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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먹는 플레이어-192화 (192/238)

#192미래의 기억 (7) - 알 권리

슈우우-

드래곤이 다시 구름 위로 올라가자, 눈을 꼭 감고 있던 이비현이 겨우 눈을 떴다.

기온이 내려가서인지, 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어깨를 움츠렸다.

“추워?”

이번에도 이비현이 한건우의 앞에 안기듯이 앉아있었다.

한건우가 그녀를 품에 당겨 안았다.

“앗.”

이비현이 작게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는 귀를 스치는 바람 소리 속에 묻혔다.

“비현아, 많이 힘들었겠다.”

“...아니에요. 다 옛날 일인걸요.”

처음으로 이비현의 과거사를 알게 되었다.

평범한 고아가 아닐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정부와 특수안보부에 대한 증오심.

많은 불편을 감수하고 미등록자로 살아온 것까지.

그녀의 과거사뿐 아니라,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기질을 알고 나니 다 설명이 되었다.

“요즘 조직 내부에 일이 있어서 바쁘다던 게 그거였군. 고민이 많았을 텐데, 왜 말하지 않았어?”

“...건우 씨는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은 분이잖아요. 제 일까지 부담으로 얹어 드리긴 싫었어요.”

혼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그때도 그런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한건우가 딱 잘라서 말했다.

“이해는 되지만, 앞으로는 그런 생각 하지 마.”

이비현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제 이야기를 믿어주셔서 고마워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살아있다니.

그것도 이비현의 조직원을 공격한 정황이 보인다고 하면, 쉽사리 믿기 어려울 법했다.

이비현 자신도 착각한 것이 아닌가 몇 번이나 스스로를 의심할 정도였으니까.

가족 같은 부하들에게도 자세한 이야기는 털어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같이 알아보자.”

한건우는 어느 정도 짐작되는 게 있었지만.

여기서 자세한 이야기를 풀 필요는 없었다.

“네!”

이비현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올 때 네가 했던 질문 말인데.”

“앗··· 네?”

이비현이 퍼뜩 놀라면서 돌아보았다.

질문이라면, 그녀가 아무런 계산 없이 내뱉었던 서투른 고백이었다.

그 고백에 대한 대답을 해주는 걸까.

그녀의 눈빛이 떨렸고, 콩닥콩닥 뛰는 심장이 느껴졌다.

크릉···.

빠르게 날갯짓을 하던 드래곤이 목을 울리는 소리를 냈다.

한건우가 잘 나가다 산통 깨는 소리를 할까봐 불안한 것 같았다.

“그건 못 들은 걸로 할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

그만 이비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헉···.”

난생처음 남자에게 용기를 내봤던 이비현이었다.

그녀는 도망갈 데도 없는 창공 위에서 고개를 푹 숙였다.

너무 부끄러워서 확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까지 일었다.

한건우가 그녀를 감싸면서 말했다.

“그런 말은 내가 먼저 해야 할 것 같아서.”

“...?”

겉보기에는 고작 한 살 차이지만.

한건우에게는 새파랗게 어린애로 느껴지는 이비현이었다.

그녀가 먼저 고백하게 두는 것도 도리는 아닌 것 같았다.

“듣는 귀가 없는 곳에서 말이야.”

귀를 쫑긋 세우고 이 대화를 듣고 있을 드래곤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이비현의 옆얼굴과 목덜미가 새빨개졌다.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고 겨우 대답했다.

“저, 저는··· 좋아요.”

*

“형니임!”

드래곤이 착륙할 빌딩 옥상.

금해준이 방방 뛰면서 두 손을 크게 흔들고 있었다.

“조심해!”

파앗- 펄럭-

드래곤이 제동을 위해 크게 날갯짓을 하는 바람에.

금해준은 하마터면 몸이 날아갈 뻔했다.

난간을 붙잡고 버틴 금해준이 몸을 낮추고 한건우에게 다가왔다.

“뭘 그리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십니까. 제 얼굴도 제대로 안 보시구요.”

한건우가 드래곤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이비현도 그의 뒤에 따라붙었다.

“어떻게 알고 옥상에서 기다렸어?”

“형님의 동향이야 국제 뉴스 거리죠!”

금해준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포털의 뉴스 화면이었다.

유난히 무시무시해 보이는 드래곤이 포효하는 사진, 그리고 한건우가 드래곤의 비늘을 잡고 올라타는 장면이 보였다.

- [주요뉴스] ‘랭킹 1위’ 한건우, 의문의 일본행

- 일본 총리, ‘한건우 플레이어와 공식 일정 없어’ 만남 부인

- 한낮의 ‘밀월 여행’, 열애설 주인공은···

‘놀고들 있네.’

잠깐 유영원과 이야기를 하러 갔을 뿐인데.

연예 기사 못지않은 억측이 난무했다.

“형님이 일본을 뜨셨다길래, 돌아오실 걸 알고 기다렸죠.”

금해준은 옆구리에 결재 서류를 한웅큼 끼고 있었다.

“이제 그런 건 네가 알아서 해.”

“아니, 형님. 안 될 일이죠! 그러다가 제가 회사 자금을 횡령해서 빼먹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십니까?”

금해준이 손사래를 치자, 한건우가 픽 웃었다.

“하고 싶으면 해 봐.”

“아하하···.”

한건우는 직통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길드의 아이템 제작자, 장영표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미룰 수 없는 일정이었다.

자연스럽게 이비현과 금해준이 따라붙었다.

까앙- 까앙-

지하 벙커 밖까지 소음이 들렸다.

문득 든 생각에, 한건우가 물었다.

“장영표 말이야, 이 벙커 밖으로 나오기는 해?”

“전에 한 번, 물건 주문이 잘못되어서 밖으로 나간 적이 있다고 듣긴 했습니다만··· 그때 직원들이 많이 놀랐죠. 뭐, 재택근무가 따로 있습니까. 이게 재택근무죠.”

끼이이-

두꺼운 벙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안쪽에서는 또 지옥같은 열기가 새어나왔다.

까앙- 깡-

푸욱, 푸욱···.

각종 기계장치가 바쁘게 돌아갔다.

용광로 옆에서는 풀무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전에 본 지하 벙커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어서, 한건우는 놀랐다.

“장영표?”

대답은 없었다.

금해준이 어두운 벙커 속을 둘러보았다.

“지금 자고 있는 걸까요?”

장영표는 모든 숙식을 지하 벙커 안에서 해결했다.

낮밤이 정확할 리 없었고, 쉴틈없이 일 생각만 했다.

잡동사니 속에서 앙칼진 소리가 들렸다.

“부서진 아이템이라면 놔두고 가십쇼! 고쳐서 올려보내 줄 테니.”

“장영표 씨, 길드 마스터가 오셨습니다.”

금해준이 부르자, 장영표가 고개를 내밀었다.

밤낮이 바뀌어 얼굴이 허옇게 트고, 폭삭 늙은 듯했다.

그의 옆에는 피로회복 포션 병이 굴러다녔다.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닌가. 전투원도 아닌데 포션까지 마셔가며 일만 하는군.”

한건우가 혀를 내둘렀다.

열심히 일해주는 건 좋지만, 번아웃이 오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다.

“무슨 소리신지. 태어나서 이렇게 행복한 나날이 없다니까요!”

장영표가 기름때가 묻은 얼굴로 씩 웃었다.

재료 구입 예산은 거의 무한에 가깝고, 실험 예산도 한도가 없다시피 했다.

특별한 제약 없이 자유롭게 처리할 수 있는 일감도 무한대.

장영표는 자신에게 이보다 행복한 삶은 존재할 수 없다고 믿었다.

한건우가 하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이번에 남미에서 무기고를 좀 털어왔지.”

“무기고라구요!”

차르릉-

한건우는 마리아 베르타의 아공간 무기창고 열쇠를 빙빙 돌렸다.

마치 간식을 바라보는 개처럼, 장영표의 시선이 그 열쇠를 따라갔다.

“총기 아이템 컬렉션이 어마어마하더군. 네가 들여다보고, 뜯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뜯어보고, 개조할 게 있으면 개조해.”

“마스터!”

한건우가 열쇠를 건네주자, 장영표는 감격해서 무릎이라도 꿇을 듯했다.

“이전에 아이템 장인들이 꿈꾸는 최강의 무기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예, 그럼요. 레일 건, 일명 일렉트릭 건이라고 말씀 드렸죠.”

이름만 들어도 신이 나는 듯. 장영표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그 원리를 좀 알려줄 수 있겠어?”

“당연히 알려드릴 수는 있지만··· 서, 설마 마스터.”

장영표가 숨이 넘어갈 듯 놀라자, 금해준과 이비현은 영문을 몰라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이계의 전자기력 에너지원을 찾으신 겁니까?”

“그런 것 같아.”

한건우의 손바닥 위에 마정석 원석이 둥둥 떠서 돌아가고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장영표의 시선이 거기에 꽂혔다.

그가 신들린 것처럼 중얼거렸다.

“오오, 흑요석과 같은 바탕에, 핏줄처럼 꿈틀거리는 번개 무늬···.”

[일렉스릭 건 스톤]

장영표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호, 혹시 이 마정석, 전함이나 전차에 장착되어 있지 않았습니까?”

“맞아. 전함에 장착되어 있더군.”

“됐습니다! 바로 그 전함의 회로와 포신을 이용하면··· 저희도 레일 건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재앙에 필적할 수 있을 거라구요.”

“아, 그 전함? 부숴 버렸는데···.”

한건우가 마리아 베르타의 공중 전함을 떠올리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우선 공중에서 반토막을 낸 데다, 땅으로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으아악!”

장영표가 더벅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는 몹시 괴로워 보였다.

“괘, 괜찮습니다! 부서진 조각이라도 좋으니···.”

“장영표. 레일 건의 포신은 따로 필요없어.”

한건우가 침착하게 장영표를 안정시켰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백문이 불여일견.

한건우는 설명하는 대신 눈앞에 보여주었다.

[특성 발동 : 죽은 자의 날(재앙급)]

- 주위 공간에 총신을 소환하여 마력 탄환을 발사한다.

스으으-

한건우의 주변 공간에서 수십 개의 검은 총구가 솟아났다.

끼이익- 트특.

특성으로 소환한 총구가 액체처럼 겹치며 합쳐졌다.

전차에 달린 포신처럼, 거대한 하나의 긴 포신이 만들어졌다.

“와···.”

장영표는 물론, 금해준과 이비현까지.

넋을 잃고 새로운 특성을 바라보았다.

“이걸로 발사하면 되니까. 감을 잡을 수 있게끔 원리만 알려줘.”

마리아 베르타가 필살기로 준비하던 일렉트릭 건.

평범한 특성 활용이라면 얼마든지 연습해볼 수 있겠지만.

그 에너지원이 되는 <일렉트릭 건 스톤>의 사용 횟수가 제한되어 있으니, 실수는 용납할 수 없었다.

장영표는 홀린 듯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

금해준은 한건우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다.

드르르···.

금해준이 바퀴 달린 카트를 직접 밀고 왔다.

그 안에는 밀봉된 서류 박스가 잔뜩 쌓여있었다.

“그때 가져오셨던 연구소 데이터 인쇄본입니다!”

“이게 뭐죠?”

이비현이 관심을 가지고 다가왔다.

그녀가 아무리 뒤져도 접근하지 못한 자료였으리라.

예전, 조승재를 뒤쫓아 도착한 특수안보부의 연구소.

지하의 자료 보관실에서, 한건우는 구식 PC의 하드디스크를 챙겼었다.

‘특수안보부의 연구소는, 서버나 네트워크에 연결하지 않고 구식 하드디스크에 자료를 저장한다.’

한건우가 가져온 건 옛날 자료 쪽이었다.

바로 특수안보부의 초기 케이스 연구였다.

그들은 균열 발생 초기부터 강력한 생체 병기 개발에 매진해 왔다. 각성자를 대상으로 한 잔혹한 인체 실험도 서슴지 않았다.

조승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국민 개개인의 생명이나 안전에는 철저히 무관심했다.

‘오로지 자기들 조직의 존속을 위해서만··· 아니, 아르고스의 존속을 위해서 봉사한 거겠지.’

특수안보부 수뇌부는 오랫동안 아르고스와 깊은 연관을 맺어 왔으니까.

바로 이 중에서 한건우의 기억에 남은 데이터가 있었다.

“비현아, 지금부터 알게 될 사실은 충격적일 수도 있어.”

이비현의 얼굴에 긴장감이 흘렀다.

그건 각오한 바였다.

“괜찮아요. 누구보다 제가, 알 권리가 있으니까요.”

한건우가 박스를 뜯고, 연도별로 정리된 문서 파일을 열었다.

그의 손이 멈춘 곳에, 두 개의 단어가 눈에 띄었다.

<동유럽>.

그리고 <뱀파이어>.

“?”

이비현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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