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215화 (215/238)

#215만인지적 (4) - 드래곤 피어

한건우는 숨을 깊이 들이켜고, 서리거인의 뿔피리를 입에 물었다.

얼음 산 속에 살던 서리거인들이 멀리 있는 동료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해 사용했을 법한 뿔피리였다.

부우우우우-

공항 버스의 지붕 위.

울림이 커서 거대한 진동처럼 들리는 뿔피리 소리가 멀리 퍼져나갔다.

“어?”

공항 버스 안에 있던 일행들이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뿔피리 소리와 함께 따뜻한 온기가 온몸을 감싸는 듯했기 때문이다.

- 아군의 정신 방어력을 일시적으로 강화한다.

서리거인의 뿔피리라는 아이템의 특전 때문이었다.

“갑자기 왜 이걸?”

차은비가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했다.

잠시 후, 아주 먼 곳에서 온몸의 털이 쭈뼛할 정도로 선명한 울음이 들려왔다.

키웨에에에-

“으헉!”

“괴물이다!”

“제발, 제발···.”

공항 버스 안에 타고 있던 민간인들이 부르르 떨며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천재지변을 만난 듯한 공포였다.

울음이 들려온 먼 하늘을 바라본 이비현이 말했다.

“아니, 건우 씨의 드래곤이에요.”

“뭐라고?”

박이경도 차창으로 고개를 쭉 빼내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이야···.”

이비현의 말대로였다.

흐린 회색 하늘 한켠. 먹색에 가까운 짙은 보랏빛의 비행 마수가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드래곤은 그 사이에 한층 더 자라난 듯했다.

이제 집채만하다는 말도 모자랐다.

슈우우우-

해가 나지 않았는데도, 드래곤이 여섯 개의 날개를 펴 하늘을 가리자 그 아래에는 그림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날아오는 속도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여섯 개의 날개가 거침없이 창공을 갈랐고, 머리 부분에는 레이저 같은 안광을 빛내는 두 눈이 이쪽을 정면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저게 적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

등줄기가 찌릿해진 박이경이 긴장을 숨기기 위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왔구나.”

공항 버스 위에서, 한건우가 미소지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자신의 드래곤이라면 수십 킬로 밖에서도 이 뿔나팔 소리를 듣고 날아와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탓-

한건우는 버스 지붕을 박차고 가볍게 뛰어올랐다.

그의 등뒤에서 찬란한 빛의 날개가 돋았다.

순식간에 수백 미터 높이로 솟구친 한건우 앞에서, 드래곤이 둥글게 선회하기 시작했다.

[아빠, 기다렸어요!]

선명한 용언이 한건우의 정신에 꽂혀 들어왔다.

타아-

한건우는 드래곤의 등에 올라탔다. 드래곤의 등과 목 사이, 한건우가 안장처럼 발을 걸치고 타는 부분이 훌쩍 커져 있었다.

‘아직도 성장기인가?’

맨눈으로 어림짐작해 봐도, 드래곤은 날이 다르게 쑥쑥 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몸 길이 얘기나 할 때가 아니었다.

“길드원들은?”

[나 덕분에 다들 멀쩡해요.]

드래곤이 하늘을 향해 턱을 쳐들면서 말했다. 몸이 자라도 아이처럼 뽐내는 성격은 여전했다.

하지만 이건 정말 기특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어떻게 한 거야?”

[그건 나도 잘 몰라. 어쨌든 나 덕분이라고 하던데?]

한건우는 헛웃음이 났다. 한마디로 드래곤은 어떻게 됐는지 사정은 모르지만, 남들이 잘했다고 하니 잘한 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잘했어, 잘했다. 우리 딸, 부탁이 하나 있어.”

[뭔데?]

한건우는 지상에 있는 공항 버스를 가리켰다.

버스 지붕이 장난감처럼 작게 보였다.

그걸 내려다본 드래곤이 날개죽지를 으쓱했다.

[저 버스를 날려버리면 돼?]

“안돼!”

드래곤이 브레스를 뿜으려는 듯 숨을 들이키자, 한건우가 놀라서 드래곤을 말렸다.

드래곤은 그 모습이 우스웠는지 콧김을 훅 뿜었다.

[나도 알아. 저 사람들 태워다 달라는 거지?]

“...우리 딸, 장난이 많이 늘었네.”

한건우는 드래곤을 탄 채로 버스 옆에 착지했다.

쿠우웅-

여섯 개의 날개로 충격을 최대한 줄여,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지축이 울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버스 안에 탄 일행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한건우가 그들을 향해 이리 오라며 손짓했다.

“뭐 해요? 어서 타세요.”

*

“으아아, 뜬다, 떠!”

“어휴, 남사스럽게. 조용히 좀 해요.”

박이경은 드래곤의 등에 타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나마 경험이 있는 차은비는 비교적 침착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래쪽을 보고 난 후에 안색은 좋지 않았지만.

민간인들은 손잡이처럼 돋은 등의 가시 사이에 팔다리를 꽉 꿰었다. 한건우가 자신들을 버리고 가지 않은 데 감사하는 반응이었다.

그나마 드래곤의 몸집이 커진 덕분에, 오밀조밀 뭉치는 모양새는 면했다.

“뉴스가 사실이긴 했나 봐요. 국회의사당이 무너졌네요.”

이번에도 한건우의 무릎 앞에 앉은 이비현이 속삭였다.

“그렇군.”

이비현이 가리킨 쪽은 여의도였다. 국회의사당의 웅장한 돔 건물에 구멍이 나고 박살나 있었다. 군데군데 연기가 올라왔고, 불타는 건물만도 여럿이었다.

그러나 소방차라던지 구호 활동을 하는 움직임은 아무 데서도 보이지 않았다.

“....”

한건우 말고 다른 이들은 먼 곳의 사정까지는 제대로 못 봤던 터였다.

모두 충격을 받아 침묵이 흘렀다.

“청와대도 마찬가지라면··· 정남준 대통령은 이미 죽은 걸까요.”

“대피하지 못했다면 그럴 가능성이 크지.”

한건우가 침통하게 답했다.

이비현은 지상의 풍경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원래 고소공포증이 있던 그녀인데, 아까 서리거인의 뿔피리의 특전 탓인지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정작 이비현 본인은 모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유독 관청이나 군 시설, 그리고 부촌 쪽이 많이 파괴된 것 같은데요.”

“아마 인천국제공항과 똑같은 이유겠지.”

“네?”

“각성자 경비대나 경호원이 여럿 있고, 그들이 일반인과 섞여있던 곳이니까.”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

“뭐가?”

“몇몇 대형 길드 건물이 보이는데, 그쪽은 멀쩡해서요.”

이비현은 마천루처럼 솟은 높은 빌딩들을 가리켰다.

한건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상태이상이 온 각성자들. 그들은 같은 각성자를 공격하지 않고, 일반인만을 공격하지. 그러니 각성자들만 모여있던 곳은 비교적 멀쩡한 거야.”

“그럼, 그 안에 있던 각성자들은···.”

“아마 일반인을 공격하러 뛰쳐나간 거겠지.”

이비현이 살짝 몸서리를 쳤다. 계속 피하고 싶던 물음에 마주한 것이다.

“건우 씨네 길드원들은··· 괜찮을까요?”

이비현의 물음에, 차은비와 박이경 역시 이쪽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이비현도 챙겨야 할 식구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미등록 각성자였다. 상태이상에 걸리지 않았을 테니, 태일제나 원유선 같은 무리들에게 걸리지만 않는다면 크게 위험할 일은 없었다.

푸르르르-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지, 드래곤이 자랑스럽게 콧김을 뿜었다.

“!”

영문을 모르는 일행들은 깜짝 놀랐다.

드래곤은 아레스 길드원들이 괜찮다고 말했지만, 아직 속단하기는 일렀다.

한건우가 전방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선 가보자, 아레스 길드 건물로.”

*

“형니임!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금해준이 옥상에서 방방 뛰면서 두 팔을 흔들었다.

한건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관찰했다.

비록 전투에 참여는 안 하지만 그도 각성자인데.

눈도 깨끗했고, 암만 봐도 상태이상 같은 건 없어보였다.

“아이고, 형님이 자리를 비우신 동안 얼마나 빈자리가 컸는지! 정말 모르실 겁니다.”

금해준은 당장이라도 한건우를 부여잡고 울음이라도 터뜨릴 듯했다. 한건우는 그를 다독이면서 살짝 몸을 뺐다.

“고생했다. 다른 길드원들은? 다들 무사한가?”

“네··· 다행히 우리 길드원들 중에는 미쳐버린 사람이 없네요.”

옆에서 듣고 있던 박이경이 불쑥 끼어들었다.

“알파스 길드는?”

박이경의 눈은 바로 옆에 보이는 건물에 못박힌 듯했다. 그도 자기 길드원들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가족처럼 지내는 걸로 알려져 있으니 더했다.

“다행히 이쪽 반경은 다 괜찮습니다! 드래곤 덕분에요. 길드원들이 무사한 덕분에, 각자 가족들도 무사히 대피소로 피난 보낼 수 있었고요.”

“오오, 감사합니다, 형님.”

박이경이 감격한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까부터 드래곤 덕분이라는 건 대체 뭔지. 한건우가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금해준을 바라보았다.

“자세한 건 장영표 씨에게 듣는 게 나으실 겁니다. 벌써 드래곤이 나간 걸 보더니, 형님이 오실 거라며 브리핑을 준비 중이니까요.”

평소에는 눈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장영표인데. 위급한 상황이 오니 달라진 모양이었다.

“박이경, 너희 길드원들 챙겨야 하잖아. 가 봐.”

“일단 그 설명이라는 것부터 같이 듣고 가겠습니다.”

박이경의 눈빛이 벌써 바뀌어 있었다.

“좋아. 해준아, 이분들은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길드 건물 내에서 머무를 수 있게 해드려.”

“예,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민간인들이 넙죽 고개를 숙여 감사의 표시를 했다.

군식구가 늘어나니 반갑지 않을 텐데도, 금해준은 활짝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한건우 일행은 장영표의 벙커가 있는 지하층으로 향했다.

“오셨군요. 마스터!”

“내가 없는 동안 고생 많았어.”

장영표는 공치사에는 관심이 없는 듯, 바로 벽에 슬라이드를 비추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마스터, 지금 이 현상에 대해서 얼마나 아십니까?”

“배후에서 조종한 사람은 얼추 짐작이 가는데, 나머지는 전혀 모르겠군. 다행이긴 하지만 우리 길드 쪽만 무사한 것도 이해가 가지 않고.”

“네, 그럼 간략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3일 전.

그 현상은 갑자기 시작됐다고 한다.

‘승무원의 증언보다 하루가 더 빠르군!’

시작은 북쪽이었다.

국경 근처에서 미친 각성자가 나타났다는 신고가 접수되기 시작하더니, 채 10분도 되지 않아서 구조대 상황실 연락망이 전부 마비될 정도로 신고가 폭주했다.

[각성자가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습격하고 있어요!]

[빨리요, 경찰 보내주세요, 살려주세요!]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각성자 구조대가 출동했지만, 그들도 어느 순간부터 그들과 동일하게 변해서 사람들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최하위 등급의 각성자들은 군대나 구식 화기로 어느 정도 제압이 가능했다. 그러나 일정 이상 등급의 각성자들이 모인 대도시로 확산되면서, 더 이상의 방어나 제어가 무의미해졌다.

그후 전파 방해까지 이루어지면서, 외부와의 통신도 단절되었다.

이제는 피해가 얼마나 발생했는지, 다른 지역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전파 방해가 일어나기 전, 청와대 측에서 저희 길드로 연락을 줬습니다. 마스터를 급히 찾았고, 일단 대통령님을 지하 벙커로 피신시킨다고 했었구요.”

대통령은 청와대 내 비밀통로를 통해 북한산 밑의 대피소로 피신한 듯 했으나. 생존 여부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파악이 된 건가?”

장영표는 화면을 전환했다.

2개의 거의 동일한 그래프가 보였다.

마치 사람이 죽기 전의 심장 박동 그래프처럼.

격렬한 파동 뒤에 잠잠해지는 모양이었다.

“그 일이 일어날 당시. 마침 치료소에서 뇌파를 촬영하던 각성자가 있었습니다. 왼쪽은 바로 그 결과지입니다.”

“인간에게는 저런 뇌파가 없을 텐데요?”

차은비가 의아해하며 화면을 가리켰다.

“맞습니다. 저 뇌파가 촬영된 직후, 각성자는 상태 이상이 일어났고요. 그 주위에 있던 다른 각성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른쪽 그래프도 뇌파 촬영지인가?”

“아니요, 그건 가장 가까운 군사 레이더에 잡힌 파동입니다.”

“....”

두 개의 파동이 거의 겹쳐지듯이 일치한 게 섬뜩했다.

“제 생각에는 각성자를 노린 일종의 생화학 테러가 아닐까 싶네요.”

“생화학 테러?”

한건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차은비가 반론을 제기했다.

“이렇게 많은 각성자가 동시에 같은 생화학 공격에 당하는 건 불가능해요! 각성자는 각자 다른 종처럼 체질이 달라요.”

차은비는 각성자 의학의 전문가였기에,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남미에서는 다같이 이계 약물에 당한 적도 있잖아? 강한 독극물도 있고 말야. 그런 것 아닐까?”

“그때만 해도 약물에 안 당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저도 그랬고요. 밀폐된 공간도 아니고 이렇게 넓은 땅에서··· 불가능하다고 봐요.”

차은비는 반대 의견이었지만, 한건우는 일단 장영표의 손을 들어주었다.

“우선 장영표의 말을 들어보지. 그렇다면 우리 길드 근방이 멀쩡한 이유는 뭐라고 보나?”

“저희도 꼼짝없이 같은 처치에 빠질 뻔했는데 운이 좋았습니다. 더 큰 파동이 덮어주었다고 할까요?”

“더 큰 파동?”

“네, 바로 드래곤 피어입니다.”

인간이 느낄 수 없는 심상치 않은 파동이 느껴진 순간.

옥상에서 한건우를 기다리고 있던 드래곤은 강력한 피어를 폭발적으로 토해냈다고 한다.

그건 주위의 차량이 멈추고, 건물 유리창이 깨져나갈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그게 지나간 후, 우리 길드는 알게 된 겁니다. 세상이 변했고, 우리만 제정신으로 남겨졌다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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