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221화 (221/238)

#221 만인지적 (10) - 백악기의 공룡

「각성자 한건우.」

모용황은 또다시 소소의 몸을 빌려서 나타났다.

건물 옥상부터 한쪽 하늘이 황금빛으로 뒤덮였다.

우우웅-

익숙한 압박감이 가해졌다. 이비현이 신음을 삼키며 멀리 물러났다.

「역시 자네는 나를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어. 이만한 세월을 살다 보면 놀라움이라는 감정이 너무 오랜만이라 낯설게 느껴지지만.」

“....”

「이제 인간 중에는 자네의 앞길을 가로막을 자가 없겠군. 날고 기던 4명의 주인이 고작 젊은 각성자 하나에게 당하다니. 자네 말고는 아무도 그런 위업을 이루지 못할 거야.」

모용황은 한건우를 칭찬했다.

한건우는 눈썹을 찌푸리며 소소의 목을 꾹 쥐었다. 모용황은 항상 수수께끼처럼 말하고, 변화무쌍하게 나오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놀란 건 이쪽도 마찬가지야. 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무엇이 문제인가?」

모용황이 소소의 얼굴을 하고 의아하다는 듯 갸웃거렸다. 한건우는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한국에 대체 왜 이런 일을 벌였냐는 말이야.”

모용황은 그런 질문이 어이없다는 듯, 쯧쯧 혀를 찼다.

그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은 건 겨우 참았다. 이건 모용황의 본체가 아닌 건 물론이고, 지금은 각성자들을 원래대로 돌릴 단서를 찾아내는 게 먼저였다.

「자네도 지난번에 들었을 텐데? 아르고스의 망에 세계의 각성자들을 등록한 것. 그건 황혼의 시간을 잘 넘기기 위한 준비 작업이라고.」

한건우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황혼의 시간.

곧 세계의 종말을 말했다.

세계선이 저물고, 시공간이 조각조각 가위질되어 균열의 일부가 되는 것. 어렴풋이 떠올려 봐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런 한건우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모용황이 말했다.

「황혼의 시간이 오면··· 지구의 모든 동물은 등급이 매겨져서 마수로 변할 것이고, 우리 세계의 지배종인 인간 역시 그 신세를 피해갈 수 없겠지.」

“지배종?”

「크게는 서리거인, 작게는 코볼트까지. 한때 그들 세계의 지배종이던 자들 아닌가.이제는 산산이 부서진 세계 속에서 영혼도 없이 끊임없이 리스폰되며, 죽이면 아이템과 경험치가 나오는 보상 주머니 취급을 받고 있지.」

“....”

「자네는 정녕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원한단 말인가?」

모용황의 황금색 눈이 책망하듯이 한건우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한건우는 곧바로 반박했다.

“바로 그 종말을 막기 위해 예언 석판을 찾자고 한 것 아니었나? 그런데 각성자들에게 이성을 앗아가고, 일반인을 무차별 공격하게 한 건, 대체 무슨 상관이 있지?”

한건우는 아직 소소의 목을 꽉 쥐고 있었다.

그러나 모용황은 아무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듯 태연했다.

「물론 예언 석판은 계속 찾아야지. 시스템의 관리자 권한을 얻어야 하니 말이야···. 하지만 그 내용은 이제 궁금하지 않네. 황혼의 시간을 무사히 넘기는 단 한 가지 방법을 이미 찾아냈으니까.」

“그게 뭐지?”

「지난번에 힌트를 주었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머리가 좋지 않군.」

모용황은 이계의 유적과 기록에서 고도의 정보를 얻었다고 했다. 환하고 명료한 눈빛에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건 바로 세계의 지배종이 덜 발달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무슨 소리냐?”

뭐 유인원으로 돌아가기라도 하자는 것인가.

그러나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지배종의 발달 수준이 끝에 다다르면, 황혼의 시간은 반드시 오게 되어 있어. 이계의 기록을 연구한 끝에, 나는 마침내 알아냈네. 시스템이 대체 어떤 지표로 그걸 판단하는지 말이야.」

“....”

「단순하더군. 바로 지배종의 숫자야. 개체의 힘이나 격은 별 상관이 없었네.」

“그래서, 인간의 숫자를 줄여야 한다 그건가?”

한건우는 이제 모용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지난번에 세계선의 일부를 희생하면 된다더니. 이게 그 뜻이었군.’

속에서 천불이 올라오면서, 한건우는 오히려 얼음물을 끼얹은 듯이 냉정해졌다.

“각성자는 인구의 1%밖에 안 되니, 99%를 죽이고 1%만 남기면 된다 이건가?”

「당장은 그렇지. 그러나 이 모용황은 거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

「왜 내가 각성자만을 선별해서 남기고, 일반인을 없애려 하는지. 정말 모르겠나?」

“그야 어차피 균열은 계속 터질 테니, 각성자들을 없애 버리면 황혼의 시간이고 뭐고 인류가 마수들에게 멸망하기 때문이겠지.”

「자네의 한계는 거기까진가?」

모용황은 정말로 안타깝고 답답하다는 듯한 얼굴로 가슴을 치며 한건우를 바라보았다.

「과거 이 세계의 지배종은 공룡이었지. 물론 균열 발생 전이라 시스템의 영향이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지배종의 개념은 의미가 없겠지만.」

“공룡?”

「공룡은 달라진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배종의 자리에서 물러났지. 현생 인류도 마찬가지의 상황에 처한 거야. 재래식 무기나 군대로는 이계의 마수들을 막아낼 수 없어.」

한건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뜻 듣기에는 그럴싸했으나, 모용황의 논리에는 맹점이 있었다.

“그래서 인간 중에 각성자가 나타난 것 아닌가? 각성자가 마수와 싸우고 있잖아.”

모용황이 크게 미소지었다.

소소의 얼굴을 하고 있기에 외형은 아름다웠으나, 그 안에 수천 년을 산 노인이 들어있다 생각하니 징그럽기 짝이 없었다.

「바로 그거야!」

모용황의 황금색 눈이 빛났다.

「기존의 인류는 더이상 지배종이 될 수 없네. 이제 새로운 세계의 지배종은 ‘인류’가 아니라 ‘각성자’가 될 테니까.」

“...?”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 각성자들이 나타났다고들 하지? 그건 순전히 비각성자들의 희망사항일 뿐이야. 사실은 세계의 지배종이 변화하고 있는 걸세.」

옛날, 균열 발생 초기에 컬트 집단이나 하던 유치하고 자기중심적인 소리였다.

모용황은 한건우를 진심으로 설득하려는 듯 힘주어 말했다.

「비각성자는 구시대에 남겨두고 와야 할 존재, 곧 백악기의 공룡과 같은 존재지.」

“....”

한건우가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있자, 모용황은 한건우가 납득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한 듯 더욱 소리를 높였다.

「시대가 바뀌었네! 비각성자는 구시대에 남겨두고 와야 할 존재야. 그들의 희생으로 세계선의 종말을 막을 수 있다니,

시스템은 얼마나 자비로운가!」

“너무 오래 살더니 미쳐버렸군.”

한건우의 짧은 평가를 듣고, 모용황이 멈칫했다.

「흠··· 자네의 생각도 어쩔 수 없이 기존 인간들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인가. 안타깝군.」

특수안보부의 김도경 같은 자는 이 의견에 적극 찬성하며 동의를 표했을지 몰라도. 모용황은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보았다.

“인간의 운명을 같은 인간이 결정한다는 것은 오만을 뛰어넘어 광기에 불과하지.”

「....」

그들의 대화는 평행선을 그렸다.

모용황은 한숨을 쉬었다.

「자네는 그냥 죽이기엔 너무 아까운 사람이니···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겠네. 그리고 내 손녀는 이대로 죽일 셈인가?」

모용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소소는 이용 가치가 있으니 지금 죽일 필요는 없었다.

한건우는 소소의 목을 잡고있던 손을 놓고, 비현을 시켜 소소를 단단히 포박했다.

작은 틈만 있어도 빠져나가는 소소이기에, 그물 아이템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덮었다.

“마스터!”

그때 무수한 날갯짓 소리와 함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볼 것도 없이 은설아였다.

은설아를 태운 그리핀을 선두로 해서 무수한 비행형 마수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비행 군단과 같은 위용이었다.

와이번 같은 아룡종이 대부분이었고, 임수호와 임진호도 각각 와이번에 당당히 올라타 있었다.

그 위로는 빌딩 숲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한건우의 드래곤이 날개를 뻗으며 날아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모용황은 충격받은 듯 금안을 크게 떴다.

「믿고 일을 맡겼건만, 내 손녀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군. 이렇게 많은 각성자들이 아직 이성을 유지하고 있다니 말이야.」

한건우는 소소의 앞에 다가갔다.

모용황이 그녀의 한쪽 눈을 통해 강림해서 권능까지 쓰는 걸 보았으니, 그대로 놔둘 수는 없었다.

잠시 그녀의 의식을 잠재우기 위해 <마인드 컨트롤>을 쓰려는 순간. 모용황이 마지막으로 피식 웃었다.

「자네가 생각을 정리하도록 도와주지.」

“무슨 속셈이지?”

「조금만 기다리면 알게 될 거야.」

소소는 눈을 번히 뜬 채로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의 몸에서 모용황이 빠져나간 듯, 한쪽 눈은 다시 검은색으로 돌아가 있었다.

소소가 기침을 하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서··· 대비해야 해요.”

이비현은 소소를 향해 경고하듯 사슬낫을 겨누었다.

소소는 왠지 모르게 절박한 눈빛으로 한건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며칠 전 1차 공격··· 그건 한국 각성자의 뇌파를 노린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대부분의 국가는 끝장이겠죠.”

“....”

“모용황 님은 일부 지역에서 예외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경우를 대비해서, 2차 공격을 준비했어요.”

“2차 공격이라고?”

소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특정한 대상만 노리고, 다시 한 번··· 이번에는 바이러스 형태로 살포하는 거예요.”

“뭐라고? 그런 게 있었다면···.”

이야기를 듣던 임수호가 끼어들었다.

1차 공격은 드래곤 피어로 운좋게 막았다지만, 2차 공격이 왔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지도 몰랐다.

한건우는 설마 하면서도 짚이는 게 있었다.

“너··· 우리 길드 쪽의 소식을 일부러 모용황에게 보고하지 않은 건가?”

“....”

소소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

만약 아레스 길드 쪽의 소식을 모용황이 알고 있었다면, 진작 2차 조치가 시행되었을 것이다.

소소는 소리 없이 웃기만 했다.

삐익!

그때 한건우의 귀에 꽂힌 이어폰이 울렸다. 날카로운 알림음을 보니 금해준의 연락이었다.

[형님, 심상치 않습니다! 중국 쪽에서 미사일 같은 물체가 발사되었다고 합니다!]

“중국 정부의 짓인가?”

[아니요, 현재 중국 정부가 지배하는 남부가 아니라 과거 수도인 북경 쪽에서 발사되었다고 하네요. 거기에는 사람도 살지 않는데··· 숨겨진 군사기지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모용황의 본거지, 북경 자금성 아래의 지하성에서 발사된 것이 분명했다.

“모용황의 짓이군.”

미사일을 이용한 생화학 테러.

치밀한 준비성에 치가 떨릴 정도였다.

“잠깐만요, 이 여자를 어떻게 믿죠? 함정일지도 몰라요.”

소소를 믿지 않는 이비현은 사나운 표정으로 낫을 쥐었다.

소소가 왜 갑자기 한건우 편에 서서 계획을 말해주는지 납득이 안 되었던 것이다.

이비현이 낫을 겨누는데도, 소소는 한건우만 바라보며 말했다.

“믿어주세요. 1차 공격은 한국에 있는 등록 각성자 전원을 노렸다면, 2차 공격은 그게 아니에요. B급부터 S급까지의 각성자들만 노린 맞춤형 바이러스인 거예요.”

B급부터 S급까지라는 말을 듣고 근처 일행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우리, 미등록자인 이비현 씨 말고는 전부 B급 이상이잖아.”

임진호가 걱정이 담긴 눈으로 멀리 길드 건물이 보이는 쪽을 돌아보았다.

한건우는 휘파람으로 드래곤을 불렀다.

그는 옥상 근처로 낮게 나는 드래곤의 등 위에 훌쩍 올라탔다.

한건우가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은 임수호와 임진호가 사색이 되어 외쳤다.

“잠깐만, 혹시 공중에서 폭발이라도 하면··· 형도 위험하잖아!”

“형이 당해서 상태이상에 걸리면, 한국은 끝이야. 차라리 빨리 대피하자!”

한건우는 고개를 저었다.

미사일이 이미 발사된 이상, 이제 1분도 안 남았으니까.

“금방 다녀올게.”

“잠깐만요!”

이비현이 드래곤의 등 위에 뛰어서 올라탔다.

드래곤이 못마땅하다는 듯 몸을 뒤트는데, 이비현은 익숙하게 앞자리로 옮겨왔다.

“어서요.”

대꾸할 시간이 없었다.

드래곤이 돌풍을 일으키며 날개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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