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176화 (176/238)

#176마리아 베르타 (15) - 드래곤 vs 전투기

멕시코시티 동쪽에서는 아침 해가 떠올라,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

밝아지는 하늘로 드래곤이 솟구쳤다.

그 궤적은 위로 화살표를 그리는 듯한 수직선이었다.

슈우우-

드래곤이 멕시코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대지에 두 발을 붙인 자들은 멍하니 지고의 존재를 올려다 볼 뿐이었다.

조금 떨어진 시가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언덕 위, 건물 옥상마다 사람들이 점점이 보였다.

폭발 소리에 몰려나온 구경꾼이었다.

- 기분이 좋아.

태양 아래를 날며 여섯 개의 날개를 한껏 펼친 게 얼마만이던가.

드래곤은 상승을 멈추고, 자신의 아래에 펼쳐진 세상을 오시했다.

드래곤은 모든 피조물을 똑같이 낮잡아보았다.

오만함은 그녀의 핏줄에 새겨져 있었다.

단 한 명, 알에서 깨어났을 때부터 아버지로 여기는 한건우만 예외였다.

오늘 드래곤은 한건우를 태우고 있지 않았다.

한건우는 지상에서, 자신은 창공에서.

각자 자신의 몫의 싸움을 하는 것이었다.

드래곤은 자신의 한쪽 날개 끝을 바라보았다.

- ?

날개가 이전보다 커진 것처럼 보였다.

쿠우우우-

슈우웅-

12대의 전투기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마리아 베르타 소유의 전투기 비행대대였다.

양쪽 날개를 편 전투기의 날개폭은 10미터 가량.

날개폭이 14-15미터로 커진 드래곤과 비교하면 확연히 작은 크기였으나, 수적으로는 전투기 쪽이 우세했다.

드래곤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한건우가 파괴를 허락하는 순간은 흔치 않았다.

드래곤은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슈우-

칼같이 열을 맞추던 4개의 편대가 흐트러졌다.

드래곤의 등장에 놀란 모양이었다.

드래곤은 대각선으로 상승하며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고래가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엄청난 양의 공기가 드래곤의 벌린 입으로 빨려들어갔다.

흡수한 공기는 드래곤의 목구멍 속에서 강렬한 에너지로 바뀌었다.

슈욱-

드래곤은 여섯 개의 날개로 손쉽게 방향을 바꾸었다.

드래곤이 입을 쩍 벌리자, 강렬한 에너지의 폭풍이 쏟아졌다.

모든 차원에서 가장 강력한 마수의 주 무기.

바로 드래곤의 브레스였다.

크롸아아아아-

전격을 담은 폭풍이 하늘에 쏘아졌다.

선두에서 날던 전투기를 직격으로 노린 것이었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갑작스러운 드래곤의 등장에 당황한 터였다.

브레스에는 더욱 속수무책이었다.

화아아악-

편대로 묶인 전투기 3대가 뇌전 브레스에 정통으로 휘말렸다.

레이더가 있는 머리 부분무터 조종석의 캐노피, 날개까지.

불 속에 던져진 듯 파괴되기 시작했다.

쿠우우우-

쿠콰아앙-

설상가상으로, 전투기의 파편은 근처에서 날던 두 번째 편대와 궤도가 겹쳤다.

공중에서 충돌이 일어났다.

드래곤은 그들을 향해 날아갔다.

공간을 건너뛰는 것처럼 빠른 속도였다.

휘이이- 콰아아-

드래곤이 길고 단단한 꼬리를 크게 휘둘렀다.

두 번째 편대의 전투기도 우수수 타격을 입었다.

피이이-

전투기 3대가 또 연달아 추락했다.

조종사가 비상 탈출할 기회조차 없었다.

쿠웅-

콰아-

산산조각난 전투기 파편은 마리아 베르타의 교도소 담장 안팎에 떨어졌다.

네펜데스 재배지인 후원 안으로 떨어진 것도 많았다.

벌써 12대의 전투기 중 6대가 격추된 것이었다.

드래곤이 날개를 쭉 펼치며 하늘을 둥글게 돌았다.

누가 봐도 뽐내는 듯한 자세였다.

브레스를 참느라 목이 간지러웠던 차였다.

드래곤은 속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함을 만끽했다.

살아남은 6대의 전투기는 2개 편대로 나누어 멀리 흩어졌다.

작전상 후퇴인가 했는데, 2개 편대는 다시 크게 선회해서 돌아왔다.

쿠투두두두-

편대의 선두 전투기 2대가 십자를 이루며 드래곤을 향해 포화를 퍼부었다.

기관포를 이용한 포격이었다.

티잉- 팅! 팅!

크르르···.

비늘에 마력 포탄을 맞은 드래곤은 잔뜩 화가 났다.

그러나 그게 전부뿐이었다.

근접 거리라면 모를까.

드래곤의 긴 꼬리를 피해서 한참 멀리서 발사한 포격이었다.

기관포 포격으로는 드래곤의 매끄러운 비늘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슈우-

전투기가 드래곤을 조준할 수 있는 지점을 지나쳤다.

기관포가 자연스럽게 포격을 멈추었고, 편대장이 조종간을 잡고 움직였다.

기관포는 전방 포격만 가능하니, 드래곤을 향해 회전해야 했다.

슈우웅-

편대는 하나의 생물체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그때 제3편대장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

조종석 캐노피의 창 너머로, 자신을 관찰하는 파충류의 두 눈과 마주친 것이다.

축구공만한 눈이 세로로 길게 째져 있었다.

드래곤이 날개를 크게 펄럭이며 그에게 점프하듯이 돌진해 왔다.

[유, 유도 미사일!]

편대장이 무전을 켠 채로 외쳤다.

기관포로는 승산이 없으니, 답은 미사일이었다.

제3편대장은 미사일을 발사하려 조작 버튼을 눌렀지만, 이미 늦었다.

쿠와아아-

드래곤이 머리로 전투기의 옆날개를 들이받았다.

한쪽 날개가 부서지고, 기체가 부서지면서 전투기는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파편이 공기흡입구로 들어가서 엔진을 건드렸는지, 엔진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제3편대장의 전투기는 공중에서 조각조각 분해되었다.

[신이시여.]

스으으응-

그 모습을 똑똑히 지켜본 5대의 전투기가 잠시 흩어졌다.

제3편대장의 마지막 교신은 모두에게 제대로 전해진 모양.

전투기 조종사들은 일제히 유도 미사일 발사를 준비했다.

열추적과 레이저, 이중으로 적기를 탐지하는 미사일이었다.

[준비되는 대로 발사해! 미사일이 명중하면 드래곤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마지막으로 남은 리더, 제4편대장이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투우웅-

유도 미사일 로켓이 흰 연기를 뿜으며 사선 아래 방향으로 떨어졌다.

드래곤은 미사일 로켓을 보고 급히 위쪽으로 치고 올라갔다.

유도 미사일은 잠시 아래로 떨어지는 듯하지만, 드래곤을 향해 방향을 꺾을 것이다.

아무리 피해도 소용없었다. 로켓에 탑재된 소형 레이더가 끝까지 추격할 테니까.

원래대로라면 그래야 했다.

휘이잉-

[어?]

[편대장님, 미사일이 이상합니다!]

유도 미사일은 도통 드래곤의 위치를 잡지 못하고 지지부진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드래곤에 대한 지식이 충분했다면, 그들은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으리라.

냉혈 마수인 드래곤은 열을 내뿜지 않아, 열 탐지에 걸리지 않았다.

드래곤의 표피는 전자파를 흡수해, 레이더 탐지도 피할 수 있었다.

전투기 조종사들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대였다.

미사일 로켓은 허공에서 애매하게 직진하다가, 점점 아래로 머리를 내리고 떨어졌다.

바로 사립 멕시카 교도소가 있는 방향이었다.

[오, 망할.]

제4편대장이 욕을 내뱉으며 손으로 이마를 덮었다.

쿠과과과-

그들이 쏜 미사일은 마리아 베르타의 교도소 건물을 타격했다.

하필 호텔과 연회장이 갖춰진 본관 건물.

건물 옥상과 정원이 부서지는 게 실시간으로 보였다.

[펴, 편대장님···.]

무전으로 들려오는 부하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담겨있었다.

다들 생략된 말을 짐작했다.

이런 실책을 했으니, 살아남더라도 마리아 베르타에게 처벌을 받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었다.

제4편대장은 그들의 불안을 일축했다.

[퀸 마리아는 전투 중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관대하시다!]

[오오, 역시···!]

제4편대장의 말을 듣고 마음을 가다듬은 조종사는 조종간을 꽉 잡았다.

기체를 선회하는데,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어? 드래곤이 어디 있지?’

지상부터 좌우 전방, 위쪽까지 살펴도 드래곤이 안 보였다.

그렇다면 남은 건 후방뿐.

섬찟한 감각이 목덜미를 타고 쭉 번졌다.

[꼬리를 잡혔···!]

그게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콰아아-

드래곤이 앞발로 전투기의 꼬리날개를 후려쳤다.

피유우우-

뒤를 잡힌 전투기는 프로펠러처럼 빙빙 돌아가며 추락했다.

[크윽.]

[조심해! 꼬리를 한 번 잡히면 죽는다!]

남은 전투기 조종사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대공 전투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후방을 잡히는 것이었다.

상대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타격을 당하면 죽기 십상이었다.

‘전투기 대 전투기로 싸울 때는, 꼬리를 잡혀도 금방 빠져나올 수 있는데.’

전투기라는 기체의 특성상 움직임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제자리에서 멈출 수 없고, 후진도 할 수 없다.

조종사가 뛰어난 비행 실력으로 곡예 비행을 하더라도, 궤도는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범위 내였다.

그에 반하면 드래곤의 기동력은 악몽 그 자체였다.

제각기 움직이는 여섯 개의 날개가 관성을 무력화했다. 순간 가동력 역시 폭발적이었다.

역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방향으로 궤적을 틀기도 했다.

쉬이익-

드래곤이 공중에서 갑자기 급정거했다.

전투기는 꿈도 꾸지 못하는 움직임이었다.

투두두두···.

[크아악!]

쉬이잉-

따라가며 기관포를 쏘던 전투기 한 대가 드래곤에 정면 충돌할 뻔했다.

급히 피하려고 방향을 틀다가, 드래곤의 꼬리에 강타당했다.

콰아아-

궤도가 틀어진 전투기는 배트에 맞은 야구공처럼 튕겨나갔다.

쿠콰아왕-

전투기는 하늘에서 폭발했다.

박살난 기체의 조각은 아래쪽 지면으로 떨어졌다.

먼 들판에서 폭파 소리가 이어졌다.

[미친, 양민 학살이네.]

[거리 벌려! 따라와!]

투쿠쿠쿠-

남은 전투기는 3대.

이제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세 가지였다.

첫째, 각자 흩어져서 살길을 찾아 도망가는 것.

둘째, 하나씩 저 괴물에게 죽어 동료들의 뒤를 따르는 것.

두 가지 다 선택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일렬로 뱀처럼 움직이면서 드래곤 주위를 크게 돌았다.

제4편대장이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미사일로 정면 타격한다!]

마지막으로 가능한 방법이었다.

레이더를 이용한 유도 기능을 기대하지 말고, 그냥 드래곤의 몸통에 미사일을 들이박자는 것이었다.

슈우웅-

약속이나 한 것처럼, 3대의 전투기가 동시에 전방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다.

원래 공중전에서는 선두의 전투기만 교전을 하고, 나머지는 엄호하는 게 원칙이지만.

지금은 원칙 같은 건 없었다.

하나라도 명중하기를 기대할 뿐이었다.

슈우우-

목적지 없는 미사일 로켓이 조금 주춤한 듯 하다가 앞을 향해 날아갔다.

드래곤은 몸을 틀어 미사일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발사된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웠다.

어느 방향으로 피하더라도, 가장자리의 하나쯤은 맞을 것 같았다.

전투기가 다시 줄줄이 방향을 돌렸다.

어찌 되었든 미사일의 폭파 소리가 들릴 법한데, 조용한 게 이상했다.

제4편대장의 눈동자가 커졌다.

[아···.]

3대의 미사일 로켓이 자신의 전투기를 노리고 날아오고 있었다.

날아오는 미사일을 공중에서 정면으로 마주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거기다 자기가 쏜 미사일이 아닌가.

귀신에라도 홀린 듯했다.

공처럼 보이는 미사일 앞에, 타오르는 불덩이 같은 물체가 어른거리는 걸 본 것 같았다.

강아지 앞에 흔드는 고깃덩이처럼, 미사일의 레이더를 유혹하는 물체가 있었다.

짧은 찰나에 본 그 불덩이는 지옥의 사자나 다름없었다.

콰아앙-

미사일 로켓 3기가 전투기 하나를 타격한 셈이었다.

대폭발이 일었다.

제4편대장의 전투기가 전장의 먼지로 사라졌다.

뒤따라 날던 2대의 전투기는 갈팡질팡했다.

조종석의 계기판은 경고음과 표시등으로 엉망인 상태였다.

하늘로 솟구쳐 오른 드래곤은 전투기 2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착륙을 위해 활강하듯, 아래로 내려간 드래곤이 뒷발의 발톱으로 전투기 2대의 핀을 부여잡았다.

마치 맹금류가 다른 맹금을 사냥하는 듯했다.

비행 속도가 미묘하게 다른 드래곤이 핀을 붙잡아 버리자, 전투기 2대는 핑 하고 안쪽으로 돌았다.

콰아- 트드드드-

마지막 2대의 전투기가 자기들끼리 부딪치며 파손되었다.

드래곤은 뒷발을 강하게 뿌리치듯 내려찍었다.

부서진 전투기가 플라스틱 장난감처럼 황량한 들판으로 추락했다.

들판 곳곳에서 회색 연기가 몇 줄기씩 피어올르고 있었다.

크와아아아아-

드래곤은 승리의 포효를 내지르며 하늘을 둥글게 돌았다.

“우아아아!”

멀리, 멕시코시티의 주민들은 난리법석이었다.

스포츠 경기라도 보는 듯 환호하는 이들도 있었고, 가족을 챙겨 급히 대피하는 이들도 나왔다.

“잘했다, 정말.”

자신이 키운 드래곤을 올려다본 한건우가 기특하다는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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