지었다.

보호와 치유도 좋지만, 지금 필요한 건 선제공격이었다.

차은비는 은설아를 엄호하며 좀더 아래로 내려갔다.

그때 한건우는 기지의 정중앙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천망 지휘부가 모여있던 작전통제실 안.

한건우의 발밑에는 각성자의 시체가 무덤을 이루고 있었다.

모두 피에 젖은 제복을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한건우가 작전실 벽에 배치된 수십 개의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

대부분 화면이 깨지거나 연결이 끊어졌고, 몇 개만 살아있었지만.

내용을 알아보기에는 충분했다.

이 기지에서 한국으로 쏘아보낸 미사일 궤적을 보여주는 화면이었다.

“어, 건우 형!”

“형님!”

“마스터! 괜찮아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공격해 들어온 일행들이 거의 동시에 한건우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바깥에는 일행의 수보다 훨씬 많은 기척이 따라왔다.

은설아가 테이밍한 마수들, 그리고 네크로맨서가 살려낸 시체들이었다.

“좀 이상한데.”

한건우는 의아함을 느꼈다.

임수호가 놀란 눈으로 한건우와 임진호를 번갈아 보았다.

“어떤 게? 아까 진호 형도 똑같은 말을 하더니.”

“아까 인피면구를 쓰고 잠입했던 놈들이 약한 건 이해가 되는데.”

차은비가 미심쩍어하며 말을 받았다.

“음, 그야 그렇죠. 아마도 변장과 독살을 주특기로 하는 암살자 부대일 테니까요. 그런 종류의 부대라면 각성자로서의 능력 자체는 약한 경우가 많죠.”

박이경도 문득 미심쩍은 기분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했다.

“흠, 그런데··· 본진에 있는 자들이 고작 이 정도다?”

“....”

“바로 그 생각이야. 중국의 천망이라면 우리나라의 특수안보부와 같은 위치에 있는 조직이지. 최소한 김도경 정도 되는 각성자들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

일행의 얼굴에도 함께 의문이 떠올랐다.

“맞아요. 요원들의 수는 많았지만, 눈에 띄게 강한 이들은 없었어요.”

차은비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물론 한건우와 일행들이 엄청나게 강한 것도 사실이고, 천망의 요원이 전부 여기 모여있는 건 아닐 것이다.

각지에 파견되어 활동하는 요원들도 많을 테니까.

아무리 그래도.

가장 중요한 비밀 기지를 지키는 이들이 고작 이 정도 수준이라는 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모두 불길한 기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

치리리리리리릿···.

에너지의 파동이 밀려왔다.

“조심해!”

한건우가 동료들에게 경고하면서 <믿음의 방패>를 발했다.

차은비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물리 보호막을 폈다.

차라라락···.

폐허가 된 천망의 기지.

건물의 부서진 벽과 파편이 모두 모래로 바뀌고 있었다.

“뭐야!”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에 각성자들이 경악했다.

천망이라는 거대 조직의 기지가 허무하게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해변에 모래성을 지었다가 부수는 것처럼.

물질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적의 등장이었다.

“드디어 왔군, 모용황.”

한건우가 이를 악물었다.

익숙한 감각이었다.

바닥을 이루는 타일도 점차 고운 모래로 바뀌었다.

각성자들의 발밑에 싱크홀 같은 구멍이 푹푹 파였다.

“모두 비행 마수에 올라타요!”

은설아가 외치자, 비행 마수들이 낮게 날면서 아래로 떨어지는 각성자를 받았다.

네크로맨서가 일으킨 시체들은 속절없이 싱크홀 속으로 떨어졌다.

휘이이이잉-

큰 바람이 불어오자 고운 모래무덤이 쓸려갔다.

천망의 기지는 원래 없었던 양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모래무덤이 사라진 자리, 아래로 뻥 뚫린 분지 가운데.

황금빛 지붕이 이어진 구중궁궐이 보였다.

그 앞에는 향그러운 꽃나무와 화초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정원이 끝없이 이어졌다.

‘모용황의 지하성.’

다시 보아도 그 풍경은 압도적이었다.

한건우는 그 안 어딘가에 있을 모용황의 기척을 감지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저게··· 뭐야?”

“여기가 진짜 적의 소굴이었군!”

박이경이 <거대화>를 발동하며 먼저 정원으로 뛰어내린 순간.

“박이경, 물러서!”

콰아앙-

박이경이 착지한 곳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육중한 몸이 총알처럼 멀리 튕겨나가, 구석에 처박혔다.

스스스···.

천망의 제복을 입은 열 명의 요원이 지하성의 정원에 나타났다.

요원들은 소름 끼치도록 무표정했고, 온몸에서 암흑의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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