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196화 (196/238)

#196미래의 기억 (11) - 불사신이라며?

이비현이 슬며시 눈을 떴다.

“우와···.”

이비현은 동공을 찌르는 따가움을 잊었다.

빛의 마법진은 눈부셨고, 한여름의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밝고 뜨거웠다.

태양광에는 본래 모든 색상이 다 들어있다고 하던가.

프리즘을 통해 총천연색으로 산란한 빛은, 잠시 모든 걸 잊을 만큼 아름다웠다.

하지만 4명의 권속들은 사정이 달랐다.

푸스스-

언데드를 잡는 강한 빛의 마법진 속에서.

반쯤 언데드나 다름없는 권속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

그들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사지를 뻗고 쓰러져 꿈틀거렸다.

“끄으으···.”

“크아아악!”

권속들의 창백한 피부가 점점 쪼그라들고, 검게 타들어 갔다.

불사신이라며 자랑하던 재생 능력도 전혀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

뜨거운 불에 달군 프라이팬 위에서 튀겨지는 개구리들 같았다.

‘엄청나잖아?’

이비현은 새삼 놀랐다.

한건우에게 딱 맞는 아이템을 만들어낸 장영표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모든 게 한건우의 계획대로 오차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평소 한건우는 자기만 알고 있는 계획을 비밀리에 진행하는 습관이 있지만.

이번에는 이비현도 미리 계획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진짜 정확히 이뤄졌어.’

한건우는 이비현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적의 숨겨진 의도를 간파했다.

아무래도 드 라모트 백작부인 측에서 이비현을 노리고 있는 것 같다고.

부하들이 실종된 것도, 갑자기 죽은 줄 알았던 어머니가 나타난 것도.

수수께끼 같은 일에 이비현이 이성을 잃고 빠져들게 만들려는 공작 같다는 것이었다.

이비현은 어리둥절했지만, 한건우의 감각을 믿기로 했었다.

그리고 한건우가 제안했다.

- 먼저 덫을 놓자!

덫의 미끼로는 상대방이 원하는 대상이 필요했다. 이번에는 다름아닌 이비현 본인이었다.

이비현은 의문을 가졌다.

- 그런데 이제껏 제가 혼자 다닐 때, 그들은 쉽게 접근하거나 공격해오지 않았어요. 어떻게 덫을 놓죠?

항상 그렇듯이, 한건우의 해결책은 간단했다.

-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최적의 기회를 만들어주면, 그들은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어.

- 최적의 기회란 건 뭘까요?

어려운 질문일 텐데, 한건우는 막힘 없이 대답했다.

- 네가 가장 취약한 상태이고, 상대방은 가장 유리한 상황일 때. 정확히는 상대가 보기에 그렇게 보일 때지.

드 라모트 백작부인의 권속은 반쯤 언데드의 성질을 가졌을 거라고 했던가.

한건우의 말을 기억한 이비현이 머리를 굴렸다.

- 우선··· 제가 건우 씨나 부하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혼자 있어야겠죠?

- 그렇게 보이도록 해야지.

- 그리고 언데드 성질을 가진 상대방이 유리한 장소로 가면 되겠네요.

그런 곳이 어디일까, 고민하던 이비현에게 한건우가 답을 말해주었다.

- 언데드가 나오는 균열 안.

- 아···! 균열 환경 전체가 언데드에게 유리하게 맞춰져 있으니까요.

이비현이 환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비현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 문제는 언데드 균열이 언제 어디서 터질지도 모르고, 타 지역에서 터지면 공략 신청이 후순위로 밀리겠는데요? 그렇다고 사람들이 공략을 피하는 상급 균열이라면··· 상대방도 안 따라 들어올 수도 있고요.

- 그건 걱정마.

한건우가 자신만만하게 답하기에, 무슨 수가 있나 했더니.

며칠만에 언데드 균열의 공략권을 잡아놓았다.

‘대체 어떻게 했냐고 물어도, 오프 더 레코드라며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이비현은 내심 기대했었다.

다시 어머니를 만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엄마를 보면 제대로, 찬찬히 얼굴을 보고 얘기하고 싶었는데···.’

지난번 호연과 마주쳤을 때.

그녀는 이비현을 낯선 사람 보듯 노려보았다.

가슴이 아팠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헤어진 지가 워낙 오래되었지 않나.

어머니는 그대로지만 자신은 많이 컸으니, 한눈에 알아보라는 법은 없었다.

‘아무리 권속이 되었다 해도, 아빠와 나를 분명히 기억하실 거야.’

이비현은 그렇게 확신했다.

만일 이 자리에 어머니가 있었다면, 한건우도 프리즘 같은 물건은 꺼내지 않았으리라.

스으으으-

무한히 계속될 기세이던 영롱한 빛이 점차 사그라들었다.

권속들은 맥을 못 추고 바닥에 엎어진 채였다.

그을린 살갗에서 독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쿠욱!

한건우가 간헐적으로 꿈틀거리던 권속의 등을 밟았다.

“끄으윽···.”

“다 죽였나?”

한건우가 건조하게 물었다.

“무··· 무슨···.”

“솜브라의 조직원들, 다 죽였다며. 나머지 시체는 어디 있지?”

이비현은 흠칫 놀랐다.

실종된 부하들은 4명. 그중에서 시체가 발견된 건 임원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 3명의 행방은 아직 몰랐다.

“끄윽··· 키키킥!”

등이 밟힌 채로, 속이 기분 나쁘게 킬킬댔다.

스응-

한건우가 창으로 바닥을 훑듯이 낮게 휘둘렀다.

미스릴 코팅이 되어 은색이 된 마창 게이볼그의 날이 번뜩였다.

“크하아악!”

창이 지나가고 한 박자 뒤, 권속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무릎 아래, 두 다리가 깔끔하게 떨어져 나간 것이다.

이번에도 끈적한 피가 흘러나왔지만, 아까와는 달랐다.

잘린 다리가 도로 붙는 일은 없었다.

“끄으윽···.”

권속의 표정이 종잇장 구기듯 일그러졌다.

그들이 체술이 부족해도 거침없이 몸을 던져 공격할 수 있던 비결이 있었다.

첫째는 불사신과 같은 재생 능력.

둘째는 아무런 고통을 못 느끼는 무감각이었다.

그런데 오늘.

빛의 마법진과 미스릴 앞에서는 둘 다 속수무책이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원초적인 고통.

두 다리가 잘린 권속은 동공이 두 배로 커졌다.

“어이, 불사신.”

한건우가 비웃는 듯한 말투로 그를 불렀다.

“묻는 말에 바로 대답해. 참고로 거짓말은 안 통한다.”

“꺼어억···.”

한건우의 눈이 빛났다.

<거짓 간파>를 발동한 것이었다.

“다시 묻는다. 솜브라의 조직원들은 어떻게 했지?”

“또··· 똑같이 죽였다. 시체는 어디 있는지 나도 모른다.”

“거짓말.”

스으윽-

마창 게이볼그가 다시 깔끔한 반원을 그렸다.

“크아악!”

이번에는 무릎 위로.

권속의 두 다리가 더 짧게 잘려나갔다.

생명력은 끈질긴데, 고통은 생생했다.

이런 식이라면 심문이 영원히 이어질 판이었다.

다른 권속들은 겁에 질린 채로 이쪽을 바라보며 숨을 삼켰다.

“다시 기회를 준다. 대답.”

“아, 아직 살아 있다. 한국의 은신처에 가두어 놓고 피를 마시던 중이어서···.”

“살아 있다고?”

이비현이 눈을 빛냈다.

시체라도 찾기를 바랐는데 살아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좋아, 은신처는 어디 있지?”

권속은 그 질문에도 순순히 답했고, 한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이군.”

“어, 어떻게···?”

다리가 잘린 권속은 한건우에게 밟힌 채로 반문했다.

한건우가 진실과 거짓을 판독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더욱 두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호연이라는 여자를 아나? 너희의 동료인 듯한데.”

“그런 이름은 모른다.”

놀랍게도 그 대답은 진실이었다.

“아니 그게 무슨···!”

이비현은 동요했지만, 한건우는 섣불리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한국 여자고, 너희처럼, 드 라모트 백작부인의 권속일 거다. 한국에 너희와 함께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 여자···?”

권속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거짓을 둘러대려는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이 여자와 얼굴이 닮았어. 그래도 모르겠나?”

엎드린 채로, 권속의 눈이 돌아갔다. 이비현을 샅샅이 뜯어본 그가 헛숨을 삼켰다.

“그렇군···. 누구를 말하는지 알겠어. 대체 이게 어떻게 된···.”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그분은 우리의 동료가 아니라, 주인님의 혈족이시다.”

“혈족?”

한건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혈족이라는 건 가족이나 친척을 뜻하는 말인데?’

아무리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각해도.

이비현의 어머니가 드 라모트 백작부인의 친척일 리는 없었다.

이비현도 놀란 표정이었다.

“그렇다, 주인과 피를 나눈 혈족. 우리는 그렇게만 알고 있다···. 감히 상대할 수 없는 분이기도 하고.”

“그녀는 지금 어디 있지?”

한건우가 날카롭게 물었다.

“주인이 급히 부르셔서··· 한국을 떠나 라모트 성으로 돌아가셨다.”

“....”

그새 한국을 떠났다니.

한건우가 실망감을 감추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아니야. 실망할 건 없어. 어차피 가야 할 곳이었어.’

특수안보부의 기록에 언급된 ‘라모트 성.’

한건우와 이비현은 이제까지 여러 채널을 통해서 그곳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런데 도무지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

드 라모트 백작부인은 북유럽 왕족의 후손이라고 알려져 있으니, 혹시 그쪽에 연고가 있나 했지만. 그쪽에도 그런 곳은 없었다.

‘아마 모용황의 지하성처럼 숨겨져 있는 것 같군.’

이제 마지막 질문은 뻔했다.

“라모트 성은 정확히 어디에 있지?”

“....”

이제껏 질문에 술술 답하더니, 다리가 잘린 권속은 갑자기 떨리는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가 머뭇거릴 동안. 다른 권속들이 쓰러진 채로 소리쳤다.

“절대 안 돼!”

“주인님을 배신하지 마라!”

슈웅-

[특성 발동 : 빛의 군주]

한건우의 손속에는 자비가 없었다.

가장 소리높여 외치던 권속의 벌린 입속으로.

굵은 파괴 광선이 통과했다.

“커어억···.”

목 뒤에 구멍이 뚫린 권속이 몸부림쳤다.

“허억!”

다른 권속들이 격렬한 공포를 드러냈다.

빛의 마법진으로 태우고, 다리를 자를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

한건우는 그들의 반응이 아까와 다르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가 목에 구멍이 뚫린 권속에게 성큼 다가갔다.

쿠욱!

미스릴 코팅이 된 창날로 파괴 광선이 지나간 곳을 내리찍었다.

치이익-

권속의 목구멍 속에서, 무언가가 불에 지져지는 듯한 소리를 냈다.

“크으으···.”

한건우가 창을 뽑았다. 권속의 목구멍 뒤에는 텅 빈 구멍이 커다랗게 파여,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툭.

권속이 입을 벌린 채로 머리를 떨구었다.

그의 텅 빈 눈에는 생명력이 완전히 빠져나가 있었다.

‘죽었어?’

아메바처럼 재생할 것 같던 권속이 끈 떨어진 인형처럼 동작을 멈추었다.

‘저기가 급소였나?’

머리와 척수가 이어지는 뇌간 부분.

거기에 권속의 급소가 있는 모양이었다.

미스릴로 그 부분을 공격하면 회복을 못 하는 것 같았다.

“불사신이라며. 왜 이렇게 쉬워?”

한건우가 돌아서며, 다음 사람은 누구냐는 듯이 주위를 빙 둘러보았다.

동료 하나가 죽자, 권속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러나 섣불리 입을 여는 자는 없었고, 서로 눈치를 살피기만 했다.

슈우웅- 타앗!

한건우가 창을 크게 휘둘렀다.

투욱. 툭.

순식간에 두 명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끄으으···.”

단순히 목을 자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잘린 목과 몸이 아직도 꿈틀거리고 있었으니까.

이번에는 이비현이 나섰다.

미스릴 코팅을 한 <그림 리퍼의 사슬낫>을 꺼내, 권속들의 급소를 다시 타격했다.

스응- 슥!

이제 남은 건 한 명.

다리가 잘린 권속뿐이었다.

‘악마···.’

그의 눈에 한건우는 사악한 악마처럼 보였다.

그건 권속들에게 피가 빨려 죽은 무수한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에 떠올린 단어였다.

권속이 안절부절 못했다.

원하는 대답을 해도 어차피 죽을 것이라는 절망적인 판단.

행여나 운 좋게 살아날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

둘 중에 누가 이길지는 뻔했다.

권속의 눈에 담긴 복잡한 감정을 보며, 한건우가 미소지었다.

“이제 동료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겠지? 아는 대로 말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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