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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먹는 플레이어-204화 (204/238)

#204루마니아 (7) - 가짜와 진짜의 싸움

아소카 싱은 칼리 여신의 강신으로 온몸 피부가 새카매진 상태였다.

어두운 홀 구석에서 큰 흰자위가 빛났고, 그의 몸 뒤로 둥근 후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화르르-

한건우가 아그니의 화염을 실은 채찍을 휘두르자, 허공에 불기둥이 휘몰아쳤다.

파즈즈즈-

거기에 푸른 전격이 섞이며, 가까이 다가가기도 어려운 화염 폭풍이 만들어졌다.

아소카 싱은 수인을 맺으며 공중에서 뒤로 훅 물러났다.

그가 복잡한 수인을 더했다. 아소카 싱은 공중에 부양한 상태로 한건우 주위를 빠르게 빙빙 돌기 시작했다.

화아악-

한건우의 등에 화염의 날개가 솟구쳤다.

그가 높이 뛰어올라 아소카 싱의 포위에서 벗어났다.

실내 공간이지만 천장이 높아서 어느 정도 공중전도 가능할 듯했다.

- 깔깔깔.

화염의 날개를 보고서, 아소카 싱에게 강신한 칼리 여신이 웃음을 터뜨렸다.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목소리였다.

“죽어라!”

한건우는 아소카 싱이 움직이는 궤도를 예측하여 발록의 화염 채찍을 휘둘렀다. 채찍에 달린 아다만티움 철편이 아소카 싱의 검어진 피부를 찢어발길 듯했다.

파아악!

아소카 싱의 등에서 두 개의 팔이 더 돋아났다.

그는 점점 칼리 여신의 모습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돋아난 팔에는 각각 무기가 들려 있었다.

하나는 도끼, 하나는 창.

그런데 창 쪽이 너무나 익숙했다.

타아앗-

아소카 싱이 창을 올려쳐서 한건우가 휘두른 발록의 화염 채찍을 쳐냈다.

“네놈이!”

한건우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아소카 싱의 팔이 마창 게이볼그를 들고 있었던 것이다.

아까 드 라모트 백작부인을 향해서 던진 이후, 빼앗겨 되찾지 못한 창이었다.

- 사도 한건우, 좋은 창을 가지고 있더군.

“!”

쉬이익-

아소카 싱이 휘두른 마창 게이볼그가 한건우의 발목 부분을 노렸다.

한건우는 몸을 회전하며 피했지만, 한가지 맹점이 있었다.

아소카 싱의 두 팔이 등 뒤에서 자라나 거미처럼 길게 뻗어진 탓에, 가동 범위가 보통 인간과 달랐던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창이 휘어졌다.

“크윽!”

한건우의 발목을 따라 길게 창날이 스치고 지나갔다.

용갑으로 만든 전신 아머 수트를 입었는데도.

칼리 여신이 휘두른 창에 부츠 윗부분이 잘려나가고, 발목이 깊이 베였다.

‘그나마 저놈이 <마창 게이볼그의 주인> 특성을 못 쓰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10분간 회복 불가라는 페널티를 받았다면 낭패일 뻔했다.

- 깔깔깔깔!

아소카 싱이 눈을 부릅뜨며 혀를 길게 쭉 내밀었다.

그는 칼리 여신의 모습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츠르르르···.

한건우는 발록의 화염 채찍을 회수하고, 마창 게이볼그를 든 아소카 싱을 노려보았다.

검은 피부에 4개의 팔이 달린 기괴한 모습.

4개의 팔 중에서 앞의 둘로는 수인을 맺으며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고, 뒤의 두 팔은 각각 도끼와 창을 들고 있었다.

마창 게이볼그를 적에게 빼앗기다니.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마스터!”

박이경 쪽을 지원하고 있던 차은비가 심상치 않은 기척에 뒤를 돌아봤다.

그녀가 힐을 보내주자, 창상이 천천히 아물기 시작했다.

한건우가 다시 발록의 화염 채찍을 강하게 내리쳤다.

촤르르르-

불과 전격이 실린 돌풍이 아소카 싱을 향해 몰아쳤다.

아소카 싱은 재빨리 수인을 맺어 공격을 피하려 했지만.

생각보다 범위가 큰 공격기에 휘말렸다.

츠즈즈즈···.

아그니의 화염과 인드라의 뇌전.

원소 계열의 공격 특성으로, 한건우의 공격기 중에서 가장 강한 특성들로 손꼽혔다.

- 이 짜릿한 느낌은 익숙하군. 아그니와 인드라의 능력인가?

아소카 싱이 이죽거리며 웃었다. 그의 표정이 사나웠다.

“무리하고 싶지 않지만··· 진짜를 보여주지.”

이번에는 칼리 여신의 목소리가 아닌, 아소카 싱의 목소리였다.

아소카 싱은 다시 양손을 모았다.

그의 몸 주위에 아까보다 훨씬 강한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비단 옷자락이 찢어질 듯이 세차게 펄럭였다.

“4개월치의 수명.”

[특성 발동 : 강신]

쿠웅-

아소카 싱의 동공이 흐려졌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파아앗-

한건우가 파괴 광선을 쏘았지만, 아소카 싱의 후광을 넘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뭐지?’

가부좌를 틀고 앉은 아소카 싱의 등 뒤로 빛나는 후광 속.

한건우는 수없이 많은 은하가 빛나는 밤하늘이 거울처럼 비치는 것을 보았다.

“...!”

짧은 순간. 아소카 싱의 후광 속에 우주가 보였다.

열린 균열 사이로 이계가 들여다보이는 것과 비슷했다.

그러나 그 세계의 격은 이쪽과는 비교가 안 되게 강력해서, 쳐다보는 것만으로 전율이 느껴졌다.

쿠르르릉···.

그 안에서 푸른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리더니.

어떤 강력한 존재가 아소카 싱에게 강림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시 4개월치의 수명.”

아소카 싱의 후광이 용암처럼 붉게 타올랐다.

이번에는 열기로 가득한 화염의 세계였다.

거기서 온 또다른 존재가 강림했다.

“끄으으으···.”

아소카 싱의 얼굴이 괴롭게 일그러졌다.

내장이 뒤틀리고 온몸의 기운이 충돌하는 듯했다.

그는 8개월의 수명을 담보로 3명의 신을 동시에 몸에 받은 것이다.

“동시에 여러 신격을 강신할 수 있다고?”

한건우가 믿기지 않아 중얼거렸다.

칼리 여신의 신격이 사라지지 않은 탓에, 한건우에게 걸린 속박의 저주는 아직 유효했다.

“이 몸에게도 힘겨운 일이지만, 자네를 죽이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네.”

여러 신격이 섞인 아소카 싱의 모습은 더욱 괴이해졌다.

피부는 얼룩말처럼 얼룩덜룩했고, 머리카락 역시 금발과 흑발, 적발이 한데 물결쳤다.

등 뒤에는 여전히 칼리 여신의 두 팔이 더 달려있었다.

아소카 싱의 눈은 핏빛으로 붉었다. 3개의 신격을 받아내느라 실핏줄이 모조리 터진 것이다.

쭈욱.

아소카 싱이 혀를 길게 빼물고 웃었다.

일곱 개의 혀가 불꽃처럼 날름거렸다.

- 자, 이것이 진짜 ‘아그니’의 화염과 ‘인드라’의 뇌전이다. 가짜가 진짜를 막을 수 있는지 보여다오!

3개의 신격이 동시에 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소카 싱이 수인을 맺던 양손을 높이 쳐들었다.

새파란 전격과 피처럼 붉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

1층 홀 반대쪽.

박이경과 차은비 역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상대가 드 라모트 백작부인이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백작부인은 박이경과 차은비보다는 한건우에 관심이 있어 보였으니까.

백작부인은 긴 드레스 자락을 늘어뜨리고 높이 떠서 한건우와 아소카 싱이 있는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아래쪽. 지하 계단을 따라서 끊임없이 언데드 권속들이 올라왔다. 대체 권속이 얼마나 많은 건지. 지옥에서 악마들이 기어올라오는 듯했다.

쿠와아-

퍼억!

박이경은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신성력이 담긴 너클이 권속들의 두개골을 부쉈다.

차은비의 광역 버프가 박이경에게도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쉬지 않고 몰려드는 적들의 기세에 박이경은 피로감을 느꼈다.

“어이, 이거 마치 디펜스 게임 같지 않아?”

그 피로감이 싫지 않은지, 박이경이 웃으며 소리쳤다.

“이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와요? 힘이 넘쳐서 그런가.”

차은비는 질렸다는 얼굴로 자신의 주위로 몰려드는 적들을 향해 신성력을 폭발시켰다. 그러자 뱀파이어 권속들이 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형님은 시간만 끌라고 했지만... 이거 이런 식으로는 끝이 없겠는데. 이놈들 한번에 날려버리고, 주적을 상대하자고.”

“무슨 수가 있어요?”

박이경이 차은비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새로 획득한 공격 스킬이 있는데, 준비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려.”

“얼마나요?”

“음, 한 20초 정도?”

“휴··· 30초 벌어줄게요. 그 다음엔 책임지고 없애야 해요.”

“알겠어. 나만 믿으라고!”

박이경은 거대화한 채로 몸을 웅크리면서 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박이경의 전신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차은비는 <신의 가호>로 방벽을 만들었다. 반구 형태의 두터운 벽이 차은비와 박이경을 감쌌다.

그때 하급 권속들을 헤치고, 큰 키에 턱시도 차림의 상급 권속들이 걸어오기 시작했다.

쉬이익!

상급 권속들이 혈술로 피의 칼날을 날리고, 하급 권속들은 좀비처럼 온몸을 방벽에 부딪쳐왔다.

텅! 터엉! 터더더더-

“으윽!”

차은비의 방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방벽이 크게 흔들릴 때마다 그녀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휴, 이렇게까지 고생시키고 말이야. 이번 상황 끝나면 연봉 협상 다시 해야겠어!’

그녀가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외쳤다.

“아직 멀었어요? 1분은 한참 지난 것 같은데!”

“미안, 딱 3초만 더! 그리고 너한테만 보호막을 걸고 물러나!”

“알았어요!”

하나, 둘, 셋.

차은비가 3초를 세고, 보호막의 크기를 줄이면서 물러났다.

차은비가 거리를 두고 떨어지자, 박이경은 높이 점프했다가 땅으로 내려오면서, 양 주먹으로 땅을 내리쳤다.

“썬더 크래시!”

쿠콰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타격음이었다

.

박이경이 내리친 지점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그 지점을 중심으로 주위의 대리석 바닥이 순서대로 뒤집어지며, 갈라진 틈 사이로 충격파와 함께 불꽃이 솟구쳤다.

콰과과과-

박이경이 떨어지며 낸 충격으로 1차적 타격을 받은 적들은, 곧 화염과 함께 불타올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박이경의 스킬 이후, 주위는 고요해졌다.

마치 운석이 떨어진 듯했다.

그가 거봐란 듯이 차은비를 돌아보았지만, 차은비는 멀리 한건우에게 힐을 주느라 딴 데를 보고 있었다.

“에구, 죽겠네! 생각보다 빡센데···.”

박이경이 큰 소리로 불평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앗! 괜찮아요?”

차은비가 달려와서 박이경에게 힐을 넣어주었다.

“그런데 스킬 이름이 왜 그래요?”

“아, 봤어? 진짜 이름은 달라. 방금은 내가 그냥 지은 거지.”

박이경이 헤실거리며 웃었다.

차은비는 어이가 없었다.

“언제 이런 건 또 연습했어요? 아··· 혹시 저번에 멕시코에서 밤중에 산불 나서 불 끄러 출동했던 거 이거죠? 사람들이 폭격인 줄 알았다고 소란스러웠던 날?”

박이경이 딴청을 피웠다.

“하하, 민망하네. 그건 비밀로 해줘.”

그때 박이경이 드 라모트 백작부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어느새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많은 권속들이 죽은 것을 보고, 백작부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쉬이익-

백작부인이 드레스 자락을 휘날리며 이쪽으로 휙 날아왔다.

그녀의 손에서 혈술로 만들어낸 피의 채찍이 자라났다.

차은비가 자신도 모르게 박이경을 밀쳐냈다.

보호막을 믿고 한 행동이었다.

촤악!

그러나 피의 채찍은 차은비의 <신의 가호>로 만들어낸 보호막을 산산조각으로 깨뜨리며 파고들었다.

“아악!”

피의 채찍이 차은비의 목을 감아 위로 끌어당겼다.

목을 감은 채찍을 붙잡은 채로, 차은비가 다리를 버둥거리며 공중으로 붕 끌려 올라갔다.

“아악!”

“차은비! 안돼!”

박이경은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다리를 잡은 손을 속절없이 놓았다.

섣불리 세게 당기다가는 차은비의 목이 피의 채찍에 잘릴 판이었다.

채앵-

차은비의 레이피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차은비는 목이 졸려 컥컥거렸고, 얼굴에 피가 몰려 새빨개졌다.

“마음에 드는구나.”

드 라모트 백작부인이 차은비의 목을 높이 매달아, 공중에서 눈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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