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223화 (223/238)

#223 만인지적 (12) - 무조건 해낼 겁니다

조금 전, 한건우의 길드 지하 벙커.

대통령과 정부 각료들은 간이의자에 모여앉은 채, 심각한 표정으로 한 곳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들이 뚫어져라 보고 있는 것은 모니터 화면. 요새는 찾아보기도 힘든 구형 데스크톱 모니터였다.

“아무리 한건우 플레이어라도 혼자 힘으로 미사일을··· 가능할까요?”

“모릅니다. 저희는 지켜볼 수밖에요.”

얼마 전 인터넷 통신망이 임시로 복구되자마자.

군 출신의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직접 군사 레이더망에 우회 접속했다.

국경 근처의 수상한 움직임을 감시하는 레이더망은 아직 살아있었다.

국정상황실장은 부하들과 함께 24시간 감시 체제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마자, 국정상황실장이 의문의 미사일 발사체를 포착한 것. 출발지는 다름아닌 북경이었다.

‘북경이라면 사람이 떠난 지 오래된 지역 아닌가?’

‘거기에 뭐가 있었어?’

그 후로 이 난리가 난 것이었다.

금해준과 장영표 역시 그들과 섞여서, 상체를 앞으로 한껏 기울이고 있었다.

숫제 모니터 속으로 들어가려는 듯한 모양새.

“과연 잘 되려나요?”

장영표가 걱정이 듬뿍 섞인 혼잣말을 했다.

방금 한건우에게 알려줄 것은 다 알려주었다.

장영표는 아이템 제작뿐만 아니라 총기와 폭탄, 미사일 같은 무기에도 전문가였다.

애초에 재래식 무기와 이계의 재료를 넘나드는 실력이 그의 특장점이었다. 그 점에는 자신 있었다.

그러나 머리로 안다고 해서 쉽게 할 수 있을까.

하늘을 나는 미사일에 붙어서 섬세한 조작을 한다는 게 가능한지.

“형님이잖아요. 무조건 해낼 겁니다.”

금해준은 확고한 신뢰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장영표는 대답 없이 끄응, 하는 신음만 내뱉었다.

‘성층권에서 이동할 때라면 그나마 모르겠다. 육지에 가까이 와서 하강을 시작해버리면 그때는···.’

장영표는 두 주먹을 겹쳐서 꽉 쥐었다.

한건우에게 전한 마지막 말대로, 행운을 빌 따름이었다.

“온다, 온다···.”

“망할!”

모니터에 뜬 작고 붉은 점의 움직임 하나에.

다급한 신음과 욕설이 오갔다.

지도에 나타난 붉은 점, 즉 미사일은 서해바다 위에 있었다.

모두들 한마음으로 그 점이 멈추기만을 바랐지만.

붉은 점은 얄미울 만큼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미사일이 육지로 다가옵니다!”

“결국 실패한 건가···.”

“오, 주여.”

절망에 빠져 기도를 하는 이도 있었다.

그때였다.

“!”

육지와 바다의 경계선 근처에서.

붉은 점이 파르르 떨리며 멈추었다.

사람들은 숨도 쉬지 못했다.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붉은 점을 바라보았다.

“렉이 걸린 거야?”

“그럴 리가요, 여기 시간은 그대로 표시되고 있습니다.”

“조금 기다려 봅시다!”

몇 초 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단언했다.

“미사일, 다운됐습니다.”

전쟁에 이긴 것처럼 열렬히 환호하는 사람들 속에서.

금해준은 무릎에 팔꿈치를 올린 채 턱을 단단히 괴고 있었다.

미사일의 위치를 표시하는 점이 멈추는 것도, 그리고 곧 사라지는 것도.

가장 먼저 본 것은 금해준이었다.

“와.”

금해준은 짧은 감탄사로 마음을 표현했다.

겉으로는 침착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 순간 금해준의 가슴 속에는 감동이 휘몰아쳤다.

‘역시 형님이야. 내 선택이 맞았어!’

금해준은 거의 한건우에게 인생을 베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현재까지 그 결과는 대성공.

한건우는 실패를 모르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남자였고, 그 뒤를 든든히 지원하기만 해도 금해준 역시 따라서 거물이 되어갔다.

이번에도 한국에 닥쳐온 위기를 한건우가 멋지게 제거했다.

그렇게 금해준이 기뻐하고 있는데.

한건우의 여동생, 지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오빠는요···?”

*

같은 시각, 북경.

중국을 지배하는 정보조직 ‘천망’의 비밀기지 안.

살얼음 같은 불편한 침묵을 깨고, 제1부장이 물었다.

“그럴 리 없다. 다시 확인해 봐.”

“확인 완료. 미사일은 다운됐습니다.”

요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야속한 답을 내놓았다.

“제대로 보란 말이야!”

제1부장은 작전실 벽을 빼곡히 채운 수십 개의 모니터를 직접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아무리 샅샅이 보아도 결과는 같았다.

천망에서 날려보낸 미사일이 바다에 추락했다.

목적지인 서울을 타격하지 못하고, 근처에 떨어지지도 못하고.

“이런 미친··· 대체 뭐야.”

제1부장은 다리가 풀려 비틀거렸다.

중간에 미사일 제어가 안될 때부터 불안했는데.

최초 경로 계산이 맞으니 상관없다고, 오차는 있겠지만 한국 수도권에 떨어질 거라고. 자신있게 부하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결과는 임무 실패.

작전실에 앉아 지켜보던 다른 요원들도 입을 떡 벌리고 망연자실해 있었다.

몇몇 요원들이 가쁜 숨을 고르며 심호흡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인가.’

이 임무의 책임자가 누군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바로 제1부장 자신이었다.

그가 눈을 감고 미간을 문질렀다. 오늘따라 연초가 고팠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옛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큰 잘못을 저질러 한직으로 좌천된 이도 있었고.

외국 조직과 같이 일하다가 선을 넘어 제거된 이도 있었다.

그나마 어디 갔는지 알 수 있으면 다행.

예전의 부장 자리를 두고 경쟁했던 당련화처럼,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진 이들만 해도 몇인가.

‘그들의 추락을 비웃은 대가로, 오늘은 내가 가겠군.’

천망의 수장이 직접 맡긴 중요한 임무에서 구멍을 낸 데다,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을 입혔다.

‘제복을 벗는 걸로 해결되면 다행인데. 어쩌면 목숨으로 갚아야 할지도.’

천망의 수장은 가혹하고 철저한 인간이었다.

일을 잘하면 후한 보상을 주었지만, 잘못에는 가차없었다.

‘과연 인간이 맞는지도 의심되지만.’

제1부장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움직였다.

보스에게 실패를 보고하러 가는 길이 기분좋을 리 없었다.

이유를 알아보는 건 나중 일. 우선 결과부터 신속하게 보고해야 했다.

터널처럼 둥근 복도를 돌아가자, 전체가 순금으로 만들어진 번쩍거리는 문이 나왔다.

기지보다 한층 더 깊은 곳.

일명 ‘지하성’으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였다.

천망의 수장, 모용황은 지하성을 나오지 않고 그 안에 틀어박혀서 지내는 편이었다.

원래도 그랬지만, 요새 노환이 도져서 요양하는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안 올라오신 지 오래됐는데···. 혹시 이미 돌아가신 것 아냐?’

제1부장의 머릿속에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질책을 피하고 싶어서 생겨난 망상은 점점 구체적으로 되어갔다.

아무리 강한 각성자도 노화와 죽음을 피해갈 수 없는 법.

자신에게 그런 행운이 따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잉-

제1부장이 황금 문고리를 건드리자,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지옥으로 내려가는 기분이군.’

부장이 한숨을 푹 쉬는 그때.

터엉!

황금으로 된 문이 우그러들었다.

마치 힘센 거인이 주먹으로 쥔 것만 같았다.

파스스스···.

금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문을 보면서, 제1부장이 곧바로 반격 태세를 취했다.

천망의 임원이니 당연하지만, 제1부장 역시 상당한 수준의 각성자였다.

“부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작전실 요원들 여럿이 달려왔다.

불길한 분위기를 직감한 부장이 외쳤다.

“물러서!”

사아-

크게 소리치며 손짓하는 모습 그대로.

제1부장의 몸이 일순간 황금으로 변했다.

“부, 부장님?”

조각가가 생동감 있게 빚은 동상이 되어버렸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몰라, 요원들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쯧, 멍청한 놈!”

“?”

가루가 되어 흩어진 문 뒤에서, 백발 노인이 분노하며 혀를 차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하급 요원들 중에서는 그 노인을 실물로는 처음 보는 이도 있었으나.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자가 우리의 수장!’

천망의 수장, 모용황이었다.

공기가 수백 배 무거워진 듯한 압박감이 요원들의 폐부를 짓눌렀다.

모용황은 지하성에서 지냈고, 이쪽으로 올라오는 일은 거의 드물었다.

그는 노기를 감추지 못하고 소리쳤다.

“용서할 수 없구나.”

모용황은 소리치지 않고 조용히 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거침없이 울려퍼졌다.

천망의 비밀 기지 전체가 우르릉 흔들릴 정도. 단지 인간의 음성 때문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모용황은 황금상이 된 제1부장에 잠시 눈길을 주었다.

이마를 잔뜩 찡그려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모용황은 가치 없는 것을 외면하듯이 고개를 휙 저었다.

쩌엉!

그와 동시에 황금상에 금이 갔다.

황금상, 아니 제1부장의 몸은 산산조각으로 깨졌다.

대리석 바닥에 얇은 유리잔을 집어던진 듯, 처참한 광경이었다.

“아니, 부장님···!”

기겁한 하급 요원이 앞으로 뛰어나가려 했다. 그가 제1부장의 부서지는 몸을 수습하려는 참이었다.

“어이!”

선임 요원이 그의 가슴을 툭 치며 묵언의 경고를 했다.

살고 싶으면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모용황의 잔인한 황금색 눈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시선이 요원들을 훑었다.

펑!

머리통 하나가 터져나갔다.

슬슬 뒷걸음질치던 미사일 기술자였다.

퍼엉!

또 한 명의 머리가 폭발했다.

극도의 공포심에 사로잡힌 요원들은 미동조차 없었다.

모용황은 크게 분노한 듯했지만, 화풀이로 아무나 죽인 것은 아니었다.

눈치 빠른 요원들은 혀를 내둘렀다.

‘이번 임무 책임자, 기술자, 그리고 직접 발사 버튼을 누른 실무자!’

그야말로 임무 실패에 대한 철저한 응징이었다.

깊은 지하성에 틀어박혀 있는데도, 천망 조직 전체를 손바닥 위에 올려서 훤하게 들여다본다는 이야기가 과장이 아닌 모양이었다.

살아남은 요원들은 하나같이 죽은 동료들의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다가, 하나둘씩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흐하하하!”

모용황은 갑자기 인상을 바꾸며 파안대소했다.

그를 둘러싼 무거운 기운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

엎드려 있던 요원들이 의아해하던 찰나.

“두려워할 것 없다! 책임질 자들이 책임을 졌으니, 이제 과거는 과거에 묻겠다.”

부드럽고 강한 노인의 목소리가 그들의 귀에 꽂혔다.

요원들은 어리둥절한 채로 아직 엎드려 있었다.

그런 요원들을 보며, 모용황이 다시 웃었다.

“일어나라, 너희들에게는 진짜 임무가 주어질 것이니.”

“....”

진짜 임무라는 말에 요원들은 전율했다.

이걸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임무이니, 실패의 책임은 묻지 않겠다. 그리고 성공한 자에게는 부족함 없이 충분한 보상을 약속하마.”

“...!”

요원들의 귀가 번쩍 뜨였다. 천망의 수장인 모용황은 어마어마한 사재를 지니고 있었다. 천망 조직도 예산의 한계가 없을 정도이지만, 그보다 더 대단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모용황은 통이 컸고, 약속을 반드시 지켰다.

임무를 잘 해낸 직원에게 ‘미미한 보상’을 주었을 때도, 한 도시의 명운이 왔다갔다할 만한 재화가 주어질 정도였다.

그런데 ‘충분한 보상’이라면, 대체 얼마나 큰 보상이라는 것인가?

게다가 실패의 책임도 묻지 않는다니.

꿀꺽, 한 요원이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모용황은 인자한 얼굴로 미소지었다.

*

“건우 씨!”

이비현이 드래곤을 타고 절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바닷속으로 튕겨 들어간 한건우가 안 보였다.

아무리 각성자라고 해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그녀의 가는 목소리는 바닷가 풍경으로 희미하게 흩어져 버렸다. 며칠 사이 각성자들의 난동으로 해변은 폐허가 되어 을씨년스러웠다.

“안되겠어.”

이비현은 드래곤의 등에서 수면으로 뛰어내리려 했다.

직접 바닷속으로 들어가서 한건우를 찾으러 한 것이었다.

슈우웅-

그런데 드래곤이 몸의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며 이비현이 뛰어내리려는 걸 방해했다.

“왜 그래!”

드래곤은 날개를 쳐들어서 이비현을 반쯤 가두기까지 했다.

드래곤을 공격할 수도 없고, 이비현은 답답했다.

파아악!

먼 바다 쪽에서 물기둥이 용오름치듯이 솟구쳐올랐다.

물보라가 이비현의 이마와 뺨까지 튀었다.

“걱정시켜서 미안해.”

멋쩍은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세상에서 제일 긴 5분이었어요.”

이비현은 온몸에서 긴장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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