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206화 (206/238)

#206루마니아 (9) - 레일 건

한건우의 손에 주먹만한 마석이 잡혔다.

‘일렉트릭 건 스톤.’

[남은 사용횟수 2 / 5]

마리아 베르타가 최후에 쓰려고 했던 필살기, 일렉트릭 건. 일명 레일 건이라 불리며, 세계의 아이템 장인들이 꿈꾼다는 궁극의 무기였다.

지금의 상황을 반전할 만한 파괴력을 가진 아이템은 이것뿐이었다.

마리아 베르타는 이걸로 한건우와 드래곤을 끝장내려다가, 한건우에게 기습을 당해서 죽고 말았다.

- 그것만 성공적으로 개발하면, 재앙급 마수가 나와도 붙어볼 만 할 겁니다!

장영표의 열띤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했다.

- 제가 알기로는 아직 그걸 개발한 장인이 없습니다. 첫째로 이계의 전자기력 에너지, 둘째로는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버틸 만한 포신이 필요하거든요.

- 이제 둘 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같군.

그 말을 했을 때, 입을 딱 벌린 장영표의 표정은 정말 볼만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연습을 안해본 것도 문제지만.’

2회밖에 안 남은 스톤의 사용 횟수를 낭비할 수 없으니, 연습해볼 기회는 없었다. 장영표에게 들은 원리를 최대한 학습했다.

한건우는 마리아 베르타가 자신을 공격하려 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몇 번이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레일 건 자체의 단점은 어떻게 극복한다?’

그렇게 강한 레일 건이지만.

크나큰 단점이 존재했다.

조준 준비에 시간이 걸리는데다, 움직이는 표적을 쉽게 맞출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마리아 베르타가 공중 전함에서 드래곤을 향해 레일 건을 발사하려 했을 때에도, 조준선 자체는 움직이지 않았다.

장영표도 그 점에서는 난색을 표했다.

- 대인 전투에서요? 그건 어려울 듯 싶습니다.

- 왜지?

- 쉽죠. 대공 미사일을 권총처럼 다룰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장영표도 뾰족한 수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

한건우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아니야. 그것도 아냐···.’

아공간 무기집에 손을 넣은 찰나의 시간, 한건우의 머릿속에 여러 경우의 수가 스쳤다.

‘아하. 그게 있었지.’

한건우는 <발록의 화염 채찍>을 아공간 무기집에 집어넣고, 유영원이 준 마검 <스톰브링거>를 꺼냈다.

스르릉-

아무런 장식 없는 고아한 먹색의 검신이 묵직했다.

마력을 담으면 천지를 뒤엎는 폭풍을 일으키는 검이었다.

신화급 무구, 마창 게이볼그는 아소카 싱에게 빼앗긴 상황. 발록의 화염 채찍과 마검 스톰브링거는 둘 다 전설급 무구로, 게이볼그에 비하면 한참 등급이 떨어졌다.

- 하하하, 어리석은 놈.

아소카 싱의 몸에 강신한 3개의 신격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 창을 검으로 상대할 생각이냐? 차라리 계속 채찍을 쓰는 게 나았을 터. 전투의 기본도 모르는 애송이로군.

같은 실력이면, 검은 창을 이기지 못한다.

무구를 다루는 전사들의 상식이었다.

하물며 지금은 같은 실력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

무구의 파괴력도, 개인의 힘도. 아소카 싱이 한건우를 압도하고 있었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알겠지. 덤벼라.”

채애앵-

치지지징-

마창 게이볼그의 날이 마검 스톰브링거에 가로막혔다. 블레이드끼리 마찰되며 불꽃이 튀었다.

우연이라 생각한 아소카 싱이 빠르게 몇 합을 더했지만, 생각보다 한건우는 비등하게 막아냈다.

“그 창을 가장 오래 다뤄온 것은 나다!”

공격 궤적이나 강도, 휘어지는 정도···. 그 창에 대해서는 모든 걸 알고 있기에, 상대하기가 수월했다.

- 네놈의 머리통을 창날로 쪼개어 흐르는 피를 모조리 마셔주겠다!

3개의 신격 중 칼리 여신의 신격이 가장 먼저 분노를 드러냈다. 긴 팔이 창을 빙빙 회전시켰다. 다른 이들이 봤으면 위압되었을지 모르나, 한건우의 눈에는 허점이 보였다.

‘아소카 싱 저놈, 자기 몸으로 장창을 익힌 적은 없는 게 분명해.’

아무리 전투신의 신격이 강신하여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해도, 무술은 스스로의 몸으로 연마하고 수련한 결과가 움직임으로 나타나는 법.

아소카 싱은 머릿속에 창술에 대한 지식이 있을 뿐, 몸으로 구현하는 숙련도는 부족한 셈이었다.

슈웅-

크치잉-

그들은 서로를 잡아먹을 듯, 필살의 합을 주고받았다.

한건우라면 창의 일격에 뇌전이나 화염을 실어서 공격력을 높였을 텐데. 3개의 신격은 공격기 역시 따로 놀았다.

몸은 하나인데, 신격은 3개였다. 분노한 칼리 여신이 전면에 나서서 창을 휘두르는 데 집중하느라, 인드라와 아그니의 뇌전과 화염 공격은 제대로 타겟을 잡지 못했다.

그에 비하면, 한건우는 현란한 공격기로 상대의 혼을 빼놓고 있었다. 마검에 <빛의 군주> 특성을 입혀 공격 범위를 늘렸고, 사방에 파괴 광선을 그물처럼 날렸다.

아소카 싱의 예상과 달리, 둘의 전투는 비등한 양상이었다.

슈웅-

아소카 싱이 회전하면서 빠르게 반원을 그렸다. 마창 게이볼그가 주인인 한건우의 어깨를 노리고 수평으로 날아왔다.

한건우는 검을 들어 창끝이 아닌 창두의 마지막 부분을 막았다.

치이잉-

창날 부분이 아슬아슬하게 한건우의 몸에 다가왔다. 창신이 강하면서도 유연한 게이볼그는 중간을 막더라도 휘두르는 힘에 의해 순간적으로 휘어지곤 했다.

아소카 싱, 아니 칼리 여신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죽어라!

그건 한건우가 의도한 바였다. 그는 아슬아슬하게 창날을 피하며 오히려 안쪽으로 밀고 들어갔다.

‘창의 간격이 아니라, 검의 간격으로 들어간다!’

초근접거리로 들어가면, 장창을 든 상대방은 오히려 불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전투신인 칼리 여신은 본능적으로 그 흐름을 읽었다.

슈욱-

아소카 싱은 다른 팔로 창을 바꿔 잡으며 훅 빠지듯이 물러났다. 그리고 한 손을 번쩍 들었다.

쿠와아앙-

성 가장자리 쪽 천장이 폭발하듯이 날아갔다. 1층 천장뿐 아니라 지붕까지 전부 날아갔는지, 그 틈으로 검은 밤하늘이 보였다.

“!”

밤하늘에서 푸른 전격이 번뜩였다.

파지지직! 쿠아앙-

바로 한건우가 서 있던 자리. 재앙 같은 낙뢰가 떨어졌다.

“크아악!”

가까스로 치명상을 피하긴 했으나, 한건우의 온몸도 여파에 휘말렸다.

쿠우우-

단순히 일격의 뇌전 공격.

이 고성도 평범하게 지어진 건물일 리 없건만, 지붕부터 지하까지 관통당하고 말았다.

- 크하하하하!

전쟁신 인드라였다.

호전적이고 거침없는 웃음소리가 부서진 홀 안에 울려퍼졌다.

한건우는 그 뇌전 공격의 위력에 마른침을 삼켰다.

‘내 <인드라의 뇌전> 특성과는 비교가 안돼! 심지어 최선을 다한 것도 아니고, 권투로 치면 잽을 한번 날린 정도···. 이게 진짜 인드라 신의 힘인가?’

스톰브링거를 세워 드는데, 검신에 흔들림이 느껴졌다.

‘전설급 무구를 들고 신화급 무구에 덤볐으니.’

등급의 차이 때문인지. 마검 스톰브링거가 버티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장기전으로 간다면 한건우의 검이 먼저 버티지 못하고 부서질 공산이 컸다.

- 깔깔깔깔!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아소카 싱이 혀를 쭉 빼물고 기쁘게 웃었다. 다시 칼리 여신이 나온 듯했다.

[특성 발동 : 죽은 자의 날]

스으으으-

허공에서 검은 총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호오, 이건? 마리아 베르타의 특성과 비슷하지 않나. 대체 어떻게 자네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아소카 싱의 인격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내가 그 사실을 알려줄 의무는 없겠지.”

“어찌 되었든 상관 없네. 자네를 죽인 다음 자네의 혼에게 물어보면 될 일.”

한건우가 홀에 소환한 총구는 열 개도 안 되었다. 마리아 베르타의 특성을 온전하게 쓰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나머지 수백 개의 총구는, 성 지붕에 뚫린 구멍 위에 소환되어 있었다.

드드드···.

수백 개의 총구가 한데 뭉쳐지기 시작했다.

‘집중하자!’

한건우는 일렉트릭 건 스톤을 꽉 쥐었다.

[일렉트릭 건 스톤]

- 사용 횟수 1회 차감

파지지지지···.

이계의 전자기파가 한건우의 몸을 타고 물결쳤다.

투두두두-

눈속임을 위해 불러낸 몇 개의 총구가 아소카 싱을 향해 불을 뿜었다.

- 낄낄낄!

장난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불의 신 아그니의 신격이었다.

- 간지럽지도 않구나!

투두두-

화르르르-

한건우가 쏘아낸 마력 탄환은 아그니의 신격이 불러낸 화염의 벽에 가로막혔다.

“으윽!”

마치 활화산의 용암 속에 다이빙이라도 한 듯. 가공할 만한 열기가 쏟아졌다.

- 칼리 여신이여, 팔을 빌려다오!

- 흥, 잠시만이다!

아그니의 신격이 꿈틀거리며 4개의 팔을 지배했다. 그의 창술은 칼리 여신보다 서툴렀으나,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슈웅- 화아악!

마창 게이볼그에 급기야 아그니의 화염이 실린 것이다. 아소카 싱이 창을 휘두를 때마다 지옥 같은 화염이 용솟음쳤다.

“큭···.”

한건우의 용갑 방어구에도 군데군데 손상이 간 상태. 틈 사이로 열기가 고통스럽게 전해졌다.

슈웅-

탓!!

‘정신 차려야 해!’

이미 정신력과 체력의 소모가 극심한 상태. 아소카 싱과의 근접전투만 해도 어려웠는데, 동시에 일렉트릭 건의 포신을 만들어내야 했다.

“허억.”

체력과 호흡이 부족해지면서, 한건우의 자세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치잉- 챙-

검끝이 흔들리는 게 한건우의 눈에도 보였다. 아소카 싱의 공격을 막아내기가 점점 버거워졌다. 마창 게이볼그의 창날이 한건우의 허벅지를 스쳤다.

“윽.”

한건우의 방어구 위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검은색의 방어구가 아니었다면 이미 한쪽 다리가 핏빛으로 물들었을 터였다.

슈우웅-

아소카 싱이 휘두른 창은 다른쪽 정강이까지 베었다. 한건우는 두 다리가 부상을 입어 기동력이 크게 줄었다.

- 낄낄낄! 이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구나. 마지막 발악도 여기까지군.

한건우는 검을 크게 휘두르면서 사방에서 포화를 계속 퍼부었다. 아소카 싱의 접근을 막으려 한 것이었지만, 상대의 움직임은 현란했다.

- 네 검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고, 너의 목도 땅에 떨어질 것이다. 감히 인간이 신을 흉내내려 한 죗값을 달게 받아라.

아그니의 신격이 입이 찢어질 듯 웃었다.

- 오랜만에 재미있는 전투였다. 이 인색한 아소카 놈에게 8개월치의 수명을 쓰게 만들다니.

아그니의 신격이 창을 높이 들어 한건우를 겨누었다.

- 이제 끝내주마!

그 순간, 아그니의 신격은 창날에 반사된 무언가를 보았다.

뚫린 천장 위로 보이는 것은 대포 같기도 했고, 거대한 창처럼 보이기도 했다. 포신이 이쪽을 겨누고 있었고, 그 끝에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아소카 싱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저건··· 마리아 베르타의···!’

그건 바로 조준을 앞둔 레일 건이었다.

‘자칫하면 등짝이 뚫릴 뻔했군!’

이제껏 한건우를 상대하느라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아소카 싱이 으르렁거렸다.

- 감히 날 상대로 잔머리를 굴려?

하지만 그는 곧 웃음을 터뜨렸다.

- 계획은 좋았으나 이미 간파되어 버렸으니 소용 없겠구나! 저 공격은 강력하지만 움직이는 적을 맞출 수 없으니.

아소카 싱은 이미 홀 끝으로 몸을 피했다. 포신이 겨누는 방향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레일 건의 공격력이 아무리 강해도, 거기 있는 아소카 싱에게 타격을 줄 수는 없을 것이었다.

오히려 아소카 싱이 회피하자, 레일 건의 표적이 된 것은 한건우였다. 그를 비웃으려는 순간, 아소카 싱의 귀에 한건우의 비웃음이 들렸다.

“바보 같은 놈.”

아소카 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아소카 싱은 신중하게 분노를 가라앉혔다.

- 그런 도발에 달려들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건우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이제 꼼짝없이 준비한 공격을 거둘 수밖에 없으리라.

그때, 한건우는 마지막 마력을 짜내어 레일 건에 시동을 걸었다.

쿠구구···.

파지지지···..

- 어···!

전쟁의 신 인드라, 전투의 여신 칼리, 불의 신 아그니. 그리고 3개의 신격을 버텨내고 있는 아소카 싱.

4명이 동시에 놀랐다.

- 적에게 죽느니, 자살하겠다는 건가?

“바보들.”

한건우는 아소카 싱의 분노한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마지막으로 모인 MP를 짜냈다.

[특성 발동 : 위상 전환]

- 시선이 마주친 상대방과 공간 좌표를 바꾼다.

‘이 순간을 노렸지.!’

한건우는 레일 건을 처음부터 이 자리에 조준했다. 레일 건은 움직이는 표적을 조준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최종 표적의 위치를 자신의 위치로 정한 것이었다. 최대한 이 근처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일부러 두 다리에 빈틈을 내주어 의심을 피하기까지 했다.

파앗-

쿠콰과과과과-

부서진 지붕 틈으로, 레일 건이 발사되었다.

동시에 수백 개의 번개가 사방으로 치는 듯했고, 성안에 태양이 한번 명멸하는 듯했다.

- 안돼!

아소카 싱은 창과 도끼도 버리고, 4개의 손으로 4개의 방어막을 형성했다.

두우웅-

방어막과 발사체가 부딪힌 순간.

귀를 멀게 하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한건우는 후폭풍에 휩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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