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만인지적 (11) - 행운
제법 성체에 가깝게 커진 드래곤이 한껏 속도를 높였다.
거의 수직으로 치솟아오르자, 서울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중국 방향을 유심히 살폈다. 아직 육안으로 무언가가 보이는 단계는 아니었다.
[형님, 형니임? 설마··· 직접 날아서 미사일을 요격하러 가신다는 건 아니죠? 그 설마··· 드래곤 타고?]
이어폰으로 금해준의 떨리는 음성이 전해져 왔다.
한쪽이 균열로 건너가지 않는 한 끊임 없이 소통이 되는 아이템이라더니.
아까 한 대화를 고스란히 들은 것 같았다.
“맞아.”
[이건 미쳤어요! 도저히, 안됩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흥분한 금해준이 그답지 않게 거친 말을 내뱉었다.
한건우가 피식 웃었다. 일행들 앞에서는 자신 있게 행동했지만, 이번에 확신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당장 다른 방법이 없어서 나섰을 뿐.
[여보세요, 여보세요! 들리시죠? ···형님, 이번에는 진짜 돌아오세요···. 앗, 좋은 생각 났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공중에 그냥 계시면서 형님이라도 미사일 여파를 피하세요.]
금해준은 계속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그 말의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해준아.”
[네! 듣고 계셨군요?]
한건우는 드래곤의 방향을 조정했다. 북경이 있는 북서쪽 방향을 잡은 것이었다.
“미사일 경로를 계산해서 이비현에게 전달해줘. 최대한 빨리.”
[아, 알겠습니다!]
이비현은 의아한 얼굴로 한건우를 돌아보고, 들고 다니던 태블릿을 조심히 꺼냈다. 까딱하면 바람에 날려 지상으로 떨어뜨릴 것 같았다. 그녀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앗, 전파 방해가 풀렸나 봐요.”
이비현은 한건우가 이걸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지만, 궁금증 해소는 나중으로 미루기로 하고 꾹 참았다.
그녀는 금해준의 회신을 기다리며 태블릿을 만지작거리던 중, 스스로 답을 깨우쳤다.
‘금해준 씨가 외국의 미사일 발사 소식을 어떻게 알았을까? 아마 대통령 일행 중에서 군사 레이더 소프트웨어에 접근한 사람이 있다는 거겠지. 그건 새로운 주파수를 뚫어서 통신이 재개되었다는 거고.’
이비현은 혀를 내둘렀다.
‘와, 그 짧은 사이에 거기까지 내다봤어?’
한건우가 사람인가 싶었다.
그러나 아직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이비현이 한건우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건우 씨, 괜찮을까요?”
미사일 요격 시스템을 갖춘 것도 아니고, 미사일을 공중에서 직접 요격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울 리 없었다.
한건우도 마찬가지의 생각이었다.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소소가 해준 말이었다.
- 특정한 대상만 노리고, 다시 한 번··· 이번에는 바이러스 형태로 살포하는 거예요.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더라도, 한건우는 결국 같은 결론에 다다랐을 것이다.
‘무차별 대량살상 무기 같은 건 모용황의 스타일이 아니야. 선별적으로 골라서 죽이는 생화학 무기가 더 알맞지.’
한건우는 생각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이 미사일은 폭발물을 실은 건 아닐 거야.”
“음, 아무래도 그렇죠? 바이러스를 살포한다고 했으니까요. 폭탄 같은 건 없겠죠.”
이비현도 동의했다.
“또 그렇다는 건 비교적 속도가 느린 구식 미사일이라는 거지.”
“공중에서 요격한다고 해도 크게 폭발하지는 않겠네요···. 어!”
이비현이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퍼뜩 놀랐다.
“왜 그래?”
“한건우 씨··· 미사일을 가까이서 요격해서 바이러스 살포를 맞아 버리면, 위험해지는 것 아닌가요?”
이비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등록 각성자가 아니니 이 사태에 안전했지만.
한건우는 어찌됐거나 등록 각성자가 아닌가.
제아무리 한건우라 해도 모용황에게 생체 정보를 넘긴 것 아닌지. 이비현은 걱정되었다.
그러나 이비현이 모르는 게 있었다.
“그건 괜찮아. 나중에 설명할게.”
이번 사태를 보고.
한건우는 자신에게 행운이 따른다는 걸 실감했다.
‘각성자 등록 시스템에, 내 정보는 없으니까.’
최초에 각성센터에서 등급 측정을 했을 때.
등급외 판정이라는 날벼락 같은 사실이 두려웠던 센터장과 직원은 한건우의 등록 정보를 싹 밀어버리고, S급 등록증을 내주었다.
무식하고 대책없는 공무원들의 행동 덕분에, 한건우는 그동안 쏠쏠한 이득을 보았다. 천명환이 자신의 뒷조사를 하려다 실패한 적도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모용황의 생화학 무기는 한건우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한건우는 오직 미사일을 요격하는 데만 집중했다.
‘아무리 구식 미사일이라 하더라도, 낙하를 시작하면 시속 수천 킬로미터가 우스울 정도로 빨라. 무조건 낙하하기 전, 수평 이동하고 있을 때 타격해야 하는데···.’
어느새 드래곤은 회색빛이 도는 서해바다 위를 날고 있었다.
“더 높이 올라가자.”
한건우는 사방의 하늘을 살핀 뒤 드래곤을 재촉했다.
미사일은 지금쯤 대기권 밖에서 수평 이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앗! 경로 계산 결과가 왔는데, 잠시만요. 현재 좌표랑 비교해보고 있는데···. 이런, 서해에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어서··· 가능성 있는 경로가 세 가지 정도 돼요.”
이비현은 거의 두 손을 놓고 태블릿을 다루고 있었다. 원래 고소공포증이 있었는데, 지금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드래곤이 용언으로 한마디 했다.
[아빠, 앞쪽이야. 뭔가 느껴져요.]
“!”
[더 위로 가볼게.]
파드득!
드래곤이 힘차게 날갯짓을 했다.
“아윽!”
이비현이 비명을 질렀다. 순식간에 구름을 뚫고 올라가면서 귀가 멍해졌다.
기온이 훌쩍 내려갔고, 산소가 부족해 숨이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저기!]
드래곤의 머리가 향하는 곳.
아주 멀리서부터 불꽃을 내며 날아오는 발사체가 희미하게 보였다.
한건우의 눈에 안광이 번쩍거렸다.
<화식조의 눈>으로 포착한 미사일의 크기는 3m 이상이 되어 보였다. 끝부분에 다른 색깔의 캡슐 같은 것이 붙어있었는데, 바이러스 살포를 위한 캡슐로 추정되었다.
이비현도 발사체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앗, 저기 11시 방향에 보여요!”
그때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한건우가 이를 악물었다.
“이런!”
성층권은 대기가 안정되어 있기 마련인데, 국지적으로 돌풍이 일기도 했다. 하필 지금이 그때였고, 바람은 한반도 수도권 쪽을 향하고 있었다.
‘원래 서해상에서 요격할 생각이었는데.’
이대로라면 바이러스가 바람을 타고 수도권 쪽에 퍼질지도 몰랐다.
이비현도 그걸 눈치채고 말했다.
“어떻게 하죠!”
바람 소리가 하도 커서, 귀 옆에서 외치는 목소리도 희미하게 들릴 지경이었다.
“일단 미사일 가까이 접근해줘.”
[알았어, 아빠!]
슈우웅-
애초에 미사일과 마주보듯이 다가가는 방향이었으니. 접근하는 건 순간이었다.
미사일이 가까워지자, 한건우가 드래곤에게 외쳤다.
“머리를 돌려서 미사일과 같이 날아!”
슈욱!
드래곤이 크게 선회하며 방향을 180도로 바꾸었다.
“꺄악!”
드래곤의 등이 바다 쪽을 향하도록 뒤집어졌다. 한건우는 이비현이 떨어지지 않도록 꾹 붙잡았다.
“속도를 똑같이 맞춰!”
무리한 요구를 했지만, 드래곤은 거기에 따랐다.
두 대의 차량이 같은 속도로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다만 돌풍이 이는 공중이라는 차이뿐.
아직까지 미사일의 경로는 수평이었지만, 곧 지상을 향해 낙하할 것이 분명했다.
빨리 결정해야 했다.
한건우의 집중한 표정을 보고, 이비현은 드래곤의 목덜미에 딱 달라붙었다.
[특성 발동 : 금속 조작]
한건우의 뇌는 전혀 새로운 감각에 전율했다.
“!”
세상에 존재하는 금속 입자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비현이 허리춤에 찬 무기 날, 자신이 입은 갑주 사이사이에 입혀진 금속 성분.
감각을 극대화하자, 드래곤의 비늘 속 철분까지 읽혀질 정도였다. 조금 더 시야를 넓히면 저 아래 바닷물 속의 미세한 금속 물질까지 느껴질 것 같았다.
‘이럴 수가.’
조금 과장하자면 신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낯선 감각에 취할 시간은 없었다. 한건우는 그 감각을 살려 미사일을 노려보았다.
‘다행히 미사일 자체는 전형적인 구조야.’
예상과 달리 탄두 안에는 폭약과 뇌관도 존재했다. 목표물을 타격하기 위한 용도라기보다는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용도의 소규모 폭발을 일으키는 듯했다.
처음에는 금속 조작으로 발사체의 모양을 바꾸어 경로를 수정할 생각이었지만.
함부로 미사일의 구조를 바꾸다가는 바로 폭발할 수 있었기에 섬세한 컨트롤이 필요했다.
드래곤은 미사일의 바로 위에서 최대한 가까이 날고 있었다.
그때 한건우가 드래곤의 등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악!”
이비현이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한건우는 미사일을 맨손으로 잡았다.
그야말로 날으는 미사일 위에 올라탄 것이었다.
그때부터 이비현은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퍼엉!
미사일의 조작 기판을 덮은 가리개가 제거되어, 엄청난 속도로 뒤로 날아갔다.
두 겹으로 잠긴 철판을 떼어내자, 몇 가지 버튼이 나타났다. 버튼을 조작하는 건 소용 없었다.
‘쉽게 가지는 않는군.’
이미 발사하기 전에 정해진 설정대로 날아가도록 조작되어 있어, 버튼을 조작하는 것만으로는 미사일의 궤도를 바꾸거나 불발로 만들 수는 없었다.
터엉-
조작 기판 앞부분을 떼어내자, 복잡하게 얽힌 전선과 회로들이 나타났다.
한건우가 이비현을 보고 뭐라고 소리질렀다. 바람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아, 이비현은 감각을 잔뜩 곤두세웠다.
“여기! 촬영 되겠어?”
“네에?”
이비현이 미친 사람을 보듯이 한건우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농담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비현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태블릿을 다시 꺼냈다. 놓치는 순간 수 킬로미터를 날아가 서해바다로 빠질 판이었다.
이비현은 왜 갑자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지 깨달았다.
“금해준 씨에게 전송하면 되죠!”
한건우가 대답을 잘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비현이 최대한 확대해서 기판 사진을 찍고, 금해준에게 전송해주었다.
삐익-
한건우의 이어폰이 울렸다.
‘역시 말귀를 잘 알아들어서 좋아.’
한건우는 미사일 위에 탄 채로 금해준의 목소리를 들었다.
[형님! 이, 이게 뭡니까!]
“걱정하지 말고, 사진은 장영표에게 보여주고 있지? 이거 폭탄 작동을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얘기해줘.”
안 그래도 금해준은 바삐 달려가고 있던 듯, 헉헉대는 숨소리만 울렸다.
그때, 미사일이 곧 하강하려는 듯 궤도가 점점 변경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해준아, 최대한 빨리!”
그때 장영표가 이어폰을 넘겨받은 듯.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다급히 말했다.
[마스터! 먼저 노란 선을 제거하신 뒤에 검정색 선을 뽑아서 그 옆에 있는 단자에 끼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폭발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케이, 알겠어.”
[하나 더요. 이건 조종이 가능한 미사일이에요! 뇌관을 제거하더라도 레이더를 보면서 미사일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기판의 cpu 부분도 제거하셔야 합니다!]
“알겠어, 이제 끊자.”
[행운을 빕니다, 마스터.]
“크윽!”
미사일의 탄두가 아래를 향하면서, 속도가 믿을 수 없이 빨라졌다.
이제 드래곤은 더이상 따라오지 못했고, 위쪽으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눈도 못 뜰 정도의 바람과 압력 속.
‘이대로라면 곧 부딪친다.’
동쪽에는 육지와 마천루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건우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한국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다는 생각도, 모용황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감각과 신경이 의지에 감응하여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만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점점 서울의 모습이 육안으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한건우는 주어진 임무를 거의 끝냈다.
뇌관과 CPU를 모두 제거한 것이었다.
바이러스 살포도 불가능했고, 모용황이 다시 조종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됐다! 이제 이 미사일은 바닷속으로 끌고 갈 거야.’
한건우는 온 힘을 다해 <금속 조작>으로 미사일의 날개 형태를 바꾸었다.
콰과과과과과-
발사체의 모양을 바꾸자, 공기의 반동이 엄청났다. 한건우 역시 역풍을 맞아 허공으로 튀어올랐다.
피이잉-
미사일이 나선으로 크게 회전했다. 마천루 건물에 닿기 직전.
미사일은 바다 쪽으로 돌아갔다.
푸우우웅-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거대한 충격파가 생겨났다.
이어서 수 킬로미터 범위에 물보라가 올라왔다.
[와.]
군사 레이더를 보고 있던 금해준이 감탄하는 소리를 끝으로, 한건우는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