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172화 (172/238)

#172마리아 베르타 (11) - 풍뎅이 알

한건우는 어쩔 수 없이 공간 계열 특성을 발동했다.

[특성 발동 : 공간 왜곡]

지지징-

소년과 소녀가 뛰어가는 공간이 종이처럼 접혔다.

“어! 오빠!”

“레이나! 뛰어!”

두 아이는 있는 힘을 다해 내달렸다.

공간의 왜곡 때문에, 막다른 경찰서 마당을 계속 빙빙 도는 것처럼 되었다.

물리력을 사용하지 않고 일반인 아이들을 붙잡으려니 이게 최선이었다.

“허억, 헉···.”

“끝까지 포기하지 마!”

지친 소녀가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으려 했다.

소년은 소녀의 손목을 부여잡고 뛰려 했지만, 결국 몇 걸음 못 가고 멈추었다.

한건우가 아이들에게 성큼 다가갔다.

소녀는 겁에 질린 토끼 같은 눈으로 한건우를 올려다보았고, 소년은 도끼눈을 뜨고 소녀 앞을 가로막았다.

‘더욱 악당처럼 보이겠군.’

한건우는 <공간 왜곡>을 서서히 풀었다.

“난 마리아 베르타의 적이야. 너희를 죽이지 않아.”

“...우릴 집에 보내줘요.”

소년의 목소리가 그사이 쉬어 있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

한건우가 반으로 갈라져서 죽은 군인들을 가리켰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두 아이만 멀쩡히 돌아오면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소년은 한건우의 말을 알아들었다.

하지만 기가 죽지 않은 채 받아쳤다.

“...있어요. 숨을 거예요.”

“부모님이 안 계신 것 같은데, 어디로?”

“!”

“어떻게 알았어요?”

소년과 소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들을 본 한건우는 자기의 과거 모습이 생각났다.

어쩔 수 없는 조건 반사적 반응이었다.

‘균열 고아’가 속출하던 그때, 부모님을 잃고 여동생과 떠돌던 어린 시절.

마땅한 어른 보호자도 없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여리기만 한 여동생을 위해서 자신이 보호자가 되어야 했다.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이 쿡쿡 찔리는 것 같았다.

한건우는 아공간 주머니를 뒤져서 군용 비스킷 봉지를 꺼냈다.

허공에서 마술처럼 비스킷이 나오자, 아이들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군 각성자를 위한 전투 식량이었다.

더 맛있는 게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 이것뿐이었다.

“자, 이거라도 먹어.”

툭.

한건우가 비스킷 봉지를 던졌다. 소년이 얼른 받았다.

소년이 낯설어하며 쳐다만 보고 있자, 한건우가 덧붙였다.

“먹을 만 할 거야.”

고열량에 고영양 식품인 데다, 균열 안에서도 간단히 먹을 수 있었다.

한건우는 이제 군인 신분이 아닌데도 애용하고 있었다.

“고, 고맙습니다···.”

아이들의 깡마른 팔다리는 뼈와 관절이 그대로 들여다보일 정도였다.

아이들이 홀린 듯이 봉지를 뜯었다.

그 와중에도 소년은 먼저 신중한 태도로 비스킷 끄트머리를 맛보고, 이상한 건 없는지 유심히 살폈다.

한건우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비스킷 한 봉지가 게 눈감추듯이 없어졌다.

조금 분위기가 부드러워지자, 한건우가 물었다.

“너희, 여기는 무슨 일로 잡혀 왔어?”

“모, 몰라요.”

한건우가 떠보자, 소녀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나 소년 쪽은 눈치가 빨랐다.

“저걸 가지고 있어서 잡혀 온 거예요.”

소년이 손가락으로 그 물건을 가리켰다.

상체 윗부분이 깔끔하게 분리되어 죽은 군인의 손에, 황금빛 은행 씨앗 같은 게 들려 있었다.

“오빠, 그걸 왜···.”

“레이나, 저 형은 우리 편이야. 퀸 마리아의 군인들을 죽였잖아.”

소년이 힘주어 말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한건우는 죽은 군인의 손에 들린 물건을 바라보았다.

‘가지고 있기만 해도 즉결 처형을 당한다라···.’

말이 쉽지, 소지만 해도 처형을 당하는 물건이 흔할 리 없었다.

주위 사람을 위협하거나,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수준으로서는 부족하다.

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물건이어야 한다.

‘한마디로 마리아 베르타의 카르텔을 위협할 수도 있는 물건.’

스으으-

한건우가 염동력으로 그 물건을 당겨왔다.

아이들이 흠칫 놀라면서 한건우를 말렸다.

“형, 안돼요. 그걸 갖고 있다가 또 들키면···.”

“너희들, 이게 뭔지는 알고 있어?”

한건우는 손바닥 위에서 황금빛 씨앗 같은 물건을 굴렸다.

그러면서 아이템 창을 켰다.

[투구풍뎅이 알]

- 투구풍뎅이 암컷이 낳은 알

아이템 창이 뜨는 걸 보니, 이건 균열에서 나온 일종의 아이템이었다.

한건우가 아는 과거의 정보는 굉장히 제한적이었다.

회귀 전, 지금으로부터 몇 년 후쯤.

남미에서 온 이계 마약, <스노우 플레이크>가 세계를 휩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에서 온 <레드 스타>를 밀어내고 뒤를 이었지.’

스노우 플레이크는 겉으로 보기에는 해악이 적어 보였다.

중추신경계와 사고를 손상시키는 레드 스타에 비하면 더욱 그랬다.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지고, 고민이 없어졌다. 사고방식이 단순해졌다.

나중에야 스노우 플레이크가 일종의 세뇌 약물이라는 게 밝혀졌다.

그러나 스노우 플레이크가 본격적인 문제를 일으키기도 전에, 현지의 생산이 돌연 끊겨버렸다.

이제 막 중독되기 시작한 사람들은 괴로워하면서 대체재를 찾아서 헤맸다.

‘그때 분명히 생산이 중지된 이유가···.’

누군가가 스노우 플레이크의 생산장에 투구풍뎅이 떼를 풀었다.

이계 곤충인 투구풍뎅이가 생산장을 초토화시켰다는 얘기였다.

한건우가 정찰을 하면서, 동시에 투구풍뎅이의 흔적을 찾은 이유가 있었다.

레드 스타 때처럼, 스노우 플레이크라는 마약 자체를 뿌리뽑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방법도 대강 알고 있는데 당연히 도전은 해 봐야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산 기지는 그대로일 테고, 마리아 베르타의 빈자리는 또 다른 사악한 카르텔이 채우게 될 테니까.

“삼촌에게 배웠어요. 투구풍뎅이의 알이에요.”

“좋아.”

한건우는 우선 주위를 둘러보았다.

긴 얘기를 하기에는 장소가 좋지 않았다.

헌 경찰서는 군인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마리아 베르타의 다른 사병들이 언제 들어올지 몰랐다.

게다가 경찰서 마당에 잔인하게 죽은 시체가 늘어져 있었다.

한건우는 시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정확히 특성을 전개했다.

[특성 발동 : 부패의 시간]

- 대상의 부패나 부식을 빨라지게 한다.

“돌아서 있어.”

한건우는 멀뚱멀뚱 바라보는 아이들을 돌아 세웠다.

암만 봐도 아이들이 볼만한 광경은 아니었다.

스스스스···.

스슥···.

군인들의 시체가 손발부터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누런 해골이 드러났다.

휘이이-

덜그럭.

주인을 잃은 군모와 총기가 땅에 굴렀다.

한건우는 그것마저 남김없이 부식 시켜 버렸다.

군인들이 있던 자리는 회색 먼지만 흩날렸다.

*

경찰서를 나오기 전, 한건우는 아이들에게 은신의 룬을 걸어주었다.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는 건 아니어도, 기척을 숨겨서 눈에 띄지 않게 해주었다.

어느새 해가 완전히 저물고 어두워져 있었다.

아이들은 집 대신 그들의 아지트라는 곳으로 한건우를 안내했다.

빈민가 언덕배기 폐 공사장 밑.

얼기설기 짜인 판자로 덮인 좁은 입구가 있었다.

밖에서 볼 때는 거기에 사람이 들어간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안쪽은 자연적인 냉장고처럼 서늘했다.

아이들의 목덜미에 닭살이 돋은 게 보였다.

화악-

한건우가 허공에 작은 불을 밝혔다.

“와.”

한건우가 하는 모든 행동이 이들에게는 마술처럼 보이는 모양.

소년과 소녀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소년의 이름은 리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여동생인 레이나는 열 살이라고 했다.

보기보다 실제 나이가 더 어렸다.

한건우가 띄운 불빛이 둥둥 떠올라 안을 비추었다.

좁은 토굴인가 했는데, 내부는 제법 잘 갖추어져 있었다.

“13구역에 사는 사람들, 절반 이상이 스노우 플레이크 주사를 맞고 있어요. 배급 줄에서 식량과 함께 나눠주거든요.”

“반 이상이 중독자라는 거야?”

그들 남매는 한건우에게 슬슬 마음을 여는 것 같았다.

한 번 입이 트이자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자기들이 아는 건 뭐든지 말해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맞아요. 그래서 이제 퀸 마리아에게 대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삼촌 말로는, 옛날에, 퀸 마리아의 아버지가 대장이었을 때는 반군도 있었고 반대 카르텔도 있었대요. 그때는 카르텔에서 학교랑 병원도 지어주고 잘 해줬다는 거 있죠.”

“아참, 저희는 스노우 플레이크 주사, 한 번도 안 맞았어요, 삼촌도요.”

“....”

어린아이가 마약을 안 했다는 걸 자랑한다는 게 착잡했다.

그 와중, 아까부터 언급되는 삼촌이라는 사람이 열쇠 같았다.

군인들도 알고 있는 걸 보면 시시한 인물은 아닌 듯했다.

“삼촌은 어떤 분이었니?”

“각성자요!”

“정말 똑똑한 분이에요.”

“이계 식물이랑 곤충도 잘 알고요!”

남매가 앞다투어 삼촌을 자랑했다.

문득 삼촌이 이미 죽었다는 게 떠올랐는지,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잠잠해졌다.

“훌륭한 분이었구나.”

“네. 삼촌이 하려던 일은 우리가 꼭 해낼 거예요.”

리콘의 앳된 얼굴에 결의가 어렸다.

“스노우 플레이크를 세상에서 없애려는 거지?”

“...맞아요.”

리콘은 자기 생각을 속속들이 읽는 한건우에게 놀란 눈치였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 균열은 어디 있어?”

“균열이라뇨?”

“이계 식물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거니까, 미공략 균열 안에서 키우는 것 아냐?”

“형도 모든 걸 아는 건 아니네요.”

리콘이 씩 웃었다.

“그럼 어디지? 밭 같은 건 안 보이던데.”

“퀸 마리아의 교도소 보셨죠? 담장 안에 네펜데스 재배지가 있어요. 바로 거기서 스노우 플레이크를 만들어요.”

“네펜데스에서 마약이 나온다고?”

“원래는 마수를 잡아먹고 진액을 내뿜는 식물인데··· 퀸 마리아의 부하들이 발견했어요.”

“뭘?”

“각성자를 잡아먹고 나온 진액에는 마약성이 있대요.”

끔찍한 이야기였지만, 리콘은 담담하게 말했다.

한건우가 정글 숲이라고 생각한 곳.

그곳이 바로 마약의 재배지였다.

한건우의 입장에서는 편했다.

“잘됐군.”

“네?”

“어차피 한 번에 쓸어버리면 되니까.”

“형, 형이 퀸 마리아보다 강해요?”

리콘의 순수한 물음에 한건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기기 전까지는 누가 강한지 모르지.”

“와···.”

무엇 때문인지, 그 말에 남매는 감탄했다.

“하지만··· 저희는 한여름까지 기다려야 하는데요.”

“왜지?”

리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동생과 시선을 교환하더니, 뭔가를 결심한 듯.

문 옆에 걸린 해머를 번쩍 들었다.

휘잉-

“음?”

리콘은 깡마른 것치고는 힘이 좋았다.

성인 남자가 겨우 들 법한 해머를 크게 휘둘렀다.

파직!

리콘이 바닥 한구석을 내리쳤다.

흙바닥이 아니라 나무 판자 같은 것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바닥에 나무 상자가 묻혀 있었던 것이다.

리콘이 부서진 뚜껑을 잡고 열었다.

쩌억-

“오.”

마치 보물 상자를 연 듯했다.

나무 상자 안에서 새어나온 찬란한 황금빛이 눈을 찔렀다.

상자 안.

셀 수 없이 많은 투구풍뎅이의 알이 가득했다.

은행 씨앗만 한 알부터 주먹만 한 알까지.

크기도 다양했다.

“삼촌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모은 거예요. 스노우 플레이크에서 사람들을 구하려고···.”

한건우는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즉결처분을 당한다는 알이었다.

이렇게 모으기까지 얼마나 고생했을지는 불 보듯 뻔했다.

“그런데 왜 한여름까지 기다리려고 했어?”

“풍뎅이 알은 상온에서 부화하지 않는대요. 40도 이상이 되어야 깨어난다는데···.”

리콘이 말을 흐렸다.

삼촌이 살아있었다면 온장고 같은 걸 구했겠지만.

아이들의 힘으로는 물품을 구하기도 어려웠고, 교도소 근처까지 안 들키고 이동할 방법도 막막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가장 쉬운 방법을 떠올렸다.

바로 자연적인 부화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게 불완전한 방법이라는 걸 남매도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 부화해버리면, 풍뎅이 떼가 교도소까지 잘 이동할지 의문이었으니까.

“좋아. 리콘, 레이나.”

“네?”

“날 믿고 맡겨주겠어?”

남매가 동시에 대답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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