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179화 (179/238)

#179마리아 베르타 (18) - 승리자

한편, 멕시코시티 빈민가의 언덕배기.

한건우가 ‘투구풍뎅이 알’과 함께 떠나고, 아지트에 남은 남매는 전전긍긍했다.

“그 오빠 말이야, 잘 해낼 수 있을까?”

“쓸데없는 소리 마, 레이나.”

리콘이 대번에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퀸 마리아에게 반항한 사람들, 다 죽었는걸···. 그것도 끔찍하게.”

레이나가 어깨를 움츠렸다.

마리아 베르타의 명령에 반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로 ‘스노우 플레이크’를 주사하지 않아 정신이 또렷한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은 각종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처형당했다.

죽이는 것도 모자라서, 가족들이 시신 수습조차 못하게 했다.

만인이 보는 앞에서 내내 썩어가도록 방치한 것이다.

그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 저기 나란히 매달리고 싶어?

마리아의 사병들은 쉽게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 그러게 감당도 못할 거, 왜 나서가지고···.

어른들의 생각도 점점 바뀌었다.

당한 사람을 탓하면서, 혀를 쯧쯧 차는 경우가 많았다.

그게 마리아 베르타의 방법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걸 봐왔기에, 남매는 걱정을 떨칠 수 없었다.

“그 형은 달라. 아까 못 봤어?”

리콘도 불안했지만, 짐짓 태연한 체했다.

오빠인 자기가 두려워하면 여동생은 더욱 우려워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긴 난 그렇게 강한 각성자는 처음 봤어. 군인들을 한 번에···.”

“쉿! 그런 얘기 하지 마. 우리 둘이 있을 때라도.”

리콘이 엄하게 주의를 주었다.

어린 나이여도 알 만큼 알았다.

이 도시에서는 입을 조심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도.

레이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다물었다.

리콘은 누더기 같은 이불을 가져와서 바닥에 깔았다.

토굴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기에는 모자랐지만, 그래도 누울 만했다.

“우리, 집에 가면 안돼?”

여동생이 칭얼거렸지만, 리콘은 고개를 저었다.

“안돼. 일단 기다려 보자. 그 형이 말했잖아. 하루가 끝나기 전에는 나오지 말라고.”

“알겠어.”

아직 동이 트기 전이었다. 하루가 끝나려면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리콘과 레이나 남매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쿠우우-

“어!”

갑자기 들려온 굉음에 잠이 달아났다.

멀리서 폭발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우르르···.

토굴 지붕에서 흙이 떨어졌다.

삐이- 삐익-

시가지의 도로, 오래된 자동차들이 경보음을 냈다.

새벽잠에서 깬 사람들이 거리로 튀어나오는 소리도 들렸다.

“오빠···.”

“잠깐만.”

리콘은 귀를 기울였다.

폭발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불꽃놀이처럼 계속 이어졌다.

“어떻게 된 걸까?”

“방향이 교도소 쪽이야. 그쪽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 같은데!”

리콘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 형이 뭔가를 해낸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좋아한 것도 잠시.

슈우우웅-

피유우웅-

“전투기까지···.”

조용히 귀를 기울이던 리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퀸 마리아가 데리고 있는 전투기 편대들이 출동한 것이다.

“오빠, 우리··· 나가 볼까?”

레이나가 조용히 말했다. 이번에는 떼를 쓰는 게 아니었다.

만일 한건우가 죽는다면, 그 모습이나마 눈에 담고 기억해야 하지 않느냐는 뜻이었다.

“···그래.”

리콘은 토굴의 출입구를 열었다.

아직 어스름한 아침,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있는 것 같았다.

건물 옥상과 언덕배기마다 사람들이 부글거렸다.

남매는 폐 공사장의 골조를 타고 올라가서 사립 멕시카 교도소 쪽을 보았다.

“어억!”

“오, 신이시여!”

사람들이 동요했다.

남매도 깜짝 놀라 골조를 잡은 손을 놓칠 뻔했다.

드래곤이 보였기 때문이다. 멀리서 봐도 무시무시한 위용이었다.

리콘은 토굴로 달려가서 작은 망원경을 꺼내왔다.

짙은 보라색 비늘, 흉측한 머리, 겹겹의 날개와 긴 꼬리.

등뼈를 따라 가시 같은 큰 비늘이 돋아있었다.

드래곤은 그들이 태어나서 본 마수 중에 가장 거대하고, 가장 신화에 가까운 마수였다.

“괴물이다!”

“끄아아!”

“엄마! 엄마 어디 있어!”

시민들은 원초적인 공포에 사로잡혔다.

서로 밀치며 엎치락뒤치락, 도망가느라 여념이 없었다.

드래곤이 마음만 먹으면, 훌쩍 이쪽으로 날아와 모든 걸 박살내 버릴 것 같았다.

“묵시룡이 나타났어. 우리를 심판하러 온 거다!”

“바보야, 도망가!”

“소용없어. 드래곤이 나타난 나라는 멸망하는 수밖에.”

자포자기에 빠진 이들도 있었다.

“오빠, 우린 어떡해?”

리콘은 침착하게 여동생을 달랬다.

“봐, 드래곤이 전투기와 싸우고 있어.”

“어?”

오빠의 말대로였다.

드래곤이 놀라운 무용으로 전투기 12대를 격추시켰을 때.

남매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감탄했다.

“혹시 그 오빠가 저 드래곤으로 변신한 것 아닐까?”

“하하, 그런 게 어디 있어.”

리콘은 여동생의 상상력에 웃음이 나왔다.

그것도 잠시.

그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어, 저건···.”

구름 사이에서 마리아 베르타의 공중전함이 나타난 것이다.

공중전함은 그녀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

마리아 베르타는 저 전함을 타고 남미의 많은 도시를 침공했다.

그녀의 본거지인 멕시코시티를 제외하면, 저 공중전함에서 자유로운 곳이 없었다.

수많은 함포와 총구만 보아도, 시민들은 저절로 공포에 떨었다.

두 남매는 풀이 죽었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사람도, 공중전함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쿠와앙- 콰콰과과-

어떻게 된 일인지.

마리아 베르타의 공중전함은 멕시코시티 쪽에 포격을 퍼부었다.

“으아아!”

“피해!”

정밀한 포격은 아니었지만.

남은 사람들을 겁먹게 하기에 충분했다.

잠시 후, 드래곤이 비상했다.

시가지의 사람들이 한바탕 난리법석을 피우며 도망갔지만.

빈민가 사람들은 도망갈 힘도 없는지, 아니면 호기심이 공포를 누른 건지.

남매처럼 사태를 구경하고 있었다.

망원경을 통해 본 리콘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드래곤의 등에··· 누가 타고 있는 것 같아.”

“응? 마수인데. 그럴 수 있어?”

다른 눈 밝은 이도 외쳤다.

“드래곤 위에 사람이 있어!”

“드라군(dragoon), 용기사다!”

용기사.

소년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단어였다.

“이겨라!”

“다 죽여라!”

남은 사람들은 악을 쓰며 드래곤 쪽을 응원했다.

괴물이든, 악마든 좋았다.

저 마리아 베르타를 이겨주기만 하면.

남매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때,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광채와 함께.

마리아 베르타의 공중전함이 쩌억, 갈라졌다.

“허억!”

남매는 도통 믿기지 않아 눈만 꿈뻑였다.

빈민가의 구경꾼들도 마찬가지였다.

키에에에엑!

슈우우-

드래곤이 승리의 세레모니를 하듯이.

날개를 접고 공중전함의 갈라진 틈새를 파고들었다.

전함의 선두부터 꼬리 쪽까지 쭉 훑어나가자, 전함은 완전히 반토막이 났다.

두 토막이 난 공중전함이 아래로 떨어졌다.

쿠와아아앙-

콰과아앙-

“우아아아!”

“와아!

땅에서 회색 먼지구름이 뭉게뭉게 솟아, 사립 멕시카 교도소 인근을 완전히 뒤덮었다.

구경꾼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내지르자, 아직 집안에 숨어있던 주민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하나둘 고개를 내밀었다.

먼지구름이 가라앉자, 사태가 좀더 선명하게 보였다.

“오오···.”

전함의 절반은 교도소 뒤쪽의 들판에 떨어졌다.

나머지 절반은 멀리 날아가 높은 담장을 무너뜨리며, 그 안의 모습을 훤히 보여주었다.

인공 폭포와 화단으로 꾸며진 대저택의 정원.

테마파크처럼 화려하던 외관은 먼지와 포연으로 엉망이었다.

드래곤이 반토막 난 전함 위로 내려앉았다.

머리를 꼿꼿이 올리고 날개를 펴면서 크게 포효했다.

누가 보아도 승리자의 모습이었다.

*

“해냈다.”

한건우는 더없이 기뻤지만, 긴장이 풀리자 시야가 흐려졌다. 두 다리도 휘청거렸다.

“윽.”

MP를 거의 바닥까지 끌어다 썼다.

절대 바닥나지 않을 것 같던 깊은 샘물에도 바닥이 있었다.

생명수가 폭포로 다 빠져나가 버린 기분이었다.

스윽-

드래곤이 안쪽 날개로 한건우를 감쌌다.

한건우는 거기에 기대어 잠시 숨을 돌렸다.

똑, 똑.

물방울이 떨어지듯이 힘이 조금씩 회복되었다.

[섭취형 아이템 활성화 : A급 고대 히드라의 꼬리 고기]

- 감소된 HP와 MP를 초당 1%씩 자동 회복한다.

어느 정도 회복되자마자, 한건우는 들판 먼 곳을 바라보았다.

전함을 통과해 날아간 마창 게이볼그가 들판의 바위틈에 꽂혀있는 것이 보였다.

[특성 발동 : 염동력(희귀)]

창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부드럽게 땅에서 뽑혔다.

스으으응- 터억!

한건우는 창 손잡이를 받았다.

창의 검은 블레이드는 아직 파괴의 여운을 즐기고 있는지, 은색 룬 문자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투루루···.

드래곤이 관심을 끌려는 듯 투레질을 했다.

한건우는 드래곤의 단단한 목덜미를 두드리며 칭찬해 주었다.

“잘했어, 정말로.”

항상 진심이었지만, 이번엔 더더욱 고마웠다.

잘 싸워준 것도, 큰 부상을 입지 않은 것도.

그르르르···.

드래곤이 고양이처럼 목을 울리며 좋아했다.

‘몸이 커져도 아직 애네.’

한건우는 드래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마리아 베르타가 전함을 통해 쏘아낸 마력 포탄은 매우 강력했다. 드래곤의 강인한 육체마저 상하게 할 정도였다.

포탄에 스치고 까인 부분은 꽤 많았고, 정통으로 맞은 부분도 있었다. 그 상처를 살피려고 하자, 드래곤이 몸을 홱 돌리면서 날개로 상처 부위를 가렸다.

끼잉-

[싫어요.]

야생의 마수들이 그렇듯, 상처를 내보이기 싫은 모양이었다.

한건우는 드래곤을 어르고 달래서 임시조치로 포션 병을 들이부었다.

“잠깐 있어. 드레싱을 해주는 거야.”

응급조치를 마치고, 한건우는 반토막난 공중전함의 선두 쪽으로 다가갔다.

마리아 베르타가 보였다.

남미를 공포 정치로 다스리던 군벌 카르텔의 주인이자, 대대로 셀 수 없는 사람을 죽여온 여자.

그리고 아르고스의 네 번째 주인인 그녀였다.

화려한 칭호가 무색하게, 그녀는 눈을 크게 뜬 채로 죽어있었다. 한 손은 아직도 조종간을 잡고 있었고, 심장 부근에는 마창 게이볼그가 통과한 흔적이 보였다.

그나마 시체가 전함과 함께 갈라지지 않고 멀쩡하게 남은 게 다행이라고 할까.

그녀가 즉사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상태 메시지 창이 떴기 때문이다.

[악마의 권능(유일) 발동 : 탐식]

- 죽인 자의 특성을 흡수합니다.

- 특성 흡수 중

···

- 특성 흡수 완료.

아르고스의 주인의 특성을 갖는 것도 두 번째.

그녀의 특성이 얼마나 강한지도 보았기에, 더욱 기대가 되었다.

한건우는 특성창 목록에 추가된 이름을 확인했다.

[죽은 자의 날(재앙급)]

- 주위 공간에 총신을 소환하여 마력 탄환을 발사한다.

“음.”

엄청나게 강한 공격력 때문에, 당연히 신화급 특성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재앙급 특성이라니 의외였다.

한건우의 시선은 마리아 베르타의 오른손에 머물렀다. 뭔가를 움켜쥐고 있던 듯했다.

‘분명히 전함 안에서 특성의 공격력이 훨씬 더 강해졌어.’

한건우는 짚이는 것이 있었다.

계기판의 잔해를 들어내자, 독특한 색의 마정석 원석이 보였다.

흑요석처럼 검은 바탕에, 번개 무늬가 박혀 있었다.

‘마정석?’

마정석의 에너지를 통해 특성 사용을 보조한 걸까?

한건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위에 손을 올렸다.

띠링!

[일렉트릭 건 스톤]

- 각인된 주인이 사망했습니다.

- 새로운 주인으로 각인하시겠습니까?

(남은 사용횟수 2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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