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마리아 베르타 (17) - '한 방'
마리아의 공중전함을 올려다보는 한건우 일행은 충격과 경악에 사로잡혔다.
“X발, 뭐 저런 게 다 있어···?”
이지환 하사가 욕설을 내뱉었다.
그가 욕을 하는 건 극도로 두렵다는 뜻이었다.
“환각 같은 거 아니고 진짜죠?”
은설아가 약한 소리를 했다.
그렇게 의심할 만도 했다.
거대한 공중전함은 꿈속에나 나올 법한 독특한 모습이었으니까.
매끈한 비행선이 아니었다.
총과 화약에 미친 과학자가 무쇠와 양철로 두드려 만든 듯한 포스를 자랑했다.
그래서 더 무시무시했다.
지이이이잉-
푸르르르-
구름 위에 있던 공중전함이 점점 지상 가까이 내려왔다.
키에에엑-
한건우를 따라 착륙하려던 드래곤은 날개를 펄럭거리며 멈추었다.
투우- 쿠우웅-
투두두두-
공중전함에 적재된 포가 동시에 불을 뿜었다.
마력 함포와 기관포가 난사하듯 발사되었다.
“으아아!”
전함의 화력은 그 덩치만큼이나 묵직했다.
제대로 맞으면 즉사를 면치 못할 것이었다.
각자 스킬이나 특성의 보호막을 둘렀다.
‘!’
[특성 발동 : 그래비티 필드]
우우웅-
한건우는 중력장을 발동해 마력 포탄의 궤도를 휘고, 파괴력을 줄였다.
한건우는 의문이 들었다.
지상에는 마리아 베르타와 그 부하들도 있었다.
공중전함 승조원들이 그녀에게 반기라도 드는 걸까?
수수께끼는 곧 풀렸다.
슈우우-
공중전함이 포격을 시작할 무렵.
마리아 베르타는 벌써 하늘을 날고 있었다.
전함에서 날린 무인 드론의 손잡이를 한 손으로 잡은 채였다.
그녀의 다리 밑으로 새빨간 드레스 자락이 길게 흩날렸다.
그녀의 심복들도 제각기 드론의 손잡이를 잡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피이잉-
슈웅-
임수호와 이지환 하사가 동시에 마리아 베르타를 노렸다.
얼음의 창과 화염의 화살.
그녀를 뚫을 듯이 맹렬히 쏘아져 나갔다.
그들의 공격은 마리아 베르타를 빗나가, 옆에 있던 다른 수하를 맞추었다.
“끄아아!”
드론의 손잡이를 놓친 수하가 지상으로 떨어졌다.
가슴팍에는 얼음 창, 복부에는 화염 화살이 꽂혀 불타는 채였다.
타악-
마리아 베르타가 공중전함의 상부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그녀가 곧바로 해치를 열고 전함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수하들도 마찬가지였다.
마리아 베르타는 곧바로 전함의 조종석으로 갔다.
“퀸, 오셨습니까.”
“비켜.”
마리아 베르타는 전함의 선장을 밀어내고, 조종간을 직접 잡았다.
한 손으로는 계기판의 보호막을 뜯어내고, 그 안의 마정석 원석에 손을 올렸다.
지잉-
그녀는 거대한 전함과 하나가 되는 듯한 고양감을 느꼈다.
이 공중전함은 평소 밀수품의 수송선으로 사용해 왔지만.
원래 마리아 베르타의 특성을 최대치로 뽑아내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이었다.
일종의 맞춤형 수트 같은 역할이었다.
‘수트라기엔 조금 크지.’
그녀가 미소지었다.
전함에 달린 포신 하나하나가 그녀의 신체 일부처럼 느껴졌다.
마리아 베르타는 조종석 창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지면에서 조금 떨어진 곳, 드래곤이 낮게 날면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한건우와 일행들도 보였다.
“지옥에 떨어져라.”
[특성 발동 : 죽은 자의 날]
전함 주변을 둘러싼 공간에서 무수히 많은 총구가 튀어나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끼기기-
끼익- 트특.
전함에 달린 포신이 일제히 고개를 움직였다.
사방을 향해 뻗어있던 포신이 드래곤과 한건우를 향했다.
드래곤의 뒤편은 멕시코시티 시가지 방향이었다.
하지만 마리아 베르타는 거침없었다.
쿠와아앙-
콰과과-
마리아 베르타가 소환한 총구.
그리고 공중전함의 포신.
죽음을 불러오는 검은 총포가 일제히 마력 포화를 뿜어냈다.
“퀴, 퀸. 그쪽을 포격하시면···.”
조종석 뒤에 서 있던 수하가 만용을 부렸다.
감히 마리아 베르타가 하는 일을 말린 것이었다.
“응?”
마리아 베르타가 수하를 돌아보았다.
주변의 다른 이들이 긴박하게 눈짓을 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멕시코시티에 가족과 친지가 있어, 눈이 뒤집어진 모양이었다.
“우, 우리편 군인들도 아직 남아있고, 거, 건물도···.”
차마 자기 가족 때문이라는 말은 못 하고, 수하가 말을 더듬었다.
마리아 베르타는 피식 웃었다.
퍼엉!
“으억!”
수하의 머리가 폭발했다.
목 위가 깨끗하게 날아간 시체는 잠시 그 상태 그대로 서 있었다.
시체가 쓰러져 바닥을 어지럽히기 전.
다른 수하들이 시체를 받아서 질질 끌고 나갔다.
휘이잉-
전함 바닥으로 통하는 해치를 열자, 그대로 지상으로 통하는 바람 구멍이 나왔다.
수하들은 시체를 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몇 차례 밀대질을 해서 핏물을 밀어내고 해치 뚜껑을 닫으니, 그가 있었던 흔적은 깨끗이 사라졌다.
덜떨어진 놈을 깔끔히 청소한 부하들을 보고, 마리아 베르타가 미소지었다.
“상황이 안 좋긴 하군. 스노우 플레이크 재배지를 잃었고, 건물도 부서졌어.”
“예···.”
“건물은 새로 지으면 되고, 사업도 새로 시작하면 돼. 사람이야 뭐, 모래알처럼 많으니 금방 다시 번식하겠지.”
“맞는 말씀입니다.”
마리아 베르타는 다시 조종석 바깥의 목표물을 조준했다.
*
[특성 발동 : 그래비티 필드]
피유우우-
콰아아!
한건우는 마력 포탄을 중력장으로 제어하려 했다.
날아오는 포탄을 제어하기는 어려웠다.
방금도 생각지도 못한 곳에 포탄이 날아갔다.
콰르르르···.
사립 멕시카 교도소의 담장과 첨탑이 무너졌다.
“어이쿠. 자기 집을 다 부수는데요?”
박이경이 비웃으면서 너클을 꽉 조였다.
그는 공중전함의 포격 속에서도 투지를 불태웠다.
아직 지상에 적이 남아있었다.
공중전함에 올라가지 못한 잔당들을 해치워야 하니까.
마리아 베르타가 자기들을 버렸는데도, 세뇌된 지 오래된 사병들은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전함의 포신이 향하는 방향을 보고, 한건우는 바로 깨달았다.
‘나와 드래곤을 집중적으로 노리고 있군.’
공중전함은 평야 쪽에서 나타났으니, 자신의 뒤는 시가지.
계속 지상에서 피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었다.
‘오히려 잘됐군.’
한건우는 드래곤이 듣도록 휘파람을 불며 신호했다.
드래곤의 귀 역할을 하는 작은 비늘이 꿈틀거렸다.
드래곤은 포격을 뚫고 한건우를 향해 저공 비행했다.
한건우가 지상을 박차고 뛰어올라 드래곤의 등에 올라탔다.
‘어?’
한건우는 차이를 감지했다.
그는 눈썰미가 좋은 편이었고, 이런 쪽에서는 틀리는 법이 없었다.
한건우가 드래곤의 목덜미에 엎드려 말을 걸었다.
“너, 몸집이 이전보다 커졌어.”
[알고 있어요.]
고막이 아니라 머릿속을 파고드는 용언이 들렸다.
기분 탓인지, 아이처럼 카랑카랑하던 용언의 음성도 조금 차분하게 변한 것 같았다.
“흠, 벌써?”
드래곤이 자라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알고 있었다.
해츨링에서 아성체가 되는 것도 순식간이었는데, 여기서 또 커졌다니.
한건우는 문득 은설아의 육성 능력이 떠올랐다.
은설아는 투구 풍뎅이 유충을 금방 성충으로 키워냈다.
<비스트 마스터> 특성을 활용한 것이었다.
은설아가 일부러 힘을 쓰지 않아도, 설아의 옆에 있는 것만으로 마수들은 유독 빠르고 건강하게 성장했다.
‘내 영향인가?’
한건우도 <비스트 마스터> 특성을 가지고는 있었다.
드래곤 하트를 심장에 이어붙이는 데만 힘을 쓰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쩌면 자신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성체가 된 거야?”
드래곤이 맑게 까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웃음을 터뜨린 모양이었다.
[아직요. 지금도 날개 밑이 간지러워요.]
그 말로 한건우를 놀라게 하자마자.
슈웅-
한건우를 태운 드래곤은 지면과 직각에 가까운 각도로 올라갔다.
로켓을 수직으로 발사한 듯했다.
500미터, 1킬로미터, 3킬로미터···.
“그만.”
드래곤은 더 올라가지 않고 제자리에 멈추었다.
‘역시.’
공중전함은 한건우와 드래곤만을 노리고 있었다.
전함의 선두 방향이 바뀌었고, 모든 포신이 드래곤을 향해 뻗어있었다.
공중전함 주변에 수백 개의 총구가 소환되었다.
전함의 포신에도 마력 포탄이 장전되었다.
마리아 베르타의 특성과 장전된 마력 포탄이 뒤섞여, 뭐가 뭔지 모르게 불을 뿜었다.
쿠콰앙-
투투투투-
드래곤은 능숙하게 포화를 피했다.
전투기 열두 대를 떨어뜨린 기동력이었다.
일직선이나 포물선을 그리는 포탄을 피하는 건 비교적 쉬웠다.
쉬이익-
드래곤은 공중전함을 약 올리듯이 가까이 갔다가 빠져나오기를 반복했다.
투웅- 콰과과-
드래곤을 스치고 지나간 포탄은 도시 인근의 들판에 떨어졌다.
그러나 한건우는 당황했다.
포화가 멈추지 않고 계속된 것이다.
‘화력이 무한대인가?’
전함의 마력 포탄이야 한계가 있을 것이니.
마리아 베르타의 힘이 소진되기를 기다리던 차였다.
곧 시간차를 두고 조준 격발을 할 거라고.
바로 그때가 화력이 떨어진 순간이리라 생각했다.
한건우는 그때를 노리며, 전함이 공격력을 소모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암만 기다려도 포격은 잦아들 기색이 안 보였다.
키에엑-
드래곤도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모든 격발을 피하는 것은 무리였다.
몸통과 날개에 마리아 베르타의 공격 몇 발을 직격으로 맞았다.
푸시시시-
드래곤의 비늘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이런!’
한건우는 전함의 조종석을 노려보았다.
조종간을 잡은 마리아 베르타가 보였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공중전함 전체를 뒤덮고 있는 게 보였다.
공중전함과 그녀는 한 몸이나 다름없었다.
한건우와 그녀는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시선이 부딪친 곳에서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마리아 베르타의 눈동자가 번쩍, 희게 빛났다.
터엉- 텅-
트드드드···.
전함 주변에 소환된 수백 개의 총구가 한데 뭉쳤다.
총구가 녹아내리고 합쳐지더니, 공중전함에 붙은 채로 거대한 하나의 총신을 만들었다.
치지직-
총신에서 강력한 전자기파가 튀었다.
‘!’
드래곤도 놀라서 날개를 퍼덕였다.
한건우가 이제껏 경험한 게 있었다.
강한 각성자들은 하나같이 ‘마지막 한 방’이 있었다.
그냥 좋은 특성을 가진 것만으론 모자랐다.
특성의 극의를 파고들어, 필살기를 개발한 것이다.
마리아 베르타도 마찬가지였다.
우우우웅-
마리아 베르타의 모든 힘이 공중전함의 거대한 총신에 모였다.
지지지징-
긴 총신을 따라 전자기파가 요동쳤다.
심상치 않은 에너지가 축적되고 있었다.
“잘 가, 건방진 친구.”
마리아 베르타가 한건우를 보며 말했다.
무슨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고, 입꼬리가 올라간 채 움직이는 입술만 보였다.
‘한 방이라면, 이쪽에도 있지.’
한건우는 드래곤이 움직이지 않도록 잘 다독였다.
집중력이 필요했다.
트드드···.
한건우의 오른손 끝부터 팔 전체가 다이아몬드 폼으로 바뀌었다.
이제부터 할 행동의 충격을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스응-
한건우는 마창 게이볼그를 겨누었다.
[특성 중첩 : 공간 왜곡]
[특성 중첩 : 공간 왜곡]
[특성 중첩 : 그래비티 필드]
[특성 중첩 : 그래비티 필드]
···.
발사를 앞둔 함포와 같은 압축된 힘이 어깨 부근에 모였다.
[특성 발동 : 빛의 군주]
[특성 발동 : 마창 게이볼그의 주인]
신화급 무구인 마창 게이볼그에 두 가지 특성이 실렸다.
한건우가 드래곤의 등 위에서 일어섰다.
그가 드래곤의 등판에 디딤발을 디뎠다.
터억!
우웅-
공간과 중력을 몇 겹으로 응축해, 그 힘을 받아내는 어깨가 저려왔다.
“크윽!”
한건우는 이를 악물었다.
있는 힘껏, 온 힘을 바닥까지 끌어 창을 던졌다.
투창.
본래 자신보다 큰 짐승을 사냥하기 위한 행위였다.
피유우우웅-
유성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퍼졌다.
마창 게이볼그가 거대한 전함을 향해 번개처럼 날아갔다.
광속에 가까운 속도였다.
번쩍!
눈이 멀 듯한 광채가 멕시코시티의 하늘을 뒤덮었다.
쿠콰콰콰콰-
빛이 먼저였고, 소리는 나중이었다.
창끝이 닿기도 전에, 공중전함의 조종석 창문이 깨졌다.
검은 창날은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던 마리아 베르타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러고도 창은 멈추지 않았다.
창은 긴 전함을 그대로 관통해서, 마정석 엔진을 파괴했다.
창에 실은 파괴 광선이 몇 차례 번뜩였다.
쿠르르르···.
쩌어어억!
공중전함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 사이로 아침의 태양이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