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 결사대 (2) - 진시황의 무덤
목표는 단순했다.
모용황을 죽이는 것이 먼저.
그리고 아다만티움 금고 안에 있는 다섯 조각의 예언 석판을 확보하는 것.
모용황을 이 손으로 직접 죽이면, 아다만티움 금고를 닫은 다섯 개의 봉인을 한건우가 직접 열 수 있다.
‘황혼의 시간을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알아내고, 시스템의 관리자 권한도 얻겠어.’
한건우는 예언의 내용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사람을 죽여서 수를 줄인다는 무식한 방법 말고, 분명히 더 나은 방법이 나올 거야.’
현재 모용황은 북경의 지하성에 있으리라고 예측되는 상황.
한건우는 그 안에 들어가 보기도 했다.
“북경의 자금성이 있던 위치, 그 지하가 모용황의 본거지입니다. 거기로 들어갈 때, 천망 요원들이 제가 가는 길을 방해할 겁니다. 그들을 막아주십시오.”
“네!”
한건우는 군용기 안, 결사대의 동료들에게 당부했다.
본국이 공격당한 터라 모두 독기가 올라 있었다.
북경이 가까워졌을 때, 임수호가 한건우의 자리로 다가왔다.
“놀랍다. 내가 함경도에서 지낼 때, 거기서도 다들 북경은 사람이 못 사는 곳으로 알고 있었는데, 거기에 천망의 기지가 있었다니.”
“그렇지. 모용황이 거기서 지내왔어.”
“북경에 나타난 황룡은 이제 사라졌나 보네.”
“황룡?”
한건우가 몰랐다는 반응을 하자, 오히려 임수호가 더 놀랐다.
“아, 형도 몰랐어? 북경이 예전에 초토화된 건 황룡이 나타나서래.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 그러더라고.”
“...북경에 야생 드래곤이 있다는 거야?”
금시초문이었다.
“그러게, 그게 드래곤인가? 어쨌든 이제 죽었던지 아니면 어디로 가버렸나봐. 야생 드래곤이 있다면 먹잇감인 야생 마수가 거의 씨가 말랐을 테니까.”
“으음.”
한건우의 생각에는 허풍이거나, 작은 아룡종 마수를 과장했을 가능성이 컸다.
공식 정보에서는 동북아시아에 드래곤이 나타난 적이 없었다.
한건우가 아는 미래에서도 그런 말은 못 들었다.
그러나 한건우는 헛소문으로 일축하지 않고 일단 기억해두었다.
“건우 씨, 여기 있는 각성자들이 상태 이상에 다시 걸리지는 않을까요?”
이비현이 걱정되는 투로 물었다. 다른 이들도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그 정도는 소소를 심문해서 알아낸 게 있었다.
“파동을 통한 공격은 드래곤 피어로 막을 수 있고, 미사일에 싣고 온 것 같은 생화학 무기는 금방 다시 준비하기 어려울 거야.”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드래곤의 곁에서 멀리 떠나지 말아야겠어요.”
스텔스 군용기의 창문 너머로 짙은 피막 날개가 만들어낸 그림자가 스쳤다.
한건우는 드래곤의 모습을 보면서, 일렉트릭 건 스톤을 만지작거렸다.
[남은 사용횟수 1 / 5]
최강의 무기, 레일 건을 쏘는 단 한 번의 기회가 남았다.
마리아 베르타는 이 공격으로 한건우의 드래곤을 격추하려 했고.
까다로운 상대였던 아소카 싱도 이걸로 한방에 잡았다.
심지어 한건우는 레일 건의 진정한 위력을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아소카 싱 때는 내가 저주에 걸려 너프된 상태였어.’
칼리 여신의 속박을 받고 힘이 떨어졌던 상황에서도 그만한 힘을 냈으니.
정상적인 상태라면 훨씬 파괴력이 높지 않을까.
절대로 마지막 기회를 낭비하지 말고, 가장 필요한 순간에 레인 건을 써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착륙은 어디에 하나요?”
차은비가 창가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아직 구름 위를 날고 있어서 땅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한때 대도시였던 북경은 폐허가 된 지 오래.
부서진 건물의 잔해과 공터밖에 없을 것이다.
멀쩡한 공항이나 활주로가 남아있을 리 없었다.
“당연히 비행기를 직접 내릴 수는 없죠.”
한건우가 건넨 낙하산을 보고, 차은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물론 낙하 훈련이야 사관학교 시절에 지겹게 받았고, 다른 이들도 각성자로 입대했을 때 이 정도는 익혔으리라.
그러나 구름 속으로 뛰어내리는 건 처음이었다.
“걱정 마세요. 사고가 나면 저와 드래곤이 구해줄 겁니다.’
드드드- 철컥!
군용기의 해치가 거침없이 열리자, 얼음 결정이 섞인 바람이 기내를 쓸고 지나갔다.
사람들은 군용 무전기를 끼고 낙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후우, 알겠어요. 밑에서 만나요.”
차은비는 한숨을 쉬며 열린 해치로 다가갔다.
“어?”
그녀는 발밑에 보이는 회색 구름 아래, 펼쳐진 지대의 형상이 조금 익숙하다는 생각을 했다.
‘뭐야 이게··· 분명히 어디서 봤는데.’
학교에서 본 전술서였나, 아니면 고대의 진법 자료이던가.
잠시 얼을 빼고 있는데, 커다란 손이 차은비의 허리를 덥썩 잡았다. 그리고 돌아볼 새도 없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슈웅-
“악!”
박이경의 품에 안겨서 떨어지면서, 차은비의 뇌리에 무언가가 번뜩였다.
‘아, 생각났다!’
고대 중국의 전설적인 진법 중 하나.
팔문금쇄진의 형상이었다.
*
탓!
마지막으로 내려온 각성자가 땅에 발을 디뎠다.
낙하의 충격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한건우가 낙하지점에 세심하게 역중력을 걸어주었기 때문이다.
‘와.’
알파스 길드의 각성자가 낙하산 고리를 끊으며 감탄했다.
그야말로 황폐화된 땅이었다.
이 근방에 과거 중국의 황궁 유적이 있다던데.
대체 균열 안의 이계인지 지구인지 분간이 안 갈 노릇이었다.
끼루루루-
꿰에에-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흉악한 마수들이 양떼처럼 얌전히 모여서 울고 있었다.
비스트 마스터라 불리는 테이머 은설아 덕분이었다.
‘은설아 플레이어가 없었다면 큰일날 뻔 했어.’
알파스 길드의 각성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건우의 지시를 따라, 처음 지정했던 위치로 모든 일행들이 모일 수 있었다. 모두 무사했다.
“현재 모용황의 근거지와는 수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구름과 안개가 짙어서, 저희를 감지하지 못했을지도요.”
한건우는 이비현과 얘기하는 도중, 차은비의 표정이 어두운 것을 발견했다.
“왜 그러시죠?”
“아, 마스터··· 그게, 확실친 않은데···.”
박이경을 비롯해서 모든 사람들이 차은비를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내려오면서 보니까, 이 지대 전체가 뭔가 규칙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어요.”
“규칙이요?”
이비현이 날카롭게 물었다.
“네, 그 진법이라고 아시죠?”
그때.
갑자기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울리며 지대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조심해!”
결사대가 서 있던 발밑이 훅 빠졌다. 싱크홀이 생긴 것이다.
우르르르-
주변의 땅은 마치 흙과 자갈로 된 파도처럼 일렁였고, 지붕처럼 올라붙어 위를 막아버렸다.
쿠르르-
땅 밑에 텅 빈 공간이 이어졌다. 정신없이 파도를 타고 낙하가 계속되었다.
50여 명의 결사대원과 함께, 은설아가 길들인 마수들이 홍수에 쓸려가는 것처럼 아래로, 아래로 떨어졌다.
드래곤은 거대한 싱크홀 속에서 공중에 떠올라 날개를 펄럭이고 있었다.
[아빠, 괜찮아?]
후우욱-
마지막으로 땅이 꺼지는 와중.
차은비가 보호막으로 커다란 구체를 형성했다.
“이 안으로 들어와요!”
각성자들 몇몇은 재빨리 차은비의 보호막 안으로 들어갔다. 보호막으로 된 구체는 데굴데굴 아래로 굴러갔다.
한건우는 주위를 살피며 사람들을 보호해주려고 준비했지만.
‘음?’
예상치 못한 상황인데도, 다들 요령 좋게 대처하고 있었다.
공중에 머무를 수 있는 아이템이나 스킬북을 사용하기도 했고, 은설아가 길들인 비행 마수들의 다리를 붙잡고 올라타기도 했다.
이들은 국내 최고 길드의 상위 각성자들. 훈련이 잘 되어있는데다 실전 경험도 풍부한 베테랑이 아닌가.
쿠우우우웅-
빛도 없는 암흑 속에서 한참을 내려온 후.
거인이 탄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듯이, 진짜로 바닥에 닿았다는 기분이 났다.
“함정···. 일종의 진법이라던 차은비 씨 말씀이 맞았군요. 저희가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걸까요.”
이비현이 한숨을 쉬었다.
각성자들이 빛무리를 만들어 사방을 밝혔다. 그러자 주변 모습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돌벽 같던 벽면에는 자수정이 영롱하게 빛났고, 주위를 크게 둘러 수은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 혹시 균열 속으로 들어온 것 아니야?”
박이경이 감탄하자, 차은비가 주위를 살펴보며 말했다.
“균열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곳이에요. 수은의 강이라니, 이거 악취민데. 진시황의 병마용갱이 생각나는데요?”
“뭔 갱?”
안타깝게도 유일한 고학력자인 차은비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드물었다.
한건우는 한방향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가리켰다.
“일단 통로를 따라 가시죠. 적의 함정이 있을 것이니 모두 긴장을 늦춰서는 안됩니다.”
한건우와 이비현이 선두에 서고, 차은비와 박이경이 후위를 엄호하면서 결사대는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개미굴처럼 좁은 통로를 따라가자, 넓은 광장으로 이어졌다.
“적이다!”
족히 수천을 넘기는 적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러나 상대편은 잠잠했다.
“...?”
고대의 갑옷을 입은 병사들, 그리고 전투마가 끄는 전차까지. 이토록 고요한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들은 말없이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잠깐! 저놈들 살아있는 사람이 아냐.”
“...조각상이군. 흙으로 빚어진···.”
각성자들이 숨을 삼켰다.
“진짜 병마용갱이 맞았어요.”
“이거 완전... 조각상이 아니라 사람을 흙으로 만든 것 같은걸? 영화 같은 데서 보면 이런 게 꼭 움직이던데 말야.”
박이경이 조각상을 툭툭 건드리는 순간.
병사들의 눈동자에 빛이 들어왔다.
기이잉- 척!
군대가 일사불란하게 무기를 들었다.
“엇, 이런?”
“당신은 꼭, 입이 방정이야!”
“전투 준비!”
각성자들은 통로를 등지고 정면을 바라보며 뭉쳤다.
흙으로 된 병사들은 고대 중국 병사처럼 고유의 병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병, 전차병, 보병, 궁수 등.
다양한 종류의 병사들이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진격했다.
쉬이익!
궁수 부대가 일제히 화살을 쏘았다.
하늘이 원래 보이지 않음에도, 하늘이 화살비에 가려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임수호가 얼음 방벽을 공중에 소환해냈다.
투두두두두-
무수한 화살촉이 두터운 얼음 벽에 부딪쳐 박혔다.
얼음 벽을 뚫고 떨어지는 쇠뇌도 있었으나, 각성자들이 충분히 요격할 수 있었다.
화살비가 지나가자마자.
흙으로 된 보병들이 긴 창을 들고 정면 돌격하였다.
“크하하, 덤벼라! 너도 따라와!”
박이경은 아다만티움 방패를 든 임진호를 데리고 정면으로 달려나갔다.
콰아아-
그들이 보병 무리와 충돌했다.
흙으로 이루어진 병사들이라 강도가 약했으나, 어설프게 부술 경우에는 다시 재생하기 시작했다.
토병들과의 싸움을 눈여겨본 이비현이 외쳤다.
“저들 몸 속에 핵이 있어요! 그걸 부숴야 완전히 멈춰요!”
토병도 일종의 골렘인 모양이었다.
두구구구구구···.
한건우는 전차병이 밀려오는 쪽에 홀로 서 있었다.
[특성 발동 : 죽은 자의 날]
콰가가가-
무수한 총구에서 불이 뿜어나와 전차를 부수고 밀어붙였다.
병사들이 허공에 떠오르며 산산조각났다.
미처 핵이 부숴지지 않은 병사들은 꼬물꼬물 움직이며 재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드래곤은 그들이 재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콰아아-
묵직한 꼬리를 휘두르며 토병들을 가루로 만들었다.
수천 명의 토병을 뚫고 나가기는 어려웠으나.
이 자리에서 조금만 버텨도 곧 토병 무리 정도는 무찌를 것 같았다.
그때 뒤를 돌아본 차은비가 있는 힘껏 소리쳤다.
“피해요!”
그들이 지나온 통로 쪽에서.
펄펄 끓는 황금색의 용암이 흘러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