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219화 (219/238)

#219만인지적 (8) - 타임 리와인드

한건우의 오른손.

[크로노스의 왕홀(신화급)]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왕홀이 찬란하게 번쩍이고 있었다.

이 아이템으로 언젠가 원유선을 잡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이번에는 미리 마음의 준비하던 차였다.

원유선이 가진 시간 계열의 신화급 특성, <타임 리와인드> 때문이었다.

‘적재적소에 쓰면 무적에 가까운 사기 특성이지.’

세간에서는 원유선의 <마인드 컨트롤> 특성만 널리 알려져 있지만. 원유선의 진짜 필살기는 <타임 리와인드>였다.

1초라는 시간.

일반인의 주먹 다툼에서도 승패가 갈릴 수 있는 시간이니.

각성자끼리의 전투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크로노스의 미궁 균열에서, 원유선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타임 리와인드를 발동했다.

깨진 파편이 맞추어지고, 피어나던 불꽃이 작게 줄어들어 사라지는 모습은 가히 기적과도 같았다.

‘그러나 한계가 있더군.’

한건우는 그때 그 특성의 맹점을 발견했다.

‘원유선의 능력은 흘러가는 시간 자체를 거꾸로 돌리는 것은 아니야. 단지 주변의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탓에 시간이 되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뿐.’

지금 다시, 원유선의 주변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엔트로피가 거꾸로 돌아가려는 것이었다.

전투 자세를 취하며 물러나 있던 태일제가 다시 다가오려 했다.

긴장하여 살기를 뿜어내던 소소도 다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휘이이-

그렇게 주변을 1초 전으로 돌리고, 호텔 옥상 밖으로 몸을 날려 도망가려던 듯.

원유선의 긴 옷자락이 주변 공기의 흐름을 거스르며 휘날리고 있었다.

‘도망가려고? 어림도 없지.’

한건우와 원유선 사이.

크로노스의 왕홀과 타임 리와인드가 충돌했다.

드으으으으-

뜨드드드-

신화급 아이템과 신화급 특성의 간섭.

돌아가는 속도가 다른 두 개의 시계태엽이 맞부딪치는 듯했다.

그 충돌에서 이긴 것은, 당연히 크로노스의 왕홀이었다.

- 왕홀을 가진 자를 제외하고, 모든 것의 시간이 1초간 멈춘다.

‘이건 엔트로피를 돌리는 정도가 아니야. 정말로 시간이 멈추는 거다.’

딱!

되돌아가던 주변의 시간이 한건우에게 붙잡혔다.

옥상 난간 위에 올라선 원유선은 멱살이라도 잡힌 듯 그 자리에 멈추었다.

‘장관이군.’

한건우를 제외하고, 한순간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추었다.

고요했다.

간간이 들려오던 소리도 멈추고, 줄지어 하늘을 날아가는 새도 못박힌 듯 멈추었다.

한건우를 둘러싼 세 사람이 생생하게 만들어진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특성 발동 : 빛의 군주]

한건우는 아무런 방해도 없이 파괴광선을 발사했다.

공중에 떠 멈추어 있는 원유선을 향한 것이었다.

슈우웅-

터억!

똑- 딱-

다시 시간이 정상적으로 흘렀다.

원유선의 동공이 커졌다.

그녀의 흉부에 커다란 검은 구멍이 나 있었다.

심장이 그대로 뚫린 것이었다.

“아악!”

피유우우-

원유선은 그대로 옥상에서 추락했다.

아무런 보법도 쓰지 못한 채였다.

그때였다.

[특성 발동 : 타임 리와인드]

원유선이 죽을 힘을 다해서 다시 한 번 시간을 돌렸다.

‘심장이 파열되어도?’

과연 엄청난 정신력이었다.

그러나 1초만 되돌리는 걸로는 모자랐다.

[특성 발동 : 타임 리와인드]

추락하던 원유선이 다시 옥상 위로 떠올랐다.

그녀의 심장을 뚫은 구멍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한건우의 손바닥에서 뻗어나간 파괴광선이 다시 그의 손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렇게 원유선 주변의 모든 것이 2초 전의 자리로 돌아갔다.

“후후, 나를 여기까지 몰아붙인 건 네놈이 처음이구나!”

그야말로 기사회생.

다시 살아난 원유선이 광인처럼 웃었다.

‘그래, 원유선의 타임 리와인드는 이럴 때 쓰는 거지.’

절체절명의 순간, 기사회생을 위한 최고의 회피기.

치명상을 입었다가도 회복되고, 외통수에 물리는 순간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한건우의 표정은 이상하리만치 여유로웠다.

“원 대표! 조심하시오!”

태일제가 다급하게 외쳤다.

드으으···.

태일제의 <금속 조작>.

옥상에 무더기로 쌓여있던 철근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잘 가라, 원유선.”

“어?”

원유선은 어리둥절했다.

‘분명히 한건우의 공격을 맞기 전으로 돌아왔는데?’

주위에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데, 사방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그녀를 노리는 빛의 칼날이었다.

“안돼!”

원유선의 눈에 공포가 담겼다.

이건 그녀가 아는 공격이었다.

죽은 김도경의 필살기인 ‘무한의 검’과 비슷했지만, 그보다 좀더 가늘고 세밀했다.

그녀는 그물에 잡힌 고기 꼴이 되었다.

위, 아래, 사방.

360도 어디를 둘러보아도, 예리한 빛의 칼날이 좁혀들어오고 있었다.

“으윽.”

원유선이 이를 악물었다.

처음부터 한건우의 공격은 단순한 파괴광선 하나가 아니었다. 원유선을 노리고,주위에 빛의 그물을 깔아놓은 것이었다.

‘한번 더 돌아가야 해!’

다시 한번만 1초 전으로 돌린다면.

빛의 그물이 깔리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원유선은 한번 더 시간을 되돌리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특성은 발동되지 않고, 손가락 틈으로 모래가 흩어지는 것처럼 힘없이 빠져나가 버렸다.

“타임 리와인드는 하루에 3번이 한계 아닌가?”

“으아악!”

치지지-

원유선은 빛의 그물에 잡힌 채로 공중으로 떠올랐다.

빛의 칼날이 그녀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원유선이 피눈물을 흘리며 한건우를 노려보았다.

[특성 발동 : 마인드 컨트롤]

원유선의 눈이 번뜩 붉게 빛났다.

정신 조종 특성을 발동하는 것이었다.

암시를 걸거나 환영을 보게 하는 능력.

정신 방어력이 낮은 상대라면, 최면을 걸어서 조종할 수도 있었다.

상대가 한건우이니, 그 정도의 수준을 노린 것은 아니었다.

‘한건우 놈이 아무리 강해도 인간이야. 잠깐이라도 정신 집중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어. 그때 빠져나가면 돼!’

원유선은 확신했다.

그만큼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높았다.

오늘은 상대가 틀렸을 뿐이었다.

“어이가 없군.”

원유선의 <마인드 컨트롤>은 한건우에게 미미한 산들바람만도 못했다.

‘격이 다르다는 게 이건가.’

한건우는 새삼 자기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깨달았다.

한때 그토록 막강해 보인 각성자들인데.

마치 아이가 어른을 이기려는 것처럼 우습게 느껴질 뿐이었다.

“안돼!”

마지막으로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거대한 벽을 마주한 원유선은 절망에 몸부림쳤다.

우우웅-

태일제가 움직인 철근이 한건우를 덮쳐왔다.

“미안하지만.”

한건우는 공중으로 가볍게 몸을 띄웠다.

“이제 너희들은 내 적수가 될 수 없겠다.”

[특성 발동 : 강신]

‘하루치의 수명.’

- 인색하기 짝이 없는 놈!

까칠한 불의 신이 투덜대며 강림했다.

내심 자신을 불러주어서 신이 난 듯.

쭉 째진 입술 사이로 불꽃처럼 시뻘건 혀가 날름거리고 있었다.

- 왜 이제야 부르냐는 말이야!

한건우는 양팔에 아그니의 신격을 불러왔다.

팔꿈치 아래, 철심처럼 굵은 전완근에 후끈 열기가 올랐다.

파아아아아-

한건우는 원유선과 태일제를 향해 아그니 신격의 불꽃을 발사했다.

어마어마한 화력의 불꽃이 활화산처럼 폭발했다.

“아악!”

원유선은 빛의 그물과 사투를 벌이느라, 화염이 다가오는 걸 보면서도 피할 수 없었다.

치지지지···..

원유선은 아그니의 화염을 그대로 맞고, 비명도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재가 되어버렸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각성자의 허무한 죽음이었다.

한건우는 냉정한 눈으로 그녀의 최후를 바라보았다.

‘원유선이 아르고스가 아닌 인간의 편에 섰더라면.’

설령 죽더라도 저토록 무의미한 죽음은 아니었으리라.

터어엉-

태일제는 강철로 된 방벽으로 화염을 가까스로 피하며 소리쳤다.

“원 대표!”

태일제의 얼굴이 괴로움으로 일그러졌다.

원유선과 태일제는 오랜 경쟁자이자 친구였다.

한국 땅에 균열이라는 게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함께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는 관심 없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

삶의 동지와 같던 원유선이 한순간 재가 되어 사라졌다.

태일제는 전에 없던 분노에 휩싸였다.

“한건우, 네놈이 감히!”

태일제는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려는 듯.

공중에 떠올라 주위의 금속 물질들을 끌어오기 시작했다.

한건우는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죄없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때. 그 가족들의 분노는 보이지 않던가?”

“...네놈은... 편히 죽지 못하게 하겠다!”

태일제의 얼굴이 분노로 홧홧해졌다.

그럴수록 한건우의 얼굴은 차가워졌다.

“모용황도 나쁜 놈이지만, 너 자신의 영달을 위해 그 앞잡이 짓을 하고 있는 네놈은 더한 쓰레기다.”

“죽어라!”

철근의 금속이 녹으면서 거대한 창이 만들어졌다.

피유웅-

마치 미사일이 쏘아지듯이, 옥상 표면에서 한건우를 노리고 강철의 창이 쏘아졌다.

‘다 피하는 게 손쉽겠지만.’

이 창이 떨어지면 주변이 전부 초토화될 것이다.

어디 생존자들이 숨어있을지 모르니, 단순히 피할 수는 없었다.

창 주위로 작은 비수 같은 철심들이 창을 호위하듯이 날아왔다.

[특성 발동 : 죽은 자의 날]

한건우의 주변에 수십 개의 검은 총구가 돋아났다.

게다가 아직 <강신> 특성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 크하학, 아직 하루치의 수명 값을 치르기에는 이르다고!

아그니의 웃음소리가 한건우의 머릿속에 메아리쳤다.

콰과과과과-

한건우는 마력을 쏟아붓듯 했다.

마치 미사일을 격추하는 대공망이 만들어지듯이, 마력 총탄과 화염이 태일제가 쏘아낸 금속 공격을 뒤덮었다.

단 두 각성자가 만들어낸 공중전.

콰아아아아-

서로가 쏘아낸 공격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먼저 태일제가 날려보낸 작은 철심들이 가루처럼 갈려나갔다.

거대한 강철의 창도 끄트머리부터 분해되기 시작했다.

“아니!”

한건우가 태일제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아예 공중에서 소멸시켜 버리자, 태일제는 크게 당황했다.

아무리 한건우라도 자신의 공격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고, 이를 막아내다가 상당한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이, 이럴 수가. 이렇게까지 격차가 벌어졌다는 말인가.”

게다가 아무리 보아도 한건우는 지쳐 보이지 않았다.

태일제는 직감했다.

‘이 순간,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는다.’

한편, 소소는 얄미울 정도로 몸을 사리고 있었다.

태일제나 원유선을 돕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구경꾼이나 다름없었다.

물러설 수 없는 자리.

태일제는 주먹을 꽉 쥐었다.

원유선처럼 도망가려다 죽는 것보다는, 격차가 보이더라도 끝까지 맞서야 하리라.

“크아악!”

태일제가 포효했다.

옥상에 쌓여있던 철근과 건축자재는 바닥난 지 오래.

이제는 콘크리트 안의 철근을 뽑아내고 있었다.

쿠우우-

지상에 버려진 자동차들도 서서히 솟아올랐다.

태일제의 온몸 모세혈관이 터져나갔다.

한건우를 노려보는 그의 얼굴은 악마처럼 검붉었다.

“어리석은 노인네.”

한건우가 훌쩍 하늘 위로 솟았다.

그 모습을 올려다보는 태일제의 표정에 좌절이 스쳤다.

태일제는 주변 환경에서 금속 물질을 끌어모아 공격했지만.

지금 한건우의 공격은 주변 물질과는 관계가 없었다.

한건우의 자유로운 기동력을 따라올 수 없을뿐더러, 각성자로서의 능력도 한건우가 몇 수 위였다.

“그런 힘을 가지고도, 제 욕심에 빠져서 이용만 당하다 가는구나.”

<금속 조작> 특성을 다루는 데 몰입한 태일제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태일제는 죽음의 위기를 앞두고서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다.

콰아아아-

반경 1km 안의 모든 금속이 한건우를 향해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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